[특파원리포트] 노벨상 25명 보유한 日…한국 보고 “큰일 났다”?​

입력 2020.10.08 (11:12) 수정 2020.10.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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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0명 vs. 일본 25명'

'노벨상의 계절'이 끝나갑니다. 올해 이 숫자(과학 부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과학자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받나?" "언제까지 박수만 쳐야 하나." 한철 몸살 같은 탄식이 올해도 반복됐습니다.

옆 나라 일본도 울상입니다. 2018년부터 3년 연속으로 일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각 방송사는 유력 후보자의 집과 연구실 등에 배치해 둔 중계진을 철수시켰고, 신문들은 미리 만들어둔 호외를 거둬들였습니다.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 [출처 : 일본 NHK 방송]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 [출처 : 일본 NHK 방송]

日 박사 학위 취득자, 한국의 절반

'노벨상 주간'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4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흥미로운 기사를 냈습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노벨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것"이란 경고가 기존 수상자들에게서 나온다는 내용입니다.

근거는 일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수가 큰 폭으로 줄고 있다는 겁니다. 박사 학위는 해당 전공분야에 높은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증명하는 학위의 최고봉이죠. 박사 과정에서 수학하는 대학원생은 그동안 일본의 연구를 견인해 온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국가별 인구 100만 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 수. 일본이 119명으로 준 반면, 한국은 2배가 넘는 284명으로 늘었다. [출처 : 일본 NHK 방송]국가별 인구 100만 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 수. 일본이 119명으로 준 반면, 한국은 2배가 넘는 284명으로 늘었다. [출처 : 일본 NHK 방송]

그런데 일본 문부과학성 자료를 보면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는 신입생 수는 지난해 5천963명이었습니다. 2003년 1만 1,637명에 비해 무려 절반 가까이(48.7%) 급감한 수치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구 100만 명당 일본의 박사 학위 취득자 수도 2008년 131명에서 2017년에 119명으로 줄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 수치를 미국과 독일 외에 '노벨상 수상자 0명'의 한국과 비교한 점입니다. "일본 학위 취득자가 증가 경향인 한국(284명)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경고했습니다.

당장 노벨상을 몇 개 더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시아 내 독보적 '과학기술 강국'인 일본의 주춧돌이 흔들린다는 위기감입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 시내 거리에서 행인이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호외 신문을 읽고 있다. [사진 출처 : 교도=연합]지난해 10월 일본 도쿄 시내 거리에서 행인이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호외 신문을 읽고 있다. [사진 출처 : 교도=연합]

'샐러리맨 연구자'의 고언

"미국 등에서는 박사 학위를 따면 취업 우대를 받는데 일본은 급여 등 처우가 거의 변하지 않아요. 미래 경력이 불투명하다 보니 젊은 연구자들이 장기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시노 아키라(吉野彰·72)의 말입니다. 요시노는 대학이 아닌 일본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旭化成)에서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한 '샐러리맨 연구자'입니다.

그는 평소 "연구의 묘미는 실험이다. 특히 상상 외의 결과가 나올 때는 재미있다"는 말을 하며 연구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당초 전지 분야 문외한이었던 요시노가 리튬 배터리 연구를 시작한 것은 33살부터입니다. 기업은 그가 한 우물만 팔 수 있도록 30년 넘게 꾸준히 지원했습니다.

"대학에선 연구자 자신의 호기심에 근거해 오로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 최소 10년은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죠."

일본 공영방송 NHK가 ‘노벨상 시즌’을 맞아 홈페이지에 꾸민 특집 페이지.일본 공영방송 NHK가 ‘노벨상 시즌’을 맞아 홈페이지에 꾸민 특집 페이지.

"日 박사 학위 혜택 없다"

"부잣집에서 무슨 그런 엄살이냐"고 반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의 걱정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일본에서 박사 학위 인기가 크게 떨어진 이유는 한마디로 장래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박사 과정 재학생 대부분은 연령대가 20대 중반이나 후반입니다. 같은 세대의 친구들은 이미 취업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벌기는커녕 기본적으로 학비가 들기 때문에 격차가 더 뚜렷합니다.

그런데 일본 문부과학성의 박사 학위 취득자 진로조사(사회인·유학생 제외)를 보면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66.9%(2012년)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취업자 중 30% 이상은 비정규직이었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가 8.7%, '소재 불명·사망'도 8%였습니다.

주머니도 가볍습니다.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는 2012년부터 박사 과정 수료 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의 소득을 추적해 오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그나마 높은 이과계가 연간 400만~500만 엔(약 5천만 원), 문과계는 기껏해야 200만~300만 엔(약 2천70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피 같은 돈 들여 대학원에 진학해도 본전조차 뽑기 어렵습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됐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올해 노벨 화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됐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덩치 키운' 한국 vs. '경고음 내는' 일본

그런데 이런 우울한 수치가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이공계 홀대', '두뇌 유출' '척박한 연구 환경' 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의 유력 후보로 꼽혔던 현택환(56) 서울대 석좌교수도 7일 수상에 실패한 뒤 "과학자의 창의성은 자유로운 연구 기회에서 나온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해외 주요 연구기관들이 설립 100년이 더 돈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지원 30년 만에 위상이 올라간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막 기초연구 인력의 덩치를 맞추기 시작한 한국, 반면에 기초과학 쇠퇴를 막아내야 한다는 일본. 두 나라의 젊은 과학자들이 '0 대 25'라는 스코어를 어떻게 바꾸어나갈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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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8 11:12:04
    • 수정2020-10-08 11:13:00
    특파원 리포트
'한국 0명 vs. 일본 25명'

'노벨상의 계절'이 끝나갑니다. 올해 이 숫자(과학 부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과학자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받나?" "언제까지 박수만 쳐야 하나." 한철 몸살 같은 탄식이 올해도 반복됐습니다.

옆 나라 일본도 울상입니다. 2018년부터 3년 연속으로 일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각 방송사는 유력 후보자의 집과 연구실 등에 배치해 둔 중계진을 철수시켰고, 신문들은 미리 만들어둔 호외를 거둬들였습니다.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 [출처 : 일본 NHK 방송]
日 박사 학위 취득자, 한국의 절반

'노벨상 주간'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4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흥미로운 기사를 냈습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노벨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것"이란 경고가 기존 수상자들에게서 나온다는 내용입니다.

근거는 일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수가 큰 폭으로 줄고 있다는 겁니다. 박사 학위는 해당 전공분야에 높은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증명하는 학위의 최고봉이죠. 박사 과정에서 수학하는 대학원생은 그동안 일본의 연구를 견인해 온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국가별 인구 100만 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 수. 일본이 119명으로 준 반면, 한국은 2배가 넘는 284명으로 늘었다. [출처 : 일본 NHK 방송]
그런데 일본 문부과학성 자료를 보면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는 신입생 수는 지난해 5천963명이었습니다. 2003년 1만 1,637명에 비해 무려 절반 가까이(48.7%) 급감한 수치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구 100만 명당 일본의 박사 학위 취득자 수도 2008년 131명에서 2017년에 119명으로 줄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 수치를 미국과 독일 외에 '노벨상 수상자 0명'의 한국과 비교한 점입니다. "일본 학위 취득자가 증가 경향인 한국(284명)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경고했습니다.

당장 노벨상을 몇 개 더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시아 내 독보적 '과학기술 강국'인 일본의 주춧돌이 흔들린다는 위기감입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 시내 거리에서 행인이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호외 신문을 읽고 있다. [사진 출처 : 교도=연합]
'샐러리맨 연구자'의 고언

"미국 등에서는 박사 학위를 따면 취업 우대를 받는데 일본은 급여 등 처우가 거의 변하지 않아요. 미래 경력이 불투명하다 보니 젊은 연구자들이 장기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시노 아키라(吉野彰·72)의 말입니다. 요시노는 대학이 아닌 일본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旭化成)에서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한 '샐러리맨 연구자'입니다.

그는 평소 "연구의 묘미는 실험이다. 특히 상상 외의 결과가 나올 때는 재미있다"는 말을 하며 연구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당초 전지 분야 문외한이었던 요시노가 리튬 배터리 연구를 시작한 것은 33살부터입니다. 기업은 그가 한 우물만 팔 수 있도록 30년 넘게 꾸준히 지원했습니다.

"대학에선 연구자 자신의 호기심에 근거해 오로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 최소 10년은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죠."

일본 공영방송 NHK가 ‘노벨상 시즌’을 맞아 홈페이지에 꾸민 특집 페이지.
"日 박사 학위 혜택 없다"

"부잣집에서 무슨 그런 엄살이냐"고 반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의 걱정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일본에서 박사 학위 인기가 크게 떨어진 이유는 한마디로 장래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박사 과정 재학생 대부분은 연령대가 20대 중반이나 후반입니다. 같은 세대의 친구들은 이미 취업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벌기는커녕 기본적으로 학비가 들기 때문에 격차가 더 뚜렷합니다.

그런데 일본 문부과학성의 박사 학위 취득자 진로조사(사회인·유학생 제외)를 보면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66.9%(2012년)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취업자 중 30% 이상은 비정규직이었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가 8.7%, '소재 불명·사망'도 8%였습니다.

주머니도 가볍습니다.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는 2012년부터 박사 과정 수료 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의 소득을 추적해 오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그나마 높은 이과계가 연간 400만~500만 엔(약 5천만 원), 문과계는 기껏해야 200만~300만 엔(약 2천70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피 같은 돈 들여 대학원에 진학해도 본전조차 뽑기 어렵습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됐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덩치 키운' 한국 vs. '경고음 내는' 일본

그런데 이런 우울한 수치가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이공계 홀대', '두뇌 유출' '척박한 연구 환경' 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의 유력 후보로 꼽혔던 현택환(56) 서울대 석좌교수도 7일 수상에 실패한 뒤 "과학자의 창의성은 자유로운 연구 기회에서 나온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해외 주요 연구기관들이 설립 100년이 더 돈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지원 30년 만에 위상이 올라간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막 기초연구 인력의 덩치를 맞추기 시작한 한국, 반면에 기초과학 쇠퇴를 막아내야 한다는 일본. 두 나라의 젊은 과학자들이 '0 대 25'라는 스코어를 어떻게 바꾸어나갈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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