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라 세종대왕님 뵈러 왔는데, 들어가도 되나요?”

입력 2020.10.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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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로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한글날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은 경찰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광장 일대에는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보건용 마스크에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다 하더라도,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을 만나려면 한 가지 관문을 더 거쳐야 합니다. 경찰의 검문인데요.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가 법원에서 금지된 상황에서 불법 집회를 하러 온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개천절 때와 달리 ‘차단’을 한 건 아니고 광장으로 들어오려는 일반 시민들에게 ‘제재와 안내’를 동시에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광화문 광장 일대에 줄지어 선 경찰 버스)(광화문 광장 일대에 줄지어 선 경찰 버스)

지난 개천절에 논란이 됐던 ‘불심검문’을 하는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 관계자는 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위험 방지와 범죄 예방 차원에서 대규모 집회는 막아야 하며, 어린이와 함께 광장을 찾은 가족들이나 일반 시민들의 경우 광장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기 불편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셔틀버스를 마련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길게 늘어선 ‘차량 벽’ 앞에서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선뜻 들어가려는 시민들을 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사실상의 봉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지난해 한글날 광화문 광장 모습-KBS뉴스9 보도)(지난해 한글날 광화문 광장 모습-KBS뉴스9 보도)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은 2년 연속으로 뵙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는 오전에 이 장소에서 한글날 경축식이 열리긴 했지만, 행사 직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가 광범위하게 열렸습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오늘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일부 단체가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집회를 또 다시 시도하고 있어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50일 전의 광복절 집회가 점화시킨 코로나19 재확산의 불길이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남아 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로서는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집회의 자유를 막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지난 광복절 때 있었던 코로나 재확산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도 없는 정부의 고민이 읽힙니다.

■ 보수단체들의 반발...“문재인 정권의 정치 방역”

한글날 서울 지역에 신고된 집회 가운데 10인 이상 집회를 신고한 모든 단체에 집합 금지가 통보됐습니다.

오늘 집회를 열고자 했던 보수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집회가 금지된 만큼 이들 단체는 소규모 기자회견을 서울 곳곳에서 진행했습니다.

최인식 8·15 비대위 사무총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이번 조치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예방 차원이 아니죠. 가상의, 있지도 않은 적을 세워 놓고 하는 거죠. 우리가 정신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고요. 문재인 정권의 사기 방역에 대한 논거를 단 한 가지도 (정부가) 반박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광장에서 코로나가 옮겨졌다는 말입니까? 다 사기인 거죠. 정치 방역이고. 하지만,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킬 수밖에 없어서 (집회 대신) 기자회견을 한 겁니다.”

이들 보수단체뿐 아니라 정의당이나 참여연대와 같은 진보 진영에서도 경찰의 집회 봉쇄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이번 집회 금지 조치가 많은 고민과 논란을 던져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코로나 차단·집회의 자유...평행선의 해법은?

세종대왕은 백성이 글을 몰라 자기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말을 쉽게 글로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마다 이것을 쉽게 익혀 편히 사용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서문 중)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편하게 쓰라고 만든 훈민정음의 애민정신은 표현의 자유와도 맞닿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접촉에 의해서 감염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한 공간에 대규모로 모이는 형태를 지양하자는 정부의 취지도 이해는 갑니다.

세종대왕님이 훈민정음을 만드실 땐, 서로 소통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처음 가보고 있는 길. 집회의 자유를 강조하는 일각의 분노도,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방침의 의미도 서로 헤아려보는 한글날이길 바라봅니다. 내년 한글날엔 자유롭게 세종대왕님을 만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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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이라 세종대왕님 뵈러 왔는데, 들어가도 되나요?”
    • 입력 2020-10-09 14:31:29
    취재K

■ “무슨 일로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한글날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은 경찰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광장 일대에는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보건용 마스크에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다 하더라도,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을 만나려면 한 가지 관문을 더 거쳐야 합니다. 경찰의 검문인데요.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가 법원에서 금지된 상황에서 불법 집회를 하러 온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개천절 때와 달리 ‘차단’을 한 건 아니고 광장으로 들어오려는 일반 시민들에게 ‘제재와 안내’를 동시에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광화문 광장 일대에 줄지어 선 경찰 버스)
지난 개천절에 논란이 됐던 ‘불심검문’을 하는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 관계자는 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위험 방지와 범죄 예방 차원에서 대규모 집회는 막아야 하며, 어린이와 함께 광장을 찾은 가족들이나 일반 시민들의 경우 광장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기 불편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셔틀버스를 마련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길게 늘어선 ‘차량 벽’ 앞에서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선뜻 들어가려는 시민들을 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사실상의 봉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지난해 한글날 광화문 광장 모습-KBS뉴스9 보도)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은 2년 연속으로 뵙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는 오전에 이 장소에서 한글날 경축식이 열리긴 했지만, 행사 직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가 광범위하게 열렸습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오늘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일부 단체가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집회를 또 다시 시도하고 있어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50일 전의 광복절 집회가 점화시킨 코로나19 재확산의 불길이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남아 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로서는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집회의 자유를 막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지난 광복절 때 있었던 코로나 재확산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칠 수도 없는 정부의 고민이 읽힙니다.

■ 보수단체들의 반발...“문재인 정권의 정치 방역”

한글날 서울 지역에 신고된 집회 가운데 10인 이상 집회를 신고한 모든 단체에 집합 금지가 통보됐습니다.

오늘 집회를 열고자 했던 보수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집회가 금지된 만큼 이들 단체는 소규모 기자회견을 서울 곳곳에서 진행했습니다.

최인식 8·15 비대위 사무총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이번 조치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예방 차원이 아니죠. 가상의, 있지도 않은 적을 세워 놓고 하는 거죠. 우리가 정신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고요. 문재인 정권의 사기 방역에 대한 논거를 단 한 가지도 (정부가) 반박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광장에서 코로나가 옮겨졌다는 말입니까? 다 사기인 거죠. 정치 방역이고. 하지만,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킬 수밖에 없어서 (집회 대신) 기자회견을 한 겁니다.”

이들 보수단체뿐 아니라 정의당이나 참여연대와 같은 진보 진영에서도 경찰의 집회 봉쇄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이번 집회 금지 조치가 많은 고민과 논란을 던져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코로나 차단·집회의 자유...평행선의 해법은?

세종대왕은 백성이 글을 몰라 자기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말을 쉽게 글로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마다 이것을 쉽게 익혀 편히 사용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서문 중)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편하게 쓰라고 만든 훈민정음의 애민정신은 표현의 자유와도 맞닿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접촉에 의해서 감염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한 공간에 대규모로 모이는 형태를 지양하자는 정부의 취지도 이해는 갑니다.

세종대왕님이 훈민정음을 만드실 땐, 서로 소통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처음 가보고 있는 길. 집회의 자유를 강조하는 일각의 분노도,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방침의 의미도 서로 헤아려보는 한글날이길 바라봅니다. 내년 한글날엔 자유롭게 세종대왕님을 만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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