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병원 수배’하는 구급대원들

입력 2020.10.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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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치료가 시작돼야 하는 시간을 '골든아워'라고 합니다. 보통 사고 발생 후 1시간을 '골든아워'라고 부르는데요. 현장에 달려가 응급 처치를 하고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소방대원들에게 '골든아워'는 시간의 문제가 아닌, 생사의 문제입니다.

■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어디 가야 합니까?'

절박함에 여러 차례 '어디로 갈지'를 묻는 사람은 환자도, 환자 보호자도 아닌 119구급대원이었습니다. 지난 8월 말 부산에서 약물중독 환자를 옮기던 구급대원이 환자가 갈 병원을 알아보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병원 13곳과 30차례의 통화를 한 끝에 겨우 환자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녹취록에는 이런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환자를 못받겠다는 병원들의 거절에 1시간 넘게 전화를 돌리던 구급대원은 '도무지 갈 데가 없다'며 '한 번만 받아달라'고 사정까지 합니다. 안 된다는 말에도 재차 '안되냐'며 묻습니다. 생과 사의 순간에 있는 환자를 눈 앞에 두고 거절당하기를 수십 번. 겨우 13번째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고 본부에 '안전운행'이라고 보고하며 통화를 마친 구급대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 올해 상반기 '응급환자 거부' 8천 건...100명 중 1명꼴

병원의 응급환자 거부로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보건복지위 신현영 의원에 따르면, 응급환자 재이송은 2017년 6,397건에서 2018년 9,658건, 지난해에는 10,253건으로 나타났습니다. 4건 중 1건은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이고 병상 부족, 보호자 변심 등의 이유였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7,807건입니다. 전체 이송 건이 약 79만 건인데 100명 중 1명꼴로 재이송이 이뤄지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세차례 이상 병원을 옮기는 경우도 3,433건, 절반에 가깝습니다. 왜 이렇게 급증한 걸까요?

구급대원들은 코로나19와 전공의 파업 등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에만 해도 의료시설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응급환자 재이송이 1000명 중 4명꼴로 비교적 적었습니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는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집중 발생하면서 이러한 지역 편차가 없어졌습니다. '대응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재이송 비중이 올해 높아진 점도 눈에 띕니다.

■ 코로나19 이후 '병원 수배'하는 119구급대원들

'병원 수배 차 연락드립니다'로 시작되는 119구급대원의 통화에서 볼 수 있듯 응급상황에서 병원은 찾는 게 아니라 '수배'해야하는 대상입니다. 한 119구급대원은 "심장마비처럼 일각을 다툴 때 병원 수배가 늦어지면 아득해진다"라면서 "혹시라도 시간이 지연돼 구급차 안에서 돌아가시면 그게 내 잘못이 아니어도 그 짐을 감당하기 참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전공의 파업까지 겹쳤던 지난 8월은 구급대원들에게 더욱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길에 쓰러진 한 임산부를 병원에 옮기던 구급대원은 "출동까지 3분도 안 걸렸는데 병원 이송까지 40분이 걸렸다"라며 "길에 갈 곳 없이 있는데 참 화가 나고 답답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전공의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의료 체제에서는 전공의가 빠지면 의료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례 없는 코로나 시대에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응급 인력, 필수 인력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신현영 의원은 "전공의들, 특히나 값싼 노동력을 반복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보다는 전문의 중심의 인력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신 의원은 "응급환자를 받을 때 감염병 의심 환자와 비감염병 환자의 동선을 분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병원이 아직까지 많지 않다"라며 "감염병이 이렇게 장기화되면서 감염환자도 잘 봐야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지만, 비감염병인 중증환자를 빠르게 볼 수 있는 두 트랙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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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0 07:01:10
    취재K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치료가 시작돼야 하는 시간을 '골든아워'라고 합니다. 보통 사고 발생 후 1시간을 '골든아워'라고 부르는데요. 현장에 달려가 응급 처치를 하고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소방대원들에게 '골든아워'는 시간의 문제가 아닌, 생사의 문제입니다.

■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어디 가야 합니까?'

절박함에 여러 차례 '어디로 갈지'를 묻는 사람은 환자도, 환자 보호자도 아닌 119구급대원이었습니다. 지난 8월 말 부산에서 약물중독 환자를 옮기던 구급대원이 환자가 갈 병원을 알아보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병원 13곳과 30차례의 통화를 한 끝에 겨우 환자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녹취록에는 이런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환자를 못받겠다는 병원들의 거절에 1시간 넘게 전화를 돌리던 구급대원은 '도무지 갈 데가 없다'며 '한 번만 받아달라'고 사정까지 합니다. 안 된다는 말에도 재차 '안되냐'며 묻습니다. 생과 사의 순간에 있는 환자를 눈 앞에 두고 거절당하기를 수십 번. 겨우 13번째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고 본부에 '안전운행'이라고 보고하며 통화를 마친 구급대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 올해 상반기 '응급환자 거부' 8천 건...100명 중 1명꼴

병원의 응급환자 거부로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보건복지위 신현영 의원에 따르면, 응급환자 재이송은 2017년 6,397건에서 2018년 9,658건, 지난해에는 10,253건으로 나타났습니다. 4건 중 1건은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이고 병상 부족, 보호자 변심 등의 이유였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7,807건입니다. 전체 이송 건이 약 79만 건인데 100명 중 1명꼴로 재이송이 이뤄지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세차례 이상 병원을 옮기는 경우도 3,433건, 절반에 가깝습니다. 왜 이렇게 급증한 걸까요?

구급대원들은 코로나19와 전공의 파업 등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에만 해도 의료시설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응급환자 재이송이 1000명 중 4명꼴로 비교적 적었습니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는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집중 발생하면서 이러한 지역 편차가 없어졌습니다. '대응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재이송 비중이 올해 높아진 점도 눈에 띕니다.

■ 코로나19 이후 '병원 수배'하는 119구급대원들

'병원 수배 차 연락드립니다'로 시작되는 119구급대원의 통화에서 볼 수 있듯 응급상황에서 병원은 찾는 게 아니라 '수배'해야하는 대상입니다. 한 119구급대원은 "심장마비처럼 일각을 다툴 때 병원 수배가 늦어지면 아득해진다"라면서 "혹시라도 시간이 지연돼 구급차 안에서 돌아가시면 그게 내 잘못이 아니어도 그 짐을 감당하기 참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전공의 파업까지 겹쳤던 지난 8월은 구급대원들에게 더욱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길에 쓰러진 한 임산부를 병원에 옮기던 구급대원은 "출동까지 3분도 안 걸렸는데 병원 이송까지 40분이 걸렸다"라며 "길에 갈 곳 없이 있는데 참 화가 나고 답답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전공의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의료 체제에서는 전공의가 빠지면 의료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례 없는 코로나 시대에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응급 인력, 필수 인력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신현영 의원은 "전공의들, 특히나 값싼 노동력을 반복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보다는 전문의 중심의 인력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신 의원은 "응급환자를 받을 때 감염병 의심 환자와 비감염병 환자의 동선을 분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병원이 아직까지 많지 않다"라며 "감염병이 이렇게 장기화되면서 감염환자도 잘 봐야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지만, 비감염병인 중증환자를 빠르게 볼 수 있는 두 트랙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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