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찌르고 끓여도 멀쩡 ‘터미네이터 코로나’?…오보 알고도 방치하는 언론

입력 2020.10.1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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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코로나 19 확진자가 3천6백만 명, 사망자는 백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방역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사망자가 2백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코로나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속성, 치료제와 백신 등을 둘러싼 과학적 전문 정보를 얻으려는 대중의 욕구도 함께 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들의 코로나 관련 검색량을 살펴보니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올해 2월 이후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사는 코로나바이러스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인데요. 그런데 기사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둘러싼 잘못된 정보, 비과학적인 주장들이 포함돼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늘로 백 번 찔러도, 90도로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기사가 나오고 ‘지독하다’를 넘어서 ‘터미네이터 코로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는데요. 정말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독 질기고 지독한 바이러스일까요?

이 기사에 직접 팩트체크 댓글을 달아 화제를 모았던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J’에 출연해 해당 논문과 기사의 차이를 조목 조목 짚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기사에 등장하는 ‘찌른다’는 표현은 연구 논문엔 없다”면서 “원자 현미경의 뾰족한 탐침으로 바이러스를 만지면서 외부 형태와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100번 정도 눌렀는데 형태가 거의 유지됐다”고 논문 내용을 풀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세포막은 아무리 눌러도 서로 뭉치는 특성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형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논문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명체의 공통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일뿐 코로나바이러스의 지독한 특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90도 열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표현도 지적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코로나바이러스 표면에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돌기 모양의 단백질이 세포 감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해당 논문에서 ‘90도로 가열했더니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스파이크 단백질은 다 변성되거나 떨어져 나갔다’고 쓰여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고열에 감염력을 상당히 잃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끄떡없이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해석인 셈이죠.

해당 논문이 기사화되는 과정을 살펴봤더니 처음 바늘로 찔렀다는 표현을 썼던 건 홍콩 매체였습니다. 논문에 없는 표현을 넣은 것인데, 이 홍콩 매체의 기사를 우리 연합뉴스가 그대로 번역 보도하자 국내 대다수 언론이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받아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온라인상에서만 같은 내용의 보도가 86건에 달했습니다.

‘J’ 고정패널인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는 “연합뉴스는 속보에 특화된 통신사의 특성상 과학 기사마저도 속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기에 많은 언론이 연합뉴스 기사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이 있어서 결국 그 두 가지 문제가 결합한 사안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치료제 관련 기사들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최근엔 이른바 빨간약이라 불리는 포비돈이 코로나 억제 효과가 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포비돈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사멸할 수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포비돈이 코로나 19에만 반응하는 특기할 만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포비돈의 요오드 성분이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세포막에 있는 단백질을 파괴하기 때문에 모든 세균을 전부 죽일 수 있다”며 사용에 있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보도들,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큽니다.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 관련 기사가 나오면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건 물론이고 주식 시장까지 요동을 치게 되는데요. 최근엔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관련 보도가 주식 시장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임상이 승인된 의약품인데 코로나 19 효과를 두고 임상 진행 과정에서 최근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치료제로 사용했다”면서 “그런데 이 클로로퀸이 임상 과정에서 기저 질환자들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 결국 탈락했다”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에 대한 과도한 기사가 대중에게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복용했다가 목숨을 잃은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이란에서는 체내에 있는 바이러스를 소독한다면서 소독용 알코올을 마신 사람들이 500명 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허위정보 확산이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 건데요. 바로 인포데믹(정보 전염병) 현상이죠.


과학자가 아닌 기자가 직접 논문을 검토하고 전문적 기사를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외신을 번역하며 그대로 싣는 경우엔 오보를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기사에 담긴 정보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을 경우에도 언론은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는 겁니다.

‘J’에 출연한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한 설문조사 결과 가짜뉴스 확산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로 인터넷 포털 뉴스와 언론사 사이트가 꼽혔다”며 가짜뉴스의 확산 경로로 알려진 SNS보다 기성언론이 왜곡된 정보 확산의 책임이 더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오보로 지적된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늘로 백 번 찔러도, 90도로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는 기사들은 현재도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언론사 보다 플랫폼이 먼저 나섰습니다. 최근 트위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포함돼 있을 확률이 높다며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는 경고 문구를 붙였습니다. 페이스북은 가짜 정보를 담고 있는 포스팅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J’ 고정패널인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트위터의 사례처럼 한국 언론사에도 오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오보로 확인되더라도 일단 클릭 수를 유도하면 상관없다는 식의 언론의 태도가 가짜 뉴스 생산과 확산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08회는 < 오보 바이러스 퍼뜨린 코로나 19 과학 보도 >라는 주제로 오는 11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승현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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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찌르고 끓여도 멀쩡 ‘터미네이터 코로나’?…오보 알고도 방치하는 언론
    • 입력 2020-10-10 08:07:23
    저널리즘 토크쇼 J
전 세계 코로나 19 확진자가 3천6백만 명, 사망자는 백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방역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사망자가 2백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코로나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속성, 치료제와 백신 등을 둘러싼 과학적 전문 정보를 얻으려는 대중의 욕구도 함께 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들의 코로나 관련 검색량을 살펴보니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올해 2월 이후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사는 코로나바이러스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인데요. 그런데 기사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둘러싼 잘못된 정보, 비과학적인 주장들이 포함돼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늘로 백 번 찔러도, 90도로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기사가 나오고 ‘지독하다’를 넘어서 ‘터미네이터 코로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는데요. 정말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독 질기고 지독한 바이러스일까요?

이 기사에 직접 팩트체크 댓글을 달아 화제를 모았던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J’에 출연해 해당 논문과 기사의 차이를 조목 조목 짚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기사에 등장하는 ‘찌른다’는 표현은 연구 논문엔 없다”면서 “원자 현미경의 뾰족한 탐침으로 바이러스를 만지면서 외부 형태와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100번 정도 눌렀는데 형태가 거의 유지됐다”고 논문 내용을 풀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세포막은 아무리 눌러도 서로 뭉치는 특성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형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논문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명체의 공통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일뿐 코로나바이러스의 지독한 특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90도 열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표현도 지적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코로나바이러스 표면에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돌기 모양의 단백질이 세포 감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해당 논문에서 ‘90도로 가열했더니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스파이크 단백질은 다 변성되거나 떨어져 나갔다’고 쓰여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고열에 감염력을 상당히 잃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끄떡없이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해석인 셈이죠.

해당 논문이 기사화되는 과정을 살펴봤더니 처음 바늘로 찔렀다는 표현을 썼던 건 홍콩 매체였습니다. 논문에 없는 표현을 넣은 것인데, 이 홍콩 매체의 기사를 우리 연합뉴스가 그대로 번역 보도하자 국내 대다수 언론이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받아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온라인상에서만 같은 내용의 보도가 86건에 달했습니다.

‘J’ 고정패널인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는 “연합뉴스는 속보에 특화된 통신사의 특성상 과학 기사마저도 속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기에 많은 언론이 연합뉴스 기사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이 있어서 결국 그 두 가지 문제가 결합한 사안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치료제 관련 기사들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최근엔 이른바 빨간약이라 불리는 포비돈이 코로나 억제 효과가 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포비돈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사멸할 수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포비돈이 코로나 19에만 반응하는 특기할 만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포비돈의 요오드 성분이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세포막에 있는 단백질을 파괴하기 때문에 모든 세균을 전부 죽일 수 있다”며 사용에 있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보도들,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큽니다.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 관련 기사가 나오면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건 물론이고 주식 시장까지 요동을 치게 되는데요. 최근엔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관련 보도가 주식 시장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임상이 승인된 의약품인데 코로나 19 효과를 두고 임상 진행 과정에서 최근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치료제로 사용했다”면서 “그런데 이 클로로퀸이 임상 과정에서 기저 질환자들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 결국 탈락했다”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에 대한 과도한 기사가 대중에게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복용했다가 목숨을 잃은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이란에서는 체내에 있는 바이러스를 소독한다면서 소독용 알코올을 마신 사람들이 500명 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허위정보 확산이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 건데요. 바로 인포데믹(정보 전염병) 현상이죠.


과학자가 아닌 기자가 직접 논문을 검토하고 전문적 기사를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외신을 번역하며 그대로 싣는 경우엔 오보를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기사에 담긴 정보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을 경우에도 언론은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는 겁니다.

‘J’에 출연한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한 설문조사 결과 가짜뉴스 확산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로 인터넷 포털 뉴스와 언론사 사이트가 꼽혔다”며 가짜뉴스의 확산 경로로 알려진 SNS보다 기성언론이 왜곡된 정보 확산의 책임이 더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오보로 지적된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늘로 백 번 찔러도, 90도로 가열해도 죽지 않는다’는 기사들은 현재도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언론사 보다 플랫폼이 먼저 나섰습니다. 최근 트위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포함돼 있을 확률이 높다며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는 경고 문구를 붙였습니다. 페이스북은 가짜 정보를 담고 있는 포스팅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J’ 고정패널인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트위터의 사례처럼 한국 언론사에도 오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오보로 확인되더라도 일단 클릭 수를 유도하면 상관없다는 식의 언론의 태도가 가짜 뉴스 생산과 확산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08회는 < 오보 바이러스 퍼뜨린 코로나 19 과학 보도 >라는 주제로 오는 11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승현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선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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