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그만두겠다” 직원 문자에…“1억 원 내라” 소송 낸 사장님

입력 2020.10.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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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갑자기 직원이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고 결근한 경우, 고용주로선 당황스럽고 화가 나겠죠. 이론상으론 직원을 상대로 무단결근과 업무 인수인계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지만, 실제론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직원의 사직으로 회사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손해가 발생했는지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핵심적인 업무가 아니라, 누구든 대신할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실제로 직원의 사직을 문제 삼아 소송을 낸 경우,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참고되실 수 있도록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A 씨는 지난 2018년부터 서울 동작구에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삼겹살과 곱창 등을 먼저 주방에서 초벌구이한 다음, 서빙 담당 직원들이 손님들의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가맹점이었습니다.

직원 B, C, D 씨는 이 식당의 종업원으로 근무하면서 오후 4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2시쯤 퇴근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B 씨는 가맹본부에서 교육을 받은 후 이 식당에서 주방 업무를 담당하다 D 씨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식당을 총괄하는 점장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B 씨는 2018년 12월 말 새벽 4시쯤, 사장 A 씨에게 "그만두겠다"는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그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직원 C, D 씨 역시 같은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그날부터 식당 영업을 중단했다 1~2개월 후 영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 사장 "사전 공모해 무단결근, 영업방해"...직원들 "밀린 월급 달라"

A 씨는 2019년 1월 전 직원 B, C, D 씨를 상대로 1억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를 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B, C, D 씨는 식당 영업을 방해하고자 사전에 공모해 동시에 무단으로 결근했는 바, 이들의 행위는 불법행위(업무방해)에 해당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고용계약 위반으로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며 "이들의 불법행위 내지 채무불이행으로 식당 영업을 장기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벌어들였어야 할 일실 영업이익 2000여만 원과 정신적 손해 2900여만 원, 식당 영업을 위해 준비해뒀으나 판매하지 못하고 폐기한 식자재 2,000만 원, 손님의 예약을 취소하는 등으로 인한 신용훼손 3,000만 원을 합쳐 1억 원의 손해를 봤다는 게 A 씨의 주장이었습니다.

B, C 씨는 자신들이 그만둔 달에 지급받아야 했을 한 달 치 월급을 A 씨가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임금을 지급하라는 반소를 제기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A 씨는 B, C, D 씨를 서울중앙지검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초 직원들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했습니다.

■ 법원 "직원 사직으로 그만큼 손해 입었다고 볼 근거 없어"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은 최근 "B, C, D 씨의 갑작스러운 사직으로 인해 A 씨가 그와 같은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피고들이 그만둘 당시 각 담당했던 업무 내용 등(피고 B, C 씨는 주로 홀 서빙을, D 씨는 초벌구이 등을 각 담당했다)에 비추어 볼 때 대체인력 투입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피고들이 공모하여 동시에 그만뒀다는 점에 관한 입증이 없는 이상, B, C, D 씨가 자신이 그만둘 경우 식당 영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걸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또 "B, C, D 씨들이 없으면 식당 영업이 불가능하다거나, 피고들을 대체할 인력을 새로 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고, 이후로도 식당 영업을 계속했다면 A 씨가 단순히 불편한 정도를 넘어 영업상 어떠한 손해가 발생했으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식당 개업 이후 피고들이 그만둘 때까지 6개월간 식당의 소득금액은 약 312만 원(월평균 52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A 씨의 영업 중단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A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A 씨가 B, C 씨에게 지급하지 않은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즉각 항소했고, 사건은 확정되지 않고 2심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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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0 09:01:20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갑자기 직원이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고 결근한 경우, 고용주로선 당황스럽고 화가 나겠죠. 이론상으론 직원을 상대로 무단결근과 업무 인수인계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지만, 실제론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직원의 사직으로 회사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손해가 발생했는지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핵심적인 업무가 아니라, 누구든 대신할 수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실제로 직원의 사직을 문제 삼아 소송을 낸 경우,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참고되실 수 있도록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A 씨는 지난 2018년부터 서울 동작구에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삼겹살과 곱창 등을 먼저 주방에서 초벌구이한 다음, 서빙 담당 직원들이 손님들의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가맹점이었습니다.

직원 B, C, D 씨는 이 식당의 종업원으로 근무하면서 오후 4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2시쯤 퇴근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B 씨는 가맹본부에서 교육을 받은 후 이 식당에서 주방 업무를 담당하다 D 씨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식당을 총괄하는 점장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B 씨는 2018년 12월 말 새벽 4시쯤, 사장 A 씨에게 "그만두겠다"는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그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직원 C, D 씨 역시 같은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그날부터 식당 영업을 중단했다 1~2개월 후 영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 사장 "사전 공모해 무단결근, 영업방해"...직원들 "밀린 월급 달라"

A 씨는 2019년 1월 전 직원 B, C, D 씨를 상대로 1억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를 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B, C, D 씨는 식당 영업을 방해하고자 사전에 공모해 동시에 무단으로 결근했는 바, 이들의 행위는 불법행위(업무방해)에 해당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고용계약 위반으로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며 "이들의 불법행위 내지 채무불이행으로 식당 영업을 장기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벌어들였어야 할 일실 영업이익 2000여만 원과 정신적 손해 2900여만 원, 식당 영업을 위해 준비해뒀으나 판매하지 못하고 폐기한 식자재 2,000만 원, 손님의 예약을 취소하는 등으로 인한 신용훼손 3,000만 원을 합쳐 1억 원의 손해를 봤다는 게 A 씨의 주장이었습니다.

B, C 씨는 자신들이 그만둔 달에 지급받아야 했을 한 달 치 월급을 A 씨가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임금을 지급하라는 반소를 제기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A 씨는 B, C, D 씨를 서울중앙지검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초 직원들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했습니다.

■ 법원 "직원 사직으로 그만큼 손해 입었다고 볼 근거 없어"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은 최근 "B, C, D 씨의 갑작스러운 사직으로 인해 A 씨가 그와 같은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피고들이 그만둘 당시 각 담당했던 업무 내용 등(피고 B, C 씨는 주로 홀 서빙을, D 씨는 초벌구이 등을 각 담당했다)에 비추어 볼 때 대체인력 투입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피고들이 공모하여 동시에 그만뒀다는 점에 관한 입증이 없는 이상, B, C, D 씨가 자신이 그만둘 경우 식당 영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걸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또 "B, C, D 씨들이 없으면 식당 영업이 불가능하다거나, 피고들을 대체할 인력을 새로 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고, 이후로도 식당 영업을 계속했다면 A 씨가 단순히 불편한 정도를 넘어 영업상 어떠한 손해가 발생했으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식당 개업 이후 피고들이 그만둘 때까지 6개월간 식당의 소득금액은 약 312만 원(월평균 52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A 씨의 영업 중단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A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A 씨가 B, C 씨에게 지급하지 않은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즉각 항소했고, 사건은 확정되지 않고 2심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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