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요양원서 죽 먹다 숨진 할머니…요양원 노인학대 늘어나는 이유는

입력 2020.10.11 (07:00) 수정 2020.10.11 (14: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수도권의 한 요양원. 요양보호사가 80대 여성 A 씨에게 아침 식사로 죽을 먹이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습니다.

그런데 죽을 먹이는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화면상으로 보면 2분 30초 동안 14차례나 죽을 입에 넣어준 것으로 나타났는데, 10초에 한 번꼴로 숟가락을 입에 넣은 겁니다.

A 씨는 평소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지만, CCTV 속 요양보호사는 너무 바빠 보였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개를 앞뒤로 흔드는 A 씨요양보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개를 앞뒤로 흔드는 A 씨

■기도폐쇄로 의식 잃은 A 씨…병원 옮겨졌지만 2주 만에 사망

죽을 먹이면서 다른 곳을 보기도 했던 요양보호사는 다른 노인의 식사 준비를 위해 2분여간 자리를 비웠고, 요양보호사가 자리를 비운 새 A 씨는 괴로운 듯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리로 돌아온 요양보호사는 A 씨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5차례 더 죽을 먹이고는 다른 노인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자리를 떴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CCTV 영상은 여기까지인데, 이후 다른 요양보호사가 A 씨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발견해 응급조치로 이물질을 빼내고 119에 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출동했던 소방서 관계자는 "죽을 먹이다 상태가 이상해 신고했다고 돼 있고, 구급대 도착 당시 의식이 없어 심폐소생술을 한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A 씨는 2주 만에 중환자실에서 숨졌습니다.

A 씨가 요양원에 입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요양보호사 과실치사 혐의 기소…요양원엔 개선명령 부과

A 씨 유가족은 해당 요양원을 노인학대 혐의로 신고했고, 경찰에도 고발했습니다.

지자체와 관할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요양원 현장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방임 등의 노인학대가 있었다고 판단해 지난 7월 요양원에 교육 등의 개선명령을 내렸습니다.

경찰은 A 씨 사망 사건을 수사한 결과 요양보호사와 요양원 원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에선 지난달 요양보호사만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요양원 원장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습니다.


■늘어나는 노인학대…요양원 등 기관 노인학대 더 늘어

A 씨 사고와 같은 노인학대 사례는 최근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노인학대 사례가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노인학대로 판정된 건수는 2015년 3,818건에서 지난해 5,243건으로 5년 새 37%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노인학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학대 가해자 중 요양원 등 노인보호시설 관계자의 비중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5년 9%에 불과했던 노인학대 행위자 중 기관 비중은 지난해 18.5%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처럼 기관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요양원 등 노인 요양기관 수가 계속 늘고 있고, 사회 전체적인 인식이나 기관 종사자들의 인권 감수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학대라고 인식 못 했던 것도 노인학대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노인학대로 신고가 접수되거나 노인학대로 판정되는 건수가 늘어났다는 겁니다.

■"기준은 2.5명당 1명…실제로는 1명이 10명 돌보기도"

법에서 정한 요양보호사 배치 기준이 세밀하지 못하다는 점도 이와 같은 사고가 벌어진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기준에 맞춰 요양보호사를 배치해 뒀음에도 요양보호사가 너무 바빠 노인들을 잘 돌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행 노인복지법은 시행규칙 별표4를 통해 노인요양시설에는 입소자 2.5명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은 "2.5명당 1명씩 어르신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3교대 근무고 연차라든지 휴가를 고려했을 때는 한 사람이 열 사람 이상을 보호하는 시스템에서 어르신들 한 명 한 명의 식사시간 문제를 개별적으로 충분히 드리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노인들의 성향에 따라서 식단도 구별해야 하고 식사시간도 차별화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데, 현행 요양보호사 배치기준으로는 이 같은 맞춤형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노인요양시설 CCTV 의무화 검토할 때"

요양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고려하면 당장 요양보호사를 더 많이 늘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요양원의 식사공간 등 공동사용 공간 등에라도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제보받은 영상이라며 KBS가 보도한 사고 영상을 공개하고, "CCTV 설치로 막을 수 있으니 의원들이 나서달라. CCTV 설치를 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요양시설은 80% 이상, 공동생활시설에는 50%가 CCTV를 설치했는데 의무화 되지는 않았다"며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도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서 받아들여졌다. 요양원 역시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의무화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양원으로서도 CCTV 설치 의무화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요양원 원장은 "처음에 3대뿐이었는데 지금은 요양원 전체적으로 CCTV를 많이 늘렸다"며 "많은 요양보호사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고, 무슨 사고가 있을지 모르니 CCTV를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고 같은 경우에도 CCTV가 없었다면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에게 얼마나 죽을 빨리 먹였는지, 왜 할머니의 기도가 막혔는지, 실제로 노인학대가 있었는지를 밝히기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이번 사례야말로 CCTV 설치 확대가 장기적으로 노인학대를 방지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요양원서 죽 먹다 숨진 할머니…요양원 노인학대 늘어나는 이유는
    • 입력 2020-10-11 07:00:11
    • 수정2020-10-11 14:45:20
    취재후·사건후
지난 2월 수도권의 한 요양원. 요양보호사가 80대 여성 A 씨에게 아침 식사로 죽을 먹이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습니다.

그런데 죽을 먹이는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화면상으로 보면 2분 30초 동안 14차례나 죽을 입에 넣어준 것으로 나타났는데, 10초에 한 번꼴로 숟가락을 입에 넣은 겁니다.

A 씨는 평소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지만, CCTV 속 요양보호사는 너무 바빠 보였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개를 앞뒤로 흔드는 A 씨
■기도폐쇄로 의식 잃은 A 씨…병원 옮겨졌지만 2주 만에 사망

죽을 먹이면서 다른 곳을 보기도 했던 요양보호사는 다른 노인의 식사 준비를 위해 2분여간 자리를 비웠고, 요양보호사가 자리를 비운 새 A 씨는 괴로운 듯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리로 돌아온 요양보호사는 A 씨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5차례 더 죽을 먹이고는 다른 노인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자리를 떴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CCTV 영상은 여기까지인데, 이후 다른 요양보호사가 A 씨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발견해 응급조치로 이물질을 빼내고 119에 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출동했던 소방서 관계자는 "죽을 먹이다 상태가 이상해 신고했다고 돼 있고, 구급대 도착 당시 의식이 없어 심폐소생술을 한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A 씨는 2주 만에 중환자실에서 숨졌습니다.

A 씨가 요양원에 입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요양보호사 과실치사 혐의 기소…요양원엔 개선명령 부과

A 씨 유가족은 해당 요양원을 노인학대 혐의로 신고했고, 경찰에도 고발했습니다.

지자체와 관할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요양원 현장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방임 등의 노인학대가 있었다고 판단해 지난 7월 요양원에 교육 등의 개선명령을 내렸습니다.

경찰은 A 씨 사망 사건을 수사한 결과 요양보호사와 요양원 원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에선 지난달 요양보호사만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요양원 원장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습니다.


■늘어나는 노인학대…요양원 등 기관 노인학대 더 늘어

A 씨 사고와 같은 노인학대 사례는 최근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노인학대 사례가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노인학대로 판정된 건수는 2015년 3,818건에서 지난해 5,243건으로 5년 새 37%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노인학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학대 가해자 중 요양원 등 노인보호시설 관계자의 비중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5년 9%에 불과했던 노인학대 행위자 중 기관 비중은 지난해 18.5%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처럼 기관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요양원 등 노인 요양기관 수가 계속 늘고 있고, 사회 전체적인 인식이나 기관 종사자들의 인권 감수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학대라고 인식 못 했던 것도 노인학대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노인학대로 신고가 접수되거나 노인학대로 판정되는 건수가 늘어났다는 겁니다.

■"기준은 2.5명당 1명…실제로는 1명이 10명 돌보기도"

법에서 정한 요양보호사 배치 기준이 세밀하지 못하다는 점도 이와 같은 사고가 벌어진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기준에 맞춰 요양보호사를 배치해 뒀음에도 요양보호사가 너무 바빠 노인들을 잘 돌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행 노인복지법은 시행규칙 별표4를 통해 노인요양시설에는 입소자 2.5명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은 "2.5명당 1명씩 어르신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3교대 근무고 연차라든지 휴가를 고려했을 때는 한 사람이 열 사람 이상을 보호하는 시스템에서 어르신들 한 명 한 명의 식사시간 문제를 개별적으로 충분히 드리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노인들의 성향에 따라서 식단도 구별해야 하고 식사시간도 차별화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데, 현행 요양보호사 배치기준으로는 이 같은 맞춤형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노인요양시설 CCTV 의무화 검토할 때"

요양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고려하면 당장 요양보호사를 더 많이 늘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요양원의 식사공간 등 공동사용 공간 등에라도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제보받은 영상이라며 KBS가 보도한 사고 영상을 공개하고, "CCTV 설치로 막을 수 있으니 의원들이 나서달라. CCTV 설치를 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요양시설은 80% 이상, 공동생활시설에는 50%가 CCTV를 설치했는데 의무화 되지는 않았다"며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도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서 받아들여졌다. 요양원 역시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의무화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양원으로서도 CCTV 설치 의무화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요양원 원장은 "처음에 3대뿐이었는데 지금은 요양원 전체적으로 CCTV를 많이 늘렸다"며 "많은 요양보호사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고, 무슨 사고가 있을지 모르니 CCTV를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고 같은 경우에도 CCTV가 없었다면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에게 얼마나 죽을 빨리 먹였는지, 왜 할머니의 기도가 막혔는지, 실제로 노인학대가 있었는지를 밝히기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이번 사례야말로 CCTV 설치 확대가 장기적으로 노인학대를 방지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