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괴롭힘에 공황장애 온 직원 ‘재징계 검토’한 새마을금고

입력 2020.10.12 (07:02) 수정 2020.10.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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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돌아서면 눈물밖에 안 납니다. 괜찮아지겠지 하는데 더 힘들어지니까 약에 의존하게 되고…인간으로서 허무하죠."

조 씨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부산의 한 새마을금고 지점 직원인 조 씨는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지난해 4월 '점심 식사 준비 거부'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일로 권고사직 종용을 받는 등 괴롭힘이 시작됐고, 아직도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연관기사] ‘점심식사 준비 거부’ 직원 괴롭힌 새마을금고…재징계 검토까지(2020.10.07)


■"밥 못하겠다는 게 중죄인 줄 몰랐어요"…이어진 퇴사 강요·노조 탈퇴 압박

5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조 씨는 2018년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문제의 새마을금고 지점으로 발령 났습니다. 조 씨는 "해당 지점에서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점심 식사를 준비했었는데, 이걸 돕다 보니 어느 순간 점심 준비가 자신의 몫처럼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거나, 창구에서 수신 업무를 보다가도 시간이 되면 2층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등 점심 식사 준비를 1년 정도 해왔다고 호소했습니다.

문제가 터진 건 지난해 초, 조 씨가 미처 손질을 마치지 못한 고등어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출근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 일로 질책을 받은 조 씨는 지점 전무에게 '더는 점심 식사 준비를 못 하겠다'라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이후 조 씨는 전무에게 권고사직을 종용받고, 지점 동료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조 씨는 지난해 5월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러자 노조 탈퇴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 "정상적으로 근무하려면 탈퇴하고 오거나, 앞에 서서 인사나 해라" 같은 발언을 이사장에게서 들은 겁니다.

결국 사용자 측은 지난해 6월 조 씨를 지점에서 본점으로 전보 발령을 냈습니다. 조 씨가 노조 탈퇴 압박을 부당노동행위로 부산지방노동청에 고발하자, 사측은 조 씨의 직위를 해제하고 본점에 대기 발령하란 명령을 내립니다.


■'창문·환기구 없는' 금고 용도 방에 대기발령…우울증·공황장애 치료

부산지방노동청의 판정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조 씨는 다시 한번 전보 발령을 받습니다. 바로 점심 식사 문제로 갈등을 겪은 지점으로 대기발령이 난 겁니다.

문제의 지점에 발령 난 첫날, 조 씨는 금고로 쓰이는 방인 이른바 '벽 금고'에서 대기하란 지시를 받습니다.

문제의 금고 용도 방 사진, 창문·환기구가 없고 방 조명 스위치도 문밖에 있다.문제의 금고 용도 방 사진, 창문·환기구가 없고 방 조명 스위치도 문밖에 있다.

"소외된 장소에서 견디려면 견디어봐라. 다른 곳을 요청했지만 앉아 있을 곳이 거기 말고는 없답니다." 창문이나 환풍기가 없는 곳에서 혼자 대기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 조 씨는 몇 차례 지시를 거부했지만 결국 해당 장소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 씨는 호흡 곤란을 느끼고 신고를 했고, 경찰·119구급대가 출동했습니다.

조 씨의 진단서 사진, 적응 장애·우울장애·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조 씨의 진단서 사진, 적응 장애·우울장애·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조 씨는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 신청을 합니다. 그러나 사용자 측은 "제출받은 진단서 날짜에 오류가 있었다"라며 보름 정도의 병가를 '무단결근'으로 보고 무단결근·근무 태만·위계질서 문란 등을 이유로 조 씨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립니다.


■ 지노위 판정에도 불구…"직원 재징계 검토" 지시한 중앙회

'괴롭힘이나 부당노동행위는 없었고, 징계 역시 적합하다'라는 사용자 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조 씨가 겪은 직위해제·대기발령은 부당노동행위, 정직 징계는 부당징계라고 판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 씨도 복직했습니다.

한편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지노위 판결 이후 해당 지점에 어떤 처리를 했느냐'는 오영환 의원실의 질의에 "추후 부당노동행위 등을 금지할 것을 지도"했다는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확보한 새마을금고중앙회가 해당 지점에 보낸 내부 문서에는 이와 상반된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바로 조 씨에 대한 '재징계를 검토'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새마을금고 중앙회가 지점에 보낸 시정지시서 (자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환 의원실)새마을금고 중앙회가 지점에 보낸 시정지시서 (자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환 의원실)

해당 문서에는 취소된 조 씨의 징계처분에 대해 "노무사·변호사 등을 통한 재징계 가능 여부를 법률 검토"하고 "재징계가 가능할 경우엔 징계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은 새마을금고 중앙회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지점에 대한 감독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마을금고에 대해 격년으로 시행하는 행안부의 정기감사와 별도로 전국적인 특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해당 지점·중앙회 "괴롭힘·부당노동행위·재징계 지시 없었다"

한편 해당 지점 관계자들은 조 씨에 대한 괴롭힘이나 부당노동행위는 없었고 조 씨의 주장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애초에 점심 식사 준비는 직원들이 분담해서 했고 조 씨에게 단독으로 맡긴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조 씨가 맡기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동료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점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마을금고 중앙회 역시 해당 시정지시서는 조 씨에 대한 재징계를 지시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노사관계가 좋지 않으니 법률적으로 잘 해결하라는 원칙적인 지시였다는 설명입니다. 또 의원실에 보낸 답변 역시 '부당노동행위는 금지한다'는 중앙회의 공식 입장을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조 씨가 노조 가입 이후 사용자 측 지시로 작성한 수십 장의 경위서. 조 씨가 노조 가입 이후 사용자 측 지시로 작성한 수십 장의 경위서.

사용자 측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복직한 이후에도 해당 지점에서 고충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대출업무를 수신업무와 함께 맡게 됐고, 수시로 경위서도 작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라는 조 씨는 인터뷰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말해요. 나한테 잘 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에 괴롭힘에 보태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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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괴롭힘에 공황장애 온 직원 ‘재징계 검토’한 새마을금고
    • 입력 2020-10-12 07:02:01
    • 수정2020-10-12 07:03:07
    취재후·사건후
"요즘은 돌아서면 눈물밖에 안 납니다. 괜찮아지겠지 하는데 더 힘들어지니까 약에 의존하게 되고…인간으로서 허무하죠."

조 씨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부산의 한 새마을금고 지점 직원인 조 씨는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지난해 4월 '점심 식사 준비 거부'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일로 권고사직 종용을 받는 등 괴롭힘이 시작됐고, 아직도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연관기사] ‘점심식사 준비 거부’ 직원 괴롭힌 새마을금고…재징계 검토까지(2020.10.07)


■"밥 못하겠다는 게 중죄인 줄 몰랐어요"…이어진 퇴사 강요·노조 탈퇴 압박

5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조 씨는 2018년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문제의 새마을금고 지점으로 발령 났습니다. 조 씨는 "해당 지점에서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점심 식사를 준비했었는데, 이걸 돕다 보니 어느 순간 점심 준비가 자신의 몫처럼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거나, 창구에서 수신 업무를 보다가도 시간이 되면 2층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등 점심 식사 준비를 1년 정도 해왔다고 호소했습니다.

문제가 터진 건 지난해 초, 조 씨가 미처 손질을 마치지 못한 고등어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출근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 일로 질책을 받은 조 씨는 지점 전무에게 '더는 점심 식사 준비를 못 하겠다'라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이후 조 씨는 전무에게 권고사직을 종용받고, 지점 동료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조 씨는 지난해 5월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러자 노조 탈퇴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 "정상적으로 근무하려면 탈퇴하고 오거나, 앞에 서서 인사나 해라" 같은 발언을 이사장에게서 들은 겁니다.

결국 사용자 측은 지난해 6월 조 씨를 지점에서 본점으로 전보 발령을 냈습니다. 조 씨가 노조 탈퇴 압박을 부당노동행위로 부산지방노동청에 고발하자, 사측은 조 씨의 직위를 해제하고 본점에 대기 발령하란 명령을 내립니다.


■'창문·환기구 없는' 금고 용도 방에 대기발령…우울증·공황장애 치료

부산지방노동청의 판정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조 씨는 다시 한번 전보 발령을 받습니다. 바로 점심 식사 문제로 갈등을 겪은 지점으로 대기발령이 난 겁니다.

문제의 지점에 발령 난 첫날, 조 씨는 금고로 쓰이는 방인 이른바 '벽 금고'에서 대기하란 지시를 받습니다.

문제의 금고 용도 방 사진, 창문·환기구가 없고 방 조명 스위치도 문밖에 있다.
"소외된 장소에서 견디려면 견디어봐라. 다른 곳을 요청했지만 앉아 있을 곳이 거기 말고는 없답니다." 창문이나 환풍기가 없는 곳에서 혼자 대기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 조 씨는 몇 차례 지시를 거부했지만 결국 해당 장소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 씨는 호흡 곤란을 느끼고 신고를 했고, 경찰·119구급대가 출동했습니다.

조 씨의 진단서 사진, 적응 장애·우울장애·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조 씨는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 신청을 합니다. 그러나 사용자 측은 "제출받은 진단서 날짜에 오류가 있었다"라며 보름 정도의 병가를 '무단결근'으로 보고 무단결근·근무 태만·위계질서 문란 등을 이유로 조 씨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립니다.


■ 지노위 판정에도 불구…"직원 재징계 검토" 지시한 중앙회

'괴롭힘이나 부당노동행위는 없었고, 징계 역시 적합하다'라는 사용자 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조 씨가 겪은 직위해제·대기발령은 부당노동행위, 정직 징계는 부당징계라고 판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 씨도 복직했습니다.

한편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지노위 판결 이후 해당 지점에 어떤 처리를 했느냐'는 오영환 의원실의 질의에 "추후 부당노동행위 등을 금지할 것을 지도"했다는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확보한 새마을금고중앙회가 해당 지점에 보낸 내부 문서에는 이와 상반된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바로 조 씨에 대한 '재징계를 검토'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새마을금고 중앙회가 지점에 보낸 시정지시서 (자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환 의원실)
해당 문서에는 취소된 조 씨의 징계처분에 대해 "노무사·변호사 등을 통한 재징계 가능 여부를 법률 검토"하고 "재징계가 가능할 경우엔 징계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은 새마을금고 중앙회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지점에 대한 감독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마을금고에 대해 격년으로 시행하는 행안부의 정기감사와 별도로 전국적인 특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해당 지점·중앙회 "괴롭힘·부당노동행위·재징계 지시 없었다"

한편 해당 지점 관계자들은 조 씨에 대한 괴롭힘이나 부당노동행위는 없었고 조 씨의 주장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애초에 점심 식사 준비는 직원들이 분담해서 했고 조 씨에게 단독으로 맡긴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조 씨가 맡기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동료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점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마을금고 중앙회 역시 해당 시정지시서는 조 씨에 대한 재징계를 지시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노사관계가 좋지 않으니 법률적으로 잘 해결하라는 원칙적인 지시였다는 설명입니다. 또 의원실에 보낸 답변 역시 '부당노동행위는 금지한다'는 중앙회의 공식 입장을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조 씨가 노조 가입 이후 사용자 측 지시로 작성한 수십 장의 경위서.
사용자 측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복직한 이후에도 해당 지점에서 고충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대출업무를 수신업무와 함께 맡게 됐고, 수시로 경위서도 작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라는 조 씨는 인터뷰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말해요. 나한테 잘 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에 괴롭힘에 보태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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