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8살배기 손에 쥐여준 녹음기와 ‘그 선생 목소리’

입력 2020.10.14 (19:06) 수정 2020.10.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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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박 군이 그린 그림초등학교 1학년 박 군이 그린 그림

■ 갓 초등학교 입학한 시골 마을 8살배기

전북 고창 바닷가 마을에 사는 박 모 군은 올해 처음 학교에 간 8살배기입니다. 아버지 말로 박 군은 수줍음을 타기보단 활발한 성격입니다. 밥을 조금 가리고 잘 먹지 않아 또래보다 왜소하지만, 친구들과 뛰어노는 걸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걸 꺼리지 않았고 학교에서 재밌는 일이 있으면 곧잘 자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학교에서 최근 박 군이 다쳐서 왔습니다. 학생이란 말이 아직 덜 어울리는 초등학생 1학년 꼬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박 군의 멍든 허벅지박 군의 멍든 허벅지

■ 멍든 허벅지 물으니 "선생님이..."

지난달 말, 박 군을 씻기던 어머니는 아들의 멍든 허버지를 보고 곧바로 눈치를 챘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건 건 아버지였습니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박 군 다리를 꽉 누른 게 맞다고 인정하면서 "박 군이 급식을 잘 먹지 않아 50분을 기다렸다. 그 뒤, 교실에서 앉혀놓고 얘기하려는데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해 다리를 잡았다."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당합니까?"라고 되물을 땐, "그럼 벽에다 얘기합니까? 도망가려고 하니까 그렇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얼굴에 생채기가 났고, 박 군은 선생님이 꼬집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엔 바로 따져 묻지 않았는데, 대신 아들 손에 작은 녹음기를 쥐여줬습니다.


■ "부모님 전화번호도 몰라? 그냥 죽여버리면 됩니다."

"이 XX야 똑바로 말 안 해? 정신 나간 XX냐?"
"왜 손 안 들어. 니 손은 어디 갔나요?"
"너네 애비한테 전화할 때 010-XXXX 하고 끝나냐?"
"납치했는데 쓸모가 없어. 그럼 죽여버리면 됩니다."

말본새를 글자로 나열해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 넘은 폭언이란 게 느껴질 겁니다. 담임교사가 했다는 이 말들은 박 군이 들고 있던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중간중간 크게 '우당탕' 소리도 납니다. 뭔가를 집어 던진 것 같습니다.

<안전한 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낯선 사람 쫓아가지 않기'를 배우다 벌어진 일입니다. 담임교사가 부모 전화번호를 외워오라고 시켰는데, 박 군이 못 한 겁니다. 녹취를 들어보면 담임교사는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주눅이 든 박 군에게 정말 집요하게 묻고 소리칩니다.

납치범 얘기는 여기서 나옵니다. "어린아이를 유괴해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려 했는데, 부모 전화번호를 모르니 쓸모가 없다. 그럼 납치범은 아이를 죽인다."라는 겁니다. 유괴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해도 논리가 기괴하고 끔찍합니다.

박 군의 아버지는 "8살 꼬마 앞에서 '느그 애비'까지 찾았다면, 교사로서 이미 실격"이라고 소리 높였습니다. 분노할 만합니다.

누구는, 그래도 녹음기까지 등장한 건 과했다고 말합니다. 불신의 시대가 불편하고 씁쓰름해서겠지요. 공교육 현장을 믿지 못하고 증거를 잡으려 교실 안에 녹음기를 들여보낸 게 온당했는지는, 저도 아직 답을 내진 못 했습니다. 다만, 아비가 자식 손에 녹음기를 쥐여줄 때 마음은 이해합니다.

박 군이 다니는 학교, 스페인 교육자 페레의 평전 제목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이다.박 군이 다니는 학교, 스페인 교육자 페레의 평전 제목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이다.

'라떼는'

어제(13) 기사가 나간 뒤,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문제의 교사를 질타하면서 엄벌을 원한다는 게 대부분이지만, '라떼는(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글도 많습니다. 몇 가지 소개합니다.

"'애미 애비가 그따위로 가르쳤냐?'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너무 큰 상처...○○고등학교 체육선생 △△△ 보고 있나?"

"덧셈 뺄셈 버벅대니 한 손으로 턱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잡고 한 손으론 연속 따귀를 5번...42살인 지금도 기억이 생생"

"76년에 서울로 전학. 봉숭아를 복숭아로 잘못 읽었다. '이런 무식한 놈 한글도 모르냐'며 선생님은 나에게 다 찢어지고 쓸 수 없는 책만 골라서 지급했다."

"69년도 중1 때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하는데 검은 교복 단추 1개 떨어졌다고 교무부장이라는 자가 발로 걷어차고...모욕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음"

'사랑의 매'를 가장한 손찌검이 당연했다고 말하는 그때 그 시절에도,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던 겁니다. 수많은 40~50대들, 더러는 더 나이 드신 분들도 각마다 학창시절의 '미친개'를 소환하며 원망했고 트라우마를 말했습니다. 그만큼 어릴 적 상처는 쉬이 아무는 게 아닙니다.

박 군에게 폭언한 담임교사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인정했습니다. 뉴스가 방송되자 곧바로 박 군 집에 찾아가 용서도 빌었습니다. 다만, 징계와 형사 처분은 사과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계획대로 담임교사를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학교는 이 교사를 직위 해제했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박 군은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배우고 있습니다. 전북교육청도 사안을 가벼이 보지 않고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사족을 붙입니다. 학대를 일삼는 교사는 아주 일부입니다. 우리 사회엔 아직 참스승이고자, 학생들에게 마음을 쏟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연관 기사] "애비 전화번호 뭐냐고!"…초등학생에게 폭언한 교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2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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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8살배기 손에 쥐여준 녹음기와 ‘그 선생 목소리’
    • 입력 2020-10-14 19:06:28
    • 수정2020-10-14 20:09:25
    취재후·사건후
초등학교 1학년 박 군이 그린 그림
■ 갓 초등학교 입학한 시골 마을 8살배기

전북 고창 바닷가 마을에 사는 박 모 군은 올해 처음 학교에 간 8살배기입니다. 아버지 말로 박 군은 수줍음을 타기보단 활발한 성격입니다. 밥을 조금 가리고 잘 먹지 않아 또래보다 왜소하지만, 친구들과 뛰어노는 걸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걸 꺼리지 않았고 학교에서 재밌는 일이 있으면 곧잘 자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학교에서 최근 박 군이 다쳐서 왔습니다. 학생이란 말이 아직 덜 어울리는 초등학생 1학년 꼬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박 군의 멍든 허벅지
■ 멍든 허벅지 물으니 "선생님이..."

지난달 말, 박 군을 씻기던 어머니는 아들의 멍든 허버지를 보고 곧바로 눈치를 챘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건 건 아버지였습니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박 군 다리를 꽉 누른 게 맞다고 인정하면서 "박 군이 급식을 잘 먹지 않아 50분을 기다렸다. 그 뒤, 교실에서 앉혀놓고 얘기하려는데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해 다리를 잡았다."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당합니까?"라고 되물을 땐, "그럼 벽에다 얘기합니까? 도망가려고 하니까 그렇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얼굴에 생채기가 났고, 박 군은 선생님이 꼬집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엔 바로 따져 묻지 않았는데, 대신 아들 손에 작은 녹음기를 쥐여줬습니다.


■ "부모님 전화번호도 몰라? 그냥 죽여버리면 됩니다."

"이 XX야 똑바로 말 안 해? 정신 나간 XX냐?"
"왜 손 안 들어. 니 손은 어디 갔나요?"
"너네 애비한테 전화할 때 010-XXXX 하고 끝나냐?"
"납치했는데 쓸모가 없어. 그럼 죽여버리면 됩니다."

말본새를 글자로 나열해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 넘은 폭언이란 게 느껴질 겁니다. 담임교사가 했다는 이 말들은 박 군이 들고 있던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중간중간 크게 '우당탕' 소리도 납니다. 뭔가를 집어 던진 것 같습니다.

<안전한 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낯선 사람 쫓아가지 않기'를 배우다 벌어진 일입니다. 담임교사가 부모 전화번호를 외워오라고 시켰는데, 박 군이 못 한 겁니다. 녹취를 들어보면 담임교사는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주눅이 든 박 군에게 정말 집요하게 묻고 소리칩니다.

납치범 얘기는 여기서 나옵니다. "어린아이를 유괴해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려 했는데, 부모 전화번호를 모르니 쓸모가 없다. 그럼 납치범은 아이를 죽인다."라는 겁니다. 유괴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해도 논리가 기괴하고 끔찍합니다.

박 군의 아버지는 "8살 꼬마 앞에서 '느그 애비'까지 찾았다면, 교사로서 이미 실격"이라고 소리 높였습니다. 분노할 만합니다.

누구는, 그래도 녹음기까지 등장한 건 과했다고 말합니다. 불신의 시대가 불편하고 씁쓰름해서겠지요. 공교육 현장을 믿지 못하고 증거를 잡으려 교실 안에 녹음기를 들여보낸 게 온당했는지는, 저도 아직 답을 내진 못 했습니다. 다만, 아비가 자식 손에 녹음기를 쥐여줄 때 마음은 이해합니다.

박 군이 다니는 학교, 스페인 교육자 페레의 평전 제목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이다.
'라떼는'

어제(13) 기사가 나간 뒤,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문제의 교사를 질타하면서 엄벌을 원한다는 게 대부분이지만, '라떼는(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글도 많습니다. 몇 가지 소개합니다.

"'애미 애비가 그따위로 가르쳤냐?'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너무 큰 상처...○○고등학교 체육선생 △△△ 보고 있나?"

"덧셈 뺄셈 버벅대니 한 손으로 턱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잡고 한 손으론 연속 따귀를 5번...42살인 지금도 기억이 생생"

"76년에 서울로 전학. 봉숭아를 복숭아로 잘못 읽었다. '이런 무식한 놈 한글도 모르냐'며 선생님은 나에게 다 찢어지고 쓸 수 없는 책만 골라서 지급했다."

"69년도 중1 때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하는데 검은 교복 단추 1개 떨어졌다고 교무부장이라는 자가 발로 걷어차고...모욕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음"

'사랑의 매'를 가장한 손찌검이 당연했다고 말하는 그때 그 시절에도,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던 겁니다. 수많은 40~50대들, 더러는 더 나이 드신 분들도 각마다 학창시절의 '미친개'를 소환하며 원망했고 트라우마를 말했습니다. 그만큼 어릴 적 상처는 쉬이 아무는 게 아닙니다.

박 군에게 폭언한 담임교사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인정했습니다. 뉴스가 방송되자 곧바로 박 군 집에 찾아가 용서도 빌었습니다. 다만, 징계와 형사 처분은 사과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계획대로 담임교사를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학교는 이 교사를 직위 해제했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박 군은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배우고 있습니다. 전북교육청도 사안을 가벼이 보지 않고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사족을 붙입니다. 학대를 일삼는 교사는 아주 일부입니다. 우리 사회엔 아직 참스승이고자, 학생들에게 마음을 쏟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연관 기사] "애비 전화번호 뭐냐고!"…초등학생에게 폭언한 교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2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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