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 코치가 선수 멱살 잡고 “실력 없으면 XXX라도 있어야”

입력 2020.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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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22살의 최숙현 선수가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로 숨진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스포츠계 폭력 실태가 드러나면서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아졌고, 체육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이른바 '최숙현 법'도 통과됐습니다.

스포츠계 폭력 사건을 상시 조사하는 스포츠 윤리센터도 예정보다 앞당겨 지난 8월, 업무를 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상은 좀 나아졌을까요?

■ 다른 곳 봤다는 이유로…무자격 빙상 코치가 선수 멱살, 폭언


지난해 8월, 성남시청 빙상팀 선수 일부는 아침 훈련을 하다가 탈의실로 오라는 코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팀내 소통 강화를 위한 자리였는데, 한 선수가 대화 도중 다른 곳을 봤고 코치의 무차별폭언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어디 XX, 선생 얘기하는데 다른 데를 봐?"

"어우 XX, 이걸 진짜, 던져버려? 확 XXX"

"XXX아, 실력이 없으면 XXX라도 있어라"

말끝마다 욕설이 나왔고, 도중에 선수의 멱살을 잡기도 했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에서 입수한 녹취 파일에 담긴 내용입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동료 선수는 해당 코치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폭언을 했다고 기억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의 수준까지 갔던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욕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멱살을 확 잡아채더라고요. 사람이 멱살을 잡히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잖아요. 그것도 선생님한테…"

피해 선수는 이후 공황 장애를 앓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 '무자격 코치'의 잦은 폭행·폭언…감독, 알면서도 묵인?


동료 선수들은 해당 코치의 폭행과 폭언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주 3회~4회는 꼭 화를 냈던 것 같아요. 본인이 화가 나면 주체를 못 하고, 일단 손에 잡히는 걸 다 던져요. 초시계면 초시계, 블록이면 블록, 플라스틱 날집이면 날집"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도 있었고. 스케이트 날집이 플라스틱인데, 그걸로 뒤 허벅지를 맞으면 허벅지 핏줄이 다 터져요. 그러면 이제 피멍이 드는 거예요."

알고 보니 해당 코치는 성남시청 소속도 아니었습니다. 초,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개인 코치였는데, 실업팀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을 가했던 팀 닥터처럼 '무자격 코치'였습니다.

폭언과 폭행으로 지난 2016년 말에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은 이력도 있었습니다.

무자격 코치가 훈련하는 건 관행이라고 했는데, 선수들은 해당 코치가 폭언 등을 하는 것을 팀 감독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를 리는 없어요. 왜냐하면 그 폭행 현장을 보고, 본 적도 많으니까요. 절대로 이건 모를 수가 없어요."

■ 계속되는 스포츠계 폭력, 끝은 어디?

실제, 이 사건은 대한체육회, 스포츠 윤리센터 등에 신고됐지만,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종결됐습니다.

그리고 이달 또다시, 해당 녹취록 등을 포함해 스포츠 윤리센터에 신고된 상태입니다.

심석희 선수(좌), 최숙현 선수(우)심석희 선수(좌), 최숙현 선수(우)

심석희 선수가 당한 피해가 드러난 것이 지난해 초. 스포츠계의 폭력, 성폭력 등에 대한 질책, 반성과 대책 등이 나오면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사이 최숙현 선수가 생을 마감했고, 실상은 나아지질 않고 있습니다.

전 성남시청 빙상팀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선수와 지도자 관계가 거의 왕이 군림하는 정도의 관계거든요."

피해를 입어도 나중에 선수 생활과 관련해 불이익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서 신고를 하지 못하고, 신고를 해도 '본인이 참고 넘어가지 왜 그랬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징계가 가능하도록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 정작 신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 이번 건과 관련해 해당 코치와 감독은 아직까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입장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전용기 의원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전용기 의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스포츠계 폭력은 세간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흐지부지되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체육계 폭행이 재발한 상황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진상조사와 관련자 징계 등을 책임지고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 열리는 대한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코치와 감독이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해당 코치는 해당 건이 조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감독은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잊을만하면 드러나는 스포츠계 폭력, 실상은 매일 되풀이되고 있는 이 폭력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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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자격 코치가 선수 멱살 잡고 “실력 없으면 XXX라도 있어야”
    • 입력 2020-10-15 06:00:47
    취재K
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22살의 최숙현 선수가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로 숨진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스포츠계 폭력 실태가 드러나면서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아졌고, 체육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이른바 '최숙현 법'도 통과됐습니다.

스포츠계 폭력 사건을 상시 조사하는 스포츠 윤리센터도 예정보다 앞당겨 지난 8월, 업무를 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상은 좀 나아졌을까요?

■ 다른 곳 봤다는 이유로…무자격 빙상 코치가 선수 멱살, 폭언


지난해 8월, 성남시청 빙상팀 선수 일부는 아침 훈련을 하다가 탈의실로 오라는 코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팀내 소통 강화를 위한 자리였는데, 한 선수가 대화 도중 다른 곳을 봤고 코치의 무차별폭언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어디 XX, 선생 얘기하는데 다른 데를 봐?"

"어우 XX, 이걸 진짜, 던져버려? 확 XXX"

"XXX아, 실력이 없으면 XXX라도 있어라"

말끝마다 욕설이 나왔고, 도중에 선수의 멱살을 잡기도 했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에서 입수한 녹취 파일에 담긴 내용입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동료 선수는 해당 코치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폭언을 했다고 기억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의 수준까지 갔던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욕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멱살을 확 잡아채더라고요. 사람이 멱살을 잡히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잖아요. 그것도 선생님한테…"

피해 선수는 이후 공황 장애를 앓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 '무자격 코치'의 잦은 폭행·폭언…감독, 알면서도 묵인?


동료 선수들은 해당 코치의 폭행과 폭언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주 3회~4회는 꼭 화를 냈던 것 같아요. 본인이 화가 나면 주체를 못 하고, 일단 손에 잡히는 걸 다 던져요. 초시계면 초시계, 블록이면 블록, 플라스틱 날집이면 날집"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도 있었고. 스케이트 날집이 플라스틱인데, 그걸로 뒤 허벅지를 맞으면 허벅지 핏줄이 다 터져요. 그러면 이제 피멍이 드는 거예요."

알고 보니 해당 코치는 성남시청 소속도 아니었습니다. 초,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개인 코치였는데, 실업팀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을 가했던 팀 닥터처럼 '무자격 코치'였습니다.

폭언과 폭행으로 지난 2016년 말에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은 이력도 있었습니다.

무자격 코치가 훈련하는 건 관행이라고 했는데, 선수들은 해당 코치가 폭언 등을 하는 것을 팀 감독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를 리는 없어요. 왜냐하면 그 폭행 현장을 보고, 본 적도 많으니까요. 절대로 이건 모를 수가 없어요."

■ 계속되는 스포츠계 폭력, 끝은 어디?

실제, 이 사건은 대한체육회, 스포츠 윤리센터 등에 신고됐지만,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종결됐습니다.

그리고 이달 또다시, 해당 녹취록 등을 포함해 스포츠 윤리센터에 신고된 상태입니다.

심석희 선수(좌), 최숙현 선수(우)
심석희 선수가 당한 피해가 드러난 것이 지난해 초. 스포츠계의 폭력, 성폭력 등에 대한 질책, 반성과 대책 등이 나오면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사이 최숙현 선수가 생을 마감했고, 실상은 나아지질 않고 있습니다.

전 성남시청 빙상팀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선수와 지도자 관계가 거의 왕이 군림하는 정도의 관계거든요."

피해를 입어도 나중에 선수 생활과 관련해 불이익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서 신고를 하지 못하고, 신고를 해도 '본인이 참고 넘어가지 왜 그랬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징계가 가능하도록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 정작 신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 이번 건과 관련해 해당 코치와 감독은 아직까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입장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전용기 의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스포츠계 폭력은 세간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흐지부지되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체육계 폭행이 재발한 상황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진상조사와 관련자 징계 등을 책임지고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 열리는 대한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코치와 감독이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해당 코치는 해당 건이 조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감독은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잊을만하면 드러나는 스포츠계 폭력, 실상은 매일 되풀이되고 있는 이 폭력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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