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고 격리 중인데…“하루 세끼 먹는 도시락 원산지도 몰라”

입력 2020.10.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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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해외입국자들이 격리 중인 생활 시설코로나19로 해외입국자들이 격리 중인 생활 시설

'내 돈' 내고 격리 생활 중인 해외입국자들

'내 돈' 내고 격리 생활 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국내에 들어오면 2주 동안 격리하고 증상을 지켜봐야 하는 해외입국자들입니다. 격리 기간 중 양성으로 나올 경우 혹시라도 가족들이 감염될까 봐 혹은 마땅한 거처가 없어서 집이 아니라 자치단체의 생활 시설을 택합니다. 이 사람들이 내는 돈, 생각보다 많습니다. 대전의 경우 하루 10만 원씩 2주 동안 140만 원을 내야 합니다. 호텔 수준의 돈을 내고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돈을 내고 격리 시설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소비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설 격리자를 위한 도시락을 상자에 담고 있다시설 격리자를 위한 도시락을 상자에 담고 있다

원산지 표시 없는 도시락 믿어도 될까요?

격리자들이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는 도시락 구매 비용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 도시락에 문제가 좀 있어 보입니다. 대전의 한 격리 시설에 납품하는 도시락의 경우 당연히 있어야 할 '원산지 표기'가 없습니다. 원산지 확인하는 건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인 데도 그렇습니다. 격리자들 입장에서는 어디서 어떤 재료로 만든 건 줄도 모르고 '주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취재진과 통화한 시설 격리자는 "메뉴 선택권도 없고 원산지를 포함해 음식물에 대해 당연히 제공돼야 할 정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답답하다는 소리겠지요.

코로나19 격리자 식단표코로나19 격리자 식단표

도시락 제작 업체 '현장 단속'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격리 시설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업체를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과 동행 단속했습니다. 원산지 표시판에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대해 국내산과 수입 외국산을 함께 적은 게 눈에 띕니다. 이대로라면 모든 메뉴에 국산과 외국산을 섞어 사용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정작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드는 주메뉴 소 불고기와 제육볶음은 수입 외국산으로만 만들었습니다. 해당 업체는 국거리 등 일부 재료에 국산을 써서 그렇게 표시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농관원은 엄연한 '원산지 거짓 표시'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수입 외국산만 쓴 음식도 소비자들이 국산이 들어있겠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음식은 격리자들의 도시락에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국산과 수입 외국산을 함께 적은 원산지 표시판국산과 수입 외국산을 함께 적은 원산지 표시판

그렇다면 격리자들은 최소한 '수입 외국산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권리는 있지 않을까요? 돈을 내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도시락 어디에도 이런 사실을 알리는 원산지 표시는 없었습니다. 이 또한 원산지 미표시로 관련 법 위반입니다. 법에 따르면 도시락이나 영수증에 원산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격리자들은 '원산지 미표시 도시락'에다가 사실상 '원산지 둔갑 도시락'을 먹고 있던 겁니다. 농관원은 이런 식으로 적발된 두 업체 중 한 곳에는 과태료를, 다른 한 곳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형사 입건했습니다.

격리 시설 입구에 생수가 쌓여있다격리 시설 입구에 생수가 쌓여있다

자치단체, "우리도 소비자"

이런 내용을 관할 자치단체인 대전시에 알렸습니다. "우리도 소비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 마디로 도시락을 대신 사서 격리자들에게 나눠줬을 뿐, 똑같이 속았다는 겁니다. 물론 코로나19로 바쁜 시 당국이 도시락 원산지까지 확인할 여력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원산지가 잘못 표시된 음식을 먹는다고 누군가 아픈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초기, 격리자들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가 지금도 제대로 이어지고 또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격리자들은 그 기간 동안은 사회적 소수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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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돈’ 내고 격리 중인데…“하루 세끼 먹는 도시락 원산지도 몰라”
    • 입력 2020-10-15 07:01:10
    취재K
코로나19로 해외입국자들이 격리 중인 생활 시설
'내 돈' 내고 격리 생활 중인 해외입국자들

'내 돈' 내고 격리 생활 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국내에 들어오면 2주 동안 격리하고 증상을 지켜봐야 하는 해외입국자들입니다. 격리 기간 중 양성으로 나올 경우 혹시라도 가족들이 감염될까 봐 혹은 마땅한 거처가 없어서 집이 아니라 자치단체의 생활 시설을 택합니다. 이 사람들이 내는 돈, 생각보다 많습니다. 대전의 경우 하루 10만 원씩 2주 동안 140만 원을 내야 합니다. 호텔 수준의 돈을 내고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돈을 내고 격리 시설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소비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설 격리자를 위한 도시락을 상자에 담고 있다
원산지 표시 없는 도시락 믿어도 될까요?

격리자들이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는 도시락 구매 비용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 도시락에 문제가 좀 있어 보입니다. 대전의 한 격리 시설에 납품하는 도시락의 경우 당연히 있어야 할 '원산지 표기'가 없습니다. 원산지 확인하는 건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인 데도 그렇습니다. 격리자들 입장에서는 어디서 어떤 재료로 만든 건 줄도 모르고 '주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취재진과 통화한 시설 격리자는 "메뉴 선택권도 없고 원산지를 포함해 음식물에 대해 당연히 제공돼야 할 정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답답하다는 소리겠지요.

코로나19 격리자 식단표
도시락 제작 업체 '현장 단속'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격리 시설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업체를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과 동행 단속했습니다. 원산지 표시판에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대해 국내산과 수입 외국산을 함께 적은 게 눈에 띕니다. 이대로라면 모든 메뉴에 국산과 외국산을 섞어 사용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정작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드는 주메뉴 소 불고기와 제육볶음은 수입 외국산으로만 만들었습니다. 해당 업체는 국거리 등 일부 재료에 국산을 써서 그렇게 표시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농관원은 엄연한 '원산지 거짓 표시'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수입 외국산만 쓴 음식도 소비자들이 국산이 들어있겠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음식은 격리자들의 도시락에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국산과 수입 외국산을 함께 적은 원산지 표시판
그렇다면 격리자들은 최소한 '수입 외국산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권리는 있지 않을까요? 돈을 내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도시락 어디에도 이런 사실을 알리는 원산지 표시는 없었습니다. 이 또한 원산지 미표시로 관련 법 위반입니다. 법에 따르면 도시락이나 영수증에 원산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격리자들은 '원산지 미표시 도시락'에다가 사실상 '원산지 둔갑 도시락'을 먹고 있던 겁니다. 농관원은 이런 식으로 적발된 두 업체 중 한 곳에는 과태료를, 다른 한 곳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형사 입건했습니다.

격리 시설 입구에 생수가 쌓여있다
자치단체, "우리도 소비자"

이런 내용을 관할 자치단체인 대전시에 알렸습니다. "우리도 소비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 마디로 도시락을 대신 사서 격리자들에게 나눠줬을 뿐, 똑같이 속았다는 겁니다. 물론 코로나19로 바쁜 시 당국이 도시락 원산지까지 확인할 여력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원산지가 잘못 표시된 음식을 먹는다고 누군가 아픈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초기, 격리자들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가 지금도 제대로 이어지고 또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격리자들은 그 기간 동안은 사회적 소수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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