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박원순 고소후 100일과 서울시 국감

입력 2020.10.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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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15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내외부에서는 중요 일정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됐습니다. 하나는 시청 신청사 3층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고, 다른 하나는 시청 밖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입니다.

열린 시간은 같았지만, 안팎의 온도는 달랐습니다. 바로 박원순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한 것입니다. 서울시 국정감사는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이 답변석에 앉았는데, 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드물었습니다. 반면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에서는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의 출범을 알리며 내년 보궐선거 때는 성평등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펼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 성희롱 사건 고소 100일…"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막막함 느껴"


오늘은 박 시장 피해자 측이 검찰에 성희롱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지 딱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박 전 시장은 사망했고, 서울시는 기관장을 치렀고, 수사 및 인권위원회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여러 절차적 단계마다 논쟁은 뜨거웠고 여전합니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계속됐습니다. 피해자는 오늘 기자회견에 메시지를 보내 100일간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메시지는 한국여성의전화 도경은 활동가가 대신 읽었습니다.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법적 절차들의 상실과 그로 인한 진상규명의 어려움, 갈수록 잔인해지는 2차 피해의 환경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을 느끼며 절망하다가도 저를 위해 모아 주시는 마음 덕분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저의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100일간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걸 바라보며 좌절감을 느꼈다면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미래는 바뀌지 않을까 한편으론 기대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6층 비서실'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2차 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며,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중략) 아직도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책임과 권한 있는 인사들이 이제라도 자리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한평생 약자를 위해 싸워오신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갖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00일,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서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습니다."

■ 288개 시민단체 공동행동 출범…"성평등 민주주의 실현 위해 행동"


그럼에도 피해자는, 미래는 바뀌지 않을까, 진실이 규명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고, 뜻을 같이하는 단체들은 앞으로 힘을 합치기로 했습니다. 전국 288개 여성, 노동, 환경, 인권, 청년 등 시민단체들이 공동행동을 출범한 것으로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2차 가해 대응 ▲지방자치단체 권력 견제 및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문화 근절 등 3가지의 목표를 두고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출범 기자회견에는 여러 연대 메시지가 전달됐는데, 익명의 서울시 공무원은 "아무리 폼나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관리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실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진정 조직이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성희롱, 성추행 등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14년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의 피해생존자는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를 향해 "결국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때까지 힘내고, 함께 보란 듯이 당당하게 정년퇴직하자"고 응원했습니다.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 씨도 메시지를 통해 "권력형 성범죄는 폐쇄적인 조직 구조와 노동권의 문제, 권력 남용, 성차별 등이 만들어낸 사회문제로 어느 직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또 버텨내서 내년 가을에는 일상의 햇볕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했습니다.

■ 싱거운 서울시 국감… 바깥에선 70분, 안에선 7분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해 구조적인 문제를 짚고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밝힌 70분간의 기자회견에 비해 서울시 국감에선 관련 질의가 거의 없었습니다. 의원당 7분씩 주어지는 '주질의' 시간에 관련 문제를 짚은 의원은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유일했습니다. 물론 서울시의 다양한 정책을 질의하는 시간인 만큼 박 전 시장 사건만 짚을 순 없겠지만, 올해 서울시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는 점을 비춰본다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이은주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성 비위 사건은 은폐, 축소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 서울시의 성폭력 방지 매뉴얼이 왜 현장에서 먹통이었는지, 서울시가 뼈아픈 반성과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서 대행은 "내부 대책위를 만들어서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데 제도는 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조직문화의 차원도 있다고 본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이 의원은 비서실의 공적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물었고, 비서가 시장의 혈압체크를 하는 것은 사적 노무 요구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자 의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서 대행은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동료로서 조직에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대하고 노력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서울시 국감 자리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내용도, 개선에 대한 의지도 확인하긴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피해자의 100일과 서울시 국감에서의 7분…. '길고 괴로운 시간'은 저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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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박원순 고소후 100일과 서울시 국감
    • 입력 2020-10-15 16:14:49
    취재K
"100일,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15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내외부에서는 중요 일정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됐습니다. 하나는 시청 신청사 3층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고, 다른 하나는 시청 밖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입니다.

열린 시간은 같았지만, 안팎의 온도는 달랐습니다. 바로 박원순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한 것입니다. 서울시 국정감사는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이 답변석에 앉았는데, 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드물었습니다. 반면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에서는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의 출범을 알리며 내년 보궐선거 때는 성평등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펼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 성희롱 사건 고소 100일…"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막막함 느껴"


오늘은 박 시장 피해자 측이 검찰에 성희롱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지 딱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박 전 시장은 사망했고, 서울시는 기관장을 치렀고, 수사 및 인권위원회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여러 절차적 단계마다 논쟁은 뜨거웠고 여전합니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계속됐습니다. 피해자는 오늘 기자회견에 메시지를 보내 100일간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메시지는 한국여성의전화 도경은 활동가가 대신 읽었습니다.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법적 절차들의 상실과 그로 인한 진상규명의 어려움, 갈수록 잔인해지는 2차 피해의 환경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을 느끼며 절망하다가도 저를 위해 모아 주시는 마음 덕분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저의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100일간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걸 바라보며 좌절감을 느꼈다면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미래는 바뀌지 않을까 한편으론 기대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6층 비서실'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2차 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며,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중략) 아직도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책임과 권한 있는 인사들이 이제라도 자리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한평생 약자를 위해 싸워오신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갖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00일,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서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습니다."

■ 288개 시민단체 공동행동 출범…"성평등 민주주의 실현 위해 행동"


그럼에도 피해자는, 미래는 바뀌지 않을까, 진실이 규명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고, 뜻을 같이하는 단체들은 앞으로 힘을 합치기로 했습니다. 전국 288개 여성, 노동, 환경, 인권, 청년 등 시민단체들이 공동행동을 출범한 것으로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2차 가해 대응 ▲지방자치단체 권력 견제 및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문화 근절 등 3가지의 목표를 두고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출범 기자회견에는 여러 연대 메시지가 전달됐는데, 익명의 서울시 공무원은 "아무리 폼나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관리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실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진정 조직이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성희롱, 성추행 등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14년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의 피해생존자는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를 향해 "결국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때까지 힘내고, 함께 보란 듯이 당당하게 정년퇴직하자"고 응원했습니다.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 씨도 메시지를 통해 "권력형 성범죄는 폐쇄적인 조직 구조와 노동권의 문제, 권력 남용, 성차별 등이 만들어낸 사회문제로 어느 직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또 버텨내서 내년 가을에는 일상의 햇볕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했습니다.

■ 싱거운 서울시 국감… 바깥에선 70분, 안에선 7분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해 구조적인 문제를 짚고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밝힌 70분간의 기자회견에 비해 서울시 국감에선 관련 질의가 거의 없었습니다. 의원당 7분씩 주어지는 '주질의' 시간에 관련 문제를 짚은 의원은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유일했습니다. 물론 서울시의 다양한 정책을 질의하는 시간인 만큼 박 전 시장 사건만 짚을 순 없겠지만, 올해 서울시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는 점을 비춰본다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이은주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성 비위 사건은 은폐, 축소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 서울시의 성폭력 방지 매뉴얼이 왜 현장에서 먹통이었는지, 서울시가 뼈아픈 반성과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서 대행은 "내부 대책위를 만들어서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데 제도는 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조직문화의 차원도 있다고 본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이 의원은 비서실의 공적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물었고, 비서가 시장의 혈압체크를 하는 것은 사적 노무 요구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자 의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서 대행은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동료로서 조직에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대하고 노력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서울시 국감 자리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내용도, 개선에 대한 의지도 확인하긴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피해자의 100일과 서울시 국감에서의 7분…. '길고 괴로운 시간'은 저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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