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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못 받아!” 원장님,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입력 2020.10.16 (06:00) 취재K
경기 성남의 한 교회 담임목사인 곽 모 씨. 파주 예은 유치원, 예일 유치원, 용인 예성 유치원, 성남 예정 유치원 등 네 곳의 유치원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네 곳 유치원의 원생만 1,500명. 지난 2017년부터 3년 동안 누리과정 지원금, 급식 지원금 등 160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습니다.


그런데도 유치원 네 곳 모두 2년째 교육청 감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해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한 설립자 곽 씨를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약식재판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래도 감사를 못 받겠다며 곽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도대체 왜 감사를 안 받는지 물었습니다. 곽 씨는 “교육청이 감사 자료로 요구하는 금융거래 내역은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 제출 가능하다”고 전했습니다. 교육청의 유치원 회계 자료 제출 요구가 ‘불법’이라며 감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청은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감사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며 이미 재판에서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1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안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곽 씨처럼 감사를 거부하고 있는 유치원, 전국에 22곳이나 됩니다.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씨(전 국회의원)는 “감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비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2016년 감사 결과 곽 씨의 유치원 두 곳에서만 50억대 회계 부정이 드러났는데 감사 거부에 대한 처벌이 “벌금 100만 원에 불과하니 누가 감사를 받겠느냐”고 비판했습니다.

■ 행정조치 이행 거부해도 ‘지원금 5% 삭감’ 그쳐

2년 전 국정감사에서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고, 올해 초 어렵게 ‘유치원 3법’이 개정됐습니다. 유치원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 회계 시스템인 ‘에듀 파인’이 도입됐고, 회계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지원금 삭감 등 ‘재정 처분’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곽 씨가 운영 중인 유치원들은 원생 200명 이상으로 지난해부터 에듀파인을 도입했습니다. 에듀파인 도입하기 전처럼 원비를 노래방이나 술집 등에서 유흥비로 쓰거나 명품을 사는 데 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령 회사를 세워 가장 거래를 하거나 교재비 등을 부풀려서 입력하는 것까진 막을 수 없다”고 교육청 관계자는 말합니다.


실제 곽 씨 유치원의 회계 자료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유독 거래가 잦은 업체 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2018년 6월 코딩 수업, 홍삼 및 두유 구입 명목으로 1억 7천만 원, 다음 달에도 견학과 행사 등 명목으로 2억 5천만 원을 이 업체에 지급했습니다. 업체 등본을 떼봤더니 곽 씨가 담임 목사인 교회 직원이 대표로, 곽 씨의 딸이 이사로 올라있습니다.

교재와 원복 구매 등의 명목으로 거액이 빠져나간 또 다른 업체는 대표이사가 파주의 한 교회 목사로 확인됐습니다. 사무실 주소를 찾아갔더니 가정집입니다. 에듀파인으로는 이런 거래들이 정당한 거래였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 금융거래 내역을 제출받아 감사를 진행해야만 회계 부정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처벌도 여전히 ‘솜방망이’입니다. 2016년 감사 결과 곽 씨가 운영 중인 예은유치원, 예일유치원은 엉뚱하게 쓰인 원비 50억 원을 반환하라는 행정 조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푼도 돌려놓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처분으로 파주 교육지원청은 지난 8월부터 두 유치원에 대한 학급 지원금을 삭감했습니다. 전체 지원금의 5%에 불과합니다.

처분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교육청 관계자는 지원금을 끊어봤자 피해는 설립자가 아니라 원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강력한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볼모가 되는 셈입니다.

■ 비리 유치원 근절을 위해, ‘유치원 3법’ 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

어제(15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서울·인천·경기 교육청 국정감사에서도 유치원 문제가 언급됐습니다.


감사 처분을 이행하지 않는 유치원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감사를 거부하거나 감사 처분 이행을 거부하는 유치원에 대해 더 강력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장하나 활동가는 “궁극적으로는 국공립 유치원을 더 늘려야 한다. 당장은 비리를 저지른 사립 유치원 회계와 운영을 감시할 수 있는 운영진을 파견하는 등 교육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회계 부정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안 한 채 방치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을 비리 유치원에 등 떠미는 격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유치원은 아이들이 만나는 첫 사회입니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는 교육 기관입니다. 아이들 교육에 쓰라고 준 세금을 엉뚱하게 쓰고, 거짓 회계 장부를 작성하고, 심지어 감사까지 거부하는 유치원 설립자분들,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KBS는 부당 사용한 유치원비 275억 원을 반납하지 않고 있는 전국 186곳의 유치원 명단을 KBS 뉴스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아래 기사 링크를 가보면 지역별로 확인 가능합니다.

[연관기사] 유치원비로 ‘性 박물관’을?…‘미이행’ 유치원 186곳은 어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25249
  • “감사 못 받아!” 원장님,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 입력 2020-10-16 06:00:21
    취재K
경기 성남의 한 교회 담임목사인 곽 모 씨. 파주 예은 유치원, 예일 유치원, 용인 예성 유치원, 성남 예정 유치원 등 네 곳의 유치원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네 곳 유치원의 원생만 1,500명. 지난 2017년부터 3년 동안 누리과정 지원금, 급식 지원금 등 160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습니다.


그런데도 유치원 네 곳 모두 2년째 교육청 감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해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한 설립자 곽 씨를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약식재판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래도 감사를 못 받겠다며 곽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도대체 왜 감사를 안 받는지 물었습니다. 곽 씨는 “교육청이 감사 자료로 요구하는 금융거래 내역은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 제출 가능하다”고 전했습니다. 교육청의 유치원 회계 자료 제출 요구가 ‘불법’이라며 감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청은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감사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며 이미 재판에서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1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안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곽 씨처럼 감사를 거부하고 있는 유치원, 전국에 22곳이나 됩니다.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씨(전 국회의원)는 “감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비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2016년 감사 결과 곽 씨의 유치원 두 곳에서만 50억대 회계 부정이 드러났는데 감사 거부에 대한 처벌이 “벌금 100만 원에 불과하니 누가 감사를 받겠느냐”고 비판했습니다.

■ 행정조치 이행 거부해도 ‘지원금 5% 삭감’ 그쳐

2년 전 국정감사에서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고, 올해 초 어렵게 ‘유치원 3법’이 개정됐습니다. 유치원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 회계 시스템인 ‘에듀 파인’이 도입됐고, 회계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지원금 삭감 등 ‘재정 처분’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곽 씨가 운영 중인 유치원들은 원생 200명 이상으로 지난해부터 에듀파인을 도입했습니다. 에듀파인 도입하기 전처럼 원비를 노래방이나 술집 등에서 유흥비로 쓰거나 명품을 사는 데 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령 회사를 세워 가장 거래를 하거나 교재비 등을 부풀려서 입력하는 것까진 막을 수 없다”고 교육청 관계자는 말합니다.


실제 곽 씨 유치원의 회계 자료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유독 거래가 잦은 업체 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2018년 6월 코딩 수업, 홍삼 및 두유 구입 명목으로 1억 7천만 원, 다음 달에도 견학과 행사 등 명목으로 2억 5천만 원을 이 업체에 지급했습니다. 업체 등본을 떼봤더니 곽 씨가 담임 목사인 교회 직원이 대표로, 곽 씨의 딸이 이사로 올라있습니다.

교재와 원복 구매 등의 명목으로 거액이 빠져나간 또 다른 업체는 대표이사가 파주의 한 교회 목사로 확인됐습니다. 사무실 주소를 찾아갔더니 가정집입니다. 에듀파인으로는 이런 거래들이 정당한 거래였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 금융거래 내역을 제출받아 감사를 진행해야만 회계 부정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처벌도 여전히 ‘솜방망이’입니다. 2016년 감사 결과 곽 씨가 운영 중인 예은유치원, 예일유치원은 엉뚱하게 쓰인 원비 50억 원을 반환하라는 행정 조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푼도 돌려놓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처분으로 파주 교육지원청은 지난 8월부터 두 유치원에 대한 학급 지원금을 삭감했습니다. 전체 지원금의 5%에 불과합니다.

처분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교육청 관계자는 지원금을 끊어봤자 피해는 설립자가 아니라 원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강력한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볼모가 되는 셈입니다.

■ 비리 유치원 근절을 위해, ‘유치원 3법’ 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

어제(15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서울·인천·경기 교육청 국정감사에서도 유치원 문제가 언급됐습니다.


감사 처분을 이행하지 않는 유치원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감사를 거부하거나 감사 처분 이행을 거부하는 유치원에 대해 더 강력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장하나 활동가는 “궁극적으로는 국공립 유치원을 더 늘려야 한다. 당장은 비리를 저지른 사립 유치원 회계와 운영을 감시할 수 있는 운영진을 파견하는 등 교육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회계 부정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안 한 채 방치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을 비리 유치원에 등 떠미는 격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유치원은 아이들이 만나는 첫 사회입니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는 교육 기관입니다. 아이들 교육에 쓰라고 준 세금을 엉뚱하게 쓰고, 거짓 회계 장부를 작성하고, 심지어 감사까지 거부하는 유치원 설립자분들,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KBS는 부당 사용한 유치원비 275억 원을 반납하지 않고 있는 전국 186곳의 유치원 명단을 KBS 뉴스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아래 기사 링크를 가보면 지역별로 확인 가능합니다.

[연관기사] 유치원비로 ‘性 박물관’을?…‘미이행’ 유치원 186곳은 어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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