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공격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어색한 국감 풍경

입력 2020.10.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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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與 양경숙, 이주열 향해 “너나 잘하세요”
野 서병수 “계속 독립적 목소리 내주셔야”
정부 역할인 재정준칙 논란엔 시사점 없어
‘더 적극적인 역할’ VS 선 긋는 한은 사이 ‘중앙은행론’에 주목해야



보통 국정감사는 진영 싸움이다. 정부와 관계기관을 불러놓고 여당은 수비, 야당은 공격한다. 이상적으론 행정부 감시의 장이 되어야 하고 정책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오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논란이 치열한 사안일수록 이 공수의 대결 수위는 더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선 16일 한국은행 국감장 공방은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여당 의원들이 이주열 총재를 비판하고, 야당 의원들은 그런 여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이주열 총재를 감싸고 응원했다. 공격과 수비가 이례적으로 바뀐 것.

與 양경숙, 이주열 향해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명 영화 대사 떠올라"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작부터 공격적인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한은은 독립기관이죠?', '정부가 방역과 경제 모두 성과 거두며 고군분투하는 것 동의하시죠?' 라고 공격적으로 물으며 하나하나 이주열 총재의 대답을 요구했다.

본론은 재정준칙에 대한 금통위 발언 비판. 한은에 대해 "엄중한 시기 본연의 역할도 못 하면서 대안도 없이 정부정책 훈수 두겠다는 겁니까?"라며 호통에 가까운 질의로 이어졌다. 이주열 총재가 이번 주 금통위에서 '엄격한 재정준칙'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양의원은 "민감 시기 대안 제시 없이 한은 기름 부었다"고 했다.


질의 뒤 의원실에 문의하자 "이주열 총재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 게 아니고, 영화에 나온 대사를 인용한 것뿐이었다"면서도 이 발언이 준비된 발언이었다고도 인정했다. (참고로 문의 결과 그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였다.)

같은 여당 박홍근 의원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IMF조차도 한은 총재가 '엄격한 재정준칙'을 거론한 바로 그 전날, 각국에 재정준칙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했다. 또 엄격한 재정정책에 있어 모범사례라는 독일조차 재정준칙을 중단하고 1,200조 원가량의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재정준칙의 엄격성을 강조하셨지만, 해외 주요 나라 보면 중앙은행이 준재정 역할을 한다. 한은이 확장 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달라"고 까지 했다.

野 서병수 "한은이 계속 독립적 목소리 내주셔야 한다" 독려와 당부

반면 야당은 이주열 총재의 금통위 발언에 의미를 부여하며 유사 발언을 계속 유도하려 안간힘을 썼다. 박형수 의원(국민의 힘)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금통위에서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말했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병수 의원(국민의 힘)은 양경숙 의원의 호통 뒤에 이주열 총재에게 '많이 당혹스러우실 것 같다.'며 그래도 "한은이 계속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주셔야 한다"며 당부 아닌 당부를 하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여야, 공수가 뒤바뀐 어색한 상황.

그런데 의원님들... 왜 재정준칙을 한국은행 총재한테 물으시죠?

사실 어색한 건 여야의 '공수 교체' 뿐만이 아니다. '재정준칙'을 한국은행 국감장에서 따졌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하다. 기재부가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는 정책과제다. 국가 채무비율이 너무 높아지지 않게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구체적 지표를 도입하겠다는 것.

다시 말해, 정부 기관이 아닌 한은은 이 재정준칙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한은은 '임기 내 경제 성과를 내려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금리 결정'을 위해 '독립성'을 보장하는 기관이다. 한은의 역할은 정부정책과 무관하단 점에서 '번지수'가 틀린 논쟁인 것.

그런데도 뜻하지 않게 격한 논쟁이 오간 이유, 앞서 의원들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1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이주열 총재가 한 발언 때문이다. 당시 이 총재는 '본연의 역할'인 금리와 관련해 '동결'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4일 금통위 당시 기자 질문답변 녹취록)
기자 질문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는 시기에 재정준칙 도입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재정준칙 도입 효과나 관리 기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 질문드립니다.

총재 답변 ①자기규율 방법을 마련했다는 점, 우리나라는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재정지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②다른 한편,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유연성이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IMF도 위기 시에는 재정정책을 보다 재량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이 안에 대해서 국회를 중심으로 해서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해서 심도 있게, 정말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서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총재는 실제로 야당이 반길만한 발언을 하긴 했다. ① 발언이 그것인데, 사실 이 말만 보면 여당 의원들의 '원성'이 이해되는 구석이 없진 않다. 이미 여야가 재정준칙을 놓고 격돌한 상황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야당 편드는 발언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총재가 필요성만 언급한 건 아니다. IMF의 재정준칙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면서 ② 발언과 같이 '위기상황에선 유연성이 요구된다'는 발언도 했다. 양경숙, 박홍근 의원 발언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국회의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 정도면 중립적인 견해를 밝혔다고 봐도 좋다. 모범생의 모범답안. 국감장 발언도 다르지 않다.


한은은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정리해보면 이주열 총재 속마음은 아마도 '제 말이 의원님들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정도일 것이다.

여당 의원들의 '질책'과 야당 의원들의 '독려'는 그래서 '재정준칙' 논란만 놓고 보면 사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재정준칙 논란에는 정책 시사점 없어
'더 적극적인 역할' 주문 VS 선 긋는 한은 사이 '중앙은행론'에 주목해야


한은 본연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이보다는 덜 어색하다. 그리고 '정책적 시사점'도 있다.

박홍근 의원은 '해외 주요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준재정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미 연준은 국채는 물론 국채 저당증권도 매입하고, 유럽은 양적 완화를 크게 했다. 영란은행은 무제한 담보대출에 나섰다. 적극적으로 준재정 역할을 하며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너무나 소극적이다."고 했다.

실제로 여당과 정부에는 한은에 대한 이런 불만이 적잖이 누적되어 있다. '한국형'이라는 이름의 양적 완화는 극히 적은 양에 불과하고, 일시적이었다. 40조 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조성과정에서 불거진 정부와의 불협화음은 때로는 위험수위에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정부에선 여태 한은이 위기 극복을 위해 매입한 자산이 극히 적어 건전성이 극히 좋은데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라며, '한은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한은은 미 연준도 기구 설립과정에서 정부 보증이라는 안전장치를 확보하면서 위험 부담을 하지 않았다며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레이션 시대 '금리 결정'에 집중됐던 중앙은행의 역할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다시 쓰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앙은행론'의 변화기에 기존의 선진국들, 기축통화국들이 먼저 시작한 이 변화를 우리 같은 '비기축통화 신흥 선진국'이 어디까지 따라가도 되는지, 또 언제부터 그래도 될지는 분명 논쟁적인 영역이다.

보수적 태도만 고집하면 안전하겠지만, 훗날 '역할 판단에 실기해' 경기 침체를 방치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논쟁은 현재 진행형... 내년 적자 국채 발행 때 또다시 '한은의 적극적 역할' 논란 재연될 수도

논란은 대량의 적자 국채 발행이 예정된 내년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량은 올해 100조 원을 넘고 내년도 90조 원 정도가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국채가 시장에 풀리면 채권 금리가 올라가는 등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점.

고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선진국을 보면 중앙은행이 매우 적극적으로 국채를 매입하고 있는데, 한은은 너무 소극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채 보유를 늘릴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전문가 의견도 전달했다. 시장의 충격을 중앙은행이 줄여주고, 동시에 정부의 국채 발행 부담도 줄여달라는 취지다.

이 총재는 다시 한번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부 정책 비용을 사실상 중앙은행이 부담하는 이른바 '정부 부채의 화폐화'라고 규정했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치판단을 했다. 대신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면서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국채 매입을 할 계획"이라 했다.

'안정화' 이상을 한국은행에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

서병수 의원(국민의 힘)이 "정부가 물량을 늘리는 적자 국채에 대해 중앙은행이 인수 등으로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도 "정부의 지출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부채의 화폐화'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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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당이 공격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어색한 국감 풍경
    • 입력 2020-10-17 08:00:33
    취재K
<strong>與 양경숙, 이주열 향해 “너나 잘하세요”<br /></strong><strong>野 서병수 “계속 독립적 목소리 내주셔야”</strong><br /><strong>정부 역할인 재정준칙 논란엔 시사점 없어</strong><br /><strong>‘더 적극적인 역할’ VS 선 긋는 한은 사이 ‘중앙은행론’에 주목해야</strong><br />


보통 국정감사는 진영 싸움이다. 정부와 관계기관을 불러놓고 여당은 수비, 야당은 공격한다. 이상적으론 행정부 감시의 장이 되어야 하고 정책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오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논란이 치열한 사안일수록 이 공수의 대결 수위는 더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선 16일 한국은행 국감장 공방은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여당 의원들이 이주열 총재를 비판하고, 야당 의원들은 그런 여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이주열 총재를 감싸고 응원했다. 공격과 수비가 이례적으로 바뀐 것.

與 양경숙, 이주열 향해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명 영화 대사 떠올라"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작부터 공격적인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한은은 독립기관이죠?', '정부가 방역과 경제 모두 성과 거두며 고군분투하는 것 동의하시죠?' 라고 공격적으로 물으며 하나하나 이주열 총재의 대답을 요구했다.

본론은 재정준칙에 대한 금통위 발언 비판. 한은에 대해 "엄중한 시기 본연의 역할도 못 하면서 대안도 없이 정부정책 훈수 두겠다는 겁니까?"라며 호통에 가까운 질의로 이어졌다. 이주열 총재가 이번 주 금통위에서 '엄격한 재정준칙'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양의원은 "민감 시기 대안 제시 없이 한은 기름 부었다"고 했다.


질의 뒤 의원실에 문의하자 "이주열 총재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 게 아니고, 영화에 나온 대사를 인용한 것뿐이었다"면서도 이 발언이 준비된 발언이었다고도 인정했다. (참고로 문의 결과 그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였다.)

같은 여당 박홍근 의원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IMF조차도 한은 총재가 '엄격한 재정준칙'을 거론한 바로 그 전날, 각국에 재정준칙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했다. 또 엄격한 재정정책에 있어 모범사례라는 독일조차 재정준칙을 중단하고 1,200조 원가량의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재정준칙의 엄격성을 강조하셨지만, 해외 주요 나라 보면 중앙은행이 준재정 역할을 한다. 한은이 확장 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달라"고 까지 했다.

野 서병수 "한은이 계속 독립적 목소리 내주셔야 한다" 독려와 당부

반면 야당은 이주열 총재의 금통위 발언에 의미를 부여하며 유사 발언을 계속 유도하려 안간힘을 썼다. 박형수 의원(국민의 힘)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금통위에서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말했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병수 의원(국민의 힘)은 양경숙 의원의 호통 뒤에 이주열 총재에게 '많이 당혹스러우실 것 같다.'며 그래도 "한은이 계속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주셔야 한다"며 당부 아닌 당부를 하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여야, 공수가 뒤바뀐 어색한 상황.

그런데 의원님들... 왜 재정준칙을 한국은행 총재한테 물으시죠?

사실 어색한 건 여야의 '공수 교체' 뿐만이 아니다. '재정준칙'을 한국은행 국감장에서 따졌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하다. 기재부가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는 정책과제다. 국가 채무비율이 너무 높아지지 않게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구체적 지표를 도입하겠다는 것.

다시 말해, 정부 기관이 아닌 한은은 이 재정준칙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한은은 '임기 내 경제 성과를 내려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금리 결정'을 위해 '독립성'을 보장하는 기관이다. 한은의 역할은 정부정책과 무관하단 점에서 '번지수'가 틀린 논쟁인 것.

그런데도 뜻하지 않게 격한 논쟁이 오간 이유, 앞서 의원들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1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이주열 총재가 한 발언 때문이다. 당시 이 총재는 '본연의 역할'인 금리와 관련해 '동결'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4일 금통위 당시 기자 질문답변 녹취록)
기자 질문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는 시기에 재정준칙 도입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재정준칙 도입 효과나 관리 기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 질문드립니다.

총재 답변 ①자기규율 방법을 마련했다는 점, 우리나라는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재정지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②다른 한편,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유연성이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IMF도 위기 시에는 재정정책을 보다 재량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이 안에 대해서 국회를 중심으로 해서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해서 심도 있게, 정말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서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총재는 실제로 야당이 반길만한 발언을 하긴 했다. ① 발언이 그것인데, 사실 이 말만 보면 여당 의원들의 '원성'이 이해되는 구석이 없진 않다. 이미 여야가 재정준칙을 놓고 격돌한 상황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야당 편드는 발언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총재가 필요성만 언급한 건 아니다. IMF의 재정준칙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면서 ② 발언과 같이 '위기상황에선 유연성이 요구된다'는 발언도 했다. 양경숙, 박홍근 의원 발언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국회의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 정도면 중립적인 견해를 밝혔다고 봐도 좋다. 모범생의 모범답안. 국감장 발언도 다르지 않다.


한은은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정리해보면 이주열 총재 속마음은 아마도 '제 말이 의원님들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정도일 것이다.

여당 의원들의 '질책'과 야당 의원들의 '독려'는 그래서 '재정준칙' 논란만 놓고 보면 사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재정준칙 논란에는 정책 시사점 없어
'더 적극적인 역할' 주문 VS 선 긋는 한은 사이 '중앙은행론'에 주목해야


한은 본연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이보다는 덜 어색하다. 그리고 '정책적 시사점'도 있다.

박홍근 의원은 '해외 주요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준재정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미 연준은 국채는 물론 국채 저당증권도 매입하고, 유럽은 양적 완화를 크게 했다. 영란은행은 무제한 담보대출에 나섰다. 적극적으로 준재정 역할을 하며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너무나 소극적이다."고 했다.

실제로 여당과 정부에는 한은에 대한 이런 불만이 적잖이 누적되어 있다. '한국형'이라는 이름의 양적 완화는 극히 적은 양에 불과하고, 일시적이었다. 40조 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조성과정에서 불거진 정부와의 불협화음은 때로는 위험수위에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정부에선 여태 한은이 위기 극복을 위해 매입한 자산이 극히 적어 건전성이 극히 좋은데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라며, '한은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한은은 미 연준도 기구 설립과정에서 정부 보증이라는 안전장치를 확보하면서 위험 부담을 하지 않았다며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레이션 시대 '금리 결정'에 집중됐던 중앙은행의 역할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다시 쓰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앙은행론'의 변화기에 기존의 선진국들, 기축통화국들이 먼저 시작한 이 변화를 우리 같은 '비기축통화 신흥 선진국'이 어디까지 따라가도 되는지, 또 언제부터 그래도 될지는 분명 논쟁적인 영역이다.

보수적 태도만 고집하면 안전하겠지만, 훗날 '역할 판단에 실기해' 경기 침체를 방치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논쟁은 현재 진행형... 내년 적자 국채 발행 때 또다시 '한은의 적극적 역할' 논란 재연될 수도

논란은 대량의 적자 국채 발행이 예정된 내년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량은 올해 100조 원을 넘고 내년도 90조 원 정도가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국채가 시장에 풀리면 채권 금리가 올라가는 등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점.

고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선진국을 보면 중앙은행이 매우 적극적으로 국채를 매입하고 있는데, 한은은 너무 소극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채 보유를 늘릴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전문가 의견도 전달했다. 시장의 충격을 중앙은행이 줄여주고, 동시에 정부의 국채 발행 부담도 줄여달라는 취지다.

이 총재는 다시 한번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부 정책 비용을 사실상 중앙은행이 부담하는 이른바 '정부 부채의 화폐화'라고 규정했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치판단을 했다. 대신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면서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국채 매입을 할 계획"이라 했다.

'안정화' 이상을 한국은행에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

서병수 의원(국민의 힘)이 "정부가 물량을 늘리는 적자 국채에 대해 중앙은행이 인수 등으로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도 "정부의 지출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부채의 화폐화'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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