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엎고 뽑아내고…제주 유채꽃·핑크뮬리의 수난(?)

입력 2020.10.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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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만발한 유채꽃을 제거하는 모습(왼쪽)과 올가을 제주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서귀포시 한 카페의 핑크뮬리.올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만발한 유채꽃을 제거하는 모습(왼쪽)과 올가을 제주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서귀포시 한 카페의 핑크뮬리.

이름도 모르던 식물에서, 최근 몇 년 새 '가을철의 대명사' 코스모스의 자리를 대신 꿰찬 '핑크뮬리(Pink Muhly)'. 이젠 봄 하면 노란 유채꽃, 가을 하면 바람에 출렁이는 분홍빛 핑크뮬리 갈대밭을 떠올릴 정도가 됐죠.

그런데 올해 봄·가을철 제주도에 만발한 유채꽃과 핑크뮬리는 각각 다른 이유로 '제거'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나는 코로나19 확산 우려, 다른 하나는 '생태계 교란 논란' 때문입니다.

유채꽃, 코로나 확산 방지 '제거'
핑크뮬리, 생태계 교란 우려 '제거'

이달 초만 해도 유채꽃과 핑크뮬리의 운명은 엇갈리는 듯했습니다. 올해 초, 유채꽃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꽃을 활짝 피우자마자 "수십만 관광객이 올까" 두려워한 주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꽃밭을 뒤엎었습니다. 봄철 유채꽃은 그렇게 시나브로 스러져갔습니다. 이와 달리, 가을로 접어들어선 분홍빛 핑크뮬리가 일렁이는 제주의 명소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올 3~4월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더 늘었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핑크뮬리밭을 갈아엎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영향도 비껴가는 듯 보였던 제주 핑크뮬리의 운명을 뒤바꾼 건, 최근 다시 불거진 '생태계 교란 논란'입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두 행정기관에서 도내에 심은 핑크뮬리 면적은 약 2,313㎡. 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생태계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 핑크뮬리를 제거하고 다른 종을 심을 계획입니다. 일단, 자치단체가 예산을 들여 심은 핑크뮬리는 모두 제거됩니다.


제주시·서귀포시 핑크뮬리 2,313㎡ 제거하기로
"환경부 위해식물 2급 판정받기 전 심은 것들"

제주시 용담2동 도령마루에 심은 핑크뮬리 330여㎡는 이미 지난 13일 제거를 완료했습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당시 핑크뮬리 외에도 다른 나무 등을 섞어 심었다"며 "양이 적어서 예초기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뽑아서 제거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시는 또 아라동주민센터가 심은 약 991㎡ 규모 핑크뮬리도 다른 식물로 교체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아라동 핑크뮬리밭은 다음 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입니다.

서귀포시에 심긴 핑크뮬리밭도 같은 처지. 시는 안덕면사무소가 덕수리 조각공원 인근에 심은 991㎡ 규모 핑크뮬리를 교체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핑크뮬리는 올해 가을을 지낸 뒤 내년 초 제거돼, 새로운 식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예정입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이들 핑크뮬리는 위해 식물 2급 판정을 받기 전에 심은 겁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생태계 위해성 평가에서 핑크뮬리를 생태계 교란 식물 다음 단계인 위해식물 2등급으로 분류했습니다. 위해식물 2등급은 당장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은 보통이지만, 향후 영향을 지속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제주에는 사유지에 심긴 핑크뮬리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양 행정기관은 KBS와의 통화에서 "민간에서 식재한 것까지 행정당국에서 강제 철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환경부 지침에 따라, 다른 식물로 심어줄 것을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올해 4월 초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광장에 만개한 유채꽃올해 4월 초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광장에 만개한 유채꽃

올봄 갈아엎은 가시리 유채꽃밭은 최근 파종…"내년에 다시 만나요"

서귀포시와 가시리마을은 벌써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축제도 열지 못하고 트랙터로 파쇄한 가시리광장 유채꽃밭엔 지난달 말, 새로 씨를 뿌렸습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올해 유채꽃밭을 모두 갈아엎게 돼서, 아쉽다는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면서 "내년에도 코로나19 상황이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올해처럼 꽃밭을 모두 철거하지 않고 관람로 등을 조성해서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참고> 핑크뮬리란?
가을철 억새가 일렁이는 들판을 연상시키면서도 이국적인 빛깔이 신비로운 핑크뮬리의 우리말 이름은 '분홍쥐꼬리새'. 볏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원산지는 미국. 주로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조지아 등 북아메리카 동남부에서 자란다. 국내에는 2014년 제주 한 생태공원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으면서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래종으로서 '생태계 교란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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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아엎고 뽑아내고…제주 유채꽃·핑크뮬리의 수난(?)
    • 입력 2020-10-17 09:04:25
    취재K
올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만발한 유채꽃을 제거하는 모습(왼쪽)과 올가을 제주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서귀포시 한 카페의 핑크뮬리.
이름도 모르던 식물에서, 최근 몇 년 새 '가을철의 대명사' 코스모스의 자리를 대신 꿰찬 '핑크뮬리(Pink Muhly)'. 이젠 봄 하면 노란 유채꽃, 가을 하면 바람에 출렁이는 분홍빛 핑크뮬리 갈대밭을 떠올릴 정도가 됐죠.

그런데 올해 봄·가을철 제주도에 만발한 유채꽃과 핑크뮬리는 각각 다른 이유로 '제거'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나는 코로나19 확산 우려, 다른 하나는 '생태계 교란 논란' 때문입니다.

유채꽃, 코로나 확산 방지 '제거'
핑크뮬리, 생태계 교란 우려 '제거'

이달 초만 해도 유채꽃과 핑크뮬리의 운명은 엇갈리는 듯했습니다. 올해 초, 유채꽃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꽃을 활짝 피우자마자 "수십만 관광객이 올까" 두려워한 주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꽃밭을 뒤엎었습니다. 봄철 유채꽃은 그렇게 시나브로 스러져갔습니다. 이와 달리, 가을로 접어들어선 분홍빛 핑크뮬리가 일렁이는 제주의 명소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올 3~4월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더 늘었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핑크뮬리밭을 갈아엎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영향도 비껴가는 듯 보였던 제주 핑크뮬리의 운명을 뒤바꾼 건, 최근 다시 불거진 '생태계 교란 논란'입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두 행정기관에서 도내에 심은 핑크뮬리 면적은 약 2,313㎡. 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생태계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 핑크뮬리를 제거하고 다른 종을 심을 계획입니다. 일단, 자치단체가 예산을 들여 심은 핑크뮬리는 모두 제거됩니다.


제주시·서귀포시 핑크뮬리 2,313㎡ 제거하기로
"환경부 위해식물 2급 판정받기 전 심은 것들"

제주시 용담2동 도령마루에 심은 핑크뮬리 330여㎡는 이미 지난 13일 제거를 완료했습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당시 핑크뮬리 외에도 다른 나무 등을 섞어 심었다"며 "양이 적어서 예초기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뽑아서 제거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시는 또 아라동주민센터가 심은 약 991㎡ 규모 핑크뮬리도 다른 식물로 교체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아라동 핑크뮬리밭은 다음 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입니다.

서귀포시에 심긴 핑크뮬리밭도 같은 처지. 시는 안덕면사무소가 덕수리 조각공원 인근에 심은 991㎡ 규모 핑크뮬리를 교체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핑크뮬리는 올해 가을을 지낸 뒤 내년 초 제거돼, 새로운 식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예정입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이들 핑크뮬리는 위해 식물 2급 판정을 받기 전에 심은 겁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생태계 위해성 평가에서 핑크뮬리를 생태계 교란 식물 다음 단계인 위해식물 2등급으로 분류했습니다. 위해식물 2등급은 당장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은 보통이지만, 향후 영향을 지속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제주에는 사유지에 심긴 핑크뮬리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양 행정기관은 KBS와의 통화에서 "민간에서 식재한 것까지 행정당국에서 강제 철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환경부 지침에 따라, 다른 식물로 심어줄 것을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올해 4월 초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광장에 만개한 유채꽃
올봄 갈아엎은 가시리 유채꽃밭은 최근 파종…"내년에 다시 만나요"

서귀포시와 가시리마을은 벌써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축제도 열지 못하고 트랙터로 파쇄한 가시리광장 유채꽃밭엔 지난달 말, 새로 씨를 뿌렸습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올해 유채꽃밭을 모두 갈아엎게 돼서, 아쉽다는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면서 "내년에도 코로나19 상황이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올해처럼 꽃밭을 모두 철거하지 않고 관람로 등을 조성해서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참고> 핑크뮬리란?
가을철 억새가 일렁이는 들판을 연상시키면서도 이국적인 빛깔이 신비로운 핑크뮬리의 우리말 이름은 '분홍쥐꼬리새'. 볏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원산지는 미국. 주로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조지아 등 북아메리카 동남부에서 자란다. 국내에는 2014년 제주 한 생태공원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으면서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래종으로서 '생태계 교란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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