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지대병원 병상 수 반토막…그 곳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20.10.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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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지대병원.대전을지대병원.

1,024병상을 갖추고 평상시에 9백여 병상을 운영하던 대전 을지대학교병원이 최근엔 병상을 절반도 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몇 년 사이 병상 운영에 필요한 '법정 간호인력'인 간호사들이 계속 많이 빠져나간 탓이 큰 데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텅 빈 채 운영이 중단된 대전을지대병원 입원병동 11층.텅 빈 채 운영이 중단된 대전을지대병원 입원병동 11층.

■텅 빈 입원병동… 간호사 없으니 환자도 사라져

대전을지대병원 입원병동이 자리한 11층. 그런데 간호사실은 텅 비어있고, 환자 간호에 쓰이는 병원 장비와 집기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입원병동이 자리한 14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병원 2개 층이 텅 빈 채 굳게 잠겨 있습니다.

대전시와 보건소에 알아봤습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대전을지대학교병원은 900병상을 가용할 수 있다고 보건소에 신고했는데, 최근에 이르러선 3분의 2 수준인 600병상을 신고했습니다. 병원 측은 간호인력 급감으로 병상을 운영하는데 지장이 생겼고, 현재 운영 중인 병상은 400~ 450병상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간호사들은 왜 사라졌을까요?

처우는 낮지만 업무 강도는 높다고 토로하는 대전을지대병원 간호사들.처우는 낮지만 업무 강도는 높다고 토로하는 대전을지대병원 간호사들.

■낮은 처우에 높은 업무 강도, 임금체불 논란까지

취재진은 대전을지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만나봤습니다. 처우는 낮은데 업무 강도는 높아서 간호사 대부분이 중간에 그만두거나 이직을 해버린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최근 간호사 인수인계 시간 외 수당 임금체불 논란까지 벌어지면서 간호사들은 처우개선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이들의 처우가 어떤지 대전과 충남지역의 다른 사립대병원과 급여체계를 비교해봤더니 초임은 최대 1,000만 원 이상 20년 차에선 무려 3,000만 원 이상 연봉 격차가 벌어집니다. 대전을지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 모 씨는 "처음 신입으로 입사했을 땐 중간 연차의 선배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두 그만두거나 이직을 해버렸다"며 "다른 병원에 비해서 급여나 처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많은 동료가 그만두게 됐다. 병원이 인력을 뽑는다는 데 매년 반복된다. 신규를 뽑고 퇴사하고 신규를 뽑고 퇴사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씨의 말처럼 대전을지대병원의 숙련직 간호사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대다수 간호사가 1~3년 차인 저년차 인력으로 파악됐습니다.

김하용 대전을지대병원 병원장.김하용 대전을지대병원 병원장.
이에 대해 김하용 대전을지대병원 병원장은 "간호등급을 유지하면서 병원을 돌리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병상 수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행히도 이번 간호사 모집에 신규지원자가 굉장히 많아서 현재 600명 넘게 지원을 했고 이 중 500명을 합격 처리했다. 예년과 다르게 많은 간호사가 입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김 병원장은 간호직 3교대 근무 개선부터 육아휴직수당 도입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76개 대학병원 중 순이익 '6위' 처우개선 할 수익금은 어디 갔나?

간호인력 유출,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의원을 통해 대전을지대병원의 수년치 회계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뜻밖의 수치가 나옵니다.

대전을지대병원의 지난해 순수익은 427억 원, 2018년에는 486억 원, 2017년은 463억 원, 2016년은 539억 원에 달합니다.
특히 지난해 회계수익 상 순수익은 전국 76개 대학병원 중 전국 6위라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소위 '서울 탑5 대학병원'보다 앞선 수익구조입니다.

그런데 최종 당기순이익은 29억 원의 순손실, 적자가 났다고 발표됩니다. 400억 원의 순수익이 29억의 적자로 바뀌는 마법의 비밀,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대전을지대병원의 고유목적준비사업준비금은 478억 원, 여기에 환입액 20억 원을 빼도 순수익을 훨씬 뛰어넘는 458억 원에 이릅니다. 고유목적준비사업준비금은 투자나 대규모 건설계획을 세울 때 쓰는 회계 명목입니다. 이렇게 대전을지대병원에서 5년간 쌓인 준비금은 4,415억 원에 달합니다.


■지역 의료자원 빼서 수도권으로... 불균형 심각 우려

이렇게 빠져나간 준비금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 공교롭게도 학교법인 을지학원 을지대의료원은 경기 북부권에 새 병원을 건설 중입니다. 1,200병상 규모의 매머드급 병원사업입니다.

이에 대해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을지대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지방의 거점병원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이 고유목적사업 준비금이라는 항목으로 수도권의 병상확보를 위한 시설 건설비용으로 쓰이고 있다"며 "가뜩이나 심각한 지역 의료자원의 불균형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우려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공공의료정책전문가도 "보건의료를 이야기할 때 장비와 기술, 지식, 인력, 병상이 선순환돼야 하는데 이 구성요소 중 하나만 빠져도 병원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며 "지역 의료의 거대한 축을 맡은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환자가 이동하고 결국 의료 과밀화 현상이 발생해 권역 전체의 의료 시스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했습니다.

대전을지대병원은 대전권역의 유일한 '권역외상센터'입니다. 이곳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한다면 지역 의료체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역 의료 체계의 큰 기둥 중 하나인 대전을지대병원이 조속한 시일 안에 정상화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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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을지대병원 병상 수 반토막…그 곳에선 무슨 일이?
    • 입력 2020-10-18 09:01:59
    취재K
대전을지대병원.
1,024병상을 갖추고 평상시에 9백여 병상을 운영하던 대전 을지대학교병원이 최근엔 병상을 절반도 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몇 년 사이 병상 운영에 필요한 '법정 간호인력'인 간호사들이 계속 많이 빠져나간 탓이 큰 데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텅 빈 채 운영이 중단된 대전을지대병원 입원병동 11층.
■텅 빈 입원병동… 간호사 없으니 환자도 사라져

대전을지대병원 입원병동이 자리한 11층. 그런데 간호사실은 텅 비어있고, 환자 간호에 쓰이는 병원 장비와 집기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입원병동이 자리한 14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병원 2개 층이 텅 빈 채 굳게 잠겨 있습니다.

대전시와 보건소에 알아봤습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대전을지대학교병원은 900병상을 가용할 수 있다고 보건소에 신고했는데, 최근에 이르러선 3분의 2 수준인 600병상을 신고했습니다. 병원 측은 간호인력 급감으로 병상을 운영하는데 지장이 생겼고, 현재 운영 중인 병상은 400~ 450병상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간호사들은 왜 사라졌을까요?

처우는 낮지만 업무 강도는 높다고 토로하는 대전을지대병원 간호사들.
■낮은 처우에 높은 업무 강도, 임금체불 논란까지

취재진은 대전을지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만나봤습니다. 처우는 낮은데 업무 강도는 높아서 간호사 대부분이 중간에 그만두거나 이직을 해버린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최근 간호사 인수인계 시간 외 수당 임금체불 논란까지 벌어지면서 간호사들은 처우개선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이들의 처우가 어떤지 대전과 충남지역의 다른 사립대병원과 급여체계를 비교해봤더니 초임은 최대 1,000만 원 이상 20년 차에선 무려 3,000만 원 이상 연봉 격차가 벌어집니다. 대전을지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 모 씨는 "처음 신입으로 입사했을 땐 중간 연차의 선배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두 그만두거나 이직을 해버렸다"며 "다른 병원에 비해서 급여나 처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많은 동료가 그만두게 됐다. 병원이 인력을 뽑는다는 데 매년 반복된다. 신규를 뽑고 퇴사하고 신규를 뽑고 퇴사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씨의 말처럼 대전을지대병원의 숙련직 간호사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대다수 간호사가 1~3년 차인 저년차 인력으로 파악됐습니다.

김하용 대전을지대병원 병원장.이에 대해 김하용 대전을지대병원 병원장은 "간호등급을 유지하면서 병원을 돌리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병상 수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행히도 이번 간호사 모집에 신규지원자가 굉장히 많아서 현재 600명 넘게 지원을 했고 이 중 500명을 합격 처리했다. 예년과 다르게 많은 간호사가 입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김 병원장은 간호직 3교대 근무 개선부터 육아휴직수당 도입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76개 대학병원 중 순이익 '6위' 처우개선 할 수익금은 어디 갔나?

간호인력 유출,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의원을 통해 대전을지대병원의 수년치 회계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뜻밖의 수치가 나옵니다.

대전을지대병원의 지난해 순수익은 427억 원, 2018년에는 486억 원, 2017년은 463억 원, 2016년은 539억 원에 달합니다.
특히 지난해 회계수익 상 순수익은 전국 76개 대학병원 중 전국 6위라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소위 '서울 탑5 대학병원'보다 앞선 수익구조입니다.

그런데 최종 당기순이익은 29억 원의 순손실, 적자가 났다고 발표됩니다. 400억 원의 순수익이 29억의 적자로 바뀌는 마법의 비밀,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대전을지대병원의 고유목적준비사업준비금은 478억 원, 여기에 환입액 20억 원을 빼도 순수익을 훨씬 뛰어넘는 458억 원에 이릅니다. 고유목적준비사업준비금은 투자나 대규모 건설계획을 세울 때 쓰는 회계 명목입니다. 이렇게 대전을지대병원에서 5년간 쌓인 준비금은 4,415억 원에 달합니다.


■지역 의료자원 빼서 수도권으로... 불균형 심각 우려

이렇게 빠져나간 준비금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 공교롭게도 학교법인 을지학원 을지대의료원은 경기 북부권에 새 병원을 건설 중입니다. 1,200병상 규모의 매머드급 병원사업입니다.

이에 대해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을지대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지방의 거점병원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이 고유목적사업 준비금이라는 항목으로 수도권의 병상확보를 위한 시설 건설비용으로 쓰이고 있다"며 "가뜩이나 심각한 지역 의료자원의 불균형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우려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공공의료정책전문가도 "보건의료를 이야기할 때 장비와 기술, 지식, 인력, 병상이 선순환돼야 하는데 이 구성요소 중 하나만 빠져도 병원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며 "지역 의료의 거대한 축을 맡은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환자가 이동하고 결국 의료 과밀화 현상이 발생해 권역 전체의 의료 시스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했습니다.

대전을지대병원은 대전권역의 유일한 '권역외상센터'입니다. 이곳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한다면 지역 의료체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역 의료 체계의 큰 기둥 중 하나인 대전을지대병원이 조속한 시일 안에 정상화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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