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남긴 ‘월성1호기’ 감사…‘완전 삭제’된 120건의 문건

입력 2020.10.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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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남긴, '월성1호기 폐쇄 결정' 관련 감사 결과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감사 시작하고 1년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종지부를 찍지는 못했습니다.

감사 보고서에는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조기폐쇄를 한 정책 결정의 당부는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결과적으로 양쪽 입장을 하나씩 수용한 것처럼 작성됐습니다.

피감기관인 산업부도 감사 결과에 반박문까지 냈습니다.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업부도 '감사 자료 삭제'는 '유감'

하지만 이런 산업부도 승복한 대목은 있습니다. 감사 과정에서 자료 삭제는 인정한 것입니다.

감사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면 이렇습니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된 대부분의 보고서를 작성한 산업부 공무원 G 씨와 당시 담당 E 국장 등은 2019년 11월쯤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뒤 자료 삭제를 의논합니다. (E 국장은 '자료를 각자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 삭제 지시는 안 했다고 합니다.)

복구 방지 대비한 치밀한 삭제

당시 G 씨는 약 보름 간 컴퓨터에서 자료를 삭제하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평일 낮에는 현재 해당 컴퓨터를 사용 중인 I씨가 업무 중이라서 안되고, 평일 밤에도 야근자가 많아서 부담됐다고 합니다.

머뭇거리던 사이에 12월 2일 오전에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 일정이 잡히자 급한 마음에 12월 1일 밤늦게 사무실에 들어간 G 씨는 밤 11시 24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 16분까지 약 2시간 동안 444개 문서를 삭제합니다.

G 씨의 삭제는 치밀했습니다. "산업부에서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 관련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어서 자료를 지울 때는 전부 복구되니 제대로 지워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서를 열어서 다른 내용을 적고 저장했고, 파일명도 다른 것으로 수정한 뒤에 삭제했습니다. 이렇게 삭제하면 지워진 파일을 찾더라도 원래의 문서 내용이나 파일명을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삭제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나중에는 단순 삭제나 폴더 삭제를 했다고 합니다.

나름 치밀한 삭제의 결과 삭제된 444개의 파일 가운데 120개는 포렌식으로도 문서 내용이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완전 삭제' 문건 120건

삭제됐다 복구된 파일 가운데는 "180523_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 라는 문건도 있습니다. BH는 블루하우스, 즉 청와대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상당수 문건이 복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감사 보고서를 보면 일각에서 제기한 청와대 개입 의혹 관련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문책 대상에 청와대 비서관이 있다는 등의 그동안 보도는, 보고서에 따르면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삭제된 120건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던 것인지, 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수사참고자료 송부…결말은?

감사원은 G 씨와 E 국장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또, 경제성 평가와 관련해서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 인사자료 통보, 한수원 사장에 대해서는 주의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하거나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감사원은 감사결과 보도자료의 마지막 줄에서 "문책대상자들의 자료 삭제 및 업무 관련 비위행위 등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수사참고 자료 송부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사참고 자료'는 범죄 혐의가 확실하다고 인정되지는 않지만, 범죄의 존재 여부가 확인 필요성이 있는 사안 등일 때 감사원이 송부합니다.

통상적으로 감사원의 수사 참고자료는 대검으로 송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감사 자료가 또 다른 수사에서 활용될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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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란 남긴 ‘월성1호기’ 감사…‘완전 삭제’된 120건의 문건
    • 입력 2020-10-21 05:00:14
    취재K
논란 남긴, '월성1호기 폐쇄 결정' 관련 감사 결과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감사 시작하고 1년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종지부를 찍지는 못했습니다.

감사 보고서에는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조기폐쇄를 한 정책 결정의 당부는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결과적으로 양쪽 입장을 하나씩 수용한 것처럼 작성됐습니다.

피감기관인 산업부도 감사 결과에 반박문까지 냈습니다.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업부도 '감사 자료 삭제'는 '유감'

하지만 이런 산업부도 승복한 대목은 있습니다. 감사 과정에서 자료 삭제는 인정한 것입니다.

감사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면 이렇습니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된 대부분의 보고서를 작성한 산업부 공무원 G 씨와 당시 담당 E 국장 등은 2019년 11월쯤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뒤 자료 삭제를 의논합니다. (E 국장은 '자료를 각자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 삭제 지시는 안 했다고 합니다.)

복구 방지 대비한 치밀한 삭제

당시 G 씨는 약 보름 간 컴퓨터에서 자료를 삭제하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평일 낮에는 현재 해당 컴퓨터를 사용 중인 I씨가 업무 중이라서 안되고, 평일 밤에도 야근자가 많아서 부담됐다고 합니다.

머뭇거리던 사이에 12월 2일 오전에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 일정이 잡히자 급한 마음에 12월 1일 밤늦게 사무실에 들어간 G 씨는 밤 11시 24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 16분까지 약 2시간 동안 444개 문서를 삭제합니다.

G 씨의 삭제는 치밀했습니다. "산업부에서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 관련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어서 자료를 지울 때는 전부 복구되니 제대로 지워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서를 열어서 다른 내용을 적고 저장했고, 파일명도 다른 것으로 수정한 뒤에 삭제했습니다. 이렇게 삭제하면 지워진 파일을 찾더라도 원래의 문서 내용이나 파일명을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삭제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나중에는 단순 삭제나 폴더 삭제를 했다고 합니다.

나름 치밀한 삭제의 결과 삭제된 444개의 파일 가운데 120개는 포렌식으로도 문서 내용이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완전 삭제' 문건 120건

삭제됐다 복구된 파일 가운데는 "180523_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 라는 문건도 있습니다. BH는 블루하우스, 즉 청와대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상당수 문건이 복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감사 보고서를 보면 일각에서 제기한 청와대 개입 의혹 관련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문책 대상에 청와대 비서관이 있다는 등의 그동안 보도는, 보고서에 따르면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삭제된 120건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던 것인지, 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수사참고자료 송부…결말은?

감사원은 G 씨와 E 국장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또, 경제성 평가와 관련해서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 인사자료 통보, 한수원 사장에 대해서는 주의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하거나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감사원은 감사결과 보도자료의 마지막 줄에서 "문책대상자들의 자료 삭제 및 업무 관련 비위행위 등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수사참고 자료 송부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사참고 자료'는 범죄 혐의가 확실하다고 인정되지는 않지만, 범죄의 존재 여부가 확인 필요성이 있는 사안 등일 때 감사원이 송부합니다.

통상적으로 감사원의 수사 참고자료는 대검으로 송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감사 자료가 또 다른 수사에서 활용될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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