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10만 원’ 처벌에 끝난 스토킹, ‘폭발물 위협’ 불렀다

입력 2020.10.21 (09:05) 수정 2020.10.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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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지난 17일 저녁. 전북 전주시의 한 아파트 복도에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소리가 난 곳에는 20대 남성이 있었고, 이 남성은 손 등을 크게 다친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27살 A 씨는 수년째 한 여성을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굉음이 난 그 날도 여성의 집을 알아내 찾아간 건데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물을 들고 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A 씨는 범행 일주일 전 전주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폭발이 있기 전 A 씨가 피해 여성에게 보낸 문자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경찰은 A 씨가 피해 여성이 만나주지 않았을 때 자해할 목적으로 폭발물을 만들다 터뜨린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A 씨가 피해 여성을 알게 된 건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다 3년 전인 2017년 스토킹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집요하게 쫓아다니자 피해 여성의 아버지가 나서 스토킹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연락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경찰의 중재까지 받게 됩니다.


■ 스토킹 아닌 지속적 괴롭힘…낸 돈은 고작 '10만 원'

공권력의 개입. 신변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권리를 보장받으려 선택하는 방법이죠. 문제는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법이 마땅치 않다는데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경범죄처벌법을 근거로 A 씨에게 과료의 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낸 돈은 8만 원에서 최대 10만 원 선. 매우 약소합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1항을 보면 10만 원 이하의 돈을 내릴 수 있는 항목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41호에는 '지속적 괴롭힘'이 명시돼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개정 2014. 11. 19., 2017. 7. 26., 2017. 10. 24.>
41.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스토킹 범죄를 따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보니 대부분 이 법에 근거해 처벌이 내려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가해자는단 돈 10만 원만 내면 얼마든지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반면 피해자는 법령에 쓰인 그대로 끝이 없는 '지속적 괴롭힘'에 내몰리게 되는 거죠.

과료를 문 지 3년 만에 사제 폭발물을 들고 돌아온 이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피해 여성과 그 가족이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출할 때, 귀가할 때 등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주어진 생활을 평범하게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폭발 사건이 일어난 지금은 어떨까요?


■ 이수정 교수 "스토킹, 친분 없어도 이뤄져…처벌법 마련 시급"

스토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친분이 없어도 범죄가 이뤄지는 특성을 안고 있습니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이 사건 역시, A 씨가 피해 여성과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편집증적인 망상에 빠져 폭발물을 만드는 행위까지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사건은 피해 여성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A 씨와 아무 사이가 아닌 것을 증명할 수 있었지만, 여성에게 이런 사실을 듣기조차 어려운 최악의 경우였다면, 누군가는 남녀 사이에 벌어진 일로 가벼이 치부하지 않았겠냐는 우려도 드러냈습니다.

이교수는 또 스토킹 처벌법이라는 안전망이 있었다면 A 씨가 이미 여러 차례 처벌받지 않았겠냐는 물음도 던졌습니다. 나아가 A 씨에게 물린 '10만 원' 형이 가해 남성으로 하여금 피해 여성에게 되레 병적 집착을 강화하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스토킹 범죄에 대해 징역형 이상의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짝사랑? 연모?…스토킹은 명백한 '범죄'

추가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이와 같은 스토킹 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놀랍게도 '짝사랑', '연모'와 같은 단어가 기사 제목에 붙었습니다. 여성긴급전화 1366 전북센터 문신여 상담팀장은 '스토킹 범죄'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잘라 말합니다. 명백한 범죄를 그릇되게 수식하면 가해자에게 정당성을 줄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공포를 느끼는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게 됩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위해든 가해든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는 폭발물을 가져갔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쁩니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은 3년 전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법 5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기 때문입니다.


■ 수사 나선 경찰, 어떤 혐의 적용할까

전주 덕진경찰서는 피해 여성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병원에 있는 A 씨가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집중 수사할 방침입니다. 경찰이 A 씨의 신변을 어떻게 다룰지 또 A 씨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스토킹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공포와 불안을 주는 행위입니다. 한 개인이 법으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안전과 자유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행위에 대해, 수사기관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연관 기사] 스토킹 여성 집 찾아간 20대 폭발물 터져 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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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전 ‘10만 원’ 처벌에 끝난 스토킹, ‘폭발물 위협’ 불렀다
    • 입력 2020-10-21 09:05:19
    • 수정2020-10-21 10:26:26
    취재K
■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지난 17일 저녁. 전북 전주시의 한 아파트 복도에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소리가 난 곳에는 20대 남성이 있었고, 이 남성은 손 등을 크게 다친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27살 A 씨는 수년째 한 여성을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굉음이 난 그 날도 여성의 집을 알아내 찾아간 건데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물을 들고 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A 씨는 범행 일주일 전 전주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폭발이 있기 전 A 씨가 피해 여성에게 보낸 문자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경찰은 A 씨가 피해 여성이 만나주지 않았을 때 자해할 목적으로 폭발물을 만들다 터뜨린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A 씨가 피해 여성을 알게 된 건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다 3년 전인 2017년 스토킹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집요하게 쫓아다니자 피해 여성의 아버지가 나서 스토킹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연락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경찰의 중재까지 받게 됩니다.


■ 스토킹 아닌 지속적 괴롭힘…낸 돈은 고작 '10만 원'

공권력의 개입. 신변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권리를 보장받으려 선택하는 방법이죠. 문제는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법이 마땅치 않다는데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경범죄처벌법을 근거로 A 씨에게 과료의 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낸 돈은 8만 원에서 최대 10만 원 선. 매우 약소합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1항을 보면 10만 원 이하의 돈을 내릴 수 있는 항목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41호에는 '지속적 괴롭힘'이 명시돼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개정 2014. 11. 19., 2017. 7. 26., 2017. 10. 24.>
41.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스토킹 범죄를 따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보니 대부분 이 법에 근거해 처벌이 내려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가해자는단 돈 10만 원만 내면 얼마든지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반면 피해자는 법령에 쓰인 그대로 끝이 없는 '지속적 괴롭힘'에 내몰리게 되는 거죠.

과료를 문 지 3년 만에 사제 폭발물을 들고 돌아온 이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피해 여성과 그 가족이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출할 때, 귀가할 때 등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주어진 생활을 평범하게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폭발 사건이 일어난 지금은 어떨까요?


■ 이수정 교수 "스토킹, 친분 없어도 이뤄져…처벌법 마련 시급"

스토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친분이 없어도 범죄가 이뤄지는 특성을 안고 있습니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이 사건 역시, A 씨가 피해 여성과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편집증적인 망상에 빠져 폭발물을 만드는 행위까지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사건은 피해 여성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A 씨와 아무 사이가 아닌 것을 증명할 수 있었지만, 여성에게 이런 사실을 듣기조차 어려운 최악의 경우였다면, 누군가는 남녀 사이에 벌어진 일로 가벼이 치부하지 않았겠냐는 우려도 드러냈습니다.

이교수는 또 스토킹 처벌법이라는 안전망이 있었다면 A 씨가 이미 여러 차례 처벌받지 않았겠냐는 물음도 던졌습니다. 나아가 A 씨에게 물린 '10만 원' 형이 가해 남성으로 하여금 피해 여성에게 되레 병적 집착을 강화하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스토킹 범죄에 대해 징역형 이상의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짝사랑? 연모?…스토킹은 명백한 '범죄'

추가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이와 같은 스토킹 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놀랍게도 '짝사랑', '연모'와 같은 단어가 기사 제목에 붙었습니다. 여성긴급전화 1366 전북센터 문신여 상담팀장은 '스토킹 범죄'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잘라 말합니다. 명백한 범죄를 그릇되게 수식하면 가해자에게 정당성을 줄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공포를 느끼는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게 됩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위해든 가해든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는 폭발물을 가져갔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쁩니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은 3년 전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법 5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기 때문입니다.


■ 수사 나선 경찰, 어떤 혐의 적용할까

전주 덕진경찰서는 피해 여성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병원에 있는 A 씨가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집중 수사할 방침입니다. 경찰이 A 씨의 신변을 어떻게 다룰지 또 A 씨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스토킹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공포와 불안을 주는 행위입니다. 한 개인이 법으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안전과 자유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행위에 대해, 수사기관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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