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임대료 250%’ 올린다는 건물주

입력 2020.10.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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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경기가 위축된 가운데 자영업자들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한 임차인은 임대료를 250%나 인상한다는 내용 증명서를 건물주로부터 받았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반토막이 난 가운데 임대료 인하는커녕 인상하자는 말은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 임대료 월 750만 원→1,929만 원...임차인 "건물주의 횡포"

서울 강남에서 입시전문 A 어학원을 운영하는 성연아 원장은 6개월째 건물주 측과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 원장이 이곳 건물 2층에 입주한 것은 2년 전인 2018년으로 당시 임대료 750만 원, 관리비 250만 원에 2년간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다 계약 만료를 넉 달 앞둔 지난 3월, 성 원장은 건물주 측에 재계약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건물주 측이 답이라며 보낸 내용 증명서에는 임대료를 750만 원에서 2.5배 오른 1,929만 원, 관리비는 250만 원에서 2배 가까이 오른 482만 원으로 올리자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건물주인 부동산 투자회사가 성연아 원장에게 보낸 임대차계약 갱신 조건건물주인 부동산 투자회사가 성연아 원장에게 보낸 임대차계약 갱신 조건

성 원장은 "너무 놀랍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살이 떨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했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착한 임대인 사업에 동참하진 못하더라도 코로나로 힘든 이 시국에 250% 올려달라는 것은 정말 횡포로 느껴졌다"고 토로했습니다.

성 원장 측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을 근거로 즉각 항의했습니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건물주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고, 임대료를 일부 올리더라도 5% 넘게 올리지는 못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지난 7월 건물주 측은 이번에는 임대료와 관리비 각각 20%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던 성 원장은 거부했고, 건물주 측은 계약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 임대료 동결해줄 테니 공사에 협조해달라...반대에도 '공사 강행'

성 원장은 구청과 국토교통부 등에 호소문을 제출하며 부당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는 건물 증축 공사가 진행된다는 통보가 전달됐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공사까지 진행된다면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성 원장은 증축 공사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성 원장은 건물주에게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임대료를 동결해줄 테니 공사에 협조하라는 겁니다.

성 원장은 "(담당자가) 구두로 임대료를 동결해줄 테니까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했다"며 "재갱신인데 계약서를 다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계약서에 '공사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성 원장은 "담당자한테 그럼 임대료 250% 올려달라고 한 것은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까 '나가라는 소리였죠'라고 말했다"며 "처음부터 계략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성 원장은 건물주 측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 학원은 일본대학 입시전문 어학원인데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 원장은 이 시기에 공사를 진행한다면 학원 운영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공사는 강행됐습니다. 건물 주변에는 철근 등 구조물로 둘러싸여 학원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증축 공사로 인한 소음과 진동, 분진 속에서 학원은 운영 중입니다. 수업 시간 때마다 그나마 소음이 덜한 강의실로 옮겨 다니며 버티고 있습니다.

강의실 창문으로 바라본 모습.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강의실 창문으로 바라본 모습.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계약 중도 해지하자는 건물주..."원상복구 비용은 임차인이 내야"

건물주와 갈등을 빚고 있는 건 이 어학원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건물 5층에 있는 치과를 운영하는 심일광 원장도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심 원장은 2017년 12월, 5년간 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계약 종료까지 2년 넘게 남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건물주 측은 지난 4월 노후 등으로 증축 공사를 할 예정이니 계약을 '중도 해지'하자는 내용 증명서를 보냈습니다.

당시 심 원장은 제대로 된 보상만 해준다면 이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차피 진행될 공사라면 손해를 입기 전에 자리를 옮겨 새롭게 시작하자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건물주 측은 치과가 처음 개업했을 때 투자했던 인테리어비와 시설비에서 그간 사용했던 부분을 산정해 제외한 금액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층에 대한 원상복구 비용은 임차인이 내야 한다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임대인 측 담당자가 치과에 보낸 메일임대인 측 담당자가 치과에 보낸 메일

심 원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대안을 제시했다. 치과 이전 비용이라든가 병원을 중간에 갑자기 옮기면서 발생하는 환자 보상금 문제 이런 것도 전혀 없다"며 "무엇보다 치과를 개원한 뒤 지금까지 키우는데 들어간 마케팅비 같은 부분도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 건물주 "주변 시세 수준으로 맞춘 것"...임차인 청와대 국민청원 올려

이 건물의 소유주는 부동산투자 전문회사입니다. 지난해 2월 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건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증축 공사를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가 임차인 측에 보낸 공문을 보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한 이유에 대해 "현 수준으로는 관리비 지출 및 세부담으로 건물 운영이 불가하다"며 "인근의 임대차계약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체결돼 인근 시세와 유사한 수준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992년 준공된 뒤 대수선 없이 운영돼 시설물 노후로 보수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수차례 관련 공사 내용 및 조감도, 공사 진행 일정표 등을 (임차인 측에) 전달했는데도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지속해서 내용증명을 발송해 업무 방해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모습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모습

코로나19로 학원은 영업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습니다. 특히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이 학원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성연아 어학원 원장은 "비행기도 안 뜨고, 비자도 단절된 상황에서 매출이 50%, 40%씩 매달 떨어졌다"며 "150~200명 하던 수강생도 80~90명 수준으로 줄었는데 대출금으로 버티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 글을 올려 오늘(22일) 기준 3백여 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물주와 임차인의 협상은 모두 결렬됐고, 공사만 진행 중입니다. 심일광 치과 원장은 "합리적으로 빨리 협의가 돼 약간 피해를 보더라도 빨리 옮기고 싶다"며 "그런데 워낙에 금액이 크다 보니 현실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옮길 수 없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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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국에 ‘임대료 250%’ 올린다는 건물주
    • 입력 2020-10-22 11:03:39
    취재K
코로나19로 경기가 위축된 가운데 자영업자들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한 임차인은 임대료를 250%나 인상한다는 내용 증명서를 건물주로부터 받았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반토막이 난 가운데 임대료 인하는커녕 인상하자는 말은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 임대료 월 750만 원→1,929만 원...임차인 "건물주의 횡포"

서울 강남에서 입시전문 A 어학원을 운영하는 성연아 원장은 6개월째 건물주 측과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 원장이 이곳 건물 2층에 입주한 것은 2년 전인 2018년으로 당시 임대료 750만 원, 관리비 250만 원에 2년간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다 계약 만료를 넉 달 앞둔 지난 3월, 성 원장은 건물주 측에 재계약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건물주 측이 답이라며 보낸 내용 증명서에는 임대료를 750만 원에서 2.5배 오른 1,929만 원, 관리비는 250만 원에서 2배 가까이 오른 482만 원으로 올리자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건물주인 부동산 투자회사가 성연아 원장에게 보낸 임대차계약 갱신 조건
성 원장은 "너무 놀랍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살이 떨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했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착한 임대인 사업에 동참하진 못하더라도 코로나로 힘든 이 시국에 250% 올려달라는 것은 정말 횡포로 느껴졌다"고 토로했습니다.

성 원장 측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을 근거로 즉각 항의했습니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건물주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고, 임대료를 일부 올리더라도 5% 넘게 올리지는 못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지난 7월 건물주 측은 이번에는 임대료와 관리비 각각 20%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던 성 원장은 거부했고, 건물주 측은 계약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 임대료 동결해줄 테니 공사에 협조해달라...반대에도 '공사 강행'

성 원장은 구청과 국토교통부 등에 호소문을 제출하며 부당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는 건물 증축 공사가 진행된다는 통보가 전달됐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공사까지 진행된다면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성 원장은 증축 공사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성 원장은 건물주에게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임대료를 동결해줄 테니 공사에 협조하라는 겁니다.

성 원장은 "(담당자가) 구두로 임대료를 동결해줄 테니까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했다"며 "재갱신인데 계약서를 다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계약서에 '공사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성 원장은 "담당자한테 그럼 임대료 250% 올려달라고 한 것은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까 '나가라는 소리였죠'라고 말했다"며 "처음부터 계략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성 원장은 건물주 측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 학원은 일본대학 입시전문 어학원인데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 원장은 이 시기에 공사를 진행한다면 학원 운영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공사는 강행됐습니다. 건물 주변에는 철근 등 구조물로 둘러싸여 학원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증축 공사로 인한 소음과 진동, 분진 속에서 학원은 운영 중입니다. 수업 시간 때마다 그나마 소음이 덜한 강의실로 옮겨 다니며 버티고 있습니다.

강의실 창문으로 바라본 모습.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계약 중도 해지하자는 건물주..."원상복구 비용은 임차인이 내야"

건물주와 갈등을 빚고 있는 건 이 어학원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건물 5층에 있는 치과를 운영하는 심일광 원장도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심 원장은 2017년 12월, 5년간 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계약 종료까지 2년 넘게 남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건물주 측은 지난 4월 노후 등으로 증축 공사를 할 예정이니 계약을 '중도 해지'하자는 내용 증명서를 보냈습니다.

당시 심 원장은 제대로 된 보상만 해준다면 이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차피 진행될 공사라면 손해를 입기 전에 자리를 옮겨 새롭게 시작하자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건물주 측은 치과가 처음 개업했을 때 투자했던 인테리어비와 시설비에서 그간 사용했던 부분을 산정해 제외한 금액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층에 대한 원상복구 비용은 임차인이 내야 한다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임대인 측 담당자가 치과에 보낸 메일
심 원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대안을 제시했다. 치과 이전 비용이라든가 병원을 중간에 갑자기 옮기면서 발생하는 환자 보상금 문제 이런 것도 전혀 없다"며 "무엇보다 치과를 개원한 뒤 지금까지 키우는데 들어간 마케팅비 같은 부분도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 건물주 "주변 시세 수준으로 맞춘 것"...임차인 청와대 국민청원 올려

이 건물의 소유주는 부동산투자 전문회사입니다. 지난해 2월 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건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증축 공사를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가 임차인 측에 보낸 공문을 보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한 이유에 대해 "현 수준으로는 관리비 지출 및 세부담으로 건물 운영이 불가하다"며 "인근의 임대차계약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체결돼 인근 시세와 유사한 수준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992년 준공된 뒤 대수선 없이 운영돼 시설물 노후로 보수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수차례 관련 공사 내용 및 조감도, 공사 진행 일정표 등을 (임차인 측에) 전달했는데도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지속해서 내용증명을 발송해 업무 방해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모습
코로나19로 학원은 영업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습니다. 특히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이 학원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성연아 어학원 원장은 "비행기도 안 뜨고, 비자도 단절된 상황에서 매출이 50%, 40%씩 매달 떨어졌다"며 "150~200명 하던 수강생도 80~90명 수준으로 줄었는데 대출금으로 버티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 글을 올려 오늘(22일) 기준 3백여 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물주와 임차인의 협상은 모두 결렬됐고, 공사만 진행 중입니다. 심일광 치과 원장은 "합리적으로 빨리 협의가 돼 약간 피해를 보더라도 빨리 옮기고 싶다"며 "그런데 워낙에 금액이 크다 보니 현실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옮길 수 없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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