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방망이’ 3D프린터…밀폐 교실서 암 발병 영향?

입력 2020.10.22 (17:55) 수정 2020.10.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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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부터 전국 교육현장에 보급된 3D프린터는 모두 만 8천여 대입니다. 전체 학교의 절반가량으로 수업과 방과후수업, 동아리활동, 연구 등에 쓰였습니다. 이 3D프린터를 매우 많이, 또 자주 사용한 교사 3명이 최근 육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희귀암인 육종, 유족과 선생님은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공간에서 3D프린터에 사용하는 소재의 유해물질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도깨비방망이' 3D프린터...육종 발병에 영향?

지난 7월 말, 한 고등학교 교사 A 씨가 육종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A 씨 아버지는 뒤늦게야 A 씨가 숨지기 한 달여 전 투병 중에 블로그에 남겨 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A 씨는 "내게 3D프린터는 내가 머릿속에 상상한 것들을 뚝딱 만들어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장난감이었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며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다"고 적었습니다.

A 씨는 이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괜찮겠지라고 마음 편히 생각했다"며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나와 학생들로부터 조금 멀리 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음에도 멍청하고 무지했다"고 썼습니다.

A 씨는 "선생님들과 장학사님, 연구사님들 3D프린터가 만들어주는 결과물 성과에만 눈을 두지 말고, 이제 우리 모두의 안전과 건강한 삶을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라고 당부했습니다.

A 씨가 3D프린터를 사용한 건 지난 2013년부터 5년가량으로 많게는 3D프린터 5대를 동시에 사용해 왔습니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 교사 B 씨도 육종암을 진단받았는데 역시 2017년부터 2년 반 동안 거의 메일같이 최대 8대의 프린터로 작업했다고 말합니다.

두 선생님이 진단받은 육종암은 매우 희귀한 악성 종양. 육종 전문의인 박종훈 고려대학교병원장은 "환경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비슷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다 발병했다면 이 3D프린터라는 환경 요인이 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소방 공무원들의 경우 6년 정도 화재 진압 현장을 다니면서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육종암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사례들이 있다"며 "어떤 보호구도 착용하지 못했고, 환기 장치도 없는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소재에 포함된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는 것은 굉장히 상병과의 관련성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3D프린팅 소재 성분 분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출처: 생로병사의 비밀)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3D프린팅 소재 성분 분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출처: 생로병사의 비밀)

■3D 프린팅 소재 ABS·PLA 고열로 녹일 때 유해물질 미량 방출

3D프린터, 특히 프린터에 사용하는 소재가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국내외 다수의 논문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연구보고서를 내놨는데요. 3D프린터를 사용하는 사업장 4곳에서 작업 중에 나오는 노출 입자를 측정해 봤더니 유기화합물이 미량으로 검출됐습니다.

이후 연구원은 흔히 쓰는 소재 2종류 20여 가지를 3D프린터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고열로 녹여서 연기를 분석해 봤는데 여기서 소재의 유해물질 구성비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 구성비는 다르지만, ABS와 PLA 소재 모두 유해물질이 검출됐습니다. ABS는 발암성 영향 의심 물질인 스티렌과 생식독성 의심 물질 톨루엔 등이 나왔고, PLA는 구성물질 중 1% 미만이지만 역시 동일한 유해물질이 검출됐습니다.

박승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작업환경연구실장은 "유해물질의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은 프린터 구조라든가 작업장의 환기 상태, 소재의 종류와 사용량, 작업 방법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A 선생님과 B 선생님이 3D프린터를 주로 사용한 공간은 창문과 출입문, 일반 환풍구가 환기 시설의 전부인 작은 실험실이었습니다. 특히 3D프린터로 작업할 때 예열 과정 등 초기 작업에 소재가 안정적으로 3D프린터에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서 지켜봤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온도를 유지하려고 환기는 생각도 못 해봤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건강 이상 호소 교사 더 있다...대책 마련 시급

정부는 3D프린터를 사용하는 학교,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건강 이상 경험 문항을 포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KBS가 국회 교육위원회 강민정 의원실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대전 지역 학교에서 호흡기 질환을 포함한 건강 이상을 호소한 교사는 10명이 넘습니다. 이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건강 이상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교육부는 전산 작업상 답변 오류 가능성이 발견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정밀 분석 중입니다.

이미 삶 속에 스며든 3D프린터. 전 세계적으로 3D프린터를 통한 산업, 의료 각 현장의 혁신은 막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현재 국내외 어디에서도 3D 프린팅 소재에 관한 국제 기준과 인증 제도는 없는 상황. 최소한 교육환경에서라도 보호구 착용과 작업 환경 규제 기준이 필요해 보입니다. 육종 진단을 받은 3명 교사는 더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무상 재해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이 소식은 오늘(22일) KBS 9시 뉴스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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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깨비방망이’ 3D프린터…밀폐 교실서 암 발병 영향?
    • 입력 2020-10-22 17:55:40
    • 수정2020-10-22 18:42:05
    취재K
지난 2014년부터 전국 교육현장에 보급된 3D프린터는 모두 만 8천여 대입니다. 전체 학교의 절반가량으로 수업과 방과후수업, 동아리활동, 연구 등에 쓰였습니다. 이 3D프린터를 매우 많이, 또 자주 사용한 교사 3명이 최근 육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희귀암인 육종, 유족과 선생님은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공간에서 3D프린터에 사용하는 소재의 유해물질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도깨비방망이' 3D프린터...육종 발병에 영향?

지난 7월 말, 한 고등학교 교사 A 씨가 육종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A 씨 아버지는 뒤늦게야 A 씨가 숨지기 한 달여 전 투병 중에 블로그에 남겨 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A 씨는 "내게 3D프린터는 내가 머릿속에 상상한 것들을 뚝딱 만들어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장난감이었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며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다"고 적었습니다.

A 씨는 이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괜찮겠지라고 마음 편히 생각했다"며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나와 학생들로부터 조금 멀리 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음에도 멍청하고 무지했다"고 썼습니다.

A 씨는 "선생님들과 장학사님, 연구사님들 3D프린터가 만들어주는 결과물 성과에만 눈을 두지 말고, 이제 우리 모두의 안전과 건강한 삶을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라고 당부했습니다.

A 씨가 3D프린터를 사용한 건 지난 2013년부터 5년가량으로 많게는 3D프린터 5대를 동시에 사용해 왔습니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 교사 B 씨도 육종암을 진단받았는데 역시 2017년부터 2년 반 동안 거의 메일같이 최대 8대의 프린터로 작업했다고 말합니다.

두 선생님이 진단받은 육종암은 매우 희귀한 악성 종양. 육종 전문의인 박종훈 고려대학교병원장은 "환경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비슷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다 발병했다면 이 3D프린터라는 환경 요인이 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소방 공무원들의 경우 6년 정도 화재 진압 현장을 다니면서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육종암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사례들이 있다"며 "어떤 보호구도 착용하지 못했고, 환기 장치도 없는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소재에 포함된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는 것은 굉장히 상병과의 관련성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3D프린팅 소재 성분 분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출처: 생로병사의 비밀)
■3D 프린팅 소재 ABS·PLA 고열로 녹일 때 유해물질 미량 방출

3D프린터, 특히 프린터에 사용하는 소재가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국내외 다수의 논문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연구보고서를 내놨는데요. 3D프린터를 사용하는 사업장 4곳에서 작업 중에 나오는 노출 입자를 측정해 봤더니 유기화합물이 미량으로 검출됐습니다.

이후 연구원은 흔히 쓰는 소재 2종류 20여 가지를 3D프린터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고열로 녹여서 연기를 분석해 봤는데 여기서 소재의 유해물질 구성비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 구성비는 다르지만, ABS와 PLA 소재 모두 유해물질이 검출됐습니다. ABS는 발암성 영향 의심 물질인 스티렌과 생식독성 의심 물질 톨루엔 등이 나왔고, PLA는 구성물질 중 1% 미만이지만 역시 동일한 유해물질이 검출됐습니다.

박승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작업환경연구실장은 "유해물질의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은 프린터 구조라든가 작업장의 환기 상태, 소재의 종류와 사용량, 작업 방법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A 선생님과 B 선생님이 3D프린터를 주로 사용한 공간은 창문과 출입문, 일반 환풍구가 환기 시설의 전부인 작은 실험실이었습니다. 특히 3D프린터로 작업할 때 예열 과정 등 초기 작업에 소재가 안정적으로 3D프린터에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서 지켜봤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온도를 유지하려고 환기는 생각도 못 해봤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건강 이상 호소 교사 더 있다...대책 마련 시급

정부는 3D프린터를 사용하는 학교,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건강 이상 경험 문항을 포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KBS가 국회 교육위원회 강민정 의원실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대전 지역 학교에서 호흡기 질환을 포함한 건강 이상을 호소한 교사는 10명이 넘습니다. 이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건강 이상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교육부는 전산 작업상 답변 오류 가능성이 발견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정밀 분석 중입니다.

이미 삶 속에 스며든 3D프린터. 전 세계적으로 3D프린터를 통한 산업, 의료 각 현장의 혁신은 막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현재 국내외 어디에서도 3D 프린팅 소재에 관한 국제 기준과 인증 제도는 없는 상황. 최소한 교육환경에서라도 보호구 착용과 작업 환경 규제 기준이 필요해 보입니다. 육종 진단을 받은 3명 교사는 더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무상 재해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이 소식은 오늘(22일) KBS 9시 뉴스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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