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방망이’ 3D프린터…밀폐 실험실서 암 발병?

입력 2020.10.22 (21:41) 수정 2020.10.22 (22: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지난 일주일, 15일부터 어제(21일)까지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 살펴보겠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KBS가 집계한 결과 모두 22명이었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KBS 연속 보도 이어갑니다.

도면을 입력하면 그 자리에서 입체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 3D 프린터, 산업현장 뿐 아니라 요즘 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6년 전부터 정부가 적극 보급에 나서면서 지금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만 8천 대가 넘습니다.

그런데, 연구와 동아리 활동으로 3D 프린터를 많이 다뤄 온 한 30대 선생님이 희귀병에 걸려 투병하다 석 달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3D 프린터에 들어가는 소재에서 유해물질이 나와 병에 걸린 거라며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교사들이 더 있다고 합니다.

허효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아들이 세상을 떠난지 두 달이 넘어 다시 찾은 학교.

교사였던 아들을 앗아간 건 희귀병인 육종암이었습니다.

아들의 부재를 납득하기 어려웠던 아버지.

투병 중 남긴 글을 보고서야 3D프린터를 의심하게 됐습니다.

[故 A 교사 아버지 : "뭐든지 지가 원하는 건 만들어주는 그런 도깨비 방망이다... (사용하는 것이) 나쁜게 맞다는 걸 생각은 했는데 너무 늦게 내가 알았다 이런 내용이 (블로그에)..."]

2013년부터 5년 동안 3D프린터 교육을 전담하다시피한 아들.

좁은 실험실에서 5대를 동시에 작업한 날도 많았습니다.

[故 A 교사 아버지 : "(이전 학교에서부터) 이 고등학교까지 왔을 때까지는 줄곧 그 학교 안에서 다른 교육 안 가고 수업 없으면 거기서(실험실) 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학교의 교사 B 씨도 육종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같이 많게는 8대의 3D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B 교사/음성변조 : "1년 365일 계속 돌아가기는 하는데요. 제가 가서 그 실험실에 있는 시간은 보통 짧게는 한두 시간에서 길게는 한 대여섯 시간 정도까지도..."]

육종암은 의학계에서도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교사의 경우 3D프린터와의 연관성이 의심되는 상황.

[박종훈/고대병원장 : "두 가지 병 다 매우 드문 종양인데 그것이 우연하게도 비슷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생겼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작업 환경과 무관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가정이나 학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3D 프린터는 가느다란 소재를 고열로 녹인 뒤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물건을 만듭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흔히 쓰이는 소재 2종류를 녹였을 때 나오는 연기를 분석해 보니, 발암성 물질과 생식능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3D프린터를 쓰는 산업현장에서도 이런 물질이 아주 미량이지만 검출됐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박승현/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작업환경연구실장 : "(3D 프린팅 작업 때 발생되는) 유해물질의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은 3D프린터 구조라든가 작업장의 환기 상태, 소재의 종류와 사용량, 작업 방법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환기가 중요하지만, 두 교사의 실험실 창문과 출입문은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온의 환경을 유지해야 제작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품이 잘 나오는지 가까이서 지켜봐야해 환기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습니다.

[故 A 교사 동료/음성변조 : "그 당시에는 (위험성이) 전혀 알려진 게 없었고요. 보호 조치나 안전 사항이나 매뉴얼이나 사용법이나 이런 것은 들어본 적도 없고요."]

석 달 전 A 교사가 숨진 뒤, 정부는 지난 달 말에서야 일선 학교에 3D프린터 작업 환경 지침을 배포했습니다.

또 긴급실태조사 결과 대전 지역에서만 교사 10여 명 등 건강 이상을 경험했다는 사례가 잇따라 정밀 분석에 나섰습니다.

A 교사의 유족과 육종암 진단을 받은 교사들은 조만간 산재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촬영기자:김민준 황종원/영상편집:사명환/그래픽:김지훈/화면제공:생로병사의 비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도깨비방망이’ 3D프린터…밀폐 실험실서 암 발병?
    • 입력 2020-10-22 21:41:06
    • 수정2020-10-22 22:12:49
    뉴스 9
[앵커]

지난 일주일, 15일부터 어제(21일)까지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 살펴보겠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KBS가 집계한 결과 모두 22명이었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KBS 연속 보도 이어갑니다.

도면을 입력하면 그 자리에서 입체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 3D 프린터, 산업현장 뿐 아니라 요즘 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6년 전부터 정부가 적극 보급에 나서면서 지금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만 8천 대가 넘습니다.

그런데, 연구와 동아리 활동으로 3D 프린터를 많이 다뤄 온 한 30대 선생님이 희귀병에 걸려 투병하다 석 달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3D 프린터에 들어가는 소재에서 유해물질이 나와 병에 걸린 거라며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교사들이 더 있다고 합니다.

허효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아들이 세상을 떠난지 두 달이 넘어 다시 찾은 학교.

교사였던 아들을 앗아간 건 희귀병인 육종암이었습니다.

아들의 부재를 납득하기 어려웠던 아버지.

투병 중 남긴 글을 보고서야 3D프린터를 의심하게 됐습니다.

[故 A 교사 아버지 : "뭐든지 지가 원하는 건 만들어주는 그런 도깨비 방망이다... (사용하는 것이) 나쁜게 맞다는 걸 생각은 했는데 너무 늦게 내가 알았다 이런 내용이 (블로그에)..."]

2013년부터 5년 동안 3D프린터 교육을 전담하다시피한 아들.

좁은 실험실에서 5대를 동시에 작업한 날도 많았습니다.

[故 A 교사 아버지 : "(이전 학교에서부터) 이 고등학교까지 왔을 때까지는 줄곧 그 학교 안에서 다른 교육 안 가고 수업 없으면 거기서(실험실) 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학교의 교사 B 씨도 육종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같이 많게는 8대의 3D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B 교사/음성변조 : "1년 365일 계속 돌아가기는 하는데요. 제가 가서 그 실험실에 있는 시간은 보통 짧게는 한두 시간에서 길게는 한 대여섯 시간 정도까지도..."]

육종암은 의학계에서도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교사의 경우 3D프린터와의 연관성이 의심되는 상황.

[박종훈/고대병원장 : "두 가지 병 다 매우 드문 종양인데 그것이 우연하게도 비슷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생겼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작업 환경과 무관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가정이나 학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3D 프린터는 가느다란 소재를 고열로 녹인 뒤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물건을 만듭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흔히 쓰이는 소재 2종류를 녹였을 때 나오는 연기를 분석해 보니, 발암성 물질과 생식능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3D프린터를 쓰는 산업현장에서도 이런 물질이 아주 미량이지만 검출됐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박승현/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작업환경연구실장 : "(3D 프린팅 작업 때 발생되는) 유해물질의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은 3D프린터 구조라든가 작업장의 환기 상태, 소재의 종류와 사용량, 작업 방법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환기가 중요하지만, 두 교사의 실험실 창문과 출입문은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온의 환경을 유지해야 제작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품이 잘 나오는지 가까이서 지켜봐야해 환기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습니다.

[故 A 교사 동료/음성변조 : "그 당시에는 (위험성이) 전혀 알려진 게 없었고요. 보호 조치나 안전 사항이나 매뉴얼이나 사용법이나 이런 것은 들어본 적도 없고요."]

석 달 전 A 교사가 숨진 뒤, 정부는 지난 달 말에서야 일선 학교에 3D프린터 작업 환경 지침을 배포했습니다.

또 긴급실태조사 결과 대전 지역에서만 교사 10여 명 등 건강 이상을 경험했다는 사례가 잇따라 정밀 분석에 나섰습니다.

A 교사의 유족과 육종암 진단을 받은 교사들은 조만간 산재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촬영기자:김민준 황종원/영상편집:사명환/그래픽:김지훈/화면제공:생로병사의 비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시리즈

일하다 죽지 않게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