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여학생의 한(恨) 풀어준 ‘7장의 메모’

입력 2020.10.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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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5월 대전 서구의 한 음식점.

여학생인 A(당시 15살) 양은 이곳에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돼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A 양은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음식점 사장 B(40) 씨에게 악몽 같은 일을 당한다. B 씨는 A 양에게 업무와 관련된 사항들을 알려주면서 양팔로 A 양을 껴안고 신체를 만졌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중순 오후 9시 30분쯤 B 씨는 식당에서 일을 마친 A 양을 집에 데려다 준다며 차에 태웠다. A 양은 사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차에 탑승했지만, B 씨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장은 강제로 A 양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B 씨에게 성폭행을 당해 힘든 나날을 보내던 A 양은 결국 지난 2018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A 양은 당시 ‘유서’라는 제목으로 7장 분량의 메모를 남겼다. A 양은 메모에서 “아르바이트를 처음 했는데 가게 사장님이 수시로 성폭행했다. 저를 집 앞까지 와서 태우고 모텔로 갔다. 내려달라고 해도 세워주지 않았다. 어려서 그리고 무서워서 크게 반항하지 못했던 게 한”이라는 내용을 적었다.

수사기관은 A 양의 메모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여 B 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추행과 간음)혐의로 기소했다.

재판과정에서 B 씨는 피해자와 합의하에 신체접촉 및 성관계를 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B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남긴 유서 형식의 메모에는 피해를 본 사실 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학교 폭력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내용까지 포함하는 등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까지 솔직하게 기재했다”며 “목숨을 끊으면서 2년 전 그만둔 아르바이트 식당의 사장이었던 피고인을 무고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즉, 재판부는 사실상 유일한 물증이라고 할 수 있는 유서에 대해 “피해자가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피고인을 무고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며 피고인의 죄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에게 ‘스킨십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피해자가 별다른 반응이 없어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는데, 이를 두고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신체접촉에 동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과 비슷한 시기에 아르바이트하러 온 다른 청소년에게도 추행,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며 “이 사건 범행과 그 시기가 석 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그 수법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덧붙였다.

대전지법 형사11부(김용찬 부장판사)는 B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 5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아르바이트하러 온 청소년인 피해자를 위력으로 추행하고 성폭행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점, 성 매수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를 했고 대전고법 형사1부(이준명 부장판사)는 B 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신상정보 공개 고지 5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 5년도 각각 명령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 합의하고 성관계했다’는 취지의 피고인 주장을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참고인 진술과 여러 증거를 볼 때 아르바이트 당시에 위력으로 추행하고 간음한 사실이 있다”며 “피해자의 심신을 피폐하게 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피고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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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후] 여학생의 한(恨) 풀어준 ‘7장의 메모’
    • 입력 2020-10-23 15:28:49
    취재후·사건후


지난 2016년 5월 대전 서구의 한 음식점.

여학생인 A(당시 15살) 양은 이곳에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돼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A 양은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음식점 사장 B(40) 씨에게 악몽 같은 일을 당한다. B 씨는 A 양에게 업무와 관련된 사항들을 알려주면서 양팔로 A 양을 껴안고 신체를 만졌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중순 오후 9시 30분쯤 B 씨는 식당에서 일을 마친 A 양을 집에 데려다 준다며 차에 태웠다. A 양은 사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차에 탑승했지만, B 씨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장은 강제로 A 양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B 씨에게 성폭행을 당해 힘든 나날을 보내던 A 양은 결국 지난 2018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A 양은 당시 ‘유서’라는 제목으로 7장 분량의 메모를 남겼다. A 양은 메모에서 “아르바이트를 처음 했는데 가게 사장님이 수시로 성폭행했다. 저를 집 앞까지 와서 태우고 모텔로 갔다. 내려달라고 해도 세워주지 않았다. 어려서 그리고 무서워서 크게 반항하지 못했던 게 한”이라는 내용을 적었다.

수사기관은 A 양의 메모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여 B 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추행과 간음)혐의로 기소했다.

재판과정에서 B 씨는 피해자와 합의하에 신체접촉 및 성관계를 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B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남긴 유서 형식의 메모에는 피해를 본 사실 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학교 폭력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내용까지 포함하는 등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까지 솔직하게 기재했다”며 “목숨을 끊으면서 2년 전 그만둔 아르바이트 식당의 사장이었던 피고인을 무고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즉, 재판부는 사실상 유일한 물증이라고 할 수 있는 유서에 대해 “피해자가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피고인을 무고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며 피고인의 죄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에게 ‘스킨십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피해자가 별다른 반응이 없어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는데, 이를 두고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신체접촉에 동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과 비슷한 시기에 아르바이트하러 온 다른 청소년에게도 추행,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며 “이 사건 범행과 그 시기가 석 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그 수법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덧붙였다.

대전지법 형사11부(김용찬 부장판사)는 B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 5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아르바이트하러 온 청소년인 피해자를 위력으로 추행하고 성폭행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점, 성 매수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를 했고 대전고법 형사1부(이준명 부장판사)는 B 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신상정보 공개 고지 5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 5년도 각각 명령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 합의하고 성관계했다’는 취지의 피고인 주장을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참고인 진술과 여러 증거를 볼 때 아르바이트 당시에 위력으로 추행하고 간음한 사실이 있다”며 “피해자의 심신을 피폐하게 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피고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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