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터키 턱 밑’의 그리스 섬 카스텔로리조, 갈등의 중심에 서다

입력 2020.10.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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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지중해의 섬’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지중해는 우리나라의 남해안처럼 ‘다도해’로 불릴 만큼 섬이 많은데, ‘카스텔로리조’ 섬도 그중 하나입니다.

카스텔로리조 섬에서 촬영된 영화 ‘지중해’의 포스터카스텔로리조 섬에서 촬영된 영화 ‘지중해’의 포스터

카스텔로리조 섬은 1992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지중해’의 촬영장소이기도 합니다. 면적은 12㎢, 인구는 500명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섬입니다.

이 섬은 그리스 땅이지만, 위치가 조금 특이합니다.

그리스 본토로부터 600km나 떨어져 있지만, 터키와의 거리는 불과 2km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터키 영토가 아닌 그리스 영토입니다.

그리스 영토인 카스텔로리조 섬의 위치, 터키 해안선과 거의 붙어있다.그리스 영토인 카스텔로리조 섬의 위치, 터키 해안선과 거의 붙어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이른바 동맹국 편에 가담했다가 패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랜 숙적 관계였던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을 침공했는데, 이 전쟁에서는 그리스가 지고 말았습니다.

대신 이런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은 터키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고, 1차대전 승전국인 연합국 측은 1923년 터키와 스위스 로잔에서 조약을 체결합니다.

1923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로잔 회의1923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로잔 회의

이 로잔조약에서 터키는 유럽으로 연결되는 길목인 이스탄불 주변을 꼭 사수할 영토로 선택했고, 대신 터키 주변의 많은 작은 섬들은 그리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때 카스텔로리조 섬도 그리스 땅이 됐습니다. 지금은 터키가 군사력에 있어서 그리스를 압도하지만, 1차 대전 직후였던 당시 육군력은 터키가, 해군력은 그리스가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카스텔로리조 섬 인근이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지질조사 회사가 동지중해 대륙붕에서 17억 배럴의 석유와 122조 세제곱피트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확인한 겁니다.

글로벌 매장량과 비교하면 대단한 양은 아니라고 해도, 자원이 부족한 지중해 주변국들에는 엄청난 소식이었습니다.

카스텔로리조 섬 인근의 터키와 그리스 간 영해선카스텔로리조 섬 인근의 터키와 그리스 간 영해선

터키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됐습니다. 카스텔로리조를 비롯한 그리스의 작은 섬들 때문에 터키 영토 주변 지중해의 상당 부분이 그리스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터키와 그리스의 숙적 관계는 더 깊어지게 됐습니다.

터키는 인구가 수백 명에 불과한 작은 섬 때문에 배타적 경제수역이 결정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며, 지난 8월에도 카스텔로리조 섬 아래 지역과 키프로스 섬 인근 등에서 지하자원 탐사에 나섰습니다.

동지중해에서 탐사 중인 터키의 지질 조사선 오루츠 레이스 호동지중해에서 탐사 중인 터키의 지질 조사선 오루츠 레이스 호

그리스는 터키가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했다며 지난달 키프로스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손잡고 지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대통령이 직접 카스텔로리조 섬을 방문해 “터키의 불법행위가 에게해와 동지중해 긴장감을 야기했다”며 터키를 비판했습니다.

지난달 카스텔로리조를 방문한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지난달 카스텔로리조를 방문한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

이에 따라 지난달 터키는 오루츠 레이스 호를 일단 철수시켰지만, 최근 다시 이 탐사선을 동지중해에 투입했습니다. 22일까지였던 탐사 기간도 오는 27일까지로 연장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터키에 대한 제재를 취하라고 요구하면서, 카스텔로리조 섬과 그 주변 바다를 둘러싼 양측의 긴장 관계는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터키가 최근 시리아 난민 처리 문제 등을 놓고 유럽 국가와 갈등을 겪고 있고, 또 러시아제 지대공미사일 S-400을 도입해 미국과도 관계가 편치 않은 상황이어서, 터키와 그리스 간 갈등의 파장이 어떻게 퍼져나갈 것인지도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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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터키 턱 밑’의 그리스 섬 카스텔로리조, 갈등의 중심에 서다
    • 입력 2020-10-24 14:28:59
    특파원 리포트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지중해의 섬’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지중해는 우리나라의 남해안처럼 ‘다도해’로 불릴 만큼 섬이 많은데, ‘카스텔로리조’ 섬도 그중 하나입니다.

카스텔로리조 섬에서 촬영된 영화 ‘지중해’의 포스터
카스텔로리조 섬은 1992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지중해’의 촬영장소이기도 합니다. 면적은 12㎢, 인구는 500명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섬입니다.

이 섬은 그리스 땅이지만, 위치가 조금 특이합니다.

그리스 본토로부터 600km나 떨어져 있지만, 터키와의 거리는 불과 2km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터키 영토가 아닌 그리스 영토입니다.

그리스 영토인 카스텔로리조 섬의 위치, 터키 해안선과 거의 붙어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이른바 동맹국 편에 가담했다가 패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랜 숙적 관계였던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을 침공했는데, 이 전쟁에서는 그리스가 지고 말았습니다.

대신 이런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은 터키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고, 1차대전 승전국인 연합국 측은 1923년 터키와 스위스 로잔에서 조약을 체결합니다.

1923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로잔 회의
이 로잔조약에서 터키는 유럽으로 연결되는 길목인 이스탄불 주변을 꼭 사수할 영토로 선택했고, 대신 터키 주변의 많은 작은 섬들은 그리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때 카스텔로리조 섬도 그리스 땅이 됐습니다. 지금은 터키가 군사력에 있어서 그리스를 압도하지만, 1차 대전 직후였던 당시 육군력은 터키가, 해군력은 그리스가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카스텔로리조 섬 인근이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지질조사 회사가 동지중해 대륙붕에서 17억 배럴의 석유와 122조 세제곱피트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확인한 겁니다.

글로벌 매장량과 비교하면 대단한 양은 아니라고 해도, 자원이 부족한 지중해 주변국들에는 엄청난 소식이었습니다.

카스텔로리조 섬 인근의 터키와 그리스 간 영해선
터키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됐습니다. 카스텔로리조를 비롯한 그리스의 작은 섬들 때문에 터키 영토 주변 지중해의 상당 부분이 그리스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터키와 그리스의 숙적 관계는 더 깊어지게 됐습니다.

터키는 인구가 수백 명에 불과한 작은 섬 때문에 배타적 경제수역이 결정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며, 지난 8월에도 카스텔로리조 섬 아래 지역과 키프로스 섬 인근 등에서 지하자원 탐사에 나섰습니다.

동지중해에서 탐사 중인 터키의 지질 조사선 오루츠 레이스 호
그리스는 터키가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했다며 지난달 키프로스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손잡고 지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대통령이 직접 카스텔로리조 섬을 방문해 “터키의 불법행위가 에게해와 동지중해 긴장감을 야기했다”며 터키를 비판했습니다.

지난달 카스텔로리조를 방문한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
이에 따라 지난달 터키는 오루츠 레이스 호를 일단 철수시켰지만, 최근 다시 이 탐사선을 동지중해에 투입했습니다. 22일까지였던 탐사 기간도 오는 27일까지로 연장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터키에 대한 제재를 취하라고 요구하면서, 카스텔로리조 섬과 그 주변 바다를 둘러싼 양측의 긴장 관계는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터키가 최근 시리아 난민 처리 문제 등을 놓고 유럽 국가와 갈등을 겪고 있고, 또 러시아제 지대공미사일 S-400을 도입해 미국과도 관계가 편치 않은 상황이어서, 터키와 그리스 간 갈등의 파장이 어떻게 퍼져나갈 것인지도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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