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스쿨존 교통사고에 무죄…‘민식이법’ 적용 안 된 이유는?

입력 2020.10.25 (07:19) 수정 2020.10.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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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보호구역어린이 보호구역

지난 3월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 등을 설치하고, 사고 시 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시행됐습니다. 시행 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이 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민식이법으로 처벌되는 것 아니냐", "처벌 수위가 운전자에게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 주요 쟁점입니다. 법 시행 뒤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가 잇따랐고 그때마다 논쟁은 반복됐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는 상황에서 최근 주목할만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 전북 전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난 사고...법원 '무죄'

지난 4월, 전북 전주시 삼천동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열 살 여자 어린이가 편도 1차선 도로를 주행 중이던 승용차에 치였습니다. 사고 당시 차량 속도는 시속 28.8km. 피해 어린이는 반대편 도로에 정차한 차량 뒤편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던 중이었습니다. 피해 어린이는 발목 등을 다쳐 전치 8주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검찰은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안전 운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를 냈다며, 이른바 민식이법을 적용해 운전자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전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왜일까요?

사고가 난 전북 전주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가 난 전북 전주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 "출현 시점부터 충돌까지 0.7초 소요...사고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여"

먼저 1심 재판부는 피해 어린이가 운전자의 승용차 앞부분이 아닌 운전석 측면과 충돌한 점을 짚었습니다. 피해 어린이가 반대편 도로변에 정차한 차량에서 하차한 뒤, 차량 뒤편에서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 피고인 운전석 측면과 충돌했다는 겁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주변에서 피해 어린이를 비롯해 다른 어린이가 보이지 않았고, 피해 어린이가 내린 차량이 비상등을 켠 채로 반대편 도로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어린이가 도로로 나올 것을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서에 의하면 피해 어린이가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출현한 시점에서 충돌 시점까지는 0.7초가 소요됐습니다. 재판부는 주행 중 운전자가 전방의 위험 상황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실제 제동이 걸리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인 '공주시간'은 통상 0.7 ~ 1초로 본다며, 피고인이 아무리 빨리 피해 어린이의 존재를 인식하였더라도,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를 작동하지도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 "강화된 처벌만큼 운전자 과실 여부 엄밀히 살펴야"

재판부는 이같이 피고인에게 얼마만큼의 과실이 있는지를 살핀 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 법령은 과실범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법정형을 정하고 있는바, 과실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에게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결과의 중대성에 기대어 그 과실을 넓게 해석할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피고인에게 적용된 이른바 '민식이법'은 상해 사고에 대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게 돼 있는데,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해 벌어진 사고에 비교적 중한 처벌을 하는 만큼 운전자의 과실을 더 엄밀히 살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특정범죄가중법, 이른바 '민식이법'은 기존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어린이 치사상의 죄를 범할 경우를 따로 떼어 가중처벌하는 내용입니다. 즉 처벌이 강화된 만큼 기존 교특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라는 모호한 조항을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 아니라 더 좁게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사고와 같이 운전자가 규정 속도를 지켰고, 달리 교통법규를 위반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위반 사유 없이 기존과 같은 잣대로 '민식이법'을 적용하긴 힘들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전주지방법원전주지방법원

■ 어린이 교통사고 경종 울리기 위해 탄생한 '민식이법'

이 판결에 관한 기사가 나간 뒤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법원의 판단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우려 속에 시행된 법이었고 앞으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논쟁은 이어질 겁니다.

하지만 '민식이법'은 안타까운 사고에서 비롯돼, 해마다 반복되는 우리나라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탄생한 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의 안전이 담보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하향 조정으로 최근 등교수업이 확대됐습니다. 보행자인 어린이들의 안전 교육도 병행돼야겠지만, 어린이 보호구역 내의 안전 운전 의무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연관 기사] 스쿨존 시속 30km 미만 사고 무죄…“민식이법 적용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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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5 07:19:25
    • 수정2020-10-25 07:20:46
    취재후·사건후
어린이 보호구역
지난 3월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 등을 설치하고, 사고 시 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시행됐습니다. 시행 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이 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민식이법으로 처벌되는 것 아니냐", "처벌 수위가 운전자에게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 주요 쟁점입니다. 법 시행 뒤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가 잇따랐고 그때마다 논쟁은 반복됐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는 상황에서 최근 주목할만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 전북 전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난 사고...법원 '무죄'

지난 4월, 전북 전주시 삼천동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열 살 여자 어린이가 편도 1차선 도로를 주행 중이던 승용차에 치였습니다. 사고 당시 차량 속도는 시속 28.8km. 피해 어린이는 반대편 도로에 정차한 차량 뒤편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던 중이었습니다. 피해 어린이는 발목 등을 다쳐 전치 8주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검찰은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안전 운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를 냈다며, 이른바 민식이법을 적용해 운전자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전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왜일까요?

사고가 난 전북 전주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 "출현 시점부터 충돌까지 0.7초 소요...사고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여"

먼저 1심 재판부는 피해 어린이가 운전자의 승용차 앞부분이 아닌 운전석 측면과 충돌한 점을 짚었습니다. 피해 어린이가 반대편 도로변에 정차한 차량에서 하차한 뒤, 차량 뒤편에서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 피고인 운전석 측면과 충돌했다는 겁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주변에서 피해 어린이를 비롯해 다른 어린이가 보이지 않았고, 피해 어린이가 내린 차량이 비상등을 켠 채로 반대편 도로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어린이가 도로로 나올 것을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서에 의하면 피해 어린이가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출현한 시점에서 충돌 시점까지는 0.7초가 소요됐습니다. 재판부는 주행 중 운전자가 전방의 위험 상황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실제 제동이 걸리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인 '공주시간'은 통상 0.7 ~ 1초로 본다며, 피고인이 아무리 빨리 피해 어린이의 존재를 인식하였더라도,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를 작동하지도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 "강화된 처벌만큼 운전자 과실 여부 엄밀히 살펴야"

재판부는 이같이 피고인에게 얼마만큼의 과실이 있는지를 살핀 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 법령은 과실범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법정형을 정하고 있는바, 과실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에게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결과의 중대성에 기대어 그 과실을 넓게 해석할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피고인에게 적용된 이른바 '민식이법'은 상해 사고에 대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게 돼 있는데,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해 벌어진 사고에 비교적 중한 처벌을 하는 만큼 운전자의 과실을 더 엄밀히 살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특정범죄가중법, 이른바 '민식이법'은 기존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어린이 치사상의 죄를 범할 경우를 따로 떼어 가중처벌하는 내용입니다. 즉 처벌이 강화된 만큼 기존 교특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라는 모호한 조항을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 아니라 더 좁게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사고와 같이 운전자가 규정 속도를 지켰고, 달리 교통법규를 위반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위반 사유 없이 기존과 같은 잣대로 '민식이법'을 적용하긴 힘들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전주지방법원
■ 어린이 교통사고 경종 울리기 위해 탄생한 '민식이법'

이 판결에 관한 기사가 나간 뒤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법원의 판단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우려 속에 시행된 법이었고 앞으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논쟁은 이어질 겁니다.

하지만 '민식이법'은 안타까운 사고에서 비롯돼, 해마다 반복되는 우리나라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탄생한 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의 안전이 담보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하향 조정으로 최근 등교수업이 확대됐습니다. 보행자인 어린이들의 안전 교육도 병행돼야겠지만, 어린이 보호구역 내의 안전 운전 의무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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