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그리고 폰지 사기는 계속된다

입력 2020.10.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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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는 결국 ‘폰지사기’였다. 언젠가 유사수신을 다루는 경찰이 이런 말을 들려줬다.

“테헤란로에서 수백만 원씩 술마시는 사람들 절반은 ‘폰지사기’하는 친구들이예요”.

이 인류의 오래된 사기술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는 참 꾸준히 폰지사기에 속는다. 모든 폰지사기는 공식이 있다. 옵티머스도 물론 이 공식을 따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정확하게 100년 전 찰스 폰지(1882~1949년)가 이탈리아 우표로 폰지사기를 시작한 뒤, 이 뻔한 사기극은 늘 성공한다. 당시 폰지는 45일 만에 50%의 수익을 약속했다. B투자자의 돈을 받아 A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이 기발한 금융 다단계 상품에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몰렸다.

그로부터 88년 뒤에 제대로 큰 건이 터졌다. 버나드 메이도프 (Bernard Madoff)는 폰지사기로 650억 달러(대략 80조 원 정도)를 해먹었다. 여러 상원의원들은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도 속았다. 속을 만 했다. 그는 심지어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도 역임했다. 그가 폰지사기꾼이라고 누가 1초라도 의심했을까?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큰아들은 맨해튼에서 자살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수많은 ‘폰지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우리는 참 꾸준히 소중한 돈을 태워 폰지꾼들의 아랫목을 데워준다. 라디오에서 경제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폰지사기’ 주제만 꺼내면 수많은 문자가 쏟아졌다. 과거에는 비상장주나 특허를 주로 팔았다면, 최근에는 ‘비트코인’, ‘FX마진거래’, ‘클라우드펀딩’같은 기술 용어를 주로 쓴다. 이런 상품을 꼭 ‘파생상품화’ 해서, ‘레버리지’로 투자한단다.

“유엔이 함께 개발한 비트코인의 한국 지사장이 운영하는 펀드인데 곧 국제거래소에 등재하면 최소 15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준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가짜인가요?, 저는 매월 꼬박꼬박 수익금이 들어오는데요”

(대기업 유럽지사에 근무하는 아들이 부모님이 금융다단계에 투자하시는 것 같은데 자신의 말은 안믿으니 김기자가 직접 전화를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이메일을 보내와서, 직접 전화를 드린 적도 있다. 끝까지 내말도 믿지 않으셨다)

폰지사기는 매우 구체적인 수익방법을 제시한다. 옵티머스는 안전한 공사채에 투자해 2.8%의 수익률을 보장했다.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안전’하고 ‘높은 수익률’. 게다가 6개월 마다 수익을 지급한다. 하지만 우리 공기업들의 채권이자율은 1% 초반 수준이다. 나머지는 어디서 벌어들인단 말인가?

정작 옵티머스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애초부터 그들은 사채업자나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러다 안 되니, 결국 투자자들의 돈으로 다른 투자자의 수익을 지급하는 ‘폰지’의 반열에 올랐다. 그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씨피엔에스’나 ‘아트리파라다이스’는 도대체 뭐하는 회사였을까?(작명술은 거의 유병언 수준이다)

폰지사기꾼들은 처음엔 실제 수익금을 꼬박꼬박 입금한다. 의심을 하면서 가입을 주저했던 누나나, 형의 친구, 삼촌의 대학동창은 그렇게 뒤늦게 가입을 한다. 그래서 폰지사기의 피해자들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으로 엮여있다. 4조 원을 받아 가로챈 조희팔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대구지역에 몰려있었다.

법정에 출석하는 메이도프와 항의하는 투자자. 메이도프는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법정에 출석하는 메이도프와 항의하는 투자자. 메이도프는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을 판다. 메이도프가 뉴욕 메츠의 구단주인 ‘프레드 윌폰’을 팔고 다니듯, 옵티머스의 고문에는 전직 경제부총리가 등장한다. 현직 장관 가족은 이 펀드에 6억 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폰지의 유명 피해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폰지 사기의 광고판이 된다.

이 엉터리 펀드에 공기업인 전파진흥원은 1,000억 원을 투자했으니, 누가 의심을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판매는 NH증권이 했다.(뒤늦게 NH증권이 투자를 의심해 영업보고서를 들여다보려하자, 옵티머스측은 온갖 서류를 위조했다. 위조한 시중은행이나 유명 건설사의 도장을 마구 찍어댔다)

사모펀드는 그야말로 Private한 펀드다. 그들만의 리그다. 최소 1억 이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수십 억 씩 투자한다. 그러니 금융당국이 서류를 들여다 볼 일이 별로 없다. 책임은 결국 투자자가 진다. 어찌 사기꾼들만 탓할 수 있을까.

시중에 돈이 넘치다보니, 300여개 운용사가 1만개 이상의 사모펀드를 운용중이다. 운용액이 500조를 넘는다.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다. 옵티머스(óptĭmus)는 라틴어로 제일 훌륭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옵티머스펀드는 가짜였다.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옵티머스 펀드 피해자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러시아 속담이다. 폰지사기가 근절되지 않은 가장 큰 에너지는 뭘까? 인간의 탐욕이다. 그들은 쉽게 돈을 벌려는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안전한데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 하지만 모든 게 불확실한 금융시장에서 분명한 게 하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안전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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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옵티머스, 그리고 폰지 사기는 계속된다
    • 입력 2020-10-26 11:39:11
    취재K
옵티머스는 결국 ‘폰지사기’였다. 언젠가 유사수신을 다루는 경찰이 이런 말을 들려줬다.

“테헤란로에서 수백만 원씩 술마시는 사람들 절반은 ‘폰지사기’하는 친구들이예요”.

이 인류의 오래된 사기술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는 참 꾸준히 폰지사기에 속는다. 모든 폰지사기는 공식이 있다. 옵티머스도 물론 이 공식을 따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정확하게 100년 전 찰스 폰지(1882~1949년)가 이탈리아 우표로 폰지사기를 시작한 뒤, 이 뻔한 사기극은 늘 성공한다. 당시 폰지는 45일 만에 50%의 수익을 약속했다. B투자자의 돈을 받아 A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이 기발한 금융 다단계 상품에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몰렸다.

그로부터 88년 뒤에 제대로 큰 건이 터졌다. 버나드 메이도프 (Bernard Madoff)는 폰지사기로 650억 달러(대략 80조 원 정도)를 해먹었다. 여러 상원의원들은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도 속았다. 속을 만 했다. 그는 심지어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도 역임했다. 그가 폰지사기꾼이라고 누가 1초라도 의심했을까?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큰아들은 맨해튼에서 자살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수많은 ‘폰지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우리는 참 꾸준히 소중한 돈을 태워 폰지꾼들의 아랫목을 데워준다. 라디오에서 경제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폰지사기’ 주제만 꺼내면 수많은 문자가 쏟아졌다. 과거에는 비상장주나 특허를 주로 팔았다면, 최근에는 ‘비트코인’, ‘FX마진거래’, ‘클라우드펀딩’같은 기술 용어를 주로 쓴다. 이런 상품을 꼭 ‘파생상품화’ 해서, ‘레버리지’로 투자한단다.

“유엔이 함께 개발한 비트코인의 한국 지사장이 운영하는 펀드인데 곧 국제거래소에 등재하면 최소 15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준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가짜인가요?, 저는 매월 꼬박꼬박 수익금이 들어오는데요”

(대기업 유럽지사에 근무하는 아들이 부모님이 금융다단계에 투자하시는 것 같은데 자신의 말은 안믿으니 김기자가 직접 전화를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이메일을 보내와서, 직접 전화를 드린 적도 있다. 끝까지 내말도 믿지 않으셨다)

폰지사기는 매우 구체적인 수익방법을 제시한다. 옵티머스는 안전한 공사채에 투자해 2.8%의 수익률을 보장했다.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안전’하고 ‘높은 수익률’. 게다가 6개월 마다 수익을 지급한다. 하지만 우리 공기업들의 채권이자율은 1% 초반 수준이다. 나머지는 어디서 벌어들인단 말인가?

정작 옵티머스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애초부터 그들은 사채업자나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러다 안 되니, 결국 투자자들의 돈으로 다른 투자자의 수익을 지급하는 ‘폰지’의 반열에 올랐다. 그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씨피엔에스’나 ‘아트리파라다이스’는 도대체 뭐하는 회사였을까?(작명술은 거의 유병언 수준이다)

폰지사기꾼들은 처음엔 실제 수익금을 꼬박꼬박 입금한다. 의심을 하면서 가입을 주저했던 누나나, 형의 친구, 삼촌의 대학동창은 그렇게 뒤늦게 가입을 한다. 그래서 폰지사기의 피해자들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으로 엮여있다. 4조 원을 받아 가로챈 조희팔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대구지역에 몰려있었다.

법정에 출석하는 메이도프와 항의하는 투자자. 메이도프는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을 판다. 메이도프가 뉴욕 메츠의 구단주인 ‘프레드 윌폰’을 팔고 다니듯, 옵티머스의 고문에는 전직 경제부총리가 등장한다. 현직 장관 가족은 이 펀드에 6억 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폰지의 유명 피해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폰지 사기의 광고판이 된다.

이 엉터리 펀드에 공기업인 전파진흥원은 1,000억 원을 투자했으니, 누가 의심을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판매는 NH증권이 했다.(뒤늦게 NH증권이 투자를 의심해 영업보고서를 들여다보려하자, 옵티머스측은 온갖 서류를 위조했다. 위조한 시중은행이나 유명 건설사의 도장을 마구 찍어댔다)

사모펀드는 그야말로 Private한 펀드다. 그들만의 리그다. 최소 1억 이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수십 억 씩 투자한다. 그러니 금융당국이 서류를 들여다 볼 일이 별로 없다. 책임은 결국 투자자가 진다. 어찌 사기꾼들만 탓할 수 있을까.

시중에 돈이 넘치다보니, 300여개 운용사가 1만개 이상의 사모펀드를 운용중이다. 운용액이 500조를 넘는다.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다. 옵티머스(óptĭmus)는 라틴어로 제일 훌륭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옵티머스펀드는 가짜였다.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러시아 속담이다. 폰지사기가 근절되지 않은 가장 큰 에너지는 뭘까? 인간의 탐욕이다. 그들은 쉽게 돈을 벌려는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안전한데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 하지만 모든 게 불확실한 금융시장에서 분명한 게 하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안전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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