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백사장이 사라진다…해안 7곳 침식 ‘우려·심각’

입력 2020.10.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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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전국에서 온 피서객으로 늘 북적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이 줄었다지만, '비대면' 관광지로 바다만 한 곳도 없는지 겨울로 가는 문턱인 요즘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반짝이는 드넓은 백사장과 그 위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리는, 이 평화로운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부산 임랑해수욕장부산 임랑해수욕장

■ "발바닥이 뜨거버가 중간에 한 번 쉿다 갔다카이 "…부산 송정·임랑 침식 '심각'

부산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나친 과장 아니냐고요? 코앞의 미래는 아닐지라도, 좀 더 먼 미래를 상상하면 결코 부풀려진 사실만은 아닙니다. 해마다 사라지는 모래를 우리가 낸 세금으로 부지런히 채워넣고 있어 그나마 지금 정도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때는 바다까지 걸어나갈라믄 발바닥이 뜨거버가 중간에 한 번 쉿다 갔다카이." 임랑 해수욕장 인근에서 오랜 세워 가게를 하고 있는 한 주민의 말입니다. 예전에는 워낙 백사장이 넓어 뜨거운 모래를 밟고 바다까지 한 번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긴데요, 그랬던 임랑 해수욕장은 지난해 송정 해수욕장과 함께 침식 D등급(심각)을 받았습니다. 특히, 올여름 태풍이 잇따라 휩쓸고 지나간 임랑 해수욕장은 파라솔을 꽂고 일광욕을 즐길 만한 공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백사장 폭이 확 줄어있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엔 임랑보다는 나아보이는 송정 해수욕장도 바다가 백사장을 밀어 올리듯 해안선이 점점 육지쪽으로 좁아지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침식 B등급(보통)이던 것이 4년 만에 D등급(심각)까지 떨어졌습니다. 나머지 7개 해수욕장이 모두 비슷한 처지인데요, 광안리, 다대포, 송도, 중리, 일광 등 5곳은 C등급(우려)을 해운대와 감지 등 2곳만 B등급(보통)을 받았습니다. D등급으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인 셈입니다.<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부산 해운대해수욕장부산 해운대해수욕장

■ 63빌딩 다 채우고도 남을 모래 쏟아부었지만…2년 만에 10% 또 사라져

여름이면 전국 피서객이 가장 사랑하는 해수욕장, 어딘지 아시죠? 바로 해운대해수욕장입니다. 폭이 50m 넘는,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하죠. 부산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자연적으로 모래가 쌓여 생긴 백사장은 아닙니다.

2017년까지 5년간 해양수산부가 대규모 연안정비사업을 벌였는데요, 지금 모습으로 백사장을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모래를 부었을까요? 15톤 화물차가 5만 9천 대 분량인데, 63빌딩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라고 하네요. 다 우리 세금으로 쏟아부은 금모래인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해운대 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에만 43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백사장을 복원한 이듬해인 2018년 가을,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강타했는데요, 비질하듯 백사장 모래를 또 쓸어가 버렸습니다. 자연 해안은 회복 능력이 있어서 깎여나간 만큼 다시 돌아오는데, 콩레이가 휩쓸고 간 뒤부터 해운대 해수욕장은 '자연회복' 과정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에 또 태풍 타파, 미탁 등의 영향으로 백사장은 계속 줄어 연평균 백사장 면적이 복원 2년 만에 9.5%, 축구장 두 배 면적에 육박하는 12,60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양수산부는 2029년까지 부산 해안선을 지키기 위해 모두 1,445억 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 모래의 흐름을 읽어라!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움직이는 '부산 모래'

이쯤 되면 '모래 붓듯' 쏟아붓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는데요, 먼저 '돈 먹는 하마' 같은 해안 침식의 원인을 알아야겠죠?

하천은 인근에서 흘러들어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천으로 들어오는 모래량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연안개발'이 주범입니다. 자연의 흐름을 끊어놨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이 바다를 좀 더 가까이 즐기기 위해 만든 해수욕장 축벽인 호안 등 해안가 인근 여러 인공 시설물이 계절적 연안류를 따라 모래가 들어오는 걸 방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자꾸 백사장 폭이 줄면 자연재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완충지대도 함께 사라집니다.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은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전문가마다 여러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중에 '모래 이동 경로'를 밝히는 작업에 주목했습니다. 해안마다 지형이나 해류가 다르듯 침식의 원인도 다를 텐데요, 그래서 맞춤형 해법이 필요한 겁니다.

부산은 특히, 모래가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데요, 그럼 왜 부산 인근 모래는 이렇게 움직이는지, 또 어디서 흘러들어 어디로 나가는지 등을 밝혀내는지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부산뿐 아니라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의 해역별 모래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 '밑 빠진 독에 물붓기' 대신 예방적 해법 필요…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

피해를 앞서 막는 게 상책입니다. 위험 해안을 국가가 직접 사들이는 방법은 어떨까요? 실제로 프랑스는 해안선의 14%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데요, 하지만 부산 같은 지역은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부산에서 최고로 비싸다는 집은 모두 해안가에 몰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해마다 여름이면 월파와 침수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는 마린시티. 국가가 사들일 엄두도 낼 수 없겠죠?

부산의 유일한 군 지역인 기장 임랑해수욕장만 해도 최근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국가 매입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하네요. 하지만 농지나 소규모 마을은 이런 방식을 적용해 피해 규모를 줄일 뿐 아니라 방제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태풍 매미 때 경남 '거제 와현마을'을 해안선 뒤쪽으로 옮긴 사례처럼요. 복구비는 136억 원으로 예상됐는데, 이주 비용은 이보다 적은 106억 원밖에 들지 않았다네요. 더는 주민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게 된 것까지 생각하면 경제적인 이득은 훨씬 더 큰 셈입니다.

이처럼 지역별 맞춤형 전략이 필요합니다. 연안개발이 극심한 도심지, 부산에 더 맞춤한 대책은 뭘까요?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1월에 개정된 '연안관리법'에 이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데요,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가 도입되면 개발계획을 세우기 전에 '연안 어느 지역이, 어느 정도 재해에 위험한가'를 중앙정부나 각 자치단체가 평가해 그 결과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을 회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럼, 지금까지는 전혀 없던 제도냐고요? 기존에도 '해역이용협의제'라는 것이 있긴 했는데, 강제성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겁니다.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에 좀 더 기대를 걸어보게 되는데요. 해안 침식을 막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세부적인 시행 방법과 지침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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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백사장이 사라진다…해안 7곳 침식 ‘우려·심각’
    • 입력 2020-10-29 10:01:08
    취재K

부산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전국에서 온 피서객으로 늘 북적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이 줄었다지만, '비대면' 관광지로 바다만 한 곳도 없는지 겨울로 가는 문턱인 요즘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반짝이는 드넓은 백사장과 그 위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리는, 이 평화로운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부산 임랑해수욕장
■ "발바닥이 뜨거버가 중간에 한 번 쉿다 갔다카이 "…부산 송정·임랑 침식 '심각'

부산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나친 과장 아니냐고요? 코앞의 미래는 아닐지라도, 좀 더 먼 미래를 상상하면 결코 부풀려진 사실만은 아닙니다. 해마다 사라지는 모래를 우리가 낸 세금으로 부지런히 채워넣고 있어 그나마 지금 정도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때는 바다까지 걸어나갈라믄 발바닥이 뜨거버가 중간에 한 번 쉿다 갔다카이." 임랑 해수욕장 인근에서 오랜 세워 가게를 하고 있는 한 주민의 말입니다. 예전에는 워낙 백사장이 넓어 뜨거운 모래를 밟고 바다까지 한 번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긴데요, 그랬던 임랑 해수욕장은 지난해 송정 해수욕장과 함께 침식 D등급(심각)을 받았습니다. 특히, 올여름 태풍이 잇따라 휩쓸고 지나간 임랑 해수욕장은 파라솔을 꽂고 일광욕을 즐길 만한 공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백사장 폭이 확 줄어있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엔 임랑보다는 나아보이는 송정 해수욕장도 바다가 백사장을 밀어 올리듯 해안선이 점점 육지쪽으로 좁아지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침식 B등급(보통)이던 것이 4년 만에 D등급(심각)까지 떨어졌습니다. 나머지 7개 해수욕장이 모두 비슷한 처지인데요, 광안리, 다대포, 송도, 중리, 일광 등 5곳은 C등급(우려)을 해운대와 감지 등 2곳만 B등급(보통)을 받았습니다. D등급으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인 셈입니다.<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 63빌딩 다 채우고도 남을 모래 쏟아부었지만…2년 만에 10% 또 사라져

여름이면 전국 피서객이 가장 사랑하는 해수욕장, 어딘지 아시죠? 바로 해운대해수욕장입니다. 폭이 50m 넘는,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하죠. 부산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자연적으로 모래가 쌓여 생긴 백사장은 아닙니다.

2017년까지 5년간 해양수산부가 대규모 연안정비사업을 벌였는데요, 지금 모습으로 백사장을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모래를 부었을까요? 15톤 화물차가 5만 9천 대 분량인데, 63빌딩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라고 하네요. 다 우리 세금으로 쏟아부은 금모래인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해운대 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에만 43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백사장을 복원한 이듬해인 2018년 가을,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강타했는데요, 비질하듯 백사장 모래를 또 쓸어가 버렸습니다. 자연 해안은 회복 능력이 있어서 깎여나간 만큼 다시 돌아오는데, 콩레이가 휩쓸고 간 뒤부터 해운대 해수욕장은 '자연회복' 과정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에 또 태풍 타파, 미탁 등의 영향으로 백사장은 계속 줄어 연평균 백사장 면적이 복원 2년 만에 9.5%, 축구장 두 배 면적에 육박하는 12,60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양수산부는 2029년까지 부산 해안선을 지키기 위해 모두 1,445억 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 모래의 흐름을 읽어라!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움직이는 '부산 모래'

이쯤 되면 '모래 붓듯' 쏟아붓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는데요, 먼저 '돈 먹는 하마' 같은 해안 침식의 원인을 알아야겠죠?

하천은 인근에서 흘러들어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천으로 들어오는 모래량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연안개발'이 주범입니다. 자연의 흐름을 끊어놨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이 바다를 좀 더 가까이 즐기기 위해 만든 해수욕장 축벽인 호안 등 해안가 인근 여러 인공 시설물이 계절적 연안류를 따라 모래가 들어오는 걸 방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자꾸 백사장 폭이 줄면 자연재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완충지대도 함께 사라집니다.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은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전문가마다 여러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중에 '모래 이동 경로'를 밝히는 작업에 주목했습니다. 해안마다 지형이나 해류가 다르듯 침식의 원인도 다를 텐데요, 그래서 맞춤형 해법이 필요한 겁니다.

부산은 특히, 모래가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데요, 그럼 왜 부산 인근 모래는 이렇게 움직이는지, 또 어디서 흘러들어 어디로 나가는지 등을 밝혀내는지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부산뿐 아니라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의 해역별 모래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 '밑 빠진 독에 물붓기' 대신 예방적 해법 필요…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

피해를 앞서 막는 게 상책입니다. 위험 해안을 국가가 직접 사들이는 방법은 어떨까요? 실제로 프랑스는 해안선의 14%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데요, 하지만 부산 같은 지역은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부산에서 최고로 비싸다는 집은 모두 해안가에 몰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해마다 여름이면 월파와 침수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는 마린시티. 국가가 사들일 엄두도 낼 수 없겠죠?

부산의 유일한 군 지역인 기장 임랑해수욕장만 해도 최근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국가 매입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하네요. 하지만 농지나 소규모 마을은 이런 방식을 적용해 피해 규모를 줄일 뿐 아니라 방제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태풍 매미 때 경남 '거제 와현마을'을 해안선 뒤쪽으로 옮긴 사례처럼요. 복구비는 136억 원으로 예상됐는데, 이주 비용은 이보다 적은 106억 원밖에 들지 않았다네요. 더는 주민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게 된 것까지 생각하면 경제적인 이득은 훨씬 더 큰 셈입니다.

이처럼 지역별 맞춤형 전략이 필요합니다. 연안개발이 극심한 도심지, 부산에 더 맞춤한 대책은 뭘까요?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1월에 개정된 '연안관리법'에 이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데요,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가 도입되면 개발계획을 세우기 전에 '연안 어느 지역이, 어느 정도 재해에 위험한가'를 중앙정부나 각 자치단체가 평가해 그 결과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을 회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럼, 지금까지는 전혀 없던 제도냐고요? 기존에도 '해역이용협의제'라는 것이 있긴 했는데, 강제성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겁니다. '연안재해위험지역' 평가에 좀 더 기대를 걸어보게 되는데요. 해안 침식을 막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세부적인 시행 방법과 지침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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