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톡] 6개월 만에 무릎꿇은 ‘할리우드 거인’…증발된 1.5조

입력 2020.10.29 (11:44) 수정 2020.10.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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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카젠버그제프리 카젠버그

미국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인물들의 조합. 출범하기도 전에 앞다퉈 모인 2조 원 가량의 투자금.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한 미국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퀴비'가 서비스 6개월 만에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성대했던 시작에 비교하면 놀랄 만큼 초라한 마지막입니다. 이번 실패로 증발된 자금만 1조 5000억 원가량입니다.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할리우드 거인' 카젠버그의 도전..쏟아진 투자금

퀴비는 설립자인 '제프리 카젠버그'의 유명세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10년 동안 월트 디즈니 회장을 지냈고,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재직 중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슈렉,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작품들이 나왔죠. 할리우드에서 그는 '거인'이었고 전설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곳들이 세를 불리고 있는 뉴미디어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퀴비는 숏폼(short-form, 짧은 영상 지칭) OTT 모바일 업체를 지향합니다. 리얼리티쇼나 뉴스, 다큐멘터리 등 영상물을 10분가량 길이의 숏폼으로 시청자에게 모바일로만 전달합니다. 넷플릭스와 틱톡을 합친 개념과 같습니다.

여기에 '턴스타일'이라는 신기술도 적용했습니다. 모바일 시청자가 화면을 가로·세로 어느 쪽으로 봐도 화면이 최적의 구성을 나타냅니다. 퀴비의 홍보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영상 콘텐츠를 시청합니다.

카젠버그가 기술 전문가로 데려온 인물이 실리콘밸리 '여제'로 불리는 멕 휘트먼입니다. 2008년까지 10년 동안 이베이 CEO로 재직하며 이베이를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워낸 휘트먼은 한때 전 세계 최고 연봉 여성 기업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카젠버그와 휘트먼의 만남은 업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들이 뉴미디어 진출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디즈니와 알리바바, JP모건 등 굵직한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서비스 시작도 전에 모인 자금만 17억 5,000만 달러(약 2조 원) 가량입니다.

막대한 자금과 이름값을 가진 퀴비는 지난 4월 화려하게 출범을 알렸습니다.

■ 코로나19의 습격..'거인'의 울분

사실 퀴비는 서비스 시작 전부터 우려스러웠습니다. 퀴비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음식을 먹는 등 짧은 시간 동안 영상 소비를 노려왔습니다.

그런데 올 초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발생한 겁니다. 사람들의 이동은 줄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만 갔습니다. 퀴비의 소비 전략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특히 퀴비는 모바일로만 승부수를 보겠다며 PC나 TV로는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게 했는데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소비자들로선 굳이 조그만 화면으로 영상물을 시청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점차 코로나19가 확산하며 퀴비가 계획했던 콘텐츠 생산마저 차질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일례로 퀴비에 뉴스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했던 CBS 팀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며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퀴비 홍보 사진퀴비 홍보 사진

이런 상황에서 카젠버그는 지난 5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게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할리우드 거인'마저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죠.

무엇보다 퀴비는 OTT 업체임에도 콘텐츠 자체가 빈약하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출범 직후 공개한 자체 콘텐츠는 50여 개에 불과해 경쟁사의 1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화면캡처 금지 등 공유 기능을 전혀 도입하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원성을 들었습니다. 예컨대 틱톡이 사용자들끼리 댓글을 달고 소통하며 공유하는 문화와 상반되는 모습이었죠.

■ 90% 해지의 굴욕..결국 폐업

부진은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퀴비는 출시 2주일 만에 미국 앱스토어 상위 50위권 순위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지난 7월 기준 91만 명이던 가입자는 무료 서비스가 끝나자마자 90%가량이 해지를 선택했습니다. 현재 남은 유료 구독자 수는 7만 2,000명 가량으로 추산됩니다. 참고로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1억 9,500만 명가량입니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내부 이탈부터 시작됐습니다. 앱 출시 2주 만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가 사퇴한 데 이어 주요 임원들이 줄줄이 회사를 그만둡니다.

버티던 퀴비는 결국 지난주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12월 1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입니다. 남은 투자금은 3억 5,000만 달러가량. 전체 투자금 가운데 14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가량을 써버렸으니 비싼 수업료인 셈입니다.

비록 카젠버그는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이 빛을 바란 건 아닙니다. 할리우드라는 올드미디어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그가 뉴미디어에 도전한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한편, 퀴비 측은 "서비스 종료 후 유휴 자산 매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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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9 11:44:54
    • 수정2020-10-29 13:38:44
    취재K
제프리 카젠버그
미국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인물들의 조합. 출범하기도 전에 앞다퉈 모인 2조 원 가량의 투자금.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한 미국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퀴비'가 서비스 6개월 만에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성대했던 시작에 비교하면 놀랄 만큼 초라한 마지막입니다. 이번 실패로 증발된 자금만 1조 5000억 원가량입니다.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할리우드 거인' 카젠버그의 도전..쏟아진 투자금

퀴비는 설립자인 '제프리 카젠버그'의 유명세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10년 동안 월트 디즈니 회장을 지냈고,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재직 중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슈렉,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작품들이 나왔죠. 할리우드에서 그는 '거인'이었고 전설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곳들이 세를 불리고 있는 뉴미디어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퀴비는 숏폼(short-form, 짧은 영상 지칭) OTT 모바일 업체를 지향합니다. 리얼리티쇼나 뉴스, 다큐멘터리 등 영상물을 10분가량 길이의 숏폼으로 시청자에게 모바일로만 전달합니다. 넷플릭스와 틱톡을 합친 개념과 같습니다.

여기에 '턴스타일'이라는 신기술도 적용했습니다. 모바일 시청자가 화면을 가로·세로 어느 쪽으로 봐도 화면이 최적의 구성을 나타냅니다. 퀴비의 홍보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영상 콘텐츠를 시청합니다.

카젠버그가 기술 전문가로 데려온 인물이 실리콘밸리 '여제'로 불리는 멕 휘트먼입니다. 2008년까지 10년 동안 이베이 CEO로 재직하며 이베이를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워낸 휘트먼은 한때 전 세계 최고 연봉 여성 기업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카젠버그와 휘트먼의 만남은 업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들이 뉴미디어 진출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디즈니와 알리바바, JP모건 등 굵직한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서비스 시작도 전에 모인 자금만 17억 5,000만 달러(약 2조 원) 가량입니다.

막대한 자금과 이름값을 가진 퀴비는 지난 4월 화려하게 출범을 알렸습니다.

■ 코로나19의 습격..'거인'의 울분

사실 퀴비는 서비스 시작 전부터 우려스러웠습니다. 퀴비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음식을 먹는 등 짧은 시간 동안 영상 소비를 노려왔습니다.

그런데 올 초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발생한 겁니다. 사람들의 이동은 줄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만 갔습니다. 퀴비의 소비 전략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특히 퀴비는 모바일로만 승부수를 보겠다며 PC나 TV로는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게 했는데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소비자들로선 굳이 조그만 화면으로 영상물을 시청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점차 코로나19가 확산하며 퀴비가 계획했던 콘텐츠 생산마저 차질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일례로 퀴비에 뉴스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했던 CBS 팀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며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퀴비 홍보 사진
이런 상황에서 카젠버그는 지난 5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게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할리우드 거인'마저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죠.

무엇보다 퀴비는 OTT 업체임에도 콘텐츠 자체가 빈약하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출범 직후 공개한 자체 콘텐츠는 50여 개에 불과해 경쟁사의 1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화면캡처 금지 등 공유 기능을 전혀 도입하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원성을 들었습니다. 예컨대 틱톡이 사용자들끼리 댓글을 달고 소통하며 공유하는 문화와 상반되는 모습이었죠.

■ 90% 해지의 굴욕..결국 폐업

부진은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퀴비는 출시 2주일 만에 미국 앱스토어 상위 50위권 순위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지난 7월 기준 91만 명이던 가입자는 무료 서비스가 끝나자마자 90%가량이 해지를 선택했습니다. 현재 남은 유료 구독자 수는 7만 2,000명 가량으로 추산됩니다. 참고로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1억 9,500만 명가량입니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내부 이탈부터 시작됐습니다. 앱 출시 2주 만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가 사퇴한 데 이어 주요 임원들이 줄줄이 회사를 그만둡니다.

버티던 퀴비는 결국 지난주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12월 1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입니다. 남은 투자금은 3억 5,000만 달러가량. 전체 투자금 가운데 14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가량을 써버렸으니 비싼 수업료인 셈입니다.

비록 카젠버그는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이 빛을 바란 건 아닙니다. 할리우드라는 올드미디어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그가 뉴미디어에 도전한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한편, 퀴비 측은 "서비스 종료 후 유휴 자산 매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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