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위협에 ‘속수무책’…“목숨 걸고 일한다”

입력 2020.10.30 (17:15) 수정 2021.01.28 (17:1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고…."

지난 20일 자루를 든 남성이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통장을 던지며 지원금 16만 원이 줄었다고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공무원이 이유를 설명했지만, 민원인은 다짜고짜 자루 속에서 흉기를 꺼내 들어 공무원을 위협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민원인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 일을 겪은 담당 직원은 며칠간 업무를 보지 못했고,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들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구청에서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라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흉기 위협 뒤 안전시설 설치한 행정복지센터흉기 위협 뒤 안전시설 설치한 행정복지센터

■ 민원 불만에 잇단 흉기 위협…공무원 '속수무책'

취재진이 찾은 부산의 다른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지난 2월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민원인이 행정복지센터를 여러 차례 찾아 매번 현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지원 금액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하기를 수차례, 급기야 민원인은 흉기를 들고 민원 창구로 뛰어들었습니다.

가림막이 없는 창구를 훌쩍 뛰어넘은 민원인에게 공무원은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놀란 직원들이 대피한 뒤에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고, 그사이 해당 공무원은 생사를 오가는 끔찍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이 행정복지센터에는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 있는 비상벨도, CCTV도 없었습니다. 공무원은 이 일이 있기 전부터 폭언과 협박을 수시로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신고도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구청은 흉기 위협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비상벨과 함께 민원 창구에 가림막을 설치했습니다.

민원 창구에 임시 아크릴판 설치한 행정복지센터민원 창구에 임시 아크릴판 설치한 행정복지센터

■ '사후약방문' 안전시설에 안전요원은 계획도 없어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은 가림막과 비상벨을 설치하고 난 뒤 민원인들의 폭언과 폭행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당장 맞을 일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공무원들의 안전이 위협받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부터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전해드린 사례처럼 '사후약방문'인 기초자치단체가 많습니다. 예산 문제로 CCTV와 비상벨, 가림막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곳도 여전합니다.

아예 계획조차 잡지 못한 안전대책도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민원행정 및 제도개선 기본지침'을 통해 관공서 민원실에는 안전요원을 배치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침'인 데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는 규모나 민원을 고려해 배치하도록 해 사실상 권고 수준에 그칩니다. 이렇다 보니 부산의 기초자치단체는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안전요원을 둘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비상벨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비상벨

■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법으로 의무화해야"

사회복지 행정연구회는 공무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코로나 19 감염을 막기 위해 민원 창구에 임시로 설치한 아크릴 막이 아니라 투명 벽을 새우고, 사회복지 공무원에게는 호신용 스프레이 등 최소한의 방호 물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의 안전대책을 법으로 의무화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권고 수준에 그친다면 안전요원 배치는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사회복지사 폭력예방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민원인의 공무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3만 2천여 건에 달합니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을 맡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오늘도 불안 속에 일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흉기 위협에 ‘속수무책’…“목숨 걸고 일한다”
    • 입력 2020-10-30 17:15:06
    • 수정2021-01-28 17:16:27
    취재K

"밤에 잠도 못 자고,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고…."

지난 20일 자루를 든 남성이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통장을 던지며 지원금 16만 원이 줄었다고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공무원이 이유를 설명했지만, 민원인은 다짜고짜 자루 속에서 흉기를 꺼내 들어 공무원을 위협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민원인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 일을 겪은 담당 직원은 며칠간 업무를 보지 못했고,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들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구청에서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라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흉기 위협 뒤 안전시설 설치한 행정복지센터
■ 민원 불만에 잇단 흉기 위협…공무원 '속수무책'

취재진이 찾은 부산의 다른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지난 2월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민원인이 행정복지센터를 여러 차례 찾아 매번 현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지원 금액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하기를 수차례, 급기야 민원인은 흉기를 들고 민원 창구로 뛰어들었습니다.

가림막이 없는 창구를 훌쩍 뛰어넘은 민원인에게 공무원은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놀란 직원들이 대피한 뒤에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고, 그사이 해당 공무원은 생사를 오가는 끔찍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이 행정복지센터에는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 있는 비상벨도, CCTV도 없었습니다. 공무원은 이 일이 있기 전부터 폭언과 협박을 수시로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신고도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구청은 흉기 위협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비상벨과 함께 민원 창구에 가림막을 설치했습니다.

민원 창구에 임시 아크릴판 설치한 행정복지센터
■ '사후약방문' 안전시설에 안전요원은 계획도 없어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은 가림막과 비상벨을 설치하고 난 뒤 민원인들의 폭언과 폭행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당장 맞을 일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공무원들의 안전이 위협받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부터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전해드린 사례처럼 '사후약방문'인 기초자치단체가 많습니다. 예산 문제로 CCTV와 비상벨, 가림막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곳도 여전합니다.

아예 계획조차 잡지 못한 안전대책도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민원행정 및 제도개선 기본지침'을 통해 관공서 민원실에는 안전요원을 배치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침'인 데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는 규모나 민원을 고려해 배치하도록 해 사실상 권고 수준에 그칩니다. 이렇다 보니 부산의 기초자치단체는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안전요원을 둘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비상벨
■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법으로 의무화해야"

사회복지 행정연구회는 공무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코로나 19 감염을 막기 위해 민원 창구에 임시로 설치한 아크릴 막이 아니라 투명 벽을 새우고, 사회복지 공무원에게는 호신용 스프레이 등 최소한의 방호 물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의 안전대책을 법으로 의무화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권고 수준에 그친다면 안전요원 배치는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사회복지사 폭력예방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민원인의 공무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3만 2천여 건에 달합니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을 맡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오늘도 불안 속에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