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언론이 들려주는 범죄의 재구성(feat.라임·옵티머스)

입력 2020.10.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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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 피해자들 사례가 올라가야 돼요. 은행과 운용사가 어떻게 피해자들을 속였는지 밝혀야 하는데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권력형 비리냐 아니냐, 그런 것보다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건인 '라임·옵티머스 사태' 피해자들의 목소리입니다. 피해자들은 시종일관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대형 금융범죄 사건인데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 로비 게이트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말이죠.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권은 이해득실의 셈법에 따라 서로 공격하기 바쁩니다.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은 정치권의 설전 뒤로 숨었습니다. 숨죽이고 있을 금융관료들을 불러내 책임 추궁을 해야 할 언론들은 정치권의 싸움 구경에만 쏠려 있습니다. 심지어 편을 갈라 응원전까지 펼치는 모양새입니다. 피해자들은 언론의 외면이 그저 원망스럽습니다.


언론이 피해자에게 주목하지 않았다는 건 보도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일부터 24일까지 일간지 5곳과 경제지 2곳에 대해 지면 보도를 살펴본 결과, 라임·옵티머스 관련 전체 658건의 기사 가운데 정치권 갈등과 의혹을 다룬 보도가 400건을 차지했습니다. 전체의 약 60%에 달합니다. 반면에 사모펀드 피해자를 조명하는 보도는 24건에 불과했습니다.

언론이 피해자 대신 주목한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라임의 배후 전주(錢主)로 지목된 김봉현 씨의 입이었습니다. 김 씨는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폭로에 이어 검사들에게 술 접대를 했다는 등 정관계 비리 의혹을 폭로하고 있는 사건 당사자입니다. 언론은 김 씨의 말과 글에서 나온 폭로성 의혹을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보도들을 살펴보면, 언론이 김 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폭로 보도의 기본 원칙은 첫째 폭로자가 어떤 동기로 폭로하는지,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따지는 폭로자에 대한 검증을 선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둘째 폭로 내용에 대해서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교차 검증해야 합니다. 김 씨 관련 폭로 보도 가운데 이런 원칙을 지킨 보도, 얼마나 될까요?



언론은 또 라임 사태와 관련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촉발된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신경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이른바 '부하'라는 단어가 언론에 의해 논쟁적으로 재생산되며 마치 싸움을 부추기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J'에 출연한 김남근 변호사는 "과거 검찰은 법무부를 검찰이 장악하는 기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법무부와 검찰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라며 "언론이라면 현 시대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짚어줘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서로 칼싸움을 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만 나와서 왜 대립을 하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논의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전조가 있었지만, 언론은 그 신호를 무시했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경제가 사모펀드 업계 1위였던 라임의 편법 거래를 문제 삼는 기사를 최초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운용사였던 라임이 언론에 반박 보도자료를 뿌렸는데요. 당시 언론들은 라임의 반박 입장을 취재 없이 그냥 받아 썼습니다. 심지어 조진형 기자의 기사가 지라시성 의혹이라며 문제 제기를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의 취재 경쟁이 라임 편법 거래 의혹에 맞춰졌었더라면 투자자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언론은 금융 피해자들을 소외시킨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언론 보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까요?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J’ 인터뷰 장면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J’ 인터뷰 장면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모펀드에 대한 사전적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한 금융위원회와 이를 감시 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원, 펀드와 운용사를 철저히 검증하고 판매했어야 할 은행, 증권사 등 모든 시스템이 한꺼번에 작동하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면서 "언론은 피해자들의 경제적 복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보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와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에 다가가는 보도가 현시점에서는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추미애-윤석열로 꼬리를 무는 듯한 싸움에 언론이 대리전 양상을 띠는 행태에서 새겨들어야 하는 지점입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11회는 < 윤석열 vs 추미애, 언론의 편파중계에 가려진 본질 >이라는 주제로 오는 11월 1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승현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김남근 변호사 겸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이지은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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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언론이 들려주는 범죄의 재구성(feat.라임·옵티머스)
    • 입력 2020-10-31 08:00:40
    저널리즘 토크쇼 J
"국정감사에 피해자들 사례가 올라가야 돼요. 은행과 운용사가 어떻게 피해자들을 속였는지 밝혀야 하는데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권력형 비리냐 아니냐, 그런 것보다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건인 '라임·옵티머스 사태' 피해자들의 목소리입니다. 피해자들은 시종일관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대형 금융범죄 사건인데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 로비 게이트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말이죠.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권은 이해득실의 셈법에 따라 서로 공격하기 바쁩니다.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은 정치권의 설전 뒤로 숨었습니다. 숨죽이고 있을 금융관료들을 불러내 책임 추궁을 해야 할 언론들은 정치권의 싸움 구경에만 쏠려 있습니다. 심지어 편을 갈라 응원전까지 펼치는 모양새입니다. 피해자들은 언론의 외면이 그저 원망스럽습니다.


언론이 피해자에게 주목하지 않았다는 건 보도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일부터 24일까지 일간지 5곳과 경제지 2곳에 대해 지면 보도를 살펴본 결과, 라임·옵티머스 관련 전체 658건의 기사 가운데 정치권 갈등과 의혹을 다룬 보도가 400건을 차지했습니다. 전체의 약 60%에 달합니다. 반면에 사모펀드 피해자를 조명하는 보도는 24건에 불과했습니다.

언론이 피해자 대신 주목한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라임의 배후 전주(錢主)로 지목된 김봉현 씨의 입이었습니다. 김 씨는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폭로에 이어 검사들에게 술 접대를 했다는 등 정관계 비리 의혹을 폭로하고 있는 사건 당사자입니다. 언론은 김 씨의 말과 글에서 나온 폭로성 의혹을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보도들을 살펴보면, 언론이 김 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폭로 보도의 기본 원칙은 첫째 폭로자가 어떤 동기로 폭로하는지,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따지는 폭로자에 대한 검증을 선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둘째 폭로 내용에 대해서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교차 검증해야 합니다. 김 씨 관련 폭로 보도 가운데 이런 원칙을 지킨 보도, 얼마나 될까요?



언론은 또 라임 사태와 관련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촉발된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신경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이른바 '부하'라는 단어가 언론에 의해 논쟁적으로 재생산되며 마치 싸움을 부추기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J'에 출연한 김남근 변호사는 "과거 검찰은 법무부를 검찰이 장악하는 기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법무부와 검찰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라며 "언론이라면 현 시대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짚어줘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서로 칼싸움을 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만 나와서 왜 대립을 하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논의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전조가 있었지만, 언론은 그 신호를 무시했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경제가 사모펀드 업계 1위였던 라임의 편법 거래를 문제 삼는 기사를 최초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운용사였던 라임이 언론에 반박 보도자료를 뿌렸는데요. 당시 언론들은 라임의 반박 입장을 취재 없이 그냥 받아 썼습니다. 심지어 조진형 기자의 기사가 지라시성 의혹이라며 문제 제기를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의 취재 경쟁이 라임 편법 거래 의혹에 맞춰졌었더라면 투자자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언론은 금융 피해자들을 소외시킨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언론 보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까요?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J’ 인터뷰 장면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모펀드에 대한 사전적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한 금융위원회와 이를 감시 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원, 펀드와 운용사를 철저히 검증하고 판매했어야 할 은행, 증권사 등 모든 시스템이 한꺼번에 작동하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면서 "언론은 피해자들의 경제적 복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보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와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에 다가가는 보도가 현시점에서는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추미애-윤석열로 꼬리를 무는 듯한 싸움에 언론이 대리전 양상을 띠는 행태에서 새겨들어야 하는 지점입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11회는 < 윤석열 vs 추미애, 언론의 편파중계에 가려진 본질 >이라는 주제로 오는 11월 1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승현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김남근 변호사 겸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이지은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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