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사표 물릴 수 있나요?…‘교육비 5천만 원’ 토해내라는데

입력 2020.10.3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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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누구나 가슴 한쪽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하지만 이를 제출하기는 여러모로 쉽지 않죠. 그런데 사직서를 회사에 제출했는데, 나중에 이를 철회할 수 있을까요? 이를 다룬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대학원 진학 승인 못 받자 사직원 제출

2015년부터 외국계 국내 합작회사에 다니던 A 씨는 고압 직류송전 관련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해 왔습니다. A 씨는 2017년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회사 인사담당 이사에게 자신의 대학원 진학 결정 사실을 알리며 개인적 학업을 위한 휴직을 요청했지만, 회사 경영위원회는 A 씨의 휴직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A 씨는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고, 2017년 7월 말 기획팀 직원에게 대학원 진학으로 인한 사직 의사 표시와 함께 관련 양식과 절차 및 사직 가능 일자를 안내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해당 직원은 같은 날 이메일로 A 씨에게 사직 관련 양식을 보내면서 사직 절차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A 씨는 이후 소속 팀장에게 대학원 진학을 위한 휴직이 불승인된 관계로 미래가 불투명하여 자기 발전을 위해 8월 28일 자로 사직하겠다는 의사 표시와 함께 사직서 작성일(같은 달 21일), 마지막 출근일(같은 달 22일) 등을 스스로 지정하여 기재한 내용이 담긴 '사직서 제출일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 사직원 제출 후 회사 "교육비 4900만 원 반환" 요청에 "사직서 제출 취소"

그런데 A 씨가 다니던 회사는 2012년부터 기술직군 직원들은 모두 초고압 직류송전(HVDC)과 관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해외 교육과정에 참여해 현지 기술을 전수받도록 해 왔고, A 씨 역시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약 1년 정도 영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교육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때 A 씨는 위 교육과정 참여와 관련해 위 교육종료일 다음날부터 HVDC 변환설비 건설 프로젝트 종료일인 2025년 7월까지를 의무재직기간으로 하되, 그사이에 퇴직할 경우 교육에 든 비용을 변상하기로 하는 약정을 회사와 체결했습니다.

기획팀 직원은 A 씨에게 먼저 안내하였던 사직 처리 제출 양식 중에서 '교육비 상계동의서'가 누락된 것을 확인하고 상계동의서를 포함한 사직 관련 양식을 원고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A 씨는 같은 날 회사 직원에게 '자신의 퇴직금과 반환해야 하는 교육비를 상계 처리하자'는 취지의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A 씨는 이후 스스로 퇴사일을 같은 달 28일로 지정한 사직원('본인은 일신상의 사유(관련분야 진학에 의한 1년 휴직 요청 승인 불가)로 2017년 8월 28일부로 회사를 사직하고자 이에 사직원을 제출합니다'라는 내용)과 비밀유지 각서 및 상계동의서를 작성하여 기획팀 직원에게 보냈고, 회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직인사'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낸 데 이어 사원증과 복지카드 등을 반납했습니다.

A 씨의 사직원은 대표이사에게 구두 보고돼 사직처리가 완료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A 씨가 회사에 내야 할 교육비가 너무 많았단 점이었습니다.

A 씨의 상사는 A 씨와 면담하면서 반환해야 할 교육비가 4900만 원이라는 점을 알렸고, 기획팀 직원은 회사 대표이사를 숨은 참조로 A 씨에게 퇴직금과 성과급, 최종 교육비 납부금액 및 납부기한 등을 적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A 씨는 반환해야 할 교육비를 감액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알자, 상사에게 '아직 사직서 기안이 안 올라갔고 경영진 결재가 안 났다면 사직서 및 기타서류 제출 취소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회사는 그러나 A 씨에게 "사직원 제출을 통한 귀하(원고)의 사직 의사는 2017년 8월 22일(화) 즉시 수리되어 정상 승인되었으며, 요청한 2017년 8월 28일(월)자로 퇴사 처리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사직원 처리를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부당 해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회사에 휴직 신청을 하였으나, 회사가 휴직을 승인하지 않고 사직서 제출을 압박함에 따라 원고 내심의 의사와 다르게 사직원을 제출하였는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사직원 제출은 무효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법 제107조 제1항은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즉 회사가 A 씨의 사표 제출이 자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사직서를 수리했단 주장입니다.

이어 A 씨는 "만일 사직서 제출이 유효하더라도 사직서 제출 다음 날 사직 의사를 철회하였는바, 그럼에도 회사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원고를 퇴직 처리하였으므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면서 "퇴직처리는 무효이고, 회사가 미지급 급여 50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회사의 강압·기망 없어…A 씨의 사표 제출 의사는 진짜"

그동안 대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킨 경우,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하였다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 할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자가 사직서 제출에 따른 사직의 의사표시를 수락함으로써 사용자와 근로자의 근로계약 관계는 해지되어 종료되는 것이므로 사용자의 의원면직처분을 해고라고는 볼 수 없다"고 봐 왔습니다.

여기서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있어서의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해당자가 의사표시의 내용을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을 경우, 이를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부장판사 박성인)는 이런 법리를 근거로 '사표 제출이 진짜 의사가 아니었다'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의 주장에 대해 "원고가 사직원을 제출할 당시 비록 사직의 의사표시를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사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사직원을 제출하였던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사직원 제출이 무효라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가 대학원 진학을 위하여 휴직 신청을 하였다가 회사로부터 휴직 승인을 받지 못하자 사직원을 제출하게 된 것인 점 △휴직 승인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회사에 있으므로, 회사가 경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원고의 휴직신청을 불허한 것은 위법하다거나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점 △A 씨는 휴직 신청이 불승인되자 사직 절차 안내 및 관련 서류 양식 등을 요청하였고, 사직원을 제출한 당일 회사 전 직원에게 사직인사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였던 점 △그 과정에서 회사가 A 씨에게 강압적으로 사직원 제출을 요구하였다거나 기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 "사직서 내용은 사직 승낙 구하는 게 아니라 근로관계 종료 의사"

법원은 A 씨가 사직의사표시를 철회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사직의 의사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로 볼 것인 바, 사직 의사표시가 해약의 고지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근로자로서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이를 철회할 수 없다. 그러나 근로자가 사직원을 제출하여 근로계약 관계의 합의해지를 청약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사용자의 승낙의사가 형성되어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이전에는 그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고, 다만 근로자의 사직 의사표시 철회가 사용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주는 등 신의칙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그 철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 왔습니다.

여기서 근로자의 사직 의사표시가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인지 아니면 사용자에 대한 근로계약관계 합의해지의 청약인지 여부는 그 의사표시가 기재된 사직서의 구체적인 내용, 사직서 작성․제출의 동기 및 경위, 사직서 제출 이후의 상황 등이 기준이 됩니다.

법원은 "A 씨의 사직원을 통한 사직의 의사표시는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해약고지로 봄이 타당하고, 사직의 의사표시가 피고에 도달한 이상 원고로서는 이를 철회할 수 없다"며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 씨는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하였다가 회사로부터 거부되자 수차례 사직의사를 밝혔으며, 제출한 사직원의 내용은 그 문언상 사직에 대한 회사의 승낙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로관계를 확정적으로 종료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보이는 점 △회사 취업규칙에 따르면 직원이 퇴직할 경우 회사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으나, 이는 일반적인 퇴직 절차를 규정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부터 사직원을 제출하는 근로자의 의사를 해약고지가 아닌 합의해지의 청약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해약고지에 있어서도 근로자의 퇴직 의사를 확인하고 수리한다는 의미에서의 회사의 승인 절차는 요구될 수 있음)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이어 "만약 A 씨의 사직 의사표시를 합의해지의 청약이라 보더라도 피고 직무권한규정상 퇴직의 직무권한자는 사장인데, 원고가 사직원을 제출한 당일 피고 대표이사에게 구두 보고가 이루어졌고 기획팀 직원이 퇴직일 확정에 따른 퇴직금액 등을 안내하는 이메일을 발송한 점에 비추어보면 원고의 사직의사에 대한 사용자인 피고의 승낙의사가 형성되어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A 씨에게도 도달했다"며 "그 이후 원고가 상사에게 문자메시지로 한 사직 의사표시 철회는 유효한 사직 의사표시 철회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 측은 "사직원에 대표이사의 결재가 누락되어 피고 직무권한규정상의 절차상 위법이 있고, 유효한 사직처리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직원이 회사 대표이사에게 구두로 보고된 이상 직무권한규정상의 위법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A 씨의 사직서 제출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고, 사직의 의사표시가 유효하게 철회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A 씨와 회사의 근로계약관계는 A 씨가 사직서에 기재한 일자가 경과함으로써 종료되었다"면서 A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2심에서 항소 기각됐고,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돼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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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사표 물릴 수 있나요?…‘교육비 5천만 원’ 토해내라는데
    • 입력 2020-10-31 09:02:51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누구나 가슴 한쪽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하지만 이를 제출하기는 여러모로 쉽지 않죠. 그런데 사직서를 회사에 제출했는데, 나중에 이를 철회할 수 있을까요? 이를 다룬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대학원 진학 승인 못 받자 사직원 제출

2015년부터 외국계 국내 합작회사에 다니던 A 씨는 고압 직류송전 관련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해 왔습니다. A 씨는 2017년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회사 인사담당 이사에게 자신의 대학원 진학 결정 사실을 알리며 개인적 학업을 위한 휴직을 요청했지만, 회사 경영위원회는 A 씨의 휴직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A 씨는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고, 2017년 7월 말 기획팀 직원에게 대학원 진학으로 인한 사직 의사 표시와 함께 관련 양식과 절차 및 사직 가능 일자를 안내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해당 직원은 같은 날 이메일로 A 씨에게 사직 관련 양식을 보내면서 사직 절차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A 씨는 이후 소속 팀장에게 대학원 진학을 위한 휴직이 불승인된 관계로 미래가 불투명하여 자기 발전을 위해 8월 28일 자로 사직하겠다는 의사 표시와 함께 사직서 작성일(같은 달 21일), 마지막 출근일(같은 달 22일) 등을 스스로 지정하여 기재한 내용이 담긴 '사직서 제출일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 사직원 제출 후 회사 "교육비 4900만 원 반환" 요청에 "사직서 제출 취소"

그런데 A 씨가 다니던 회사는 2012년부터 기술직군 직원들은 모두 초고압 직류송전(HVDC)과 관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해외 교육과정에 참여해 현지 기술을 전수받도록 해 왔고, A 씨 역시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약 1년 정도 영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교육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때 A 씨는 위 교육과정 참여와 관련해 위 교육종료일 다음날부터 HVDC 변환설비 건설 프로젝트 종료일인 2025년 7월까지를 의무재직기간으로 하되, 그사이에 퇴직할 경우 교육에 든 비용을 변상하기로 하는 약정을 회사와 체결했습니다.

기획팀 직원은 A 씨에게 먼저 안내하였던 사직 처리 제출 양식 중에서 '교육비 상계동의서'가 누락된 것을 확인하고 상계동의서를 포함한 사직 관련 양식을 원고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A 씨는 같은 날 회사 직원에게 '자신의 퇴직금과 반환해야 하는 교육비를 상계 처리하자'는 취지의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A 씨는 이후 스스로 퇴사일을 같은 달 28일로 지정한 사직원('본인은 일신상의 사유(관련분야 진학에 의한 1년 휴직 요청 승인 불가)로 2017년 8월 28일부로 회사를 사직하고자 이에 사직원을 제출합니다'라는 내용)과 비밀유지 각서 및 상계동의서를 작성하여 기획팀 직원에게 보냈고, 회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직인사'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낸 데 이어 사원증과 복지카드 등을 반납했습니다.

A 씨의 사직원은 대표이사에게 구두 보고돼 사직처리가 완료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A 씨가 회사에 내야 할 교육비가 너무 많았단 점이었습니다.

A 씨의 상사는 A 씨와 면담하면서 반환해야 할 교육비가 4900만 원이라는 점을 알렸고, 기획팀 직원은 회사 대표이사를 숨은 참조로 A 씨에게 퇴직금과 성과급, 최종 교육비 납부금액 및 납부기한 등을 적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A 씨는 반환해야 할 교육비를 감액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알자, 상사에게 '아직 사직서 기안이 안 올라갔고 경영진 결재가 안 났다면 사직서 및 기타서류 제출 취소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회사는 그러나 A 씨에게 "사직원 제출을 통한 귀하(원고)의 사직 의사는 2017년 8월 22일(화) 즉시 수리되어 정상 승인되었으며, 요청한 2017년 8월 28일(월)자로 퇴사 처리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사직원 처리를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부당 해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회사에 휴직 신청을 하였으나, 회사가 휴직을 승인하지 않고 사직서 제출을 압박함에 따라 원고 내심의 의사와 다르게 사직원을 제출하였는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사직원 제출은 무효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법 제107조 제1항은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즉 회사가 A 씨의 사표 제출이 자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사직서를 수리했단 주장입니다.

이어 A 씨는 "만일 사직서 제출이 유효하더라도 사직서 제출 다음 날 사직 의사를 철회하였는바, 그럼에도 회사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원고를 퇴직 처리하였으므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면서 "퇴직처리는 무효이고, 회사가 미지급 급여 50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회사의 강압·기망 없어…A 씨의 사표 제출 의사는 진짜"

그동안 대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킨 경우,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하였다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 할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자가 사직서 제출에 따른 사직의 의사표시를 수락함으로써 사용자와 근로자의 근로계약 관계는 해지되어 종료되는 것이므로 사용자의 의원면직처분을 해고라고는 볼 수 없다"고 봐 왔습니다.

여기서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있어서의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해당자가 의사표시의 내용을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을 경우, 이를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부장판사 박성인)는 이런 법리를 근거로 '사표 제출이 진짜 의사가 아니었다'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의 주장에 대해 "원고가 사직원을 제출할 당시 비록 사직의 의사표시를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사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사직원을 제출하였던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사직원 제출이 무효라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가 대학원 진학을 위하여 휴직 신청을 하였다가 회사로부터 휴직 승인을 받지 못하자 사직원을 제출하게 된 것인 점 △휴직 승인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회사에 있으므로, 회사가 경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원고의 휴직신청을 불허한 것은 위법하다거나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점 △A 씨는 휴직 신청이 불승인되자 사직 절차 안내 및 관련 서류 양식 등을 요청하였고, 사직원을 제출한 당일 회사 전 직원에게 사직인사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였던 점 △그 과정에서 회사가 A 씨에게 강압적으로 사직원 제출을 요구하였다거나 기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 "사직서 내용은 사직 승낙 구하는 게 아니라 근로관계 종료 의사"

법원은 A 씨가 사직의사표시를 철회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사직의 의사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로 볼 것인 바, 사직 의사표시가 해약의 고지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근로자로서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이를 철회할 수 없다. 그러나 근로자가 사직원을 제출하여 근로계약 관계의 합의해지를 청약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사용자의 승낙의사가 형성되어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이전에는 그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고, 다만 근로자의 사직 의사표시 철회가 사용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주는 등 신의칙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그 철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 왔습니다.

여기서 근로자의 사직 의사표시가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인지 아니면 사용자에 대한 근로계약관계 합의해지의 청약인지 여부는 그 의사표시가 기재된 사직서의 구체적인 내용, 사직서 작성․제출의 동기 및 경위, 사직서 제출 이후의 상황 등이 기준이 됩니다.

법원은 "A 씨의 사직원을 통한 사직의 의사표시는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해약고지로 봄이 타당하고, 사직의 의사표시가 피고에 도달한 이상 원고로서는 이를 철회할 수 없다"며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 씨는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하였다가 회사로부터 거부되자 수차례 사직의사를 밝혔으며, 제출한 사직원의 내용은 그 문언상 사직에 대한 회사의 승낙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로관계를 확정적으로 종료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보이는 점 △회사 취업규칙에 따르면 직원이 퇴직할 경우 회사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으나, 이는 일반적인 퇴직 절차를 규정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부터 사직원을 제출하는 근로자의 의사를 해약고지가 아닌 합의해지의 청약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해약고지에 있어서도 근로자의 퇴직 의사를 확인하고 수리한다는 의미에서의 회사의 승인 절차는 요구될 수 있음)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이어 "만약 A 씨의 사직 의사표시를 합의해지의 청약이라 보더라도 피고 직무권한규정상 퇴직의 직무권한자는 사장인데, 원고가 사직원을 제출한 당일 피고 대표이사에게 구두 보고가 이루어졌고 기획팀 직원이 퇴직일 확정에 따른 퇴직금액 등을 안내하는 이메일을 발송한 점에 비추어보면 원고의 사직의사에 대한 사용자인 피고의 승낙의사가 형성되어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A 씨에게도 도달했다"며 "그 이후 원고가 상사에게 문자메시지로 한 사직 의사표시 철회는 유효한 사직 의사표시 철회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 측은 "사직원에 대표이사의 결재가 누락되어 피고 직무권한규정상의 절차상 위법이 있고, 유효한 사직처리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직원이 회사 대표이사에게 구두로 보고된 이상 직무권한규정상의 위법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A 씨의 사직서 제출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고, 사직의 의사표시가 유효하게 철회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A 씨와 회사의 근로계약관계는 A 씨가 사직서에 기재한 일자가 경과함으로써 종료되었다"면서 A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2심에서 항소 기각됐고,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돼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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