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지게 징역 가!”…폭언에 가족 협박한 수사 결말은?

입력 2020.11.02 (07:01) 수정 2020.11.0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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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KBS 탐사보도부는 광주지방경찰청에서 벌어진 강압수사의 전말을 고발했습니다. 보도가 나가고 강압수사 피해자들은 경찰과 국가를 상대로 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요?

[연관기사] [탐사 K] “가족까지 수사”…경찰, 피의자 협박에 강압수사?

■ "야무지게 징역 가!", "형 회사까지 털어"…강압 수사 결론은 '혐의없음'


지난 2018년 11월 13일, 광주지방경찰청 교통조사계 사무실. 35살 전 모 씨가 보험사기 공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녹음된 음성입니다.

"야무지게 징역을 가라", "XX 파버리려다 놔뒀다." 등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관입니다. '징역'이나 '응징' 같은 말로 자백을 하라던 경찰. 하지만 전 씨가 굽히지 않고 결백을 주장하자 경찰관은 느닷없이 전 씨의 가족 얘기를 꺼냈습니다. 전 씨의 형 회사에서 제대로 회계처리를 했는지 털어보겠다는 협박이었습니다. 형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전 씨가 항의했지만 경찰은 전 씨 앞에서 형과 직접 통화까지 했습니다.

전 씨는 결국 조사 50여 분만에 '허위 자백'을 했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머리가 멍해지며 그저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전 씨.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수사관을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수사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지 반년만인 지난 4월, 주범 김 씨를 비롯해 10명을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검찰 역시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자백까지 받아냈었지만, 결론은 애꿎은 시민들을 범죄자로 만들 뻔한 것입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강압 수사 이유 있었다"

막가파식 경찰 수사의 피해자는 전 씨뿐이 아니었습니다. 공범으로 지목된 2명의 피의자에게는 경찰이 직접 조서에 쓸 내용까지 불러줬습니다. '인권 경찰 시대'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들의 증언은 녹음 파일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주범과 공범으로 몰렸던 7명의 피의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강압수사 등 경찰 수사에 대한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사 과정의 불법성을 확인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3조 위반. 쉽게 말해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자를 조사할 때 두 명 이상의 조사관을 참여시켜야 하는데 해당 경찰관은 혼자 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인권위는 이 때문에 피의자들이 진술 강요를 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권위는 이와 관련해 광주지방경찰청장에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형사소송법 243조에 대한 직무 교육을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 드러난 진실, 강압수사의 최후


주범으로 지목됐던 김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법원은 국가가 김 씨에게 7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의 강압 수사는 김 씨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위법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또 해당 경찰관의 언행은 범행을 추궁하는 것을 넘어 피의자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경찰관은 어떻게 됐을까요? 보도 직후 감사에 착수한 광주지방경찰청은 해당 경찰관이 수사 부서장의 승인 없이 수사를 반년 이상 지연시켰고, 조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사용하는 등 강압 수사한 사실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이 경찰관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57조 복종 의무, 제63조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해 '불문 경고'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김 씨는 KBS 보도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을 통해 억울함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여전히 강압 수사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권력이란 "국가나 공공 단체가 우월한 의사의 주체로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 공권력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국민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공권력은 누구로부터 주어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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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무지게 징역 가!”…폭언에 가족 협박한 수사 결말은?
    • 입력 2020-11-02 07:01:28
    • 수정2020-11-02 11:16:57
    탐사K
지난해 9월, KBS 탐사보도부는 광주지방경찰청에서 벌어진 강압수사의 전말을 고발했습니다. 보도가 나가고 강압수사 피해자들은 경찰과 국가를 상대로 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요?

[연관기사] [탐사 K] “가족까지 수사”…경찰, 피의자 협박에 강압수사?

■ "야무지게 징역 가!", "형 회사까지 털어"…강압 수사 결론은 '혐의없음'


지난 2018년 11월 13일, 광주지방경찰청 교통조사계 사무실. 35살 전 모 씨가 보험사기 공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녹음된 음성입니다.

"야무지게 징역을 가라", "XX 파버리려다 놔뒀다." 등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관입니다. '징역'이나 '응징' 같은 말로 자백을 하라던 경찰. 하지만 전 씨가 굽히지 않고 결백을 주장하자 경찰관은 느닷없이 전 씨의 가족 얘기를 꺼냈습니다. 전 씨의 형 회사에서 제대로 회계처리를 했는지 털어보겠다는 협박이었습니다. 형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전 씨가 항의했지만 경찰은 전 씨 앞에서 형과 직접 통화까지 했습니다.

전 씨는 결국 조사 50여 분만에 '허위 자백'을 했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머리가 멍해지며 그저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전 씨.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수사관을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수사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지 반년만인 지난 4월, 주범 김 씨를 비롯해 10명을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검찰 역시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자백까지 받아냈었지만, 결론은 애꿎은 시민들을 범죄자로 만들 뻔한 것입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강압 수사 이유 있었다"

막가파식 경찰 수사의 피해자는 전 씨뿐이 아니었습니다. 공범으로 지목된 2명의 피의자에게는 경찰이 직접 조서에 쓸 내용까지 불러줬습니다. '인권 경찰 시대'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들의 증언은 녹음 파일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주범과 공범으로 몰렸던 7명의 피의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강압수사 등 경찰 수사에 대한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사 과정의 불법성을 확인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3조 위반. 쉽게 말해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자를 조사할 때 두 명 이상의 조사관을 참여시켜야 하는데 해당 경찰관은 혼자 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인권위는 이 때문에 피의자들이 진술 강요를 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권위는 이와 관련해 광주지방경찰청장에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형사소송법 243조에 대한 직무 교육을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 드러난 진실, 강압수사의 최후


주범으로 지목됐던 김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법원은 국가가 김 씨에게 7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의 강압 수사는 김 씨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위법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또 해당 경찰관의 언행은 범행을 추궁하는 것을 넘어 피의자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경찰관은 어떻게 됐을까요? 보도 직후 감사에 착수한 광주지방경찰청은 해당 경찰관이 수사 부서장의 승인 없이 수사를 반년 이상 지연시켰고, 조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사용하는 등 강압 수사한 사실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이 경찰관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57조 복종 의무, 제63조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해 '불문 경고'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김 씨는 KBS 보도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을 통해 억울함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여전히 강압 수사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권력이란 "국가나 공공 단체가 우월한 의사의 주체로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 공권력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국민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공권력은 누구로부터 주어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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