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정당·이기는 정당”…5년 전과 같은 목표, 다른 길

입력 2020.11.02 (18:33) 수정 2020.11.02 (18:3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민주당이 오늘(2일), 지난 주말 실시한 전 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헌 개정을 통해 내년 4월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지 물었는데, 응답자의 86.6%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투표율은 26%(총 투표자수 21만 1,804명)
를 기록했습니다.

민주당은 바로 내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헌을 개정할 계획입니다. 현재 당헌의 이른바 '귀책 사유' 조항에 단서를 달아서, 당 소속 공직자 잘못으로 보궐 선거를 하게 되더라도 전 당원 투표를 통해 후보를 추천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지난 주말 민주당이 부쳤던 투표의 문구는 이랬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헌 96조 2항을 개정해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이에 찬성하십니까?"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86.6%라는 압도적은 찬성률은 재보궐 선거에서 공천해야 한다는 전 당원의 의지의 표출"이고 "이낙연 대표와 지도부의 결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보궐선거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당 안팎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혁신해야 산다"…5년 전에도 당헌 개정 이유였던 '책임 정당'

내년 4월 보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바꾸겠다고 한 조항은 사실 민주당 '혁신'의 산물입니다.

2015년 4월,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 선거 참패 후 당내 갈등과 지지율 하락 같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대표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혁신위는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에 첫 번째 혁신안을 내놓는데, 문제의 '귀책 사유' 조항은 바로 여기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당헌 112조 2항은 이미 '귀책 사유' 조항이었지만, 여기서 '잘못'의 범위를 넓히고 '무(無)공천'을 명시해 더 강화했습니다. 지금 민주당 당헌 96조가 바로 이때 개정된 것입니다.


김상곤 당시 혁신위원장은 2015년 6월 23일, 이 같은 안을 "당 기강을 확립하고 책임지는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같은 해 7월, 당시 문재인 대표도 혁신안을 받아들여 이 조항을 포함해 당헌 개정을 결정한 중앙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해서 혁신해야 합니다. 유능한 경제 정당, 이기는 정당,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야 국민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 저는 이 혁신안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불편하고 두렵고 불안해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 2015년 7월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 당시 문재인 대표


■ "송구하지만 서울·부산 1,300만 시민 선택권 달렸다"

요컨대 '책임 정치'와 '수권 정당'의 실현이 혁신안과 당헌 개정의 목표이자 명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민주당과 이낙연 대표가 당원 투표를 하겠다며 밝힌 이유와도 비슷합니다. 민주당이 지난 주말 온라인 투표를 할 때 투표를 독려하며 했던 문구는 이렇습니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완수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2021년 재보선 승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낙연 대표도 오늘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는 건 유권자의 선택권 존중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5년 전과 목표는 같은데, 완전히 반대 선택을 하게 된 겁니다.

게다가 오늘 당원 투표 결과와 당헌 개정 방침을 밝힌 최인호 수석대변인, 5년 전에는 이 당헌 개정안을 만들었던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위원이었습니다. 스스로 참여했던 혁신안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이제는 지도부 일원으로서 발표하게 된 겁니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최 수석대변인은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최 수석대변인은 "누차 말씀드렸듯이 서울과 부산이라는 1,300만 명의 시민들의 선택권이 달린 결정"이라며 "그런 중요한 문제에 대한 전 당원의 뜻을 묻는 게 맞고 당원의 압도적 찬성으로 당헌 개정을 착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 뜻을 따라 신속하게 당헌을 개정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민주당 당규가 전 당원 투표의 성립 요건을 '투표권자 1/3 이상 투표'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 유효 논란도 제기됐는데, 민주당은 이 조항이 권리당원 청구로 이뤄지는 투표에 대한 것이고, 이번 투표는 지도부 직권으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본 투표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 국민의힘 "정직성 상실"…정의당 "책임 정치 내팽개쳤다"

야권은 그야말로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당헌을 바꿔가면서까지 공천한다는 게 약속 위반이라는 반발이 가장 큽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당원들 투표만 가지고 뒤집는다는 게 온당한 건지 우리 모두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직성을 상실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공천 방침이 "(성추행) 피해자를 향한 제3차 가해"라며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폭거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정의당 장혜영 원내대변인도 "민주 정치의 의사 결정 과정의 꽃인 당원 투표는 그저 원칙을 뒤집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정치 개혁을 위해 스스로 내세웠던 책임 정치의 기치를 결국 자기 손으로 내팽개친 셈이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4월 총선 당시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차례 뒤집은 바 있습니다. 이번 투표 때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만든 건 좀 지키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요.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 대표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유력한 여권의 대선주자이기도 한 이낙연 대표의 '결단'이 보궐선거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관심사입니다. 민주당이 밝혔듯이, 내년 보궐선거 결과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책임 정당·이기는 정당”…5년 전과 같은 목표, 다른 길
    • 입력 2020-11-02 18:33:12
    • 수정2020-11-02 18:34:12
    취재K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민주당이 오늘(2일), 지난 주말 실시한 전 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헌 개정을 통해 내년 4월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지 물었는데, 응답자의 86.6%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투표율은 26%(총 투표자수 21만 1,804명)
를 기록했습니다.

민주당은 바로 내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헌을 개정할 계획입니다. 현재 당헌의 이른바 '귀책 사유' 조항에 단서를 달아서, 당 소속 공직자 잘못으로 보궐 선거를 하게 되더라도 전 당원 투표를 통해 후보를 추천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지난 주말 민주당이 부쳤던 투표의 문구는 이랬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헌 96조 2항을 개정해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이에 찬성하십니까?"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86.6%라는 압도적은 찬성률은 재보궐 선거에서 공천해야 한다는 전 당원의 의지의 표출"이고 "이낙연 대표와 지도부의 결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보궐선거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당 안팎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혁신해야 산다"…5년 전에도 당헌 개정 이유였던 '책임 정당'

내년 4월 보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바꾸겠다고 한 조항은 사실 민주당 '혁신'의 산물입니다.

2015년 4월,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 선거 참패 후 당내 갈등과 지지율 하락 같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대표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혁신위는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에 첫 번째 혁신안을 내놓는데, 문제의 '귀책 사유' 조항은 바로 여기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당헌 112조 2항은 이미 '귀책 사유' 조항이었지만, 여기서 '잘못'의 범위를 넓히고 '무(無)공천'을 명시해 더 강화했습니다. 지금 민주당 당헌 96조가 바로 이때 개정된 것입니다.


김상곤 당시 혁신위원장은 2015년 6월 23일, 이 같은 안을 "당 기강을 확립하고 책임지는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같은 해 7월, 당시 문재인 대표도 혁신안을 받아들여 이 조항을 포함해 당헌 개정을 결정한 중앙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해서 혁신해야 합니다. 유능한 경제 정당, 이기는 정당,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야 국민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 저는 이 혁신안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불편하고 두렵고 불안해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 2015년 7월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 당시 문재인 대표


■ "송구하지만 서울·부산 1,300만 시민 선택권 달렸다"

요컨대 '책임 정치'와 '수권 정당'의 실현이 혁신안과 당헌 개정의 목표이자 명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민주당과 이낙연 대표가 당원 투표를 하겠다며 밝힌 이유와도 비슷합니다. 민주당이 지난 주말 온라인 투표를 할 때 투표를 독려하며 했던 문구는 이렇습니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완수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2021년 재보선 승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낙연 대표도 오늘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는 건 유권자의 선택권 존중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5년 전과 목표는 같은데, 완전히 반대 선택을 하게 된 겁니다.

게다가 오늘 당원 투표 결과와 당헌 개정 방침을 밝힌 최인호 수석대변인, 5년 전에는 이 당헌 개정안을 만들었던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위원이었습니다. 스스로 참여했던 혁신안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이제는 지도부 일원으로서 발표하게 된 겁니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최 수석대변인은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최 수석대변인은 "누차 말씀드렸듯이 서울과 부산이라는 1,300만 명의 시민들의 선택권이 달린 결정"이라며 "그런 중요한 문제에 대한 전 당원의 뜻을 묻는 게 맞고 당원의 압도적 찬성으로 당헌 개정을 착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 뜻을 따라 신속하게 당헌을 개정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민주당 당규가 전 당원 투표의 성립 요건을 '투표권자 1/3 이상 투표'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 유효 논란도 제기됐는데, 민주당은 이 조항이 권리당원 청구로 이뤄지는 투표에 대한 것이고, 이번 투표는 지도부 직권으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본 투표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 국민의힘 "정직성 상실"…정의당 "책임 정치 내팽개쳤다"

야권은 그야말로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당헌을 바꿔가면서까지 공천한다는 게 약속 위반이라는 반발이 가장 큽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당원들 투표만 가지고 뒤집는다는 게 온당한 건지 우리 모두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직성을 상실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공천 방침이 "(성추행) 피해자를 향한 제3차 가해"라며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폭거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정의당 장혜영 원내대변인도 "민주 정치의 의사 결정 과정의 꽃인 당원 투표는 그저 원칙을 뒤집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정치 개혁을 위해 스스로 내세웠던 책임 정치의 기치를 결국 자기 손으로 내팽개친 셈이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4월 총선 당시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차례 뒤집은 바 있습니다. 이번 투표 때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만든 건 좀 지키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요.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 대표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유력한 여권의 대선주자이기도 한 이낙연 대표의 '결단'이 보궐선거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관심사입니다. 민주당이 밝혔듯이, 내년 보궐선거 결과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