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에 지하철 적자 6천억 원…누가 부담해야 하나?

입력 2020.11.04 (17:34) 수정 2020.11.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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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질환을 앓던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격이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지하철이 코로나19 사태에 휘청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이동이 줄면서 이용승객은 급감한 반면, 방역 비용 등은 오히려 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1조 원대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단기 회사채로는 당장 연말에 상환 기일이 돌아오는 채무를 감당할 수 없어, 2년째 서울시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올해는 연말에 지급해야 하는 임금성 일부 수당도 사실상 체불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공사 측의 한 관계자는 "적자 구조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기저질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처럼 심각한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다른 대도시 지하철 운영기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6개 기관의 '코로나19로 인한 운영손실'만 5,388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급기야 이들 6개 교통공사와 노동조합이 적자 구조를 해결해달라며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무임승차' 손실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 무임승차 도입한 중앙정부…손실 보전은 국가 공기업 '코레일' 구간만

지하철 무임승차는 '무상복지'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시작됐습니다. 지금처럼 누구나 65세가 되면,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게 된 건 1984년부터입니다. 이듬해엔 국가유공자, 1991년부터는 장애인으로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보편적 교통복지'인 겁니다.


그런데 노령화에 따라 이 무임승차 대상자가 크게 늘면서, 지하철 운영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노인 인구 비중은 5.9%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이 비율이 15.7%, 5년 뒤엔 20%를 넘게 됩니다. 문제는 늘어나는 부담을 지하철 운영기관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겁니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발생한 적자 가운데 무임손실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63%, 부산의 경우 92%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하철 운영기관들은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설계한 복지제도인데, 그 비용을 운영기관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국가 공기업인 코레일에는 정부가 손실보전을 해주고 있다면서,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1호선 서울교통공사 구간인 서울역~청량리에서 탑승한 노인의 무임승차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습니다. 반면 남영역이나, 회기역에서 탑승한 노인의 무임승차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1호선에는 코레일 열차와 서울교통공사 열차가 함께 달리고 승객은 구분 없이 이용하는데 정부의 지원은 구분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코레일에 보전해준 비용은 1,764억 원, 무임승차 손실액의 61% 수준입니다. 6개 지하철 운영기관의 운영구간과 승객이 더 많기 때문에, 같은 수준으로 지원한다면 국비 3,400억 원이 필요합니다. 6개 기관들은 법을 개정해서, 무임승차 등 공익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비용을 '원인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그 지원 대상에 지하철 운영기관도 포함하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낡고 위험해진 서민의 발'… 노후시설 교체 비용만 1조 5천억 원 필요

운임손실 문제는 지하철의 안전성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주요 시설물 약 2만 3900개 가운데 1/3은 이미 내구연한을 지났거나 30년 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선로 7,400km 가운데 절반이 넘는 4,245km가 내구연한을 지났거나 30년 넘게 쓰고 있습니다. 277개 역 소방시설의 53%는 30년을 넘겨 교체 없이 사용 중입니다. 지하철 전동차의 2/3는 20년 넘게 달리는 중입니다. 전체가 내구연한 이내인 설비는 광전송설비가 유일합니다.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은 노후시설 교체를 위해서 연간 1조 5,495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6개 기관들은 "무임손실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인 운영난으로 인해, 시설물의 적기 교체를 위한 재투자 비용을 확보하기 어려워 시설이 노후화되고 시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 "무임승차제도 유지 76%"… 중앙정부 지원 없으면 요금인상 수순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국민들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 많습니다. 6개 기관이 사회문화발전연구원에 의뢰해 지난달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2.3%만이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30%는 유지, 46.3%는 변경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무임승차 제도를 알고 있는 시민들은 그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이 70.7%로 나타났습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반씩 부담하라는 의견이 46.8%였고 국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23.9%였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도시철도 건설비를 지원했으니, 운영비는 지자체와 운영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실은 광역지자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서울시도 내년도 예산안에 처음으로 지하철 운영 지원에 500억 원을 편성했을 뿐입니다. 1조 원을 넘나드는 연간 적자 규모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이 때문에 5년째 1,250원인 서울지하철 요금 인상 가능성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와 시의회는 10월말 지하철 요금을 200원 정도 인상하는 내용의 시민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와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다시 일정이 무기한 미뤄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2일 기자설명회에서 "지금은 코로나19로 워낙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살림살이도 고려해서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기와 요금 인상 폭에 대해서는 별도로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러면서 "자구 노력과 함께 중앙정부의 국비 확보를 위해 과거 어느 때보다 노력 중이다"라고 정부 지원을 거듭 호소했습니다. 서울시 사정이 이 정도니, 재정자립도가 50%를 넘기지 못하는 지방 대도시는 지하철 운영비를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대중교통이란... 재택근무 불가능한 필수노동자의 교통수단

대중교통은 늘 서민의 교통수단이었지만, 코로나19 시대의 지하철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할 수 없거나,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이들의 교통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감염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재평가만큼이나, 대중교통의 공공성도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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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4 17:34:17
    • 수정2020-11-04 21:30:24
    취재K

■"기저질환을 앓던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격이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지하철이 코로나19 사태에 휘청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이동이 줄면서 이용승객은 급감한 반면, 방역 비용 등은 오히려 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1조 원대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단기 회사채로는 당장 연말에 상환 기일이 돌아오는 채무를 감당할 수 없어, 2년째 서울시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올해는 연말에 지급해야 하는 임금성 일부 수당도 사실상 체불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공사 측의 한 관계자는 "적자 구조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기저질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처럼 심각한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다른 대도시 지하철 운영기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6개 기관의 '코로나19로 인한 운영손실'만 5,388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급기야 이들 6개 교통공사와 노동조합이 적자 구조를 해결해달라며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무임승차' 손실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 무임승차 도입한 중앙정부…손실 보전은 국가 공기업 '코레일' 구간만

지하철 무임승차는 '무상복지'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시작됐습니다. 지금처럼 누구나 65세가 되면,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게 된 건 1984년부터입니다. 이듬해엔 국가유공자, 1991년부터는 장애인으로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보편적 교통복지'인 겁니다.


그런데 노령화에 따라 이 무임승차 대상자가 크게 늘면서, 지하철 운영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노인 인구 비중은 5.9%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이 비율이 15.7%, 5년 뒤엔 20%를 넘게 됩니다. 문제는 늘어나는 부담을 지하철 운영기관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겁니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발생한 적자 가운데 무임손실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63%, 부산의 경우 92%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하철 운영기관들은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설계한 복지제도인데, 그 비용을 운영기관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국가 공기업인 코레일에는 정부가 손실보전을 해주고 있다면서,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1호선 서울교통공사 구간인 서울역~청량리에서 탑승한 노인의 무임승차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습니다. 반면 남영역이나, 회기역에서 탑승한 노인의 무임승차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1호선에는 코레일 열차와 서울교통공사 열차가 함께 달리고 승객은 구분 없이 이용하는데 정부의 지원은 구분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코레일에 보전해준 비용은 1,764억 원, 무임승차 손실액의 61% 수준입니다. 6개 지하철 운영기관의 운영구간과 승객이 더 많기 때문에, 같은 수준으로 지원한다면 국비 3,400억 원이 필요합니다. 6개 기관들은 법을 개정해서, 무임승차 등 공익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비용을 '원인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그 지원 대상에 지하철 운영기관도 포함하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낡고 위험해진 서민의 발'… 노후시설 교체 비용만 1조 5천억 원 필요

운임손실 문제는 지하철의 안전성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주요 시설물 약 2만 3900개 가운데 1/3은 이미 내구연한을 지났거나 30년 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선로 7,400km 가운데 절반이 넘는 4,245km가 내구연한을 지났거나 30년 넘게 쓰고 있습니다. 277개 역 소방시설의 53%는 30년을 넘겨 교체 없이 사용 중입니다. 지하철 전동차의 2/3는 20년 넘게 달리는 중입니다. 전체가 내구연한 이내인 설비는 광전송설비가 유일합니다.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은 노후시설 교체를 위해서 연간 1조 5,495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6개 기관들은 "무임손실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인 운영난으로 인해, 시설물의 적기 교체를 위한 재투자 비용을 확보하기 어려워 시설이 노후화되고 시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 "무임승차제도 유지 76%"… 중앙정부 지원 없으면 요금인상 수순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국민들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 많습니다. 6개 기관이 사회문화발전연구원에 의뢰해 지난달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2.3%만이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30%는 유지, 46.3%는 변경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무임승차 제도를 알고 있는 시민들은 그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이 70.7%로 나타났습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반씩 부담하라는 의견이 46.8%였고 국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23.9%였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도시철도 건설비를 지원했으니, 운영비는 지자체와 운영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실은 광역지자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서울시도 내년도 예산안에 처음으로 지하철 운영 지원에 500억 원을 편성했을 뿐입니다. 1조 원을 넘나드는 연간 적자 규모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이 때문에 5년째 1,250원인 서울지하철 요금 인상 가능성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와 시의회는 10월말 지하철 요금을 200원 정도 인상하는 내용의 시민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와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다시 일정이 무기한 미뤄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2일 기자설명회에서 "지금은 코로나19로 워낙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살림살이도 고려해서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기와 요금 인상 폭에 대해서는 별도로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러면서 "자구 노력과 함께 중앙정부의 국비 확보를 위해 과거 어느 때보다 노력 중이다"라고 정부 지원을 거듭 호소했습니다. 서울시 사정이 이 정도니, 재정자립도가 50%를 넘기지 못하는 지방 대도시는 지하철 운영비를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대중교통이란... 재택근무 불가능한 필수노동자의 교통수단

대중교통은 늘 서민의 교통수단이었지만, 코로나19 시대의 지하철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할 수 없거나,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이들의 교통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감염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재평가만큼이나, 대중교통의 공공성도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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