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어린이집 옆 야산의 비밀…10년째 발암물질 ‘석면’ 방치

입력 2020.11.05 (08:00) 수정 2020.1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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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에는 '개구리 마을'이란 무허가촌이 있었습니다. 배고팠던 시절 개구리를 잡아다 내다 팔아 불리게 됐다는 이름의 마을이 사라진 건 2010년의 일이었습니다. 땅 주인이 철거에 나서며 50여 명이 살던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지금, 그 많았다던 개구리는 사라졌는데 사라지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1급 발암물질 '석면'입니다.

지금은 평범한 야산처럼 보이는 이곳을 찾은 취재진은 곳곳에서 아무렇게 방치된 슬레이트 지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수십 장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곳도 있었고, 조각조각 깨져 있거나 땅속에 파묻혀 일부만 모습을 드러낸 것도 있었습니다.

맨눈으로 보일 정도의 석면 "나오는 자체가 문제"


현장에서 거둔 슬레이트 조각에 대한 성분 분석을 대학 연구기관에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폐암과 희소 암인 악성중피종 등을 유발하는 ‘백석면’이 발견됐습니다. 부서진 슬레이트 조각 겉면으로 석면 뭉치가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함유량은 석면안전관리법 시행령이 정한 석면함유 가능 물질의 석면함유기준의 12배에 달했습니다. 분석을 맡은 윤민수 동의과학대 동의분석센터 분석팀장은 "석면은 나온다는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 장기간 방치된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지만 더 큰 걱정은 주변 지역에 끼칠 영향입니다


석면이 방치된 야산과 맞닿은 곳에는 어린이집과 사회복지관, 상이군인 주거시설이 있습니다. 좁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고등학교와 노인요양센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산 곳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고, 그 틈에서도 아무렇게나 슬레이트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를 본 노주형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며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은 석면이 공기 중으로 흩어질 수 있어 더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허술한 석면 관리… 지금도 현재진행형


주민들이 석면의 위험에 노출된 데는 관리·감독 기관의 부재가 한몫했습니다. 관련 법상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기 위해서는 전문업체가 참여해야 합니다. 2010년 당시 전문 업체가 참여했습니다. 석면 해체 작업을 하기 위해 해당 업체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습니다.

산업안전감독관은 현장 점검에 나서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업체가 제출한 서류상 문제가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담당 지자체인 부산시나 동래구도 석면이 방치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KBS 보도로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고 나서야 각 기관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치된 석면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인 뒤 제거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석면 방치 사실을 알아도 해결하기까진 긴 시간이 걸립니다. 취재진이 관계 공무원들과의 통화를 나누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건 XXX 소관인데요”였습니다. 석면 관련 정책의 소관 부서가 고용노동부, 환경부, 각 지자체로 나뉘는 까닭입니다. 여기다 같은 지자체 내에서도 석면이 어떤 상태로 있는지에 따라 환경위생부서가 담당하기도 하고 청소부서로 업무가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경계가 모호해 돌고 돌아 전화가 처음 부서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10년째 방치된 석면이 바로 옆 어린이집, 학교, 그리고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부산시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석면 노출 여부 등에 대한 조사에는 착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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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어린이집 옆 야산의 비밀…10년째 발암물질 ‘석면’ 방치
    • 입력 2020-11-05 08:00:24
    • 수정2020-11-05 08:00:36
    취재후·사건후

부산 동래구에는 '개구리 마을'이란 무허가촌이 있었습니다. 배고팠던 시절 개구리를 잡아다 내다 팔아 불리게 됐다는 이름의 마을이 사라진 건 2010년의 일이었습니다. 땅 주인이 철거에 나서며 50여 명이 살던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지금, 그 많았다던 개구리는 사라졌는데 사라지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1급 발암물질 '석면'입니다.

지금은 평범한 야산처럼 보이는 이곳을 찾은 취재진은 곳곳에서 아무렇게 방치된 슬레이트 지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수십 장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곳도 있었고, 조각조각 깨져 있거나 땅속에 파묻혀 일부만 모습을 드러낸 것도 있었습니다.

맨눈으로 보일 정도의 석면 "나오는 자체가 문제"


현장에서 거둔 슬레이트 조각에 대한 성분 분석을 대학 연구기관에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폐암과 희소 암인 악성중피종 등을 유발하는 ‘백석면’이 발견됐습니다. 부서진 슬레이트 조각 겉면으로 석면 뭉치가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함유량은 석면안전관리법 시행령이 정한 석면함유 가능 물질의 석면함유기준의 12배에 달했습니다. 분석을 맡은 윤민수 동의과학대 동의분석센터 분석팀장은 "석면은 나온다는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 장기간 방치된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지만 더 큰 걱정은 주변 지역에 끼칠 영향입니다


석면이 방치된 야산과 맞닿은 곳에는 어린이집과 사회복지관, 상이군인 주거시설이 있습니다. 좁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고등학교와 노인요양센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산 곳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고, 그 틈에서도 아무렇게나 슬레이트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이를 본 노주형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며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은 석면이 공기 중으로 흩어질 수 있어 더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허술한 석면 관리… 지금도 현재진행형


주민들이 석면의 위험에 노출된 데는 관리·감독 기관의 부재가 한몫했습니다. 관련 법상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기 위해서는 전문업체가 참여해야 합니다. 2010년 당시 전문 업체가 참여했습니다. 석면 해체 작업을 하기 위해 해당 업체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습니다.

산업안전감독관은 현장 점검에 나서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업체가 제출한 서류상 문제가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담당 지자체인 부산시나 동래구도 석면이 방치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KBS 보도로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고 나서야 각 기관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치된 석면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인 뒤 제거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석면 방치 사실을 알아도 해결하기까진 긴 시간이 걸립니다. 취재진이 관계 공무원들과의 통화를 나누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건 XXX 소관인데요”였습니다. 석면 관련 정책의 소관 부서가 고용노동부, 환경부, 각 지자체로 나뉘는 까닭입니다. 여기다 같은 지자체 내에서도 석면이 어떤 상태로 있는지에 따라 환경위생부서가 담당하기도 하고 청소부서로 업무가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경계가 모호해 돌고 돌아 전화가 처음 부서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10년째 방치된 석면이 바로 옆 어린이집, 학교, 그리고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부산시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석면 노출 여부 등에 대한 조사에는 착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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