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2골?’ 손준호가 MVP를 수상한 이유

입력 2020.11.05 (20:30) 수정 2020.11.0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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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최고의 별로 손준호(28·전북)가 선정된 건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일단 기록 면에서 2골 5도움에 불과(?)한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선수가 MVP로 선정된 건 이례적입니다. 공격이 아닌 수비적 포지션에서 마지막 MVP 수상자는 2008년 이운재(당시 수원 GK)였습니다.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1997년 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의 수비수로 뛴 김주성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더구나 MVP 수상을 놓고 경합했던 주니오(울산)가 올 시즌 리그 단축에도 불구하고 26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 행진을 벌였기 때문에, 손준호의 수상은 더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26골 대 2골. 득점에 있어서는 무려 13배 차를 극복한 손준호의 MVP 수상이었던 것입니다.

손준호 자신도 시상식에서 "처음에 후보에 올랐을 때 과연 내가 받을 수 있을까란 물음표가 있었는데, 이걸 느낌표로 바꾸고 싶었다"면서 "축구하면서 MVP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를 정도로 행복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손준호의 올 시즌 전북에서의 활약과 우승 공헌도를 고려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게 축구계의 전반적인 반응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희생과 헌신을 한 대표적인 유형의 선수라는 것입니다.

그는 25경기에 출전해 2골 5득점으로 공격포인트는 7점에 불과했지만, 그라운드 경합 성공(75개), 패스 차단(171개), 획득(291개), 중앙 지역 패스(1,122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득점이나 도움과 같은 눈에 띄는 상황이 아닌, 위험 지역이 아닌 그라운드 구석구석에서 손준호만 한 활약을 펼친 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손준호의 MVP 수상은 이례적이면서, 다소 논란인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주니오의 득점력은 2위 그룹인 일류첸코(19골) 세징야(18골)와도 큰 차이를 보일 정도로 독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팬들은 '주니오가 외국인 선수여서 불이익을 받은 것이 아닌가'란 의문도 제기합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만약 주니오가 외국인이 아닌 국내 선수였다면 어땠을까요? 지난해 K리그 준우승에 그쳤지만, MVP를 차지했던 김보경의 예처럼, 확연한 공격포인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선수에게 MVP가 돌아갔을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37년 K리그 역사에서 외국인이 MVP를 차지한 건 말컹(2018), 데얀(2012) ,따바레즈(2007), 나드손(2004)뿐입니다.

하지만 주니오에게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승의 고비였던 중요한 승부에서 골을 터트리지 못했습니다. 전북과의 리그 3차례 맞대결에서 단 한 골에 그쳤고, 그마저도 페널티킥이었습니다. 특히 스플릿 라운드로 전환된 이후 주니오의 득점 페이스는 뚝 떨어져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결국, 우승팀 및 국내 선수 프리미엄에, 막판 주니오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결국 손준호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MVP에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MVP 투표 내용입니다. 감독(30%)과 주장(30%), 미디어(40%)의 비중으로 투표가 진행되는데, 손준호는 주장과 미디어 투표에서 주니오에게 뒤졌지만, 감독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미디어 투표에서 손준호는 16점을 받아 주니오(19.83점)에 근소하게 뒤졌고, 각 팀 주장들도 주니오(17.50점)를 손준호(10점)보다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K리그 감독들이 손준호에게 20점을 줬지만, 주니오에게는 7.50점을 부여해 여기서 결정적으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감독들의 의견은 '팀을 위한 선수'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포항의 김기동 감독은 "헌신적인 선수에게 점수를 더 줬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이고, 상대 팀 감독 입장에서 봐도 손준호의 활약은 전북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전북 구단 역시 MVP 후보 추천 단계부터 고심했다는 후문입니다. 공격포인트 측면에서 손준호보다 앞서는 한교원(11골 4도움)의 추천을 고민했지만, 팀 코치진의 의견이 손준호 쪽으로 모였습니다.

전북 백승권 단장은 "팀 내에서도 고민은 있었다. 하지만 손준호의 팀 내 공헌도가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컸다.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고, 무엇보다 모라이스 감독이 주저 없이 손준호를 MVP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습니다. 백 단장은 "전북이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팀이라는 것, 특출한 1명보다 11명이 함께 하는 팀이라는 걸 이번 MVP 수상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손준호의 MVP 수상은 논란이 있지만, 그간의 MVP 수상 관례를 깨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리그 MVP를 뽑는 데 있어 공격 포인트와 결정적 선방 등 승패와 기록 위주에서, 팀 공헌도로 기준점이 옮겨간 첫 번째 경우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중앙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연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듯, 특출한 공격수가 없이 조직력을 강조하는 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에게 영광이 돌아갈 수 있다는 사례로 분석됩니다.


사실 과거 K리그에서 시즌 MVP가 수비수 혹은 수비적인 선수에게 돌아간 적은 많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프로축구 출범 초창기부터 박창선(1984), 정해원(1987), 박경훈(1988), 정용환(1991), 홍명보(1992) 등 미드필더 혹은 수비수가 가장 빛난 별로 선정됐습니다. 여기에는 팀의 우승 공헌도는 물론 선수 개인의 대표팀에서의 활약도에 따른 '유명세'도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언성 히어로' 손준호의 MVP 등극은 앞선 경우와는 구별되는, 이름값에 의존하지 않고 팀 공헌도에 무거운 가중치를 둬 수상한 첫 번째 사례로 기억될 만합니다. 외국인 선수와 형평성 논란은 피해갈 수 없지만, 손준호의 MVP 수상은 37년째를 맞고 있는 K리그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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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5 20:30:09
    • 수정2020-11-05 20: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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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최고의 별로 손준호(28·전북)가 선정된 건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일단 기록 면에서 2골 5도움에 불과(?)한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선수가 MVP로 선정된 건 이례적입니다. 공격이 아닌 수비적 포지션에서 마지막 MVP 수상자는 2008년 이운재(당시 수원 GK)였습니다.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1997년 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의 수비수로 뛴 김주성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더구나 MVP 수상을 놓고 경합했던 주니오(울산)가 올 시즌 리그 단축에도 불구하고 26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 행진을 벌였기 때문에, 손준호의 수상은 더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26골 대 2골. 득점에 있어서는 무려 13배 차를 극복한 손준호의 MVP 수상이었던 것입니다.

손준호 자신도 시상식에서 "처음에 후보에 올랐을 때 과연 내가 받을 수 있을까란 물음표가 있었는데, 이걸 느낌표로 바꾸고 싶었다"면서 "축구하면서 MVP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를 정도로 행복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손준호의 올 시즌 전북에서의 활약과 우승 공헌도를 고려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게 축구계의 전반적인 반응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희생과 헌신을 한 대표적인 유형의 선수라는 것입니다.

그는 25경기에 출전해 2골 5득점으로 공격포인트는 7점에 불과했지만, 그라운드 경합 성공(75개), 패스 차단(171개), 획득(291개), 중앙 지역 패스(1,122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득점이나 도움과 같은 눈에 띄는 상황이 아닌, 위험 지역이 아닌 그라운드 구석구석에서 손준호만 한 활약을 펼친 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손준호의 MVP 수상은 이례적이면서, 다소 논란인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주니오의 득점력은 2위 그룹인 일류첸코(19골) 세징야(18골)와도 큰 차이를 보일 정도로 독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팬들은 '주니오가 외국인 선수여서 불이익을 받은 것이 아닌가'란 의문도 제기합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만약 주니오가 외국인이 아닌 국내 선수였다면 어땠을까요? 지난해 K리그 준우승에 그쳤지만, MVP를 차지했던 김보경의 예처럼, 확연한 공격포인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선수에게 MVP가 돌아갔을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37년 K리그 역사에서 외국인이 MVP를 차지한 건 말컹(2018), 데얀(2012) ,따바레즈(2007), 나드손(2004)뿐입니다.

하지만 주니오에게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승의 고비였던 중요한 승부에서 골을 터트리지 못했습니다. 전북과의 리그 3차례 맞대결에서 단 한 골에 그쳤고, 그마저도 페널티킥이었습니다. 특히 스플릿 라운드로 전환된 이후 주니오의 득점 페이스는 뚝 떨어져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결국, 우승팀 및 국내 선수 프리미엄에, 막판 주니오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결국 손준호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MVP에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MVP 투표 내용입니다. 감독(30%)과 주장(30%), 미디어(40%)의 비중으로 투표가 진행되는데, 손준호는 주장과 미디어 투표에서 주니오에게 뒤졌지만, 감독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미디어 투표에서 손준호는 16점을 받아 주니오(19.83점)에 근소하게 뒤졌고, 각 팀 주장들도 주니오(17.50점)를 손준호(10점)보다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K리그 감독들이 손준호에게 20점을 줬지만, 주니오에게는 7.50점을 부여해 여기서 결정적으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감독들의 의견은 '팀을 위한 선수'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포항의 김기동 감독은 "헌신적인 선수에게 점수를 더 줬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이고, 상대 팀 감독 입장에서 봐도 손준호의 활약은 전북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전북 구단 역시 MVP 후보 추천 단계부터 고심했다는 후문입니다. 공격포인트 측면에서 손준호보다 앞서는 한교원(11골 4도움)의 추천을 고민했지만, 팀 코치진의 의견이 손준호 쪽으로 모였습니다.

전북 백승권 단장은 "팀 내에서도 고민은 있었다. 하지만 손준호의 팀 내 공헌도가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컸다.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고, 무엇보다 모라이스 감독이 주저 없이 손준호를 MVP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습니다. 백 단장은 "전북이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팀이라는 것, 특출한 1명보다 11명이 함께 하는 팀이라는 걸 이번 MVP 수상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손준호의 MVP 수상은 논란이 있지만, 그간의 MVP 수상 관례를 깨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리그 MVP를 뽑는 데 있어 공격 포인트와 결정적 선방 등 승패와 기록 위주에서, 팀 공헌도로 기준점이 옮겨간 첫 번째 경우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중앙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연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듯, 특출한 공격수가 없이 조직력을 강조하는 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에게 영광이 돌아갈 수 있다는 사례로 분석됩니다.


사실 과거 K리그에서 시즌 MVP가 수비수 혹은 수비적인 선수에게 돌아간 적은 많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프로축구 출범 초창기부터 박창선(1984), 정해원(1987), 박경훈(1988), 정용환(1991), 홍명보(1992) 등 미드필더 혹은 수비수가 가장 빛난 별로 선정됐습니다. 여기에는 팀의 우승 공헌도는 물론 선수 개인의 대표팀에서의 활약도에 따른 '유명세'도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언성 히어로' 손준호의 MVP 등극은 앞선 경우와는 구별되는, 이름값에 의존하지 않고 팀 공헌도에 무거운 가중치를 둬 수상한 첫 번째 사례로 기억될 만합니다. 외국인 선수와 형평성 논란은 피해갈 수 없지만, 손준호의 MVP 수상은 37년째를 맞고 있는 K리그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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