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못 빌려줘”…어느 씁쓸한 선행

입력 2020.11.06 (09:21) 수정 2020.11.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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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전의 한 도로 옆 화단에 난 불지난 4일 대전의 한 도로 옆 화단에 난 불

■ 빗자루 휘둘러 불을 끈 유튜버

여기 빗자루로 불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튜버 A 씨입니다. 스스로 촬영해 지난 4일 유튜브에 중계된 영상을 보면 A 씨는 싸리 빗자루를 쓸어 도로 옆 화단에 난 불을 꺼나갑니다.

바짝 마른 가을 낙엽과 마른 풀에 붙은 불이라 쉽게 꺼지지 않는데요. 바람까지 불며 A 씨는 그야말로 생고생을 합니다. 잠시 뒤 다른 남성과 소방대원들이 합세해 불은 완전히 꺼집니다.

소방당국은 담배꽁초 불씨가 옮겨붙어 발생한 불로 봤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A 씨는 왜 소화기가 아니라 빗자루로 불을 꺼야 했을까요.

빗자루를 휘둘러 불을 끄기 시작한 A 씨빗자루를 휘둘러 불을 끄기 시작한 A 씨

■ 소화기 빌리기도 어려운 세상

A 씨도 처음부터 빗자루를 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불이 난 걸 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근 상가에 소화기를 빌리러 간 거였습니다.

첫 번째 가게에 들어간 A 씨, 불이 났음을 알리고 소화기를 빌려달라고 말했지만 답변은 "다른 가게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가게에는 같은 건물 멀지 않은 곳에 소화기가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 말대로 다른 가게에 갔습니다. 한 번 더 소화기를 빌려달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빌려주면 우리는 또 사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A 씨는 소화기 빌리는 걸 포기하고 쓰레기 더미 옆에서 싸리 빗자루를 주워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소화기를 보고도 빈손으로 나와야 했다소화기를 보고도 빈손으로 나와야 했다

■ 좋은 일 하고도 "씁쓸하다"

씁쓸하다고 했습니다. 좋은 일 하고도 A씨가 느낀 감정입니다. 불이 났다는데 소화기 빌려주기를 꺼리는 모습을 보고 느낀 생각입니다. 물론, 소화기 안 빌려준 업주들이 법을 어긴 건 아닙니다. 이번에만 그랬지 좋은 일 많이 해온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겪은 A 씨와 듣는 사람 마음이 착잡해지는 건 최소한의 도의라는 게 있기 때문이겠지요. 위험에 빠진 사람은 돕고 어려움은 남의 것이라도 함께 해결해나가는 마음 말입니다. 이런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난 5월 서울역에서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하고 도주하는 남성지난 5월 서울역에서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하고 도주하는 남성

■ 처음 본 여성을 때린 남성, 도움 주지 않은 행인들

이번에만 있던 일은 아닙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남 일'에 무관심했던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난 5월 서울역에서 지나가던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여성이 그리고 지난해 홍대 인근에서 역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일본인 여성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있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여성들과 A 씨의 마음을 때린 건 이런 무관심이었을 겁니다.

■ 무관심 사회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 내가 개입해서 훨씬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우리 사회가 무관심해지고 있다고요. 개인주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런 마음의 영역을 수치화할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이런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깔린 '무관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민 유튜버의 선행이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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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기 못 빌려줘”…어느 씁쓸한 선행
    • 입력 2020-11-06 09:21:10
    • 수정2020-11-06 09:42:31
    취재K
지난 4일 대전의 한 도로 옆 화단에 난 불
■ 빗자루 휘둘러 불을 끈 유튜버

여기 빗자루로 불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튜버 A 씨입니다. 스스로 촬영해 지난 4일 유튜브에 중계된 영상을 보면 A 씨는 싸리 빗자루를 쓸어 도로 옆 화단에 난 불을 꺼나갑니다.

바짝 마른 가을 낙엽과 마른 풀에 붙은 불이라 쉽게 꺼지지 않는데요. 바람까지 불며 A 씨는 그야말로 생고생을 합니다. 잠시 뒤 다른 남성과 소방대원들이 합세해 불은 완전히 꺼집니다.

소방당국은 담배꽁초 불씨가 옮겨붙어 발생한 불로 봤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A 씨는 왜 소화기가 아니라 빗자루로 불을 꺼야 했을까요.

빗자루를 휘둘러 불을 끄기 시작한 A 씨
■ 소화기 빌리기도 어려운 세상

A 씨도 처음부터 빗자루를 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불이 난 걸 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근 상가에 소화기를 빌리러 간 거였습니다.

첫 번째 가게에 들어간 A 씨, 불이 났음을 알리고 소화기를 빌려달라고 말했지만 답변은 "다른 가게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가게에는 같은 건물 멀지 않은 곳에 소화기가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 말대로 다른 가게에 갔습니다. 한 번 더 소화기를 빌려달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빌려주면 우리는 또 사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A 씨는 소화기 빌리는 걸 포기하고 쓰레기 더미 옆에서 싸리 빗자루를 주워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소화기를 보고도 빈손으로 나와야 했다
■ 좋은 일 하고도 "씁쓸하다"

씁쓸하다고 했습니다. 좋은 일 하고도 A씨가 느낀 감정입니다. 불이 났다는데 소화기 빌려주기를 꺼리는 모습을 보고 느낀 생각입니다. 물론, 소화기 안 빌려준 업주들이 법을 어긴 건 아닙니다. 이번에만 그랬지 좋은 일 많이 해온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겪은 A 씨와 듣는 사람 마음이 착잡해지는 건 최소한의 도의라는 게 있기 때문이겠지요. 위험에 빠진 사람은 돕고 어려움은 남의 것이라도 함께 해결해나가는 마음 말입니다. 이런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난 5월 서울역에서 처음 본 여성을 폭행하고 도주하는 남성
■ 처음 본 여성을 때린 남성, 도움 주지 않은 행인들

이번에만 있던 일은 아닙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남 일'에 무관심했던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난 5월 서울역에서 지나가던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여성이 그리고 지난해 홍대 인근에서 역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일본인 여성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있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여성들과 A 씨의 마음을 때린 건 이런 무관심이었을 겁니다.

■ 무관심 사회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 내가 개입해서 훨씬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우리 사회가 무관심해지고 있다고요. 개인주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런 마음의 영역을 수치화할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이런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깔린 '무관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민 유튜버의 선행이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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