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백신 포비아 창조한 언론…누굴 위한 공포인가?

입력 2020.11.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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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 가장 궁금한 것부터 알려드립니다.

독감백신 맞아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맞아야 합니다. 맞는 게 더 안전합니다.

이번 주 저널리즘토크쇼J는 지난달 중순 이후 급속하게 퍼진 독감백신 안전성 논란이 왜 시작됐고 어떻게 확산했는지, 그리고 과학적·의학적 진실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지난달 19일,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브리핑 모습지난달 19일,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브리핑 모습

독감백신 접종한 고교생 사망 소식…원인 밝혀지기도 전에 기사부터 쏟아졌다

지난달 19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공식브리핑에서 코로나19와 함께 독감 관련 현황을 설명합니다. 이 자리에서 정은경 청장은 독감 관련 이상 반응을 설명하다 인천의 한 고교생이 사망했다고 밝힙니다. 다만, 신고가 있었을 뿐 사망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청장이 분명히 브리핑에서 사망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기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심지어 정 청장의 브리핑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감백신을 맞은 10대가 숨졌다는 사례가 보고됐다'는 속보성 기사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 고교생이 맞은 백신이 '신성약품'의 백신이라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신성약품은 정부의 독감백신 공급사업에 참여하면서 독감백신을 상온에 노출해 독감백신 접종 중단 상황을 불러왔던 바로 그 백신 업체입니다. 자연스레 기사의 제목만 읽은 언론 소비자들은 그렇다면 숨진 고교생이 문제의 신성약품 백신을 맞아서 숨진 것이 아닌가 추정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정 청장은 브리핑에서 고교생의 사인이 독감백신 때문인지 조사 중이라는 점과 함께 해당 고교생이 맞은 신성약품의 백신은 문제가 없는 백신이었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특히, 해당 고교생의 사인은 추후 부검을 통해 신성약품의 독감백신이 아닌 독극물 때문이었다는 점도 이제는 확인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의심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의심의 시선은 '신성약품'에 이어 '무료접종'으로 옮아갔습니다. 당시 나온 기사의 제목을 예로 들자면, <무료독감 백신 맞고 사망한 17세 남성, 기저질환 없어>, <무료 독감 백신 맞고 고3 피곤하다. 이틀 뒤 집에서 숨져> 등입니다. 노약자들이 맞는 '무료접종' 백신이 문제가 아니냐는 추정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독감백신과 관련해 J에 패널로 출연한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사에 왜 '무료'라는 글자를 붙여서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정부에서 조달해서 접종을 하니 무료로 맞는 형태로, (무료나 유료나) 똑같은 백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재갑 교수는 "뭔가 효과의 차이가 있거나 아니면 안전성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암시를 하는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이건 (기자들) 무지의 소치인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료와 유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시간이 지나자 언론도 깨달은 듯 해당 부분을 지적하는 기사는 줄어들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독감백신 자체에 대한 안전성 논란에 언론은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J제작진이 확인해보니 지난달 19일, 10대 고교생 사망 관련 브리핑 이후에 2주 동안 네이버 포털에 송고된 독감백신 관련 기사 가운데 [속보]라는 말머리를 단 기사만 730여 건에 이르렀습니다 <[속보] 창원에서 독감 백신 맞은 70대, 목욕탕에서 숨진 채 발견>과 같은 기사들입니다.

언론은 숨진 사람 중에 독감백신을 맞았다는 사례가 보고될 때마다 사망자 수를 알리는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숨진 사람과 독감백신과의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속보 보도를 이어가면서 국민에 말 그대로 '독감백신 공포', '독감 포비아'를 심어준 겁니다.


이재갑 교수는 독감 백신을 맞아서 숨진 것으로 확인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사망과 독감백신의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독감백신을 맞아서 사망한 게 아니고, 사망한 사람들 중에 독감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언론의 패착을 지적하는 SNS에 떠돈 글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06시~12시에 죽으면 <아침 먹고 사망> 12시~18시에 죽으면 <점심 먹고 사망> 밥 먹은 게 사망원인이 아니"라는 글입니다.

그러면 왜 독감백신을 맞은 뒤 숨졌다는 사람들 신고 건수가 올해 많을까요? 이 교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독감백신의 중요성이 강조돼 독감백신을 맞는 사람도 많아지고, 초기 정부의 독감백신 접종 중단과 같은 실수가 생겨 독감백신 안전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탓에 의심 신고가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독감백신의 안전성이나 위험성이 크다는 논란은 확인된 바가 없는데도 언론에서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속보성 기사를 쏟아내면서 독감백신 공포를 조장했고, 이 때문에 장려돼야 할 독감백신 접종을 사람들이 오히려 망설이는 상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J고정패널 임자운 변호사는 시사인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백신은 현대 과학이 내린 최선의 결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최선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아마 불확실성 때문에 나온 거 같다"며, "백신을 포함한 어떤 약이든 어떤 시술이든 100% 안전한 건 사실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시행하는 것이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훨씬 더 효용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그렇게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J고정패널 강유정 교수는 언론을 향해 "백신을 정말 원칙적으로 생각하자는 얘기"라며 "그렇다면 언론 역시도 원칙적으로 감염병 보도준칙 지켜서 기사 쓰면 되는 일"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언론단체들이 스스로 제정한 감염병 보도준칙에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점과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표현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명시돼 있습니다.

언론이 독감백신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 확산시키기보다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 주고, 국민에게 과학적·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때 국가적 감염병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용해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12회는 <백신 포비아 창조한 언론…누굴 위한 공포인가?>이라는 주제로 오는 11월 8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승현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정연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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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백신 포비아 창조한 언론…누굴 위한 공포인가?
    • 입력 2020-11-07 08:00:43
    저널리즘 토크쇼 J
독감백신, 가장 궁금한 것부터 알려드립니다.

독감백신 맞아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맞아야 합니다. 맞는 게 더 안전합니다.

이번 주 저널리즘토크쇼J는 지난달 중순 이후 급속하게 퍼진 독감백신 안전성 논란이 왜 시작됐고 어떻게 확산했는지, 그리고 과학적·의학적 진실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지난달 19일,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브리핑 모습
독감백신 접종한 고교생 사망 소식…원인 밝혀지기도 전에 기사부터 쏟아졌다

지난달 19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공식브리핑에서 코로나19와 함께 독감 관련 현황을 설명합니다. 이 자리에서 정은경 청장은 독감 관련 이상 반응을 설명하다 인천의 한 고교생이 사망했다고 밝힙니다. 다만, 신고가 있었을 뿐 사망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청장이 분명히 브리핑에서 사망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기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심지어 정 청장의 브리핑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감백신을 맞은 10대가 숨졌다는 사례가 보고됐다'는 속보성 기사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 고교생이 맞은 백신이 '신성약품'의 백신이라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신성약품은 정부의 독감백신 공급사업에 참여하면서 독감백신을 상온에 노출해 독감백신 접종 중단 상황을 불러왔던 바로 그 백신 업체입니다. 자연스레 기사의 제목만 읽은 언론 소비자들은 그렇다면 숨진 고교생이 문제의 신성약품 백신을 맞아서 숨진 것이 아닌가 추정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정 청장은 브리핑에서 고교생의 사인이 독감백신 때문인지 조사 중이라는 점과 함께 해당 고교생이 맞은 신성약품의 백신은 문제가 없는 백신이었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특히, 해당 고교생의 사인은 추후 부검을 통해 신성약품의 독감백신이 아닌 독극물 때문이었다는 점도 이제는 확인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의심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의심의 시선은 '신성약품'에 이어 '무료접종'으로 옮아갔습니다. 당시 나온 기사의 제목을 예로 들자면, <무료독감 백신 맞고 사망한 17세 남성, 기저질환 없어>, <무료 독감 백신 맞고 고3 피곤하다. 이틀 뒤 집에서 숨져> 등입니다. 노약자들이 맞는 '무료접종' 백신이 문제가 아니냐는 추정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독감백신과 관련해 J에 패널로 출연한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사에 왜 '무료'라는 글자를 붙여서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정부에서 조달해서 접종을 하니 무료로 맞는 형태로, (무료나 유료나) 똑같은 백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재갑 교수는 "뭔가 효과의 차이가 있거나 아니면 안전성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암시를 하는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이건 (기자들) 무지의 소치인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료와 유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시간이 지나자 언론도 깨달은 듯 해당 부분을 지적하는 기사는 줄어들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독감백신 자체에 대한 안전성 논란에 언론은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J제작진이 확인해보니 지난달 19일, 10대 고교생 사망 관련 브리핑 이후에 2주 동안 네이버 포털에 송고된 독감백신 관련 기사 가운데 [속보]라는 말머리를 단 기사만 730여 건에 이르렀습니다 <[속보] 창원에서 독감 백신 맞은 70대, 목욕탕에서 숨진 채 발견>과 같은 기사들입니다.

언론은 숨진 사람 중에 독감백신을 맞았다는 사례가 보고될 때마다 사망자 수를 알리는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숨진 사람과 독감백신과의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속보 보도를 이어가면서 국민에 말 그대로 '독감백신 공포', '독감 포비아'를 심어준 겁니다.


이재갑 교수는 독감 백신을 맞아서 숨진 것으로 확인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사망과 독감백신의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독감백신을 맞아서 사망한 게 아니고, 사망한 사람들 중에 독감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언론의 패착을 지적하는 SNS에 떠돈 글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06시~12시에 죽으면 <아침 먹고 사망> 12시~18시에 죽으면 <점심 먹고 사망> 밥 먹은 게 사망원인이 아니"라는 글입니다.

그러면 왜 독감백신을 맞은 뒤 숨졌다는 사람들 신고 건수가 올해 많을까요? 이 교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독감백신의 중요성이 강조돼 독감백신을 맞는 사람도 많아지고, 초기 정부의 독감백신 접종 중단과 같은 실수가 생겨 독감백신 안전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탓에 의심 신고가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독감백신의 안전성이나 위험성이 크다는 논란은 확인된 바가 없는데도 언론에서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속보성 기사를 쏟아내면서 독감백신 공포를 조장했고, 이 때문에 장려돼야 할 독감백신 접종을 사람들이 오히려 망설이는 상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J고정패널 임자운 변호사는 시사인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백신은 현대 과학이 내린 최선의 결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최선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아마 불확실성 때문에 나온 거 같다"며, "백신을 포함한 어떤 약이든 어떤 시술이든 100% 안전한 건 사실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시행하는 것이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훨씬 더 효용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그렇게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J고정패널 강유정 교수는 언론을 향해 "백신을 정말 원칙적으로 생각하자는 얘기"라며 "그렇다면 언론 역시도 원칙적으로 감염병 보도준칙 지켜서 기사 쓰면 되는 일"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언론단체들이 스스로 제정한 감염병 보도준칙에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점과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표현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명시돼 있습니다.

언론이 독감백신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 확산시키기보다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 주고, 국민에게 과학적·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때 국가적 감염병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용해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112회는 <백신 포비아 창조한 언론…누굴 위한 공포인가?>이라는 주제로 오는 11월 8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승현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정연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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