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스케이트화 13켤레 샀다”…국가가 전명규에 소송 건 사연

입력 2020.11.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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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계 폭력 은폐 의혹' 등으로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파면된 전명규 전 교수가 "불필요한 스케이트화 13켤레를 샀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가 최근 승소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조상민 판사는 지난 9일, 국가가 전명규 전 교수를 상대로 3천26만 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쓸데없는 스케이트화 13켤레 샀다"…국가가 3천만 원 소송 건 사연

'빙상계 대부'로 불리던 전명규 전 빙상학과 교수. 2018년 말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의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면서 입길에 올랐습니다. 심 선수의 기자회견을 막았다는 의혹, 그리고 한국체대 선수들의 실력을 올리기 위해 조재범 전 코치의 폭력을 허용하고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합의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죠.

이에 한국체대는 지난해 1월 18일 '한국체대 가혹 행위 및 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안건으로 긴급교수회를 열어 전 전 교수와 피해 학생 사이의 격리조치 등을 의결했습니다. 또 지난해 8월 26일 전 전 교수를 파면했습니다.

교육부도 지난해 2월부터 3월까지 한국체대 빙상학과에 대한 대대적인 종합감사를 실시했습니다. 사실상 전 전 교수를 겨냥한 감사라는 이야기가 나왔죠. 감사 결과 교육부는 전 전 교수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국립대학교 회계설치 및 재정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4조 등 여러 법령을 위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건 다름 아닌 '스케이트화'였습니다. 전 전 교수가 2014년에 쇼트트랙용 스케이트화 6켤레, 2017년에 쇼트트랙용 스케이트화 5켤레와 스피드 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 2켤레 등 모두 13켤레를 불필요하게 구매해 국가에 구두 매매대금만큼의 손해를 입혔다는 겁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 2켤레의 가격은 392만 원, 쇼트트랙용 스케이트화 11켤레는 2,634만 원, 합해서 모두 3,026만 원이었습니다. 국가는 지난 4월, 전 전 교수를 상대로 3천여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 허점 드러나자 말 바꾼 국가…재판부 "적법 절차 거친 것 맞다"

하지만 재판부는 전 전 교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불필요하게 스케이트화를 사들여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문제의 신발 13켤레가 한국체대 학생들에게 모두 지급됐다고 봤습니다.

특히 소송 도중 국가가 슬그머니 말을 바꾼 부분이 지적됐습니다. 애초에 국가는 전 전 교수가 "구두 가품을 납품받았음에도 정품을 납품받은 것처럼 허위로 검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품이 아닌 가짜 제품을 납품받았다는 주장입니다. 또 "13켤레는 선수들에게 지급되지 않고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전 전 교수, 물러서지 않고 스케이트화 매수 과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내놨습니다. 먼저 업체로부터 치수가 정해진 신발을 사들여 선수들에게 준 다음, 그 신발이 발에 맞지 않으면 다시 업체에 맞춤 신발을 주문한다는 겁니다. 이때 맞춤 신발이 제작되면 이미 구매했던 신발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진다는 주장이었죠. 전 전 교수는 국가가 말하는 가품과 정품의 차이가 대체 무엇인지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국가는 '가품'이라는 단어를 슬쩍 삭제하고 전 전 교수가 단순히 "스케이트화를 불필요하게 구입했다"고 주장을 변경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이나 이유도 없었죠. 재판부는 이 점을 꼬집었습니다.

재판부는 또 "문제가 된 스케이트화의 경우 전 전 교수가 스케이트화 구매요구서를 작성해 훈련처에 구매를 요청했고, 훈련처에서 그 구매 필요성에 대해 심사한 다음 구매가 이뤄졌다"며 "적정한 훈련용품 구매절차를 거쳐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전 전 교수는 앞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위자료 5백만 원'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재판부는 "전 전 교수가 국가의 위법한 '피해 학생과의 격리조치'와 '강의 미배정 조치'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국가는 전 전 교수에게 이를 금전적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 전 교수는 또 지난 6월 한국체대를 상대로 낸 격리조치 무효 확인 소송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재판부는 한국체대가 전 전 교수를 피해 학생들로부터 격리한 조치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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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1 07:01:05
    취재K

'빙상계 폭력 은폐 의혹' 등으로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파면된 전명규 전 교수가 "불필요한 스케이트화 13켤레를 샀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가 최근 승소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조상민 판사는 지난 9일, 국가가 전명규 전 교수를 상대로 3천26만 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쓸데없는 스케이트화 13켤레 샀다"…국가가 3천만 원 소송 건 사연

'빙상계 대부'로 불리던 전명규 전 빙상학과 교수. 2018년 말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의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면서 입길에 올랐습니다. 심 선수의 기자회견을 막았다는 의혹, 그리고 한국체대 선수들의 실력을 올리기 위해 조재범 전 코치의 폭력을 허용하고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합의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죠.

이에 한국체대는 지난해 1월 18일 '한국체대 가혹 행위 및 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안건으로 긴급교수회를 열어 전 전 교수와 피해 학생 사이의 격리조치 등을 의결했습니다. 또 지난해 8월 26일 전 전 교수를 파면했습니다.

교육부도 지난해 2월부터 3월까지 한국체대 빙상학과에 대한 대대적인 종합감사를 실시했습니다. 사실상 전 전 교수를 겨냥한 감사라는 이야기가 나왔죠. 감사 결과 교육부는 전 전 교수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국립대학교 회계설치 및 재정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4조 등 여러 법령을 위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번 소송의 대상이 된 건 다름 아닌 '스케이트화'였습니다. 전 전 교수가 2014년에 쇼트트랙용 스케이트화 6켤레, 2017년에 쇼트트랙용 스케이트화 5켤레와 스피드 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 2켤레 등 모두 13켤레를 불필요하게 구매해 국가에 구두 매매대금만큼의 손해를 입혔다는 겁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 2켤레의 가격은 392만 원, 쇼트트랙용 스케이트화 11켤레는 2,634만 원, 합해서 모두 3,026만 원이었습니다. 국가는 지난 4월, 전 전 교수를 상대로 3천여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 허점 드러나자 말 바꾼 국가…재판부 "적법 절차 거친 것 맞다"

하지만 재판부는 전 전 교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불필요하게 스케이트화를 사들여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문제의 신발 13켤레가 한국체대 학생들에게 모두 지급됐다고 봤습니다.

특히 소송 도중 국가가 슬그머니 말을 바꾼 부분이 지적됐습니다. 애초에 국가는 전 전 교수가 "구두 가품을 납품받았음에도 정품을 납품받은 것처럼 허위로 검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품이 아닌 가짜 제품을 납품받았다는 주장입니다. 또 "13켤레는 선수들에게 지급되지 않고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전 전 교수, 물러서지 않고 스케이트화 매수 과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내놨습니다. 먼저 업체로부터 치수가 정해진 신발을 사들여 선수들에게 준 다음, 그 신발이 발에 맞지 않으면 다시 업체에 맞춤 신발을 주문한다는 겁니다. 이때 맞춤 신발이 제작되면 이미 구매했던 신발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진다는 주장이었죠. 전 전 교수는 국가가 말하는 가품과 정품의 차이가 대체 무엇인지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국가는 '가품'이라는 단어를 슬쩍 삭제하고 전 전 교수가 단순히 "스케이트화를 불필요하게 구입했다"고 주장을 변경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이나 이유도 없었죠. 재판부는 이 점을 꼬집었습니다.

재판부는 또 "문제가 된 스케이트화의 경우 전 전 교수가 스케이트화 구매요구서를 작성해 훈련처에 구매를 요청했고, 훈련처에서 그 구매 필요성에 대해 심사한 다음 구매가 이뤄졌다"며 "적정한 훈련용품 구매절차를 거쳐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전 전 교수는 앞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위자료 5백만 원'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재판부는 "전 전 교수가 국가의 위법한 '피해 학생과의 격리조치'와 '강의 미배정 조치'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국가는 전 전 교수에게 이를 금전적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 전 교수는 또 지난 6월 한국체대를 상대로 낸 격리조치 무효 확인 소송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재판부는 한국체대가 전 전 교수를 피해 학생들로부터 격리한 조치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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