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코로나 시대 ‘15분 도시’와 노동자

입력 2020.11.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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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습니까? 편의점, 대중교통, 작은 식당 등이 떠오를 겁니다. 대신 직장과 병원, 각종 문화시설을 걸어서 15분 안에 갈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출근길 교통지옥은 익숙한 풍경이고, 의료 수준은 지역마다 격차가 크며, 문화 여가 생활을 위해 '마음먹고' 이동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걸어서 15분 내의 공간에서 뭔가를 해결하기엔 무척 제한됩니다. 당신 탓은 아닙니다. 우리의 도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 주거, 학교, 직장, 의료, 상점, 여가를 15분 안에…'15분 도시'

'15분 도시'란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 등이 주창해 세계 여러 도시가 채택한 도시계획 개념입니다. 걸어서 15분 이내에 학교, 직장, 의료, 상점, 각종 여가시설 등이 존재해 주민들이 그 범위에서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이는 생활 필수 시설들을 가깝게 두자는 차원의 단순함을 뛰어넘습니다.

장시간의 출퇴근이 없어져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으며, 지역마다 발전한 상점과 소매상권, 문화시설을 매개로 한 공동체성의 회복도 목표로 합니다. 자동차 교통망으로 잇던 현대도시가 도보 생활권으로 변하면 기후위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지역마다 있는 소기업들에 노동자들이 근무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경제체제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6월 파리 안 이달고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며 공약으로 내건 ‘파리를 위한 선언’의 부제가 이 15분 도시였습니다. 15분 도시는 코로나19 이후 직장과 각종 시설, 사람이 몰리는 도심 집중에 대한 문제 제기로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열린 국제포럼에서 한 석학은 이 15분 도시가 노동의 미래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사스키아 사센 "도심 집중으로 지역사회에서 일할 기회 부족…도심 크기 조정돼야"

서울시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가 '전태일 이후 50년, 함께 고민하는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국제포럼의 3일 차 마지막 날인 오늘(12일). 특별강연은 도시사회학자로 유명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 사스키아 사센이 맡았습니다.

사센은 "코로나19가 비극적인 상황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도시의 변혁을 일으키는 주요 동인이 될 수도 있다."라면서 "도시 중심부의 일부 공동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게 꼭 부정적이라곤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도시 중심부는 과도하게 크고 대부분 중산층과 노동계층에게 너무 오랜 시간 통근하게 만들고 있으며", "대부분의 노동자는 일하기 위해 멀리 가야 하고,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일할 기회는 점점 더 부족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도심 기능의 조정과 함께 지역 중심의 일자리와 노동 환경을 만들자는 것으로 사센은 "물론 여전히 멋진 도시 중심가는 존재하겠지만, 합당하고 매력적인 정도의 크기로 조정돼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광산 채굴과 동네 구멍가게의 차이는? … 사센이 던진 질문 3가지

도심 집중과 일자리의 문제를 짚은 사센은 '15분 도시'를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변화하는 자본주의가 미래의 노동과 노동자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모로 볼때 자본주의는 채굴과 같은 기능입니다. 즉, 광산에서 채굴을 완료하고 나면 그 광도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지이지 않게 되죠."

"이를 지역의 작은 구멍가게 주인과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주인은 손님의 요구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손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손님은 자주 오고, 자녀 세대도 그곳에서 자라서 가게를 찾아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측이 모두 혜택을 누리는 장기적인 상호작용의 고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자, 그럼 우리에게 자문을 해봐야 합니다. 현재의 착취적인 형태가 예전의 우리 삶의 방식과 비교했을 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

사센은 단절되고 분절적인 경제를 광산 채굴에, 장기간 상호 작용하는 경제를 지역 가게에 빗대며 미래의 노동이 유념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소외계층이 생겨나는 상황 속에서 '부의 집중' 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둘째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수준의 '성 평등' 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셋째는 노동을 변화시키는 중요 요소인 '새로운 기술' 을 어떻게 적용해 나갈지 입니다.

사센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을 테지만 가장 중요한 건 노동이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 라고 되짚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되 세 가지로 줄여 열거한 것들을 가치에 둬야 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청년 전태일이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라며 분신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2020년 우리의 노동이, 우리의 삶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 사센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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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 50주기…코로나 시대 ‘15분 도시’와 노동자
    • 입력 2020-11-12 16:24:28
    취재K

당신의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습니까? 편의점, 대중교통, 작은 식당 등이 떠오를 겁니다. 대신 직장과 병원, 각종 문화시설을 걸어서 15분 안에 갈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출근길 교통지옥은 익숙한 풍경이고, 의료 수준은 지역마다 격차가 크며, 문화 여가 생활을 위해 '마음먹고' 이동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걸어서 15분 내의 공간에서 뭔가를 해결하기엔 무척 제한됩니다. 당신 탓은 아닙니다. 우리의 도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 주거, 학교, 직장, 의료, 상점, 여가를 15분 안에…'15분 도시'

'15분 도시'란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 등이 주창해 세계 여러 도시가 채택한 도시계획 개념입니다. 걸어서 15분 이내에 학교, 직장, 의료, 상점, 각종 여가시설 등이 존재해 주민들이 그 범위에서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이는 생활 필수 시설들을 가깝게 두자는 차원의 단순함을 뛰어넘습니다.

장시간의 출퇴근이 없어져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으며, 지역마다 발전한 상점과 소매상권, 문화시설을 매개로 한 공동체성의 회복도 목표로 합니다. 자동차 교통망으로 잇던 현대도시가 도보 생활권으로 변하면 기후위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지역마다 있는 소기업들에 노동자들이 근무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경제체제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6월 파리 안 이달고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며 공약으로 내건 ‘파리를 위한 선언’의 부제가 이 15분 도시였습니다. 15분 도시는 코로나19 이후 직장과 각종 시설, 사람이 몰리는 도심 집중에 대한 문제 제기로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열린 국제포럼에서 한 석학은 이 15분 도시가 노동의 미래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사스키아 사센 "도심 집중으로 지역사회에서 일할 기회 부족…도심 크기 조정돼야"

서울시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가 '전태일 이후 50년, 함께 고민하는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국제포럼의 3일 차 마지막 날인 오늘(12일). 특별강연은 도시사회학자로 유명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 사스키아 사센이 맡았습니다.

사센은 "코로나19가 비극적인 상황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도시의 변혁을 일으키는 주요 동인이 될 수도 있다."라면서 "도시 중심부의 일부 공동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게 꼭 부정적이라곤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도시 중심부는 과도하게 크고 대부분 중산층과 노동계층에게 너무 오랜 시간 통근하게 만들고 있으며", "대부분의 노동자는 일하기 위해 멀리 가야 하고,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일할 기회는 점점 더 부족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도심 기능의 조정과 함께 지역 중심의 일자리와 노동 환경을 만들자는 것으로 사센은 "물론 여전히 멋진 도시 중심가는 존재하겠지만, 합당하고 매력적인 정도의 크기로 조정돼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광산 채굴과 동네 구멍가게의 차이는? … 사센이 던진 질문 3가지

도심 집중과 일자리의 문제를 짚은 사센은 '15분 도시'를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변화하는 자본주의가 미래의 노동과 노동자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모로 볼때 자본주의는 채굴과 같은 기능입니다. 즉, 광산에서 채굴을 완료하고 나면 그 광도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지이지 않게 되죠."

"이를 지역의 작은 구멍가게 주인과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주인은 손님의 요구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손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손님은 자주 오고, 자녀 세대도 그곳에서 자라서 가게를 찾아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측이 모두 혜택을 누리는 장기적인 상호작용의 고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자, 그럼 우리에게 자문을 해봐야 합니다. 현재의 착취적인 형태가 예전의 우리 삶의 방식과 비교했을 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

사센은 단절되고 분절적인 경제를 광산 채굴에, 장기간 상호 작용하는 경제를 지역 가게에 빗대며 미래의 노동이 유념해야 할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소외계층이 생겨나는 상황 속에서 '부의 집중' 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둘째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수준의 '성 평등' 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셋째는 노동을 변화시키는 중요 요소인 '새로운 기술' 을 어떻게 적용해 나갈지 입니다.

사센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을 테지만 가장 중요한 건 노동이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 라고 되짚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되 세 가지로 줄여 열거한 것들을 가치에 둬야 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청년 전태일이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라며 분신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2020년 우리의 노동이, 우리의 삶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 사센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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