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으면 돈 주겠소” 가난한 흥부의 극한 알바 도전기

입력 2020.11.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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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말종이나 진배없는 형 놀부의 농간에 유산 한 푼 못 물려받은 가난한 동생 흥부. 같이 살던 형에게 쫓겨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흥부 가족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수숫대로 얼기설기 집을 지어놓고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를 아슬아슬한 목숨을 이어갑니다. 찢어지는 가난에 허덕일 대로 허덕이면 그래도 산목숨이니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흥부는 재물에 아무런 욕심이 없으니 무능도 이런 무능이 없죠. 여기서 문제!


정답은 백수? 네, 그렇다고 해도 틀리지 않죠. 흥부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을뿐더러, 뭔가 해보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의 설정이긴 합니다만. 당장 먹을 게 없어서 형 놀부 집에 식량이나 얻어보려고 찾아갔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빈손으로 쫓겨나고 맙니다. 그런데도, 미련하게도 끝까지 형을 원망하지 않죠. 그러던 흥부가 드디어 일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흥부와 아내가 가진 '첫 직업'은 날품팔이였습니다.


흥부는 흥부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그런데도 굶기를 밥 먹듯이 했으니 답이 없습니다. 생각다 못한 흥부가 어느 날 곡식이라도 얻을까 싶어 읍내로 나가 고을 이방을 찾아가죠. 환곡(還穀)이라 하여 식량이 부족한 봄에 나라에서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하는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게 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곡이나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 묻는 흥부에게 이방이 되레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맷값 서른 냥 벌 생각에 한껏 신이 난 흥부는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호기롭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죠. 선금으로 받은 다섯 냥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매품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남편을 뜯어말립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허약한 몸으로 매까지 맞으면 몇 대 안 맞고 죽는다, 어서 못 가겠다고 얘기해라, 정 가려거든 날 죽여서 파묻고 가라 등등. 흥부가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설득해도 아내는 요지부동. 결국, 그날은 적당히 그렇게 넘어간 흥부는 아내 몰래 매를 맞으러 관아로 달려갑니다.

흥부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흥부전〉을 제대로 아는 사람 또한 별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 재주도 없는 흥부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란 것은 기껏해야 품팔이, 오늘날로 치면 일용직 근로자뿐이었을 겁니다. 그런 흥부에게 남의 매를 대신 맞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이 얼마나 솔깃하게 들렸겠어요.


그런데 아뿔싸. 매 대신 맞겠다고 관아에 찾아간 흥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 살인죄를 저지른 죄인 빼고 다 풀어주어라! 대사면령이 내려진 겁니다. 당황한 흥부는 하소연합니다. "나는 매를 맞아야만 살 수가 있소!" 매 맞는 알바로 돈 좀 벌어보려던 흥부의 꿈은 어이없게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흥부의 아내는 정화수를 떠다놓고 남편의 무사귀환을 눈물로 기도했죠.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흥미롭게 꾸며 봤습니다만, 실은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행복한 결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야기는 흥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사정없이 몰아붙입니다. 여기서 구걸, 저기서 구걸해 연명해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이죠. 매 맞기 알바가 좌절된 흥부는 결국 짚신을 만들어 팔아 끼니를 때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흥부의 두 번째 직업은 '짚신 장수'였습니다.

김득신 〈한여름의 짚신삼기〉,종이에 옅은 채색, 22.4×27.0cm, 보물 제1987호, 간송미술문화재단김득신 〈한여름의 짚신삼기〉,종이에 옅은 채색, 22.4×27.0cm, 보물 제1987호, 간송미술문화재단

〈흥부전〉을 다시 제대로 진지하게 읽은 까닭은 최근에 출간된 《조선 잡사》(민음사, 2020)란 책 때문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조선 시대 67가지 직업 가운데 하나로 '매품팔이'가 등장합니다. 조선 시대 별별 직업들을 소개한 비슷한 책으로 《조선직업실록》(북로드, 2014)이란 것도 있는데, 여기에도 '매품팔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기록인 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의 《청성잡기》에 이른바 '볼기 품'으로 먹고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동이 아닌 형벌로 돈을 버는 일은 때론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으니, 《청성잡기》의 두 번째 일화에서 곤장 맞아 돈 버는 사내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맞아 끝내는 죽고 맙니다. 같은 이야기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야담집 《청구야담》에도 실려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 왕실의 공식 기록인 《승정원일기》에도 관련 기록이 더러 보인다니 매품팔이의 존재는 엄연한 사실임을 알 수 있죠.


얼마나 가난했으면 매를 대신 맞아가며 돈을 벌어야 했을까. 참 눈물겨운 이야기죠. 밥벌이는 신성한 것이고 마땅히 또 그래야 하지만, 옛 기록들을 읽어 보면 먹고 사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어렵습니다. 미련할 정도로 착하기만 했던 흥부는 안타깝게도(?) 매 맞아 돈 벌 기회는 잃었지만,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일로 결국에는 큰 복을 받습니다. 누구도 흥부가 매를 맞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흥부의 극한 알바 도전기는 허무하게도 실패로 끝나지만, 그 실패에 안도한 것은 비단 흥부의 아내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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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 맞으면 돈 주겠소” 가난한 흥부의 극한 알바 도전기
    • 입력 2020-11-13 09:04:42
    취재K
인간말종이나 진배없는 형 놀부의 농간에 유산 한 푼 못 물려받은 가난한 동생 흥부. 같이 살던 형에게 쫓겨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흥부 가족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수숫대로 얼기설기 집을 지어놓고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를 아슬아슬한 목숨을 이어갑니다. 찢어지는 가난에 허덕일 대로 허덕이면 그래도 산목숨이니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흥부는 재물에 아무런 욕심이 없으니 무능도 이런 무능이 없죠. 여기서 문제!


정답은 백수? 네, 그렇다고 해도 틀리지 않죠. 흥부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을뿐더러, 뭔가 해보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의 설정이긴 합니다만. 당장 먹을 게 없어서 형 놀부 집에 식량이나 얻어보려고 찾아갔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빈손으로 쫓겨나고 맙니다. 그런데도, 미련하게도 끝까지 형을 원망하지 않죠. 그러던 흥부가 드디어 일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흥부와 아내가 가진 '첫 직업'은 날품팔이였습니다.


흥부는 흥부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그런데도 굶기를 밥 먹듯이 했으니 답이 없습니다. 생각다 못한 흥부가 어느 날 곡식이라도 얻을까 싶어 읍내로 나가 고을 이방을 찾아가죠. 환곡(還穀)이라 하여 식량이 부족한 봄에 나라에서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하는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게 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곡이나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 묻는 흥부에게 이방이 되레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맷값 서른 냥 벌 생각에 한껏 신이 난 흥부는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호기롭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죠. 선금으로 받은 다섯 냥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매품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남편을 뜯어말립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허약한 몸으로 매까지 맞으면 몇 대 안 맞고 죽는다, 어서 못 가겠다고 얘기해라, 정 가려거든 날 죽여서 파묻고 가라 등등. 흥부가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설득해도 아내는 요지부동. 결국, 그날은 적당히 그렇게 넘어간 흥부는 아내 몰래 매를 맞으러 관아로 달려갑니다.

흥부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흥부전〉을 제대로 아는 사람 또한 별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 재주도 없는 흥부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란 것은 기껏해야 품팔이, 오늘날로 치면 일용직 근로자뿐이었을 겁니다. 그런 흥부에게 남의 매를 대신 맞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이 얼마나 솔깃하게 들렸겠어요.


그런데 아뿔싸. 매 대신 맞겠다고 관아에 찾아간 흥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 살인죄를 저지른 죄인 빼고 다 풀어주어라! 대사면령이 내려진 겁니다. 당황한 흥부는 하소연합니다. "나는 매를 맞아야만 살 수가 있소!" 매 맞는 알바로 돈 좀 벌어보려던 흥부의 꿈은 어이없게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흥부의 아내는 정화수를 떠다놓고 남편의 무사귀환을 눈물로 기도했죠.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흥미롭게 꾸며 봤습니다만, 실은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행복한 결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야기는 흥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사정없이 몰아붙입니다. 여기서 구걸, 저기서 구걸해 연명해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이죠. 매 맞기 알바가 좌절된 흥부는 결국 짚신을 만들어 팔아 끼니를 때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흥부의 두 번째 직업은 '짚신 장수'였습니다.

김득신 〈한여름의 짚신삼기〉,종이에 옅은 채색, 22.4×27.0cm, 보물 제1987호, 간송미술문화재단
〈흥부전〉을 다시 제대로 진지하게 읽은 까닭은 최근에 출간된 《조선 잡사》(민음사, 2020)란 책 때문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조선 시대 67가지 직업 가운데 하나로 '매품팔이'가 등장합니다. 조선 시대 별별 직업들을 소개한 비슷한 책으로 《조선직업실록》(북로드, 2014)이란 것도 있는데, 여기에도 '매품팔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기록인 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의 《청성잡기》에 이른바 '볼기 품'으로 먹고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동이 아닌 형벌로 돈을 버는 일은 때론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으니, 《청성잡기》의 두 번째 일화에서 곤장 맞아 돈 버는 사내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맞아 끝내는 죽고 맙니다. 같은 이야기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야담집 《청구야담》에도 실려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 왕실의 공식 기록인 《승정원일기》에도 관련 기록이 더러 보인다니 매품팔이의 존재는 엄연한 사실임을 알 수 있죠.


얼마나 가난했으면 매를 대신 맞아가며 돈을 벌어야 했을까. 참 눈물겨운 이야기죠. 밥벌이는 신성한 것이고 마땅히 또 그래야 하지만, 옛 기록들을 읽어 보면 먹고 사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어렵습니다. 미련할 정도로 착하기만 했던 흥부는 안타깝게도(?) 매 맞아 돈 벌 기회는 잃었지만,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일로 결국에는 큰 복을 받습니다. 누구도 흥부가 매를 맞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흥부의 극한 알바 도전기는 허무하게도 실패로 끝나지만, 그 실패에 안도한 것은 비단 흥부의 아내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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