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법’에도 자동차 교환·환불 5%…제조사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입력 2020.11.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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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자동차의 교환과 환불을 규정한 '레몬법'이 시행됐습니다. 소비자가 신차를 인도 받고 1년 안에 일반 하자는 3번, 중대 하자는 2번 수리받고도 문제가 반복되면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KBS 취재 결과, 2년 사이 차량을 교환하거나 환불 받은 사례는 20대 중 1대 꼴입니다. 하지만 이중 공식적으로 중대 하자, 즉 '결함이 있는 차'라고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법은 시행됐는데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된 걸까요.

■ '레몬법' 2년 성적표..."차량 교환·환불은 불과 5%"

지난 4월 벤츠에서 차량을 구매한 서 모 씨. 구입 후 차량 내부와 엔진룸의 소음이 심해 두차례 서비스 센터를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소음이 이어지자 제조사에서는 차량 교환을 해달라는 소비자에게 엔진 교환을 제안했습니다. 서 씨는 엔진 교환 후 다시 소음이 나면 그때는 차량을 교환을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약속할 수는 없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서 씨가 제기한 청와대 국민청원서 씨가 제기한 청와대 국민청원

서 씨는 "엔진 소음이라는 게 엔진에 어떤 이상이 있을 수 있는 데다가 서비스센터에서도 정확한 원인조차 모르다 보니 더이상 문제 있는 차를 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3회 수리 후에는 차량 교환을 해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데도 대차 차량을 빨리 반납하라는 말만 반복한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차량 교환 및 환불 관련해 소비자들이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중재를 신청한 사례는 모두 528건입니다. 그중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례는 단 5%(26건)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교환, 환불은 어렵습니다

법으로 교환, 환불이 보장돼 있지만 제조사가 소극적으로 나가도 되는 이유는 뭘까요. 일반 하자의 경우 4차례나 동일 하자가 반복돼야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소음 하자여도 제조사 측에서 이를 동일 결함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원인을 파악한다며 버티는 겁니다. 소비자가 시간과 돈을 들여 수차례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을 받아도 초기 결함, 특히 품질 상의 하자는 기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도 변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현행법상 레몬법은 계약서에 교환·환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경우 적용됩니다. '레몬법'이 시행됐다는 것만 알고 교환을 요구하다가는 계약서 상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강제성이 없다보니 최근 국회에서는 신차를 판매할 경우 레몬법을 강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 안전 위협하는 '중대 하자' 0건..."개별 합의에 대해 판단 어려워"

지난 3월 제네시스 차량을 출고한 정 모 씨는 엔진 떨림 등 하자로 1년도 안 돼 8차례나 서비스센터를 찾았습니다. 결국 지난달 27일, 도로 위에서 갑자기 시동이 꺼져 버렸습니다. 정 씨는 잇따른 엔진 관련 고장에 시동꺼짐까지 발생해 차량 환불을 요구했지만 제조사 측은 엔진 결함이 아니라며 AS만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가 시작되자 환불을 검토 중이었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레몬법에서는 원동기ㆍ동력전달장치ㆍ조향장치ㆍ제동장치 등의 하자는 '중대한 하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중대 하자가 발생해도 교환, 환불에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중대한 하자'에 대한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데다가 이마저도 3번이상 반복돼야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불안한 차를 계속 탈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 1월 레몬법이 시행되면서 신차의 교환·환불을 위한 기구도 신설됐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입니다. 심의위에서 교환·환불 신청을 접수 받고, 중재부를 구성해 중재에 나섭니다. 올 9월까지 528건의 신청이 접수됐지만, 공식적으로 중대 하자가 인정돼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례는 없습니다. 교환, 환불을 받은 26명의 소비자들은 모두 제조사와 합의를 통해 개별적으로 교환이나 환불을 받았습니다.

소비자들이 결국 합의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소비자가 차량에 문제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영역이 워낙 전문적인 데다가 관련 자료는 모두 제조사에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이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합의 후 취하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심의위 중재부에서는 이러한 소비자의 중도 취하를 이유로 중대 하자 여부를 적극적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소비자가 제조사와 합의하고 중재 신청을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취하한 내용에 대해서는 중대 하자 여부를 확인하고 판단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는 없고, 제조사에서는 더욱이 교환이나 환불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차 교환·환불 e만족 시스템)(신차 교환·환불 e만족 시스템)

다만,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제도는 소비자 피해구제를 목표로 하며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된다"라며 결과적으로 합의를 통해 교환,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중재부에서 교환, 환불을 위한 제조사의 대응을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 신차 교환·환불 위한 '레몬법' 실효성 높이려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레몬법의 기반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의 문제에 있어 제조사가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됩니다.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제조사가 문제를 숨기거나 축소하면 천문학적인 벌금까지도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자동차 결함은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자에 대한 입증 역시 제조사에서 보다 많은 부담을 지게 됩니다.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 제도가 갖춰진 상태여야 제조사도 레몬법에 더 많은 책임을 느끼게 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재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판단하려면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대 하자나 반복되는 하자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겁니다. 김 교수는 "일반하자들 중에도 좀 더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들, '중대 하자'라는 것을 사례로 구체화한다면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교환, 환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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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법’에도 자동차 교환·환불 5%…제조사 버틸 수 있는 이유는?
    • 입력 2020-11-14 07:01:20
    취재K

지난해 1월, 자동차의 교환과 환불을 규정한 '레몬법'이 시행됐습니다. 소비자가 신차를 인도 받고 1년 안에 일반 하자는 3번, 중대 하자는 2번 수리받고도 문제가 반복되면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KBS 취재 결과, 2년 사이 차량을 교환하거나 환불 받은 사례는 20대 중 1대 꼴입니다. 하지만 이중 공식적으로 중대 하자, 즉 '결함이 있는 차'라고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법은 시행됐는데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된 걸까요.

■ '레몬법' 2년 성적표..."차량 교환·환불은 불과 5%"

지난 4월 벤츠에서 차량을 구매한 서 모 씨. 구입 후 차량 내부와 엔진룸의 소음이 심해 두차례 서비스 센터를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소음이 이어지자 제조사에서는 차량 교환을 해달라는 소비자에게 엔진 교환을 제안했습니다. 서 씨는 엔진 교환 후 다시 소음이 나면 그때는 차량을 교환을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약속할 수는 없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서 씨가 제기한 청와대 국민청원
서 씨는 "엔진 소음이라는 게 엔진에 어떤 이상이 있을 수 있는 데다가 서비스센터에서도 정확한 원인조차 모르다 보니 더이상 문제 있는 차를 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3회 수리 후에는 차량 교환을 해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데도 대차 차량을 빨리 반납하라는 말만 반복한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차량 교환 및 환불 관련해 소비자들이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중재를 신청한 사례는 모두 528건입니다. 그중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례는 단 5%(26건)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교환, 환불은 어렵습니다

법으로 교환, 환불이 보장돼 있지만 제조사가 소극적으로 나가도 되는 이유는 뭘까요. 일반 하자의 경우 4차례나 동일 하자가 반복돼야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소음 하자여도 제조사 측에서 이를 동일 결함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원인을 파악한다며 버티는 겁니다. 소비자가 시간과 돈을 들여 수차례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을 받아도 초기 결함, 특히 품질 상의 하자는 기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도 변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현행법상 레몬법은 계약서에 교환·환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경우 적용됩니다. '레몬법'이 시행됐다는 것만 알고 교환을 요구하다가는 계약서 상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강제성이 없다보니 최근 국회에서는 신차를 판매할 경우 레몬법을 강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 안전 위협하는 '중대 하자' 0건..."개별 합의에 대해 판단 어려워"

지난 3월 제네시스 차량을 출고한 정 모 씨는 엔진 떨림 등 하자로 1년도 안 돼 8차례나 서비스센터를 찾았습니다. 결국 지난달 27일, 도로 위에서 갑자기 시동이 꺼져 버렸습니다. 정 씨는 잇따른 엔진 관련 고장에 시동꺼짐까지 발생해 차량 환불을 요구했지만 제조사 측은 엔진 결함이 아니라며 AS만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가 시작되자 환불을 검토 중이었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레몬법에서는 원동기ㆍ동력전달장치ㆍ조향장치ㆍ제동장치 등의 하자는 '중대한 하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중대 하자가 발생해도 교환, 환불에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중대한 하자'에 대한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데다가 이마저도 3번이상 반복돼야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불안한 차를 계속 탈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 1월 레몬법이 시행되면서 신차의 교환·환불을 위한 기구도 신설됐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입니다. 심의위에서 교환·환불 신청을 접수 받고, 중재부를 구성해 중재에 나섭니다. 올 9월까지 528건의 신청이 접수됐지만, 공식적으로 중대 하자가 인정돼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례는 없습니다. 교환, 환불을 받은 26명의 소비자들은 모두 제조사와 합의를 통해 개별적으로 교환이나 환불을 받았습니다.

소비자들이 결국 합의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소비자가 차량에 문제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영역이 워낙 전문적인 데다가 관련 자료는 모두 제조사에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이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합의 후 취하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심의위 중재부에서는 이러한 소비자의 중도 취하를 이유로 중대 하자 여부를 적극적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소비자가 제조사와 합의하고 중재 신청을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취하한 내용에 대해서는 중대 하자 여부를 확인하고 판단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는 없고, 제조사에서는 더욱이 교환이나 환불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차 교환·환불 e만족 시스템)
다만,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제도는 소비자 피해구제를 목표로 하며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된다"라며 결과적으로 합의를 통해 교환,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중재부에서 교환, 환불을 위한 제조사의 대응을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 신차 교환·환불 위한 '레몬법' 실효성 높이려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레몬법의 기반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의 문제에 있어 제조사가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됩니다.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제조사가 문제를 숨기거나 축소하면 천문학적인 벌금까지도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자동차 결함은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자에 대한 입증 역시 제조사에서 보다 많은 부담을 지게 됩니다.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 제도가 갖춰진 상태여야 제조사도 레몬법에 더 많은 책임을 느끼게 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재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판단하려면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대 하자나 반복되는 하자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겁니다. 김 교수는 "일반하자들 중에도 좀 더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들, '중대 하자'라는 것을 사례로 구체화한다면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교환, 환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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