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4년 더”에서 “4년 뒤”…트럼피즘은 계속된다

입력 2020.11.15 (16:48) 수정 2020.11.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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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더, 4년 더!(Four more years!)”

워싱턴 D.C 인근 광장 ‘프리덤 플라자’는 붉은 물결로 넘쳤습니다. 현지시간 14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 만여 명이 광장에 모여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외쳤습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조지아주에서 승리해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대선 승리를 굳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집회입니다.

대선은 끝났는데 트럼프 대통령도, 대통령 지지자들도 선거는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들은 왜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프리덤 플라자에서 연방대법원까지 1.5마일(2.4km), 행진하는 지지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도둑맞은 선거…. 대통령이 이겼다”


이번 집회에는 ‘백만 마가 행진’(Million MAGA March), ‘트럼프를 위한 행진’(the March for Trump),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등 12개 정도의 단체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들의 대체적인 주장은 “부정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날 오전, 골프장으로 가는 길에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대통령은 이날 트윗에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등에서 공화당 개표 참관인의 접근이 금지됐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이건 위헌”이라고 또 다시 선거 사기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사기를 주장하는 글을 올릴 때마다 트위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를 붙이고 있지만, 지지자들은 이같은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스카디 브란 씨는 “우편투표가 개표되면서 바이든이 역전한 조지아주가 부정 선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를 알고 있는지를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보면 근거가 다 나온다고 답했습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지지자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경제 봉쇄는 없다.” (No More Lockdown)


워싱턴 D.C의 경우 <행정명령 제 2020-080호>에 따라 야외 활동시 다른 사람과의 접촉 가능성이 있는 경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행진하는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경제 봉쇄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던 청년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코로나19는 장난이지”(Covid19 is Joke!)라고 말하는 지지자도 있었습니다.

월드오미터 기준 14일(현지시간) 미국 내 일일 신규 확진자는 15만 7천여 명, 10일 연속
10만 명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구호를 외치는 지지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라고 밝힌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대니엘 씨는 “미국에서 감기로 해마다 수만 명이 사망한다”면서 이 숫자는 언론이 매일 집계해 발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틀전 검사에서 양성과 음성이 섞여 나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사례를 들며 테스트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트럼프 대통령이 회견이나 비공식 자리에서 한 주장을 지지자들이 그대로 반복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기성 언론은 가짜 뉴스, 트럼프 미디어가 필요해!


대선이 끝난 뒤 트럼프 지지자들의 첫 대규모 집회. 그런 만큼 언론의 관심도 집중돼 행진하는 동안 수많은 매체들이 지지자들과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지지자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인터뷰에 응했지만, 언론에 대한 불만도 가감없이 터뜨렸습니다. 미디어가 바이든에게 유리하도록 세뇌시킨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Defund the Media’(미디어 예산 삭감) 포스터를 들고 있던 줄리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를 하자, 대뜸 미국 내 주류 언론을 인용하면 편파 방송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디지털 미디어 회사를 직접 설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악시오스 보도를 봤는지 물었더니,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그 회사에서 제공하는 뉴스만 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주류 언론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트럼프 지지·반대 시위대 충돌…. 쪼개진 미국


오후 행진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습니다.

조 바이든 당선인과 2파전을 벌였던 버니 샌더스 지지자라고 밝힌 청년 4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을 비판해, 트럼프 지지자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불법 체류 청소년 추방유예제도(DACA·다카) 복원을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했던 이민 관련 정책들이 번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이민 정책들은 옳았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 간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양측 간 언쟁 끝에 몸싸움이 벌어져 최소 10명이 체포됐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D.C에는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미국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다음 행보는... 2024년 대선 출마?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비록 선거는 패했지만 득표수 7천 2백여만 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아직 견고합니다.

현장에서 본 지지자들은 배경도, 인종도, 연령도 다양했습니다. 프라우드 보이즈 등 극우단체들도 참가했지만, 자녀 혹은 연인 손을 붙잡고 나온 시민들도 꽤 눈에 띄었습니다.

백인·고령층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된 지지자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듯, 여성은 물론 청년 참가자들도 많았습니다. 트럼프 호텔 앞에서 트럼프 인형 탈을 쓴 사람과 기념 사진을 찍는 등 트럼프라는 ‘셀럽’을 중심으로 뭉친 팬클럽을 연상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다시 나온다면 찍을 것이라고 답한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전례도 있습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전 대통령은 1888년 재선에 패배한 뒤 1892년 재출마한 대선에서 승리해,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식 정치, 즉 트럼피즘(트럼프와 포퓰리즘의 합성어)이 여전히 미국 유권자 절반에 가까운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19, 경기 침체, 상하원 선거 성적 부진, 민주당 내 중도·급진 좌파의 분열...
승리의 기쁨은 잠시, 바이든 호 앞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화합을 강조하며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향후 4년 동안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트럼피즘은 또다시 워싱턴 정가를 파고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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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4년 더”에서 “4년 뒤”…트럼피즘은 계속된다
    • 입력 2020-11-15 16:48:36
    • 수정2020-11-15 16:49:19
    특파원 리포트
“4년 더, 4년 더!(Four more years!)”

워싱턴 D.C 인근 광장 ‘프리덤 플라자’는 붉은 물결로 넘쳤습니다. 현지시간 14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 만여 명이 광장에 모여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외쳤습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조지아주에서 승리해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대선 승리를 굳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집회입니다.

대선은 끝났는데 트럼프 대통령도, 대통령 지지자들도 선거는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들은 왜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프리덤 플라자에서 연방대법원까지 1.5마일(2.4km), 행진하는 지지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도둑맞은 선거…. 대통령이 이겼다”


이번 집회에는 ‘백만 마가 행진’(Million MAGA March), ‘트럼프를 위한 행진’(the March for Trump),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등 12개 정도의 단체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들의 대체적인 주장은 “부정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날 오전, 골프장으로 가는 길에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대통령은 이날 트윗에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등에서 공화당 개표 참관인의 접근이 금지됐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이건 위헌”이라고 또 다시 선거 사기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사기를 주장하는 글을 올릴 때마다 트위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를 붙이고 있지만, 지지자들은 이같은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스카디 브란 씨는 “우편투표가 개표되면서 바이든이 역전한 조지아주가 부정 선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를 알고 있는지를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보면 근거가 다 나온다고 답했습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지지자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경제 봉쇄는 없다.” (No More Lockdown)


워싱턴 D.C의 경우 <행정명령 제 2020-080호>에 따라 야외 활동시 다른 사람과의 접촉 가능성이 있는 경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행진하는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경제 봉쇄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던 청년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코로나19는 장난이지”(Covid19 is Joke!)라고 말하는 지지자도 있었습니다.

월드오미터 기준 14일(현지시간) 미국 내 일일 신규 확진자는 15만 7천여 명, 10일 연속
10만 명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구호를 외치는 지지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라고 밝힌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대니엘 씨는 “미국에서 감기로 해마다 수만 명이 사망한다”면서 이 숫자는 언론이 매일 집계해 발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틀전 검사에서 양성과 음성이 섞여 나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사례를 들며 테스트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트럼프 대통령이 회견이나 비공식 자리에서 한 주장을 지지자들이 그대로 반복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기성 언론은 가짜 뉴스, 트럼프 미디어가 필요해!


대선이 끝난 뒤 트럼프 지지자들의 첫 대규모 집회. 그런 만큼 언론의 관심도 집중돼 행진하는 동안 수많은 매체들이 지지자들과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지지자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인터뷰에 응했지만, 언론에 대한 불만도 가감없이 터뜨렸습니다. 미디어가 바이든에게 유리하도록 세뇌시킨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Defund the Media’(미디어 예산 삭감) 포스터를 들고 있던 줄리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를 하자, 대뜸 미국 내 주류 언론을 인용하면 편파 방송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디지털 미디어 회사를 직접 설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악시오스 보도를 봤는지 물었더니,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그 회사에서 제공하는 뉴스만 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주류 언론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트럼프 지지·반대 시위대 충돌…. 쪼개진 미국


오후 행진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습니다.

조 바이든 당선인과 2파전을 벌였던 버니 샌더스 지지자라고 밝힌 청년 4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을 비판해, 트럼프 지지자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불법 체류 청소년 추방유예제도(DACA·다카) 복원을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했던 이민 관련 정책들이 번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이민 정책들은 옳았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 간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양측 간 언쟁 끝에 몸싸움이 벌어져 최소 10명이 체포됐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D.C에는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미국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다음 행보는... 2024년 대선 출마?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비록 선거는 패했지만 득표수 7천 2백여만 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아직 견고합니다.

현장에서 본 지지자들은 배경도, 인종도, 연령도 다양했습니다. 프라우드 보이즈 등 극우단체들도 참가했지만, 자녀 혹은 연인 손을 붙잡고 나온 시민들도 꽤 눈에 띄었습니다.

백인·고령층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된 지지자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듯, 여성은 물론 청년 참가자들도 많았습니다. 트럼프 호텔 앞에서 트럼프 인형 탈을 쓴 사람과 기념 사진을 찍는 등 트럼프라는 ‘셀럽’을 중심으로 뭉친 팬클럽을 연상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다시 나온다면 찍을 것이라고 답한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전례도 있습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전 대통령은 1888년 재선에 패배한 뒤 1892년 재출마한 대선에서 승리해,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식 정치, 즉 트럼피즘(트럼프와 포퓰리즘의 합성어)이 여전히 미국 유권자 절반에 가까운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19, 경기 침체, 상하원 선거 성적 부진, 민주당 내 중도·급진 좌파의 분열...
승리의 기쁨은 잠시, 바이든 호 앞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화합을 강조하며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향후 4년 동안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트럼피즘은 또다시 워싱턴 정가를 파고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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