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주식 이해충돌 가능성’ 21대 의원 27명…“정리하셨어요?”

입력 2020.11.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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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직 공직자인 국회의원의 권한은 방대합니다. 입법은 물론 국가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고 국정 운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한도 지닙니다. 그런데 의정활동을 하며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가족 회사가 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한 박덕흠 의원의 사례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 주식 백지신탁 도입 15년…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부정한 사익 추구와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한 방편으로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이해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막기 위해 2005년 도입됐는데,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요?

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해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무소속 박덕흠 의원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해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무소속 박덕흠 의원

KBS 탐사보도부는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와 함께 국회의원 주식과 이해충돌 문제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먼저 21대 국회의원의 주식 백지신탁 심사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국회 사무처와 인사혁신처 등에 심사 결과 수치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뒤, 3천만 원 초과 주식을 보유한 의원 65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벌였습니다.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이 본인 및 배우자, 직계존비속 명의로 3천만 원 넘게 주식을 보유했다면, 팔거나 백지신탁해야 합니다. 백지신탁은 금융기관에 해당 주식의 운용은 물론 처분 권한까지 모두 넘기는 걸 뜻합니다.

다만, 이런 의무를 면하려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 보유 주식과 직무의 관련성을 따져보는 심사를 청구하게 돼 있습니다. 여기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결정을 받으면 주식을 계속 보유할 수 있습니다.

■ 21대 국회, '42건 중 이해충돌 가능성 27건'

조사 결과, 21대 국회의 백지신탁심사 청구는 모두 42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가운데 27건에 대해 주식과 상임위 활동의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이밖에 '직무 관련성 없다'는 14건, 심사 중 1건 등입니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한 달 안에 주식을 팔거나 백지신탁을 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도 하나 더 있습니다. 아예 직무 관련성이 없는 다른 상임위로 옮기는 겁니다.

■ "주식 처분 못해 상임위 교체키로"…국민의힘 이영 의원

취재진은 직무 관련성 심사를 받은 의원들에게 일일이 처분 결과를 질의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의원들은 주식 매각을 하거나 백지신탁을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다만 백지신탁 대신 상임위 변경을 택한 의원도 2명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 국민의힘 이영 의원입니다.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을 거쳐 21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했습니다.

이영 의원은 '테르텐'이라는 사이버 보안업체를 창업해 20년 동안 운영했는데 정부기관과 금융업체 등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엔 '와이얼라이언스'라는 벤처 캐피털도 설립했습니다. '테르텐' 주식 17만여 주(50.37%)와 '와이얼라이언스' 주식 4만 2천 주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이들 비상장주식 가액은 20억 원이 넘습니다.

이영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백지신탁 심사 결과 이들 주식과 정무위 활동에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 의원 측이 주식 백지신탁심사위로부터 직무 관련성 통보를 받은 건 9월 2일. 이 의원은 그러나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각 기한 만료 직전인 같은 달 28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에 직무 관련성 없는 상임위로 교체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질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이영 의원(10월 19일)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질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이영 의원(10월 19일)

■ 상임위 교체 신청했다더니…한 달 반 넘게 그대로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상임위를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곳으로 옮겼을까요?

아닙니다. 사보임 신청 후에도 한 달 반 넘게 정무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를 진행했고, 최근엔 내년도 예산안 심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벤처 투자 확대 등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팔지도 않고, 상임위를 교체하지도 않아, 한달 반째 공직자 윤리법 위반 상태가 지속된 겁니다.

이 의원은 상임위 활동과 별개로 벤처 관련 법안도 여러 건 대표 발의했습니다. 대기업의 벤처 투자 허용(독점규제·공정거래법 일부 개정안),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벤처기업육성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안), 벤처 관련 비과세 혜택 확대(상속세·증여세법 일부 개정안) 등입니다.

■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상임위 변경 곧 결론"

이 의원 측은 KBS 질의에 "주식 매각과 백지신탁을 시도했지만, 직원 고용안정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단기간 내 처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과 20년 넘게 동고동락한 회사를 며칠 만에 팔아버리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관련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법안 발의와 관련해선 "벤처 분야 비례대표로서 벤처 법안 발의는 오히려 의무"라고 주장했습니다. "벤처 관련 법안은 해당 회사와는 관계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상임위 변경이 미뤄지는 데 대해선 "당에서 곧 결론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보임 신청을 받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강제로 다른 의원을 빼내 상임위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았다"고 상임위 교체가 지연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머지않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15년째입니다.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미비점을 보완했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21대 의원 주식 백지신탁 심사 결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오늘(16일) 밤 KBS 뉴스9에서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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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주식 이해충돌 가능성’ 21대 의원 27명…“정리하셨어요?”
    • 입력 2020-11-16 10:48:54
    탐사K
선출직 공직자인 국회의원의 권한은 방대합니다. 입법은 물론 국가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고 국정 운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한도 지닙니다. 그런데 의정활동을 하며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가족 회사가 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한 박덕흠 의원의 사례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 주식 백지신탁 도입 15년…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부정한 사익 추구와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한 방편으로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이해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막기 위해 2005년 도입됐는데,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요?

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해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무소속 박덕흠 의원
KBS 탐사보도부는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와 함께 국회의원 주식과 이해충돌 문제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먼저 21대 국회의원의 주식 백지신탁 심사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국회 사무처와 인사혁신처 등에 심사 결과 수치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뒤, 3천만 원 초과 주식을 보유한 의원 65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벌였습니다.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이 본인 및 배우자, 직계존비속 명의로 3천만 원 넘게 주식을 보유했다면, 팔거나 백지신탁해야 합니다. 백지신탁은 금융기관에 해당 주식의 운용은 물론 처분 권한까지 모두 넘기는 걸 뜻합니다.

다만, 이런 의무를 면하려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 보유 주식과 직무의 관련성을 따져보는 심사를 청구하게 돼 있습니다. 여기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결정을 받으면 주식을 계속 보유할 수 있습니다.

■ 21대 국회, '42건 중 이해충돌 가능성 27건'

조사 결과, 21대 국회의 백지신탁심사 청구는 모두 42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가운데 27건에 대해 주식과 상임위 활동의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이밖에 '직무 관련성 없다'는 14건, 심사 중 1건 등입니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한 달 안에 주식을 팔거나 백지신탁을 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도 하나 더 있습니다. 아예 직무 관련성이 없는 다른 상임위로 옮기는 겁니다.

■ "주식 처분 못해 상임위 교체키로"…국민의힘 이영 의원

취재진은 직무 관련성 심사를 받은 의원들에게 일일이 처분 결과를 질의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의원들은 주식 매각을 하거나 백지신탁을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다만 백지신탁 대신 상임위 변경을 택한 의원도 2명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 국민의힘 이영 의원입니다.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을 거쳐 21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했습니다.

이영 의원은 '테르텐'이라는 사이버 보안업체를 창업해 20년 동안 운영했는데 정부기관과 금융업체 등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엔 '와이얼라이언스'라는 벤처 캐피털도 설립했습니다. '테르텐' 주식 17만여 주(50.37%)와 '와이얼라이언스' 주식 4만 2천 주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이들 비상장주식 가액은 20억 원이 넘습니다.

이영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백지신탁 심사 결과 이들 주식과 정무위 활동에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 의원 측이 주식 백지신탁심사위로부터 직무 관련성 통보를 받은 건 9월 2일. 이 의원은 그러나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각 기한 만료 직전인 같은 달 28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에 직무 관련성 없는 상임위로 교체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질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이영 의원(10월 19일)
■ 상임위 교체 신청했다더니…한 달 반 넘게 그대로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상임위를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곳으로 옮겼을까요?

아닙니다. 사보임 신청 후에도 한 달 반 넘게 정무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를 진행했고, 최근엔 내년도 예산안 심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벤처 투자 확대 등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팔지도 않고, 상임위를 교체하지도 않아, 한달 반째 공직자 윤리법 위반 상태가 지속된 겁니다.

이 의원은 상임위 활동과 별개로 벤처 관련 법안도 여러 건 대표 발의했습니다. 대기업의 벤처 투자 허용(독점규제·공정거래법 일부 개정안),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벤처기업육성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안), 벤처 관련 비과세 혜택 확대(상속세·증여세법 일부 개정안) 등입니다.

■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상임위 변경 곧 결론"

이 의원 측은 KBS 질의에 "주식 매각과 백지신탁을 시도했지만, 직원 고용안정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단기간 내 처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과 20년 넘게 동고동락한 회사를 며칠 만에 팔아버리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관련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법안 발의와 관련해선 "벤처 분야 비례대표로서 벤처 법안 발의는 오히려 의무"라고 주장했습니다. "벤처 관련 법안은 해당 회사와는 관계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상임위 변경이 미뤄지는 데 대해선 "당에서 곧 결론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보임 신청을 받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강제로 다른 의원을 빼내 상임위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았다"고 상임위 교체가 지연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머지않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15년째입니다.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미비점을 보완했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21대 의원 주식 백지신탁 심사 결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오늘(16일) 밤 KBS 뉴스9에서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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