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특혜 창구’로 변질된 건설신기술, 누가 죄인인가?

입력 2020.11.16 (16:38) 수정 2020.11.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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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신기술, 학교 공사 특혜 수단이 됐다"

올해 처음 제보를 받은 건 아닙니다. 지난해 7월 보도국에 익명의 투서가 도착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 방수업을 20년째하고 있다고 밝힌 제보자는 창원교육지원청이 건설신기술 사용권을 독점한 김해 지역 A사에 공사를 무더기로 불법으로 몰아줬고, 해당 A사가 부실 공사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며 주장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공무원들에 대한 업체 로비가 주효했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에 착수한 지 2주 만에 제보자는 돌연 취재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자신들의 제보로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됐으니, 처분 결과를 일단 기다려달라는 이유였습니다.

올해 3월 감사원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보자는 다시 취재진을 찾아와, 감사결과가 특혜 수주한 공무원들이 모두 처벌을 피하는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당시는 국회 박덕흠 의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건설회사가 건설신기술로 수백억 원대의 관급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취재진은 건설신기술 문제를 지역사회에서도 공론화하기로 하고, 한 달에 걸쳐 방수업계 관계자와 건설신기술 전문가 등을 자문, 관계 법령을 검토하며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 “사실상 수의계약, 일감몰아주기”..불법하도급에 부실시공까지!

감사원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창원 지역의 옥상방수를 한 학교를 조사한 결과, 창원교육지원청은 모두 20개 학교에 건설신기술 제722호를 반드시 사용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발주했습니다. 이 중 13개 학교 공사에서 애초 경쟁 입찰로 낙찰받은 업체가 아니라, 해당 건설신기술 독점 사용사인 김해 A 업체가 공사를 불법하도급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더욱이 감사원은 현장 자재 납품 내역서와 현장 방수 두께 측정을 통해 A사가 공사한 13개 학교 가운데 6개 학교에서 부실 시공이 이뤄졌고, 준공 과정에서 교육청 담당 공무원들의 눈감아주기식 승인이 있었던 점도 추가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창원교육지원청은 불법 하도급과 관련해서는 업체 간 몰래 이뤄진 불법 행위일 뿐이며, 부실 시공에 관해서도 현장에 상주할 수 없어 몰랐다고 강변했습니다.

①<경쟁입찰이라더니…사실상 수의계약?> 10월 14일
②<공사 몰아줬더니 부실 시공까지?…교육청 “몰랐다”> 10월 15일


■ “관행대로 공법 선정했다”는 교육청..현장 전문가들은 “아니올시다”

방송에 앞서 취재진은 과연 해당 건설신기술 722호가 학교 현장에 꼭 필요한 공법이었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복수의 방수 업계 관계자는 해당 신기술이 '우레탄'이나 '폴리우레아'와 같은 일반적인 방수 기술과 비교하면 1.5배에서 2배가량 비싼 데다, 방수공법의 핵심 기술인 내구성과 경화 속도와 같은 항목에서도 특별할 것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나아가 학교 옥상처럼 경사 지붕이 없는 평평한 현장의 경우, 신기술을 굳이 적용할 필요가 없다며 비싼 공법을 선정한 배경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로 인근의 부산과 울산교육청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특허나 건설신기술 공법을 학교 현장에 단 한 건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발주처인 창원교육지원청은 해당 공법 선정이 일종의 관행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건설신기술로 지정된 공법이니 어느 정도 검증됐을 것이고, 비싼 만큼 더 좋을 것이라 기대했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건설신기술 지정 절차를 확인해본 결과, 건설신기술은 허가주의가 아닌 신청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신기술로 지정을 받았다고 해서 다 좋은 기술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정부 지침에도 신기술을 사용할 때 효율성과 경제성을 발주처에서 따지라고 돼 있지만, 창원교육지원청은 다른 공법보다 비싼 해당 신기술을 담당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한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의 자문과 감사원의 감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창원교육지원청은 비싸고 다른 공법보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나을 게 없는 공법을 조건으로 해 정부 가이드라인을 어기면서 사실상 특정 업체에 몰아주기 발주를 한 셈입니다. 더욱이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보듯, 부실시공까지 이뤄진 터였습니다.

③<“다른 대안 많은데”…경남 학교들만 ‘신기술’ 무더기 발주> 10월 16일


■"우리는 몰랐다"던 교육청, 불법하도급 지시 증거 확인

창원교육지원청은 감사원의 감사 전까지 낙찰업체와 건설신기술 독점 사용사 간 벌어진 불법하도급 행위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방수공사 B 업체 대표는 교육청이 해당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을 넘어선다며, 앞장서서 불법하도급을 사실상 종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B사가 겪은 일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창원교육지원청의 건설신기술 722호 조건을 내건 학교 공사를 낙찰받은 B 업체는 해당 건설신기술 독점 사용사인 A사에 기술 사용 이전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독점 사용사인 A 사는 낙찰금액보다 천만 원 많은 기술료를 B사에 요구합니다. 이로써 기술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이에 공사 낙찰 업체가 창원교육지원청에 공법 변경이나 기술 이전 협상에 나서달라고 요청하지만, 창원교육지원청은 낙찰업체에게 신기술 독점사인 A사에 하도급을 주도록 '하도급 승낙서'를 발급합니다. 이에 낙찰업체는 이 같은 창원교육지원청의 행정 행위에 대해 국토부의 유권해석을 받아 '불법 하도급' 임을 확인하고 교육청에 다시 한번 항의를 하지만 창원교육지원청은 재차 하도급을 지시합니다. 신기술 보유 업체가 아니면 시공 품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청의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해당 신기술 보유사가 지난 2014년 만든 신기술 공법 설명서를 확인해본 결과, 교육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해당 공법 설명서에 따르면 해당 공법은 한 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시공할 수 있고, 품질 차이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건설신기술 사용사인 A사는 독점 사용권을 무기로 낙찰 업체에 기술 이전을 사실상 거부하고, 발주처인 창원교육지원청은 공법 설명서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불법 하도급임을 알고서도 신기술 독점사용사를 옹호하고 나선 겁니다.

■ 감사원, 업체만 '처벌' 공무원은 '면죄부'!

이 같은 취재결과를 종합해보면, 당시 방수 공사 낙찰업체들은 공사를 맡게 되더라도 신기술 독점사인 A사에 공사를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신기술 독점 사용사가 신기술을 넘기지 않은 데다, 교육청이 사실상 불법하도급을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 처분에 따라, 공사 낙찰업체 13곳은 공공입찰 제한 등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됐습니다. 감사원은 불법인 줄 알면서 낙찰업체가 하도급을 줬기 때문에 어쨌든 잘못이 낙찰업체에도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관급 공사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채워가는 건설 회사로서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구조적으로 불법하도급의 1차 책임이 있는 창원교육청 담당자들은 신기술 사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였다는 주장을 감사원에 어필했고, 감사원은 이 주장을 수용하면서 해당 공무원들은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KBS 취재에 따르면, 창원교육지원청의 담당 공무원들은 취재진조차 쉽게 찾은 공법설명서를 확인하지 않았고, 불법하도급임을 확인한 국토부의 유권해석조차 무시하고 하도급을 무리하게 추진했습니다. 적극적인 행정의 작은 실수라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힘든 사안으로, 관급공사에서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는 업체들로서는 감사원의 처분 결과를 보면서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④<“불법 하도급, 교육청이 강요했는데”…업체들만 피해> 10월 19일

■ 문제 신기술로 학교 공사 무더기 발주..5년간 100억 원
그런데 제722호 건설신기술은 감사원에서 밝힌 창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신기술을 조건으로 발주한 경남교육청 산하 지원청 공사가 지난 5년 동안 100여 건에 달하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같은 기간 경남교육청에서 발주한 신기술 공사가 모두 150건인 점과 비교하면 66%에 달합니다. 금액으로만 따지면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정부에 고시된 건설신기술은 대략 800여 개 안팎! 이중 방수 관련 건설신기술이 1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특정 업체가 독점 사용권을 가진 신기술이 경남교육청 공사에서 압도적인 호응을 받은 겁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0일 진행된 경상남도교육청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과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KBS 보도를 인용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신기술 공법을 채택했으며 특정 업체 특혜, 불법 하도급 등이 있었으며, 부실시공으로 이어졌다.”며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을 질타한 뒤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 경남 230여 개교 '전수 조사' 착수...이번에는 근절될까?

경상남도교육청은 KBS 보도가 시작된 뒤, 722호 건설신기술로 공사가 진행된 학교에서도 일부 불법하도급과 부실시공이 이뤄진 점을 시인하고, 신기술 공법이 적용된 경남 230개 학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지난 9일부터 돌입했습니다.

경남교육청은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공법 선정 검증 절차를 발표했습니다. 첫째, 신기술 보유사가 아니면 시공이 어려운 신기술 공법인지 공사 발주 전부터 확인하고, 둘째,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신기술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현장 여건상 신기술 공법이 꼭 필요한지, 유사 성능의 다른 일반 공법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고, 셋째, 특정 신기술이 교육청 산하 학교 공사 건수의 30%를 넘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교육청은 신기술을 적용한 공사가 끝나면 발주처에서 해당 신기술의 장단점을 분석해 기록을 남기는 '신기술인증관리시스템'을 마련하고, 건축사 등 외부 전문가들이 시공 현장의 정기 검사를 시행하는 등 신기술 남용과 특혜를 막기 위한 사후 관리 방안도 공식화했습니다.

지난 2008년에도 경남 지역 학교 옥상 방수 공사에 신기술을 이용한 특혜 수주로 15명의 업체 대표가 경찰에 입건되고, 공사업체들로부터 골프 로비를 받은 교육청 공무원이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경남교육청은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12년 만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는데, 경남교육청은 완벽하게 과거와 결별할 수 있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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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특혜 창구’로 변질된 건설신기술, 누가 죄인인가?
    • 입력 2020-11-16 16:38:37
    • 수정2020-11-16 16:38:57
    취재후·사건후

■"건설신기술, 학교 공사 특혜 수단이 됐다"

올해 처음 제보를 받은 건 아닙니다. 지난해 7월 보도국에 익명의 투서가 도착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 방수업을 20년째하고 있다고 밝힌 제보자는 창원교육지원청이 건설신기술 사용권을 독점한 김해 지역 A사에 공사를 무더기로 불법으로 몰아줬고, 해당 A사가 부실 공사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며 주장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공무원들에 대한 업체 로비가 주효했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에 착수한 지 2주 만에 제보자는 돌연 취재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자신들의 제보로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됐으니, 처분 결과를 일단 기다려달라는 이유였습니다.

올해 3월 감사원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보자는 다시 취재진을 찾아와, 감사결과가 특혜 수주한 공무원들이 모두 처벌을 피하는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당시는 국회 박덕흠 의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건설회사가 건설신기술로 수백억 원대의 관급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취재진은 건설신기술 문제를 지역사회에서도 공론화하기로 하고, 한 달에 걸쳐 방수업계 관계자와 건설신기술 전문가 등을 자문, 관계 법령을 검토하며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 “사실상 수의계약, 일감몰아주기”..불법하도급에 부실시공까지!

감사원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창원 지역의 옥상방수를 한 학교를 조사한 결과, 창원교육지원청은 모두 20개 학교에 건설신기술 제722호를 반드시 사용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발주했습니다. 이 중 13개 학교 공사에서 애초 경쟁 입찰로 낙찰받은 업체가 아니라, 해당 건설신기술 독점 사용사인 김해 A 업체가 공사를 불법하도급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더욱이 감사원은 현장 자재 납품 내역서와 현장 방수 두께 측정을 통해 A사가 공사한 13개 학교 가운데 6개 학교에서 부실 시공이 이뤄졌고, 준공 과정에서 교육청 담당 공무원들의 눈감아주기식 승인이 있었던 점도 추가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창원교육지원청은 불법 하도급과 관련해서는 업체 간 몰래 이뤄진 불법 행위일 뿐이며, 부실 시공에 관해서도 현장에 상주할 수 없어 몰랐다고 강변했습니다.

①<경쟁입찰이라더니…사실상 수의계약?> 10월 14일
②<공사 몰아줬더니 부실 시공까지?…교육청 “몰랐다”> 10월 15일


■ “관행대로 공법 선정했다”는 교육청..현장 전문가들은 “아니올시다”

방송에 앞서 취재진은 과연 해당 건설신기술 722호가 학교 현장에 꼭 필요한 공법이었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복수의 방수 업계 관계자는 해당 신기술이 '우레탄'이나 '폴리우레아'와 같은 일반적인 방수 기술과 비교하면 1.5배에서 2배가량 비싼 데다, 방수공법의 핵심 기술인 내구성과 경화 속도와 같은 항목에서도 특별할 것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나아가 학교 옥상처럼 경사 지붕이 없는 평평한 현장의 경우, 신기술을 굳이 적용할 필요가 없다며 비싼 공법을 선정한 배경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로 인근의 부산과 울산교육청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특허나 건설신기술 공법을 학교 현장에 단 한 건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발주처인 창원교육지원청은 해당 공법 선정이 일종의 관행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건설신기술로 지정된 공법이니 어느 정도 검증됐을 것이고, 비싼 만큼 더 좋을 것이라 기대했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건설신기술 지정 절차를 확인해본 결과, 건설신기술은 허가주의가 아닌 신청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신기술로 지정을 받았다고 해서 다 좋은 기술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정부 지침에도 신기술을 사용할 때 효율성과 경제성을 발주처에서 따지라고 돼 있지만, 창원교육지원청은 다른 공법보다 비싼 해당 신기술을 담당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한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의 자문과 감사원의 감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창원교육지원청은 비싸고 다른 공법보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나을 게 없는 공법을 조건으로 해 정부 가이드라인을 어기면서 사실상 특정 업체에 몰아주기 발주를 한 셈입니다. 더욱이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보듯, 부실시공까지 이뤄진 터였습니다.

③<“다른 대안 많은데”…경남 학교들만 ‘신기술’ 무더기 발주> 10월 16일


■"우리는 몰랐다"던 교육청, 불법하도급 지시 증거 확인

창원교육지원청은 감사원의 감사 전까지 낙찰업체와 건설신기술 독점 사용사 간 벌어진 불법하도급 행위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방수공사 B 업체 대표는 교육청이 해당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을 넘어선다며, 앞장서서 불법하도급을 사실상 종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B사가 겪은 일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창원교육지원청의 건설신기술 722호 조건을 내건 학교 공사를 낙찰받은 B 업체는 해당 건설신기술 독점 사용사인 A사에 기술 사용 이전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독점 사용사인 A 사는 낙찰금액보다 천만 원 많은 기술료를 B사에 요구합니다. 이로써 기술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이에 공사 낙찰 업체가 창원교육지원청에 공법 변경이나 기술 이전 협상에 나서달라고 요청하지만, 창원교육지원청은 낙찰업체에게 신기술 독점사인 A사에 하도급을 주도록 '하도급 승낙서'를 발급합니다. 이에 낙찰업체는 이 같은 창원교육지원청의 행정 행위에 대해 국토부의 유권해석을 받아 '불법 하도급' 임을 확인하고 교육청에 다시 한번 항의를 하지만 창원교육지원청은 재차 하도급을 지시합니다. 신기술 보유 업체가 아니면 시공 품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청의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해당 신기술 보유사가 지난 2014년 만든 신기술 공법 설명서를 확인해본 결과, 교육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해당 공법 설명서에 따르면 해당 공법은 한 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시공할 수 있고, 품질 차이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건설신기술 사용사인 A사는 독점 사용권을 무기로 낙찰 업체에 기술 이전을 사실상 거부하고, 발주처인 창원교육지원청은 공법 설명서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불법 하도급임을 알고서도 신기술 독점사용사를 옹호하고 나선 겁니다.

■ 감사원, 업체만 '처벌' 공무원은 '면죄부'!

이 같은 취재결과를 종합해보면, 당시 방수 공사 낙찰업체들은 공사를 맡게 되더라도 신기술 독점사인 A사에 공사를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신기술 독점 사용사가 신기술을 넘기지 않은 데다, 교육청이 사실상 불법하도급을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 처분에 따라, 공사 낙찰업체 13곳은 공공입찰 제한 등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됐습니다. 감사원은 불법인 줄 알면서 낙찰업체가 하도급을 줬기 때문에 어쨌든 잘못이 낙찰업체에도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관급 공사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채워가는 건설 회사로서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구조적으로 불법하도급의 1차 책임이 있는 창원교육청 담당자들은 신기술 사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였다는 주장을 감사원에 어필했고, 감사원은 이 주장을 수용하면서 해당 공무원들은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KBS 취재에 따르면, 창원교육지원청의 담당 공무원들은 취재진조차 쉽게 찾은 공법설명서를 확인하지 않았고, 불법하도급임을 확인한 국토부의 유권해석조차 무시하고 하도급을 무리하게 추진했습니다. 적극적인 행정의 작은 실수라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힘든 사안으로, 관급공사에서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는 업체들로서는 감사원의 처분 결과를 보면서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④<“불법 하도급, 교육청이 강요했는데”…업체들만 피해> 10월 19일

■ 문제 신기술로 학교 공사 무더기 발주..5년간 100억 원
그런데 제722호 건설신기술은 감사원에서 밝힌 창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신기술을 조건으로 발주한 경남교육청 산하 지원청 공사가 지난 5년 동안 100여 건에 달하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같은 기간 경남교육청에서 발주한 신기술 공사가 모두 150건인 점과 비교하면 66%에 달합니다. 금액으로만 따지면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정부에 고시된 건설신기술은 대략 800여 개 안팎! 이중 방수 관련 건설신기술이 1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특정 업체가 독점 사용권을 가진 신기술이 경남교육청 공사에서 압도적인 호응을 받은 겁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0일 진행된 경상남도교육청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과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KBS 보도를 인용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신기술 공법을 채택했으며 특정 업체 특혜, 불법 하도급 등이 있었으며, 부실시공으로 이어졌다.”며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을 질타한 뒤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 경남 230여 개교 '전수 조사' 착수...이번에는 근절될까?

경상남도교육청은 KBS 보도가 시작된 뒤, 722호 건설신기술로 공사가 진행된 학교에서도 일부 불법하도급과 부실시공이 이뤄진 점을 시인하고, 신기술 공법이 적용된 경남 230개 학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지난 9일부터 돌입했습니다.

경남교육청은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공법 선정 검증 절차를 발표했습니다. 첫째, 신기술 보유사가 아니면 시공이 어려운 신기술 공법인지 공사 발주 전부터 확인하고, 둘째,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신기술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현장 여건상 신기술 공법이 꼭 필요한지, 유사 성능의 다른 일반 공법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고, 셋째, 특정 신기술이 교육청 산하 학교 공사 건수의 30%를 넘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교육청은 신기술을 적용한 공사가 끝나면 발주처에서 해당 신기술의 장단점을 분석해 기록을 남기는 '신기술인증관리시스템'을 마련하고, 건축사 등 외부 전문가들이 시공 현장의 정기 검사를 시행하는 등 신기술 남용과 특혜를 막기 위한 사후 관리 방안도 공식화했습니다.

지난 2008년에도 경남 지역 학교 옥상 방수 공사에 신기술을 이용한 특혜 수주로 15명의 업체 대표가 경찰에 입건되고, 공사업체들로부터 골프 로비를 받은 교육청 공무원이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경남교육청은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12년 만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는데, 경남교육청은 완벽하게 과거와 결별할 수 있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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