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없는 서울시, 광화문광장 확장 강행…왜?

입력 2020.11.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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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광화문광장이 새롭게 조성됩니다. 2009년 처음 공원이 조성된 이후 11년 만입니다. 오늘(16일) 첫 삽을 뜨지만, 공식 착공식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서울시 기자설명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출입기자 상당수가 자가격리되고 기자실이 폐쇄된 상태에서 온라인 브리핑으로 진행됐습니다.

기자설명회에 앞서 시민단체들은 시청 앞에서 졸속 추진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긴급하게 열린 나머지 주최 측과 취재진 모두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조용히, 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시작됐습니다.

■ 광화문광장의 새 목표 '시민이 쉬고 싶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

"차로로 단절된 회색 콘크리트 광장,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오명 속에 정체성을 잃어버린 광화문광장"
"광화문 전면부에 역사공간이 미흡하고 차도로 단절되어 있으며, 시민 편익시 설도 부족합니다. 또 소음과 매연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서울시는 오늘 기자설명회에서 광화문광장의 현 상태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11년 전 광장 조성 때부터 지적된 문제들입니다. 그러면서 79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단기 사업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새 광장은 광화문 앞에 역사광장이 조성되고, 서쪽 세종문화회관 차로를 없애 시민광장이 조성됩니다. 전체 면적은 3만 4,600㎡로, 현재 면적 1만 8,840㎡의 약 두 배쯤 커집니다. 광화문 앞에는 조선 시대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었던 월대가 복원되지만, 사직로 차량 통행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2018년 계획에서 논란이었던 광화문광장 지하광장 조성계획은 취소됐습니다. 투입될 예산은 791억 원으로, 2년 전 계획보다 189억 원이 줄었습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새 광화문광장의 미래 청사진을 '시민이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 광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광장 조성은 2단계로 진행됩니다. 주한 미국대사관 앞 도로를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7~9차로로 확장하는 1단계 사업은 내년 3월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월부터는 광화문광장 서측 차로는 통행이 차단됩니다. 시민광장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배치하는 2단계 시설물 조성공사는 10월까지 진행됩니다. 경복궁 월대 복원과 주변 정비사업은 내년 하반기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2023년까지 월대 등 문화재 복원과 주변 정비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업이 서울역에서 세종대로 사거리 구간의 사람숲길 조성사업과 이어져, 교통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로를 줄이고 보도를 넓히는 세종대로 사람숲길 공사를 위해 3개 차로를 축소했지만, 신호등제어를 통해 도심 통과 교통량을 우회시키면서 오히려 교통 속도는 높아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 "광장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 공사를 하고 싶은 것인가" 시민단체 반발


오늘 서울시의 착공 발표에 대해, 시민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경실련, 도시연대, 문화연대, 서울YMCA 등 박원순 서울시정에서 서울시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맺어온 시민단체들입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서 서울시가 진행한 공론화가 허울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론화가 부족하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을 받아들여, 당선된 설계안 추진을 중단하고 재구조화 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1년간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 지역주민, 온라인 등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가 추가로 진행됐습니다. 오늘 기자 설명회에서 서울시는 4년간에 걸쳐 300여 차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집단 지성의 결과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발표된 내용을 보니,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입니다. 박 시장 재임 당시 계획과 비교하면 광화문광장 완공 시기가 고작 5개월 늦춰졌을 뿐입니다. 이들은 최근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시의회에 정보 공개와 이를 토대로 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공개적으로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 조성계획에 대한 종합계획이 공개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착공을 발표하자 "당혹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성토했습니다.

특히, 시장 공석 상황에서 서울시가 사업을 강행하는 데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재석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회장은 "서울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오늘부터 착공한다는 걸 얼마나 알까"라고 반문하며 "새로운 시장이 와서 다시 결정하는데 6개월 남짓밖에 더 지체되지 않는데 빨리 진행하려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은주 경실련 간사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광장다운 광장을 만들려면 차기 시장 선거 5개월 앞둔 시점에 급하게 무리하게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그조차도 서울시는 묵살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사업에 들어간 예산의 낭비와 사업의 실패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공무원의 성과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 즉답 피한 서울시, 최종 목표는 전면적 보행광장


기자들의 질문도 이 부분에 집중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광화문광장의 이용이 9달째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재정을 투입할 곳이 늘어난 상황에서 더 넓은 광장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은 "시장 궐위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 4년여 논의했던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박 시장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잇는다는 원론적인 답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 그린벨트 보존, 한강 경관 보전을 위한 35층 높이 제한 등 박 시장의 철학을 담은 사업들은 대행 체제 서울시에서 더는 언급되지 않거나 원칙이 흔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광화문광장 사업 추진이 유독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이 "완성형이 아닌 진화형의 광장"이라고도 했습니다. 류훈 도시재생실장은 "광화문광장의 최종 종착은 전면적 보행광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세종문화회관뿐만 아니라 미 대사관 측 차로도 언젠가는 광화문광장이 될 거라는 얘깁니다. "시기는 확정할 수 없지만, 보행도시에 대한 기본 방향과 맞기 때문에 미래에는 전부 광장으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광화문광장은 1994년, 관선 서울시장 때부터 구상된 오래된 계획입니다. 이 장소가 도심 서울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시장이 바뀔 때마다 "단기 계획"이 반복되면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의 의미를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하고 정체성을 함께 구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질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충분한 동의 없이 기계적으로 추진되는 광화문광장 사업은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행정 관료, 건축가, 건설회사를 포함한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연결된 성장기계(Growth machine)로 굴러가는 도시 개발은 재정을 낭비하고 도시의 가치를 위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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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6 17:26:10
    취재K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광화문광장이 새롭게 조성됩니다. 2009년 처음 공원이 조성된 이후 11년 만입니다. 오늘(16일) 첫 삽을 뜨지만, 공식 착공식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서울시 기자설명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출입기자 상당수가 자가격리되고 기자실이 폐쇄된 상태에서 온라인 브리핑으로 진행됐습니다.

기자설명회에 앞서 시민단체들은 시청 앞에서 졸속 추진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긴급하게 열린 나머지 주최 측과 취재진 모두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조용히, 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시작됐습니다.

■ 광화문광장의 새 목표 '시민이 쉬고 싶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

"차로로 단절된 회색 콘크리트 광장,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오명 속에 정체성을 잃어버린 광화문광장"
"광화문 전면부에 역사공간이 미흡하고 차도로 단절되어 있으며, 시민 편익시 설도 부족합니다. 또 소음과 매연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서울시는 오늘 기자설명회에서 광화문광장의 현 상태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11년 전 광장 조성 때부터 지적된 문제들입니다. 그러면서 79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단기 사업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새 광장은 광화문 앞에 역사광장이 조성되고, 서쪽 세종문화회관 차로를 없애 시민광장이 조성됩니다. 전체 면적은 3만 4,600㎡로, 현재 면적 1만 8,840㎡의 약 두 배쯤 커집니다. 광화문 앞에는 조선 시대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었던 월대가 복원되지만, 사직로 차량 통행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2018년 계획에서 논란이었던 광화문광장 지하광장 조성계획은 취소됐습니다. 투입될 예산은 791억 원으로, 2년 전 계획보다 189억 원이 줄었습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새 광화문광장의 미래 청사진을 '시민이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 광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광장 조성은 2단계로 진행됩니다. 주한 미국대사관 앞 도로를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7~9차로로 확장하는 1단계 사업은 내년 3월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월부터는 광화문광장 서측 차로는 통행이 차단됩니다. 시민광장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배치하는 2단계 시설물 조성공사는 10월까지 진행됩니다. 경복궁 월대 복원과 주변 정비사업은 내년 하반기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2023년까지 월대 등 문화재 복원과 주변 정비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업이 서울역에서 세종대로 사거리 구간의 사람숲길 조성사업과 이어져, 교통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로를 줄이고 보도를 넓히는 세종대로 사람숲길 공사를 위해 3개 차로를 축소했지만, 신호등제어를 통해 도심 통과 교통량을 우회시키면서 오히려 교통 속도는 높아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 "광장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 공사를 하고 싶은 것인가" 시민단체 반발


오늘 서울시의 착공 발표에 대해, 시민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경실련, 도시연대, 문화연대, 서울YMCA 등 박원순 서울시정에서 서울시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맺어온 시민단체들입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서 서울시가 진행한 공론화가 허울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론화가 부족하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을 받아들여, 당선된 설계안 추진을 중단하고 재구조화 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1년간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 지역주민, 온라인 등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가 추가로 진행됐습니다. 오늘 기자 설명회에서 서울시는 4년간에 걸쳐 300여 차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집단 지성의 결과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발표된 내용을 보니,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입니다. 박 시장 재임 당시 계획과 비교하면 광화문광장 완공 시기가 고작 5개월 늦춰졌을 뿐입니다. 이들은 최근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시의회에 정보 공개와 이를 토대로 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공개적으로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 조성계획에 대한 종합계획이 공개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착공을 발표하자 "당혹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성토했습니다.

특히, 시장 공석 상황에서 서울시가 사업을 강행하는 데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재석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회장은 "서울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오늘부터 착공한다는 걸 얼마나 알까"라고 반문하며 "새로운 시장이 와서 다시 결정하는데 6개월 남짓밖에 더 지체되지 않는데 빨리 진행하려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은주 경실련 간사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광장다운 광장을 만들려면 차기 시장 선거 5개월 앞둔 시점에 급하게 무리하게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그조차도 서울시는 묵살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사업에 들어간 예산의 낭비와 사업의 실패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공무원의 성과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 즉답 피한 서울시, 최종 목표는 전면적 보행광장


기자들의 질문도 이 부분에 집중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광화문광장의 이용이 9달째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재정을 투입할 곳이 늘어난 상황에서 더 넓은 광장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은 "시장 궐위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 4년여 논의했던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박 시장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잇는다는 원론적인 답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 그린벨트 보존, 한강 경관 보전을 위한 35층 높이 제한 등 박 시장의 철학을 담은 사업들은 대행 체제 서울시에서 더는 언급되지 않거나 원칙이 흔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광화문광장 사업 추진이 유독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이 "완성형이 아닌 진화형의 광장"이라고도 했습니다. 류훈 도시재생실장은 "광화문광장의 최종 종착은 전면적 보행광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세종문화회관뿐만 아니라 미 대사관 측 차로도 언젠가는 광화문광장이 될 거라는 얘깁니다. "시기는 확정할 수 없지만, 보행도시에 대한 기본 방향과 맞기 때문에 미래에는 전부 광장으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광화문광장은 1994년, 관선 서울시장 때부터 구상된 오래된 계획입니다. 이 장소가 도심 서울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시장이 바뀔 때마다 "단기 계획"이 반복되면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의 의미를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하고 정체성을 함께 구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질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충분한 동의 없이 기계적으로 추진되는 광화문광장 사업은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행정 관료, 건축가, 건설회사를 포함한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연결된 성장기계(Growth machine)로 굴러가는 도시 개발은 재정을 낭비하고 도시의 가치를 위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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