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남 선거 캠프 강제추행 의혹…캠프도 경찰도 2차 가해

입력 2020.11.16 (19:02) 수정 2020.11.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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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선거 캠프 강제추행 의혹…캠프도 경찰도 2차 가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 4월, 경남의 한 지역구 캠프 선거대책위에서 60대 고문이 40대 여성 자원봉사자를 강제 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당시 여성 자원봉사자 A씨는 경찰에 60대 고문을 고소했고,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했습니다. 당시 캠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동의 없이 모텔 데려가 내리게 하려 해" VS "묻지 않고 갔지만 바로 돌아와…실랑이 없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선거를 이틀 앞둔 4월 13일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 A씨는 당시 선거 운동 중이던 한낮에 60대 고문이 고생하니 차를 한 잔 사주겠다며 불렀다고 말했습니다. 선거캠프에서 인사를 나눴고, 사적인 교류가 없었지만 사실상 상관이라고 생각해 나갔다는 겁니다. A씨는 고문이 카페로 가는 동안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손을 잡아 치욕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신 뒤 고문이 동의 없이 인근 모텔로 차를 몰아 강제로 내리게 하려 해 저항했다고 주장합니다. 다음은 A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피해여성 A씨
"비는 시간에 차 한잔 고생하니까 사줄게(라고 했습니다.) …캠프에 있는 상관들이 부르면 가야 하거든요. …'향수 냄새에 남자들은 흥분한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제가 할 말이 없죠. …손을 잡으려고 계속 시도했고 손을 잡았고.…치욕감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모텔 주차장으로 돌진하는 거죠. 보조석 문을 열고 팔을 잡아당기면서 내리라는 거예요. '내가 여기 왜 내립니까!' 그랬거든요."

취재진은 해당 고문에게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고문은 A씨와 선거 캠프에서 알게 됐고 평소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A씨의 나이도 정확하게 몰랐고, 직업도 사건 당일 대화하며 알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았다며, A씨가 무슨 향수를 쓰는지, 향수 냄새는 이성을 매혹한다는 말을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당시 A씨가 통화를 하고 있어 미리 묻지 않고 모텔에 데려간 것이라며, 일정이 생겨 곧바로 돌아왔고 실랑이는 없었다고 답변했습니다. 다음은 고문이 말한 답변입니다.

당시 ○○선거캠프 선대위 고문
"(A씨 나이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난 처음 봤으니. 캠프에 가서 한 열흘 전에 알았습니다. …향수 냄새는 남자를 이성을 매혹하는 그런 향수다, 얘길 했죠. …(모텔 가는 것은) 그쪽에서 동의는 안 한 걸로 알고 마침 가니까 있어서. …들어가는 새까지 (A씨가) 전화를 하고 있어서 들어가자마자 조금 이따가 전화 끝이 나고 사람이 온다고 그래요. …자기가 안 원해서 들어갔다가 1분 만에 나온 겁니다. …검찰에서 무혐의 받았습니다."

사건 다음날, 해당 고문은 A씨에게 "실수한 것 같다, 죄송하다"며 짧은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A씨는 사건 이후 불안이 높아지고 잠들기 힘들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 피해 여성, 캠프에 사건 알렸지만… 캠프는 "선거 악영향 미치지 말라." 방관

문제는 이에 대해 선거 캠프 차원의 조사나 대응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A씨 측은 사건 당일 캠프 사무장에게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캠프 측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당 사건이 선관위에 등록된 선거 사무국인 공식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별도 조직인 선대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었다는 겁니다. 당시 캠프 사무장과 또 다른 캠프 관계자의 답변입니다.

당시 ○○선거캠프 사무장
"(당시) 선거도 이틀 남았으니까 악영향 미치지 말고 본인들끼리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인 선거 사무국에서 관여하는 것은 맞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시 ○○선거캠프 관계자
"저희는 캠프에도 하루에 많게는 500명, 전국에서 와서 응원하러 오는 분이 있어서 …저희가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고.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밖에서 이뤄지는 일들이기 때문에"

경남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선거법상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 선대위는 선거사무소의 내부 조직입니다. 또, 해당 캠프와 선대위는 같은 건물에서 활동했고, 캠프에서 해당 고문에게 후보자 이름으로 임명장도 줬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부에서 추행 의혹이 불거져도 별도의 보호 대책은 없는 겁니다.


■ 경찰, 이유 없이 피해자 신뢰관계인 퇴거 조치…조사 과정 '성인지 감수성' 논란

성추행 조사에 미온적인 것은 경찰 수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34조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자가 신청한 신뢰관계자와 동석하게 해야 합니다. 수사기관 진술 시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유를 알리지 않고 조사 초반부터 신뢰관계자를 벽 너머로 나가게 해 피해자 혼자 조사받게 했습니다. 신뢰관계자는 "수사 시작 7분 정도. (경찰의) 나가라는 말이 거의 명령조로 들렸기 때문에 나간 거죠."라고 취재진에게 답변했습니다.

A씨는 경찰 진술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의 질문이 피해 사실을 의심하거나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져 고통받았다고 말합니다. 실제 진술조사서를 보면, 경찰은 A씨와 해당 고문이 손잡은 내용을 두고 스무 차례가량 반복적으로 물었습니다. 또, 해당 고문의 주장을 여러 차례 인용해 A씨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관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질문하는 거죠. '손을 잡은 건 승인한 거 아닌가요?' 라고 하면서 취조하듯이."라고 기억하며 경찰 조사에서 2차 피해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경찰청이 전국에 시행하는 성폭력 표준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진술 조사 시 가해자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반항 정도를 직설적으로 묻는 것을 자제하고 필요하면 피해자를 배려해 질문해야 합니다.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사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겁니다.

증거 확보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이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가해자의 요청에 따라 함께 현장에 가 카페와 길거리 CCTV 등을 확보했지만, 피해자가 요청한 모텔 주차장 CCTV는 저장기한 6일이 지났다며 확보하지 않았고, 복원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건은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해당 경찰서는 청문 감찰 결과 조사관의 질문과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고, 신뢰관계자 퇴거 설명이 미흡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미흡한 부분에 대해 앞으로 개선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 선거캠프도 경찰수사도… 성폭력 사건 보호받을 안전망 '부실'

검찰이 해당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하자, A씨는 추가 증거를 모아 검찰 항고를 제기했습니다. 검찰은 지난 11일 항고를 인용해 사건을 접수했습니다.

여성단체는 이번 사건이 지역의 선거캠프와 수사기관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보여준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경남에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방법은 선거캠프가 사실상 유일하다. 경남 대다수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같이 참여하는 게 선거캠프인데, 여기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지 못하고 잘못된 문제에 대해 방관하면 해당 캠프와 후보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위계가 생겼고 폭력 사안이 벌어졌다. 어떻게 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캠프 측이 책임을 다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도 피해자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등 피해자의 심리적 압박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경찰 진술조사 과정에 대해 "경찰관이 앞에서 보여준 태도나 언어, 행동을 봤을 때 피해자가 느끼는 것은 나를 믿지 못해서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인가? 나를 어디까지 의심하는 것인가?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며,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일상의 언어, 태도, 행동에 대해 교육받고 자기 스스로 감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그때,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괜찮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오니까 더 괴로워요. 수많은 피해자가 있지만 제대로 억울함을 풀 수 있는 피해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건 일곱 달이 지났지만, A씨는 시간이 갈수록 사건이 생생하게 떠올라 괴롭다고 호소했습니다. A씨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한 선거 캠프와 함께 일했던 이들의 얼굴, 경찰 수사과정에서 상처받은 기억들이 A씨를 잠 못 이루게 했습니다. 사건 당시 선거캠프가 A씨의 도움 요청에 즉각 나서 조직 차원의 조치와 대책을 마련했다면,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충분히 배려했더라면 수사 결과를 떠나 A씨의 고통은 오늘까지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부 캠프 관계자들은 2차 가해를 우려한다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2차 가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의도가 의심된다거나, 이번 사안과 관계없이 A씨에 대한 험담을 취재진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피해자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아닌지, 씁쓸함이 몰려왔습니다.

인터뷰 말미,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대단한 제도 활용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언어, 태도, 행동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말대로, 언어, 태도, 행동에서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하고 크나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디쯤 있는지, 나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곰곰이 톺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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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경남 선거 캠프 강제추행 의혹…캠프도 경찰도 2차 가해
    • 입력 2020-11-16 19:02:42
    • 수정2020-11-16 19:03:10
    취재후·사건후
■ 경남 선거 캠프 강제추행 의혹…캠프도 경찰도 2차 가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 4월, 경남의 한 지역구 캠프 선거대책위에서 60대 고문이 40대 여성 자원봉사자를 강제 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당시 여성 자원봉사자 A씨는 경찰에 60대 고문을 고소했고,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했습니다. 당시 캠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동의 없이 모텔 데려가 내리게 하려 해" VS "묻지 않고 갔지만 바로 돌아와…실랑이 없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선거를 이틀 앞둔 4월 13일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 A씨는 당시 선거 운동 중이던 한낮에 60대 고문이 고생하니 차를 한 잔 사주겠다며 불렀다고 말했습니다. 선거캠프에서 인사를 나눴고, 사적인 교류가 없었지만 사실상 상관이라고 생각해 나갔다는 겁니다. A씨는 고문이 카페로 가는 동안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손을 잡아 치욕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신 뒤 고문이 동의 없이 인근 모텔로 차를 몰아 강제로 내리게 하려 해 저항했다고 주장합니다. 다음은 A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피해여성 A씨
"비는 시간에 차 한잔 고생하니까 사줄게(라고 했습니다.) …캠프에 있는 상관들이 부르면 가야 하거든요. …'향수 냄새에 남자들은 흥분한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제가 할 말이 없죠. …손을 잡으려고 계속 시도했고 손을 잡았고.…치욕감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모텔 주차장으로 돌진하는 거죠. 보조석 문을 열고 팔을 잡아당기면서 내리라는 거예요. '내가 여기 왜 내립니까!' 그랬거든요."

취재진은 해당 고문에게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고문은 A씨와 선거 캠프에서 알게 됐고 평소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A씨의 나이도 정확하게 몰랐고, 직업도 사건 당일 대화하며 알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았다며, A씨가 무슨 향수를 쓰는지, 향수 냄새는 이성을 매혹한다는 말을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당시 A씨가 통화를 하고 있어 미리 묻지 않고 모텔에 데려간 것이라며, 일정이 생겨 곧바로 돌아왔고 실랑이는 없었다고 답변했습니다. 다음은 고문이 말한 답변입니다.

당시 ○○선거캠프 선대위 고문
"(A씨 나이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난 처음 봤으니. 캠프에 가서 한 열흘 전에 알았습니다. …향수 냄새는 남자를 이성을 매혹하는 그런 향수다, 얘길 했죠. …(모텔 가는 것은) 그쪽에서 동의는 안 한 걸로 알고 마침 가니까 있어서. …들어가는 새까지 (A씨가) 전화를 하고 있어서 들어가자마자 조금 이따가 전화 끝이 나고 사람이 온다고 그래요. …자기가 안 원해서 들어갔다가 1분 만에 나온 겁니다. …검찰에서 무혐의 받았습니다."

사건 다음날, 해당 고문은 A씨에게 "실수한 것 같다, 죄송하다"며 짧은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A씨는 사건 이후 불안이 높아지고 잠들기 힘들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 피해 여성, 캠프에 사건 알렸지만… 캠프는 "선거 악영향 미치지 말라." 방관

문제는 이에 대해 선거 캠프 차원의 조사나 대응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A씨 측은 사건 당일 캠프 사무장에게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캠프 측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당 사건이 선관위에 등록된 선거 사무국인 공식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별도 조직인 선대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었다는 겁니다. 당시 캠프 사무장과 또 다른 캠프 관계자의 답변입니다.

당시 ○○선거캠프 사무장
"(당시) 선거도 이틀 남았으니까 악영향 미치지 말고 본인들끼리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인 선거 사무국에서 관여하는 것은 맞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시 ○○선거캠프 관계자
"저희는 캠프에도 하루에 많게는 500명, 전국에서 와서 응원하러 오는 분이 있어서 …저희가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고.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밖에서 이뤄지는 일들이기 때문에"

경남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선거법상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 선대위는 선거사무소의 내부 조직입니다. 또, 해당 캠프와 선대위는 같은 건물에서 활동했고, 캠프에서 해당 고문에게 후보자 이름으로 임명장도 줬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부에서 추행 의혹이 불거져도 별도의 보호 대책은 없는 겁니다.


■ 경찰, 이유 없이 피해자 신뢰관계인 퇴거 조치…조사 과정 '성인지 감수성' 논란

성추행 조사에 미온적인 것은 경찰 수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34조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자가 신청한 신뢰관계자와 동석하게 해야 합니다. 수사기관 진술 시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유를 알리지 않고 조사 초반부터 신뢰관계자를 벽 너머로 나가게 해 피해자 혼자 조사받게 했습니다. 신뢰관계자는 "수사 시작 7분 정도. (경찰의) 나가라는 말이 거의 명령조로 들렸기 때문에 나간 거죠."라고 취재진에게 답변했습니다.

A씨는 경찰 진술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의 질문이 피해 사실을 의심하거나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져 고통받았다고 말합니다. 실제 진술조사서를 보면, 경찰은 A씨와 해당 고문이 손잡은 내용을 두고 스무 차례가량 반복적으로 물었습니다. 또, 해당 고문의 주장을 여러 차례 인용해 A씨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관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질문하는 거죠. '손을 잡은 건 승인한 거 아닌가요?' 라고 하면서 취조하듯이."라고 기억하며 경찰 조사에서 2차 피해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경찰청이 전국에 시행하는 성폭력 표준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진술 조사 시 가해자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반항 정도를 직설적으로 묻는 것을 자제하고 필요하면 피해자를 배려해 질문해야 합니다.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사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겁니다.

증거 확보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이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가해자의 요청에 따라 함께 현장에 가 카페와 길거리 CCTV 등을 확보했지만, 피해자가 요청한 모텔 주차장 CCTV는 저장기한 6일이 지났다며 확보하지 않았고, 복원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건은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해당 경찰서는 청문 감찰 결과 조사관의 질문과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고, 신뢰관계자 퇴거 설명이 미흡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미흡한 부분에 대해 앞으로 개선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 선거캠프도 경찰수사도… 성폭력 사건 보호받을 안전망 '부실'

검찰이 해당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하자, A씨는 추가 증거를 모아 검찰 항고를 제기했습니다. 검찰은 지난 11일 항고를 인용해 사건을 접수했습니다.

여성단체는 이번 사건이 지역의 선거캠프와 수사기관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보여준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경남에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방법은 선거캠프가 사실상 유일하다. 경남 대다수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같이 참여하는 게 선거캠프인데, 여기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지 못하고 잘못된 문제에 대해 방관하면 해당 캠프와 후보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위계가 생겼고 폭력 사안이 벌어졌다. 어떻게 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캠프 측이 책임을 다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도 피해자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등 피해자의 심리적 압박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경찰 진술조사 과정에 대해 "경찰관이 앞에서 보여준 태도나 언어, 행동을 봤을 때 피해자가 느끼는 것은 나를 믿지 못해서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인가? 나를 어디까지 의심하는 것인가?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며,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일상의 언어, 태도, 행동에 대해 교육받고 자기 스스로 감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그때,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괜찮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오니까 더 괴로워요. 수많은 피해자가 있지만 제대로 억울함을 풀 수 있는 피해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건 일곱 달이 지났지만, A씨는 시간이 갈수록 사건이 생생하게 떠올라 괴롭다고 호소했습니다. A씨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한 선거 캠프와 함께 일했던 이들의 얼굴, 경찰 수사과정에서 상처받은 기억들이 A씨를 잠 못 이루게 했습니다. 사건 당시 선거캠프가 A씨의 도움 요청에 즉각 나서 조직 차원의 조치와 대책을 마련했다면,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충분히 배려했더라면 수사 결과를 떠나 A씨의 고통은 오늘까지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부 캠프 관계자들은 2차 가해를 우려한다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2차 가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의도가 의심된다거나, 이번 사안과 관계없이 A씨에 대한 험담을 취재진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피해자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아닌지, 씁쓸함이 몰려왔습니다.

인터뷰 말미,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대단한 제도 활용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언어, 태도, 행동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말대로, 언어, 태도, 행동에서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하고 크나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디쯤 있는지, 나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곰곰이 톺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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