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그냥 일하게 놔 뒀으면…”, ‘경비업법’이 해고를 부르는 이유

입력 2020.11.17 (15:42) 수정 2020.11.17 (15: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 아파트 주변 청소에 나선 경비원이른 아침 아파트 주변 청소에 나선 경비원

■ 전 국민 70%가 사는 공동주택....'아파트 경비원' 업무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아파트라 불리는 공동주택에 사는 시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요즘 같은 늦가을에는 낙엽을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고 화단을 가꾸는 일을 하시는데요.
여기에 매주 돌아오는 재활용품 배출일이면 주민들이 좀 멋대로(?) 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입주민들이 집을 비워서 받지 못하는 택배들도 보관해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출퇴근길 복잡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교통정리도 도맡아 하고, 가끔 이중주차로 곤란을 겪을 때는 힘겹게 차량을 밀어 길을 내주시기도 하죠.

이렇게 보니 공통주택에서 살면서 해결해야 하는 많은 일을 경비원분들께서 도와주시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경비원'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부르는 '경비 아저씨'가 더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 경비원들이 공동주택관리법상의 '관리원'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는 '경비업법'의 '경비'에 속하기도 합니다.

이 '경비업법', 우리가 은행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청경' 분들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직군으로 경비원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경찰청은 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해 아파트 위탁관리 회사 등에 '경비업법' 을 준수하라며 단속 예고 공문을 보냅니다.

경비 외 업무인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경비원경비 외 업무인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경비원

■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 업무 외 다른 업무 할 수 없다"....파장 몰고 온 법원 판결

현행 '경비원법'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 업무 외의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기존에 하던 청소나 분리수거, 택배관리, 때에 따라서는 주차관리 등도 불법 행위에 속합니다. 경비원들은 원래 이 법에 적용을 받아왔다고 하는데, 사실 좀 뜬금없긴 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경비원들의 업무가 알고 보니 불법행위라는 거 아닙니까?

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경비업법을 엄격히 들이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018년의 일입니다.

수원지법 행정3부는 '아파트의 택배관리, 제초, 가지치기 보조,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비업무가 아니다'라며 업체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경비원에게는 경비업무만 시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관할관청의 허가와 신고 없이 경비업무와 청소원 관리업무를 수행해 온 주택관리업자에게 벌금형 선고를 유예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과 이를 근거로 한 법제처 법령 해석 검토 등이 경비업법 적용의 주요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경찰청은 아파트 위탁관리 회사들에 경비업법 준수 요청 공문을 보내며 단속을 예고한 겁니다.

‘경비업법’ 엄격 적용 예고한 경찰‘경비업법’ 엄격 적용 예고한 경찰

■'경비업법' 실제 적용, 업무 범위 제한 놓고 현장 곳곳에서 논란 불러

공문을 받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은 당혹스러웠습니다.

경비업법 적용에 따른 경비원 업무 제한 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대책도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몇 달 뒤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애초 경찰청에서는 지난 5월 31일까지를 사전 계도 기간으로 잡았다가 다시 올해 말로 연장했고, 최근에는 경비원에게 적용되는 다른 법률인 '공동주택관리법'(이하 '공주법') 에서' 이 법에 따라 경비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경비업법' 제7조 제5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개정됨에 따라 다시 내년 10월 20일로 적용을 미뤘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아파트 경비원에게 경비업법을 적용하기에는 특히 '업무 범위 제한'에 따른 문제가 걸림돌입니다.

경비원법 제15조 제2항에는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 업무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경비원이 담당하던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관리 등의 관리보조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준수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관리사무소들은 "아파트 관리 업무의 특성상 업무를 세분화해 부분별로 담당자를 고용·지정하거나 업무 범위에 경계를 두는 것이 어렵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입주민들이 그만큼 더 비용을 들여 고용 인력을 늘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일지 작성 모습(분리수거, 재활용품 정리 정돈)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일지 작성 모습(분리수거, 재활용품 정리 정돈)

■ '경비업법'은 그대로, '공동주택관리법'만 개정....시행령은 어떻게 나올까?

결국, 공동주택의 경비원 업무 현실을 반영해 '공동주택관리법'이 지난달 개정됐습니다.

경비 업무 외에도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업무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겁니다.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존대로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는 허용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문제는 '경비업법'은 그대로인데, '공동주택관리법'만 개정됐다는 겁니다. 물론 '공동주택관리법'에서 '경비업법' 제7조 제5항의 적용 예외를 명문화하긴 했지만, 경찰이 현장에 적용할 '경비업법'은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법 시행이 되려면 아직 10달 정도의 유예 과정이 남았고, 그때까지는 현행법을 적용만 안 할 뿐이지 분명히 효력이 있습니다. 또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도 두고 볼 일입니다.

실제로 법 적용이 유예되는 이런 공백 상태를 이용해 교묘하게 경비원 인원을 줄이거나 용역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아파트 경비 초소 앞에 설치된 인원 감축 주민 투표함.아파트 경비 초소 앞에 설치된 인원 감축 주민 투표함.

■현실에선 벌써 경비원 감축 바람

'경비업법'에 따라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경비원을 채용하려면 '경비업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관리업체는 이럴 경우 경비지도사 추가 채용에다 자본금 확보 등의 조건을 맞춰야 해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데요. 오히려 주민들에게는 '이런 법 시행으로 경비 용역 전환이 불가피하다, 관리비 지출이 늘 것이라'며 경비 인원 감축 시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취재진이 찾은 아파트에서도 '무허가 경비업'이 될 수 있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나서, 결국 용역 전환과 경비원 감축이 결정됐습니다.

주민 투표 결과 공지 내용 (경비 용역 전환&경비원 인원 감축 과반수 찬성)주민 투표 결과 공지 내용 (경비 용역 전환&경비원 인원 감축 과반수 찬성)

갑질 피해를 막고 경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한 '경비업법'이 오히려 해고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경비업법'이 본격 적용될 것이라고 예고될 때부터 대량 해고 우려가 있었고, 여전히 그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어정쩡한 법 개정이 문제가 아닐까요?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주택관리업계에서는 법을 개정해 아파트 경비원을 아예 '생활 관리원'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의견입니다.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경비업법'에서 경비원을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아예 적용받지 않도록 분리해 현장의 혼란을 막고 현실성을 꾀하자는 거죠.

실제로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 제1항 제2호에서는 공동주택 관리 주체의 업무로 공동 주택 단지 안의 경비, 소독, 청소 및 쓰레기 수거 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은행 청경' 등 기타 경비 업무와의 충돌 때문에 '경비업법'이 개정될 수 없고, 예외 조항으로만 인정할 수 있다면 아파트 경비원은 분명 '경비업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이 맞습니다.

10달의 유예기간이 남았고, 법 적용으로 인한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더는 혼란이 없게 개념을 정리하고 관련법을 정리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일 것입니다.


■ 해고 동의서 받으러 다니는 경비원....아파트 경비원은 고용 불안에 시달려

이런 논란 속에서 최근 주목받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해고에 대한 주민 동의서를 경비원이 직접 받으러 다니게 하자, 한 대학생이 '본인을 자르는 데 동의해 달라'며 경비원을 다니게 하는 몰상식한 일이라며 자신은 차마 서명을 할 수 없었다고 주민 호소문을 게시한 겁니다.

주민의 일침에, 또 공분을 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해당 아파트 단지에서는 결국 해고 대신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취재를 통해 확인된 일부 아파트에서도 주민들이 경비원 인력 축소나 용역 전환에 반대해 연거푸 추진이 막힌 예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갑질'을 하는 소수 입주민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여전히 아파트 경비원을 소중한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경비업법' 엄격 적용 소식이 들리자, 혹시 온갖 궂은 잡일을 다 도맡아 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불똥이 튀어 해고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또 현재처럼 관리 업무를 처리할 것이 아니라면 경비원들을 채용할 필요가 있겠냐며 현실을 고려해 달라는 의견도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순찰 중인 경비원아파트에서 순찰 중인 경비원

■ "오래 일하고 싶다. 그냥 이대로만 일하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경비원분들에게 이런 혼란에 대해 물었습니다. 자신들은 그저 결정되는 대로 따라야 할 뿐이라며 제대로 의견 피력도 못 하셨는데요.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현실이 허용하는 한 오래 일하고 싶고, 그냥 이대로만 일하면 더는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비업법' 엄격 적용은 관리비 비용 절감 문제로 또 관리 용역 회사 도급으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안기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그냥 일하게 놔 뒀으면…”, ‘경비업법’이 해고를 부르는 이유
    • 입력 2020-11-17 15:42:21
    • 수정2020-11-17 15:42:44
    취재후·사건후
이른 아침 아파트 주변 청소에 나선 경비원
■ 전 국민 70%가 사는 공동주택....'아파트 경비원' 업무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아파트라 불리는 공동주택에 사는 시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요즘 같은 늦가을에는 낙엽을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고 화단을 가꾸는 일을 하시는데요.
여기에 매주 돌아오는 재활용품 배출일이면 주민들이 좀 멋대로(?) 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입주민들이 집을 비워서 받지 못하는 택배들도 보관해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출퇴근길 복잡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교통정리도 도맡아 하고, 가끔 이중주차로 곤란을 겪을 때는 힘겹게 차량을 밀어 길을 내주시기도 하죠.

이렇게 보니 공통주택에서 살면서 해결해야 하는 많은 일을 경비원분들께서 도와주시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경비원'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부르는 '경비 아저씨'가 더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 경비원들이 공동주택관리법상의 '관리원'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는 '경비업법'의 '경비'에 속하기도 합니다.

이 '경비업법', 우리가 은행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청경' 분들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직군으로 경비원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경찰청은 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해 아파트 위탁관리 회사 등에 '경비업법' 을 준수하라며 단속 예고 공문을 보냅니다.

경비 외 업무인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경비원
■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 업무 외 다른 업무 할 수 없다"....파장 몰고 온 법원 판결

현행 '경비원법'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 업무 외의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기존에 하던 청소나 분리수거, 택배관리, 때에 따라서는 주차관리 등도 불법 행위에 속합니다. 경비원들은 원래 이 법에 적용을 받아왔다고 하는데, 사실 좀 뜬금없긴 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경비원들의 업무가 알고 보니 불법행위라는 거 아닙니까?

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경비업법을 엄격히 들이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018년의 일입니다.

수원지법 행정3부는 '아파트의 택배관리, 제초, 가지치기 보조,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비업무가 아니다'라며 업체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경비원에게는 경비업무만 시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관할관청의 허가와 신고 없이 경비업무와 청소원 관리업무를 수행해 온 주택관리업자에게 벌금형 선고를 유예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과 이를 근거로 한 법제처 법령 해석 검토 등이 경비업법 적용의 주요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경찰청은 아파트 위탁관리 회사들에 경비업법 준수 요청 공문을 보내며 단속을 예고한 겁니다.

‘경비업법’ 엄격 적용 예고한 경찰
■'경비업법' 실제 적용, 업무 범위 제한 놓고 현장 곳곳에서 논란 불러

공문을 받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은 당혹스러웠습니다.

경비업법 적용에 따른 경비원 업무 제한 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대책도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몇 달 뒤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애초 경찰청에서는 지난 5월 31일까지를 사전 계도 기간으로 잡았다가 다시 올해 말로 연장했고, 최근에는 경비원에게 적용되는 다른 법률인 '공동주택관리법'(이하 '공주법') 에서' 이 법에 따라 경비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경비업법' 제7조 제5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개정됨에 따라 다시 내년 10월 20일로 적용을 미뤘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아파트 경비원에게 경비업법을 적용하기에는 특히 '업무 범위 제한'에 따른 문제가 걸림돌입니다.

경비원법 제15조 제2항에는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 업무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경비원이 담당하던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관리 등의 관리보조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준수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관리사무소들은 "아파트 관리 업무의 특성상 업무를 세분화해 부분별로 담당자를 고용·지정하거나 업무 범위에 경계를 두는 것이 어렵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입주민들이 그만큼 더 비용을 들여 고용 인력을 늘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일지 작성 모습(분리수거, 재활용품 정리 정돈)
■ '경비업법'은 그대로, '공동주택관리법'만 개정....시행령은 어떻게 나올까?

결국, 공동주택의 경비원 업무 현실을 반영해 '공동주택관리법'이 지난달 개정됐습니다.

경비 업무 외에도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업무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겁니다.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존대로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는 허용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문제는 '경비업법'은 그대로인데, '공동주택관리법'만 개정됐다는 겁니다. 물론 '공동주택관리법'에서 '경비업법' 제7조 제5항의 적용 예외를 명문화하긴 했지만, 경찰이 현장에 적용할 '경비업법'은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법 시행이 되려면 아직 10달 정도의 유예 과정이 남았고, 그때까지는 현행법을 적용만 안 할 뿐이지 분명히 효력이 있습니다. 또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도 두고 볼 일입니다.

실제로 법 적용이 유예되는 이런 공백 상태를 이용해 교묘하게 경비원 인원을 줄이거나 용역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아파트 경비 초소 앞에 설치된 인원 감축 주민 투표함.
■현실에선 벌써 경비원 감축 바람

'경비업법'에 따라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경비원을 채용하려면 '경비업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관리업체는 이럴 경우 경비지도사 추가 채용에다 자본금 확보 등의 조건을 맞춰야 해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데요. 오히려 주민들에게는 '이런 법 시행으로 경비 용역 전환이 불가피하다, 관리비 지출이 늘 것이라'며 경비 인원 감축 시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취재진이 찾은 아파트에서도 '무허가 경비업'이 될 수 있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나서, 결국 용역 전환과 경비원 감축이 결정됐습니다.

주민 투표 결과 공지 내용 (경비 용역 전환&경비원 인원 감축 과반수 찬성)
갑질 피해를 막고 경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한 '경비업법'이 오히려 해고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경비업법'이 본격 적용될 것이라고 예고될 때부터 대량 해고 우려가 있었고, 여전히 그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어정쩡한 법 개정이 문제가 아닐까요?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주택관리업계에서는 법을 개정해 아파트 경비원을 아예 '생활 관리원'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의견입니다.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경비업법'에서 경비원을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아예 적용받지 않도록 분리해 현장의 혼란을 막고 현실성을 꾀하자는 거죠.

실제로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 제1항 제2호에서는 공동주택 관리 주체의 업무로 공동 주택 단지 안의 경비, 소독, 청소 및 쓰레기 수거 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은행 청경' 등 기타 경비 업무와의 충돌 때문에 '경비업법'이 개정될 수 없고, 예외 조항으로만 인정할 수 있다면 아파트 경비원은 분명 '경비업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이 맞습니다.

10달의 유예기간이 남았고, 법 적용으로 인한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더는 혼란이 없게 개념을 정리하고 관련법을 정리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일 것입니다.


■ 해고 동의서 받으러 다니는 경비원....아파트 경비원은 고용 불안에 시달려

이런 논란 속에서 최근 주목받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해고에 대한 주민 동의서를 경비원이 직접 받으러 다니게 하자, 한 대학생이 '본인을 자르는 데 동의해 달라'며 경비원을 다니게 하는 몰상식한 일이라며 자신은 차마 서명을 할 수 없었다고 주민 호소문을 게시한 겁니다.

주민의 일침에, 또 공분을 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해당 아파트 단지에서는 결국 해고 대신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취재를 통해 확인된 일부 아파트에서도 주민들이 경비원 인력 축소나 용역 전환에 반대해 연거푸 추진이 막힌 예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갑질'을 하는 소수 입주민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여전히 아파트 경비원을 소중한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경비업법' 엄격 적용 소식이 들리자, 혹시 온갖 궂은 잡일을 다 도맡아 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불똥이 튀어 해고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또 현재처럼 관리 업무를 처리할 것이 아니라면 경비원들을 채용할 필요가 있겠냐며 현실을 고려해 달라는 의견도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순찰 중인 경비원
■ "오래 일하고 싶다. 그냥 이대로만 일하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경비원분들에게 이런 혼란에 대해 물었습니다. 자신들은 그저 결정되는 대로 따라야 할 뿐이라며 제대로 의견 피력도 못 하셨는데요.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현실이 허용하는 한 오래 일하고 싶고, 그냥 이대로만 일하면 더는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비업법' 엄격 적용은 관리비 비용 절감 문제로 또 관리 용역 회사 도급으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안기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