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가습기살균제, 안전성 검토 없이 출시”

입력 2020.11.1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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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기준을 정확하게 지키도록 관리·감독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본격적인 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품 개발 초기에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윤성규 당시 환경부 장관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과연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 “국내 최초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검토 없이 출시”

사참위는 오늘(22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1990년대 국내 가습기 살균제 개발 및 출시 상황과 시장형성 과정’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출시된 유공의 ‘가습기메이트’입니다. 이후 1996년과 1997년에 걸쳐 옥시와 LG생활건강 등이 다른 회사 제품을 벤치마킹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잇따라 출시했습니다.

이 초기 제품들을 우선 성분별로 살펴볼까요. 유공의 ‘가습기메이트’는 샴푸 등의 제품에 사용되는 보존제인 CMIT·MIT가 1.5% 함유된 Kathon CG를 원료로 만든 제품입니다. 1996년 출시된 옥시의 ‘가습기당번’은 화학물질 BKC가 함유된 Preventol R80을 원료로 한 제품이고, LG 생활건강 역시 BKC가 함유된 BKC-50을 원료로 한 ‘119가습기세균제거’를 1997년에 출시했습니다.

제품의 원료에 함유된 CMIT·MIT, BKC는 모두 흡입 시 비강과 후두, 폐 등 호흡기 계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원료가 들어간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걸까요.

기업들은 나름의 검증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유공에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영순 교수실에 흡입노출시험을 의뢰했고, LG생활건강은 살균력 시험 및 유해물질 검사를, 애경은 증기테스트 등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인체에 흡입될 수 있는 제품의 안전성 검증을 위한 ‘흡입독성시험’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공과 옥시, LG생활건강은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제품부터 먼저 출시해버렸습니다.

국내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국내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

■ 92년부터 국내 흡입독성시험 기준 존재...‘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도 생길 수 있습니다. ‘저 성분들이 호흡기에 안 좋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건 비교적 최근이니, 가습기 살균제 개발 초기에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없지 않았을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1992년부터 이미 국내에는 흡입독성시험 기준이 마련돼있었습니다. 국립환경연구원(현 국립환경과학원)은 OECD 시험지침과 각국의 시험방법을 비교·검토해 시험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시험방법을 마련해 ‘화학물질의 환경위해성 평가연구’를 발간했습니다.

물론 1994년~1997년 당시 국내에는 현재 수준과 같은 흡입독성시험 장비를 갖춘 시험기관이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미국과 일본 등 국외에서는 가능했습니다. 이미 당시에도 화학물질 흡입 시 흡입, 분포, 대사 등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었고, 관련 연구논문도 많습니다.

기업들은 당시 과학수준 기술에 비추어 최선을 다했다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오늘 밝혀진 겁니다. 이하영 가습기살균제 조사1과 조사관은 “소위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실험을 의뢰하는 것 자체가 기업전체 자산 수준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안전성 검증이 안 됐으면, 팔지 말든가 제조하지 말든가 아니면 안전성 검토한 담에 출시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참위 발표에 따르면, 관련 제품이 처음 출시된 1994년부터 판매가 중지된 2011년까지 시장에 나온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모두 48종, 판매 개수는 995만 개입니다. 하지만 그중에 흡입독성 안전테스트를 거친 제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국내 첫 제품부터 흡입독성 안전테스트를 거쳤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최예용 부위원장 역시 “흡입독성시험 지침만 따랐더라면, 아마 대부분 제품이 시중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너무 안타깝고 후회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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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 가습기살균제, 안전성 검토 없이 출시”
    • 입력 2020-11-18 15:13:53
    취재K

“환경부가 기준을 정확하게 지키도록 관리·감독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본격적인 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품 개발 초기에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윤성규 당시 환경부 장관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과연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 “국내 최초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검토 없이 출시”

사참위는 오늘(22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1990년대 국내 가습기 살균제 개발 및 출시 상황과 시장형성 과정’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출시된 유공의 ‘가습기메이트’입니다. 이후 1996년과 1997년에 걸쳐 옥시와 LG생활건강 등이 다른 회사 제품을 벤치마킹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잇따라 출시했습니다.

이 초기 제품들을 우선 성분별로 살펴볼까요. 유공의 ‘가습기메이트’는 샴푸 등의 제품에 사용되는 보존제인 CMIT·MIT가 1.5% 함유된 Kathon CG를 원료로 만든 제품입니다. 1996년 출시된 옥시의 ‘가습기당번’은 화학물질 BKC가 함유된 Preventol R80을 원료로 한 제품이고, LG 생활건강 역시 BKC가 함유된 BKC-50을 원료로 한 ‘119가습기세균제거’를 1997년에 출시했습니다.

제품의 원료에 함유된 CMIT·MIT, BKC는 모두 흡입 시 비강과 후두, 폐 등 호흡기 계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원료가 들어간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걸까요.

기업들은 나름의 검증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유공에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영순 교수실에 흡입노출시험을 의뢰했고, LG생활건강은 살균력 시험 및 유해물질 검사를, 애경은 증기테스트 등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인체에 흡입될 수 있는 제품의 안전성 검증을 위한 ‘흡입독성시험’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공과 옥시, LG생활건강은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제품부터 먼저 출시해버렸습니다.

국내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
■ 92년부터 국내 흡입독성시험 기준 존재...‘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도 생길 수 있습니다. ‘저 성분들이 호흡기에 안 좋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건 비교적 최근이니, 가습기 살균제 개발 초기에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없지 않았을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1992년부터 이미 국내에는 흡입독성시험 기준이 마련돼있었습니다. 국립환경연구원(현 국립환경과학원)은 OECD 시험지침과 각국의 시험방법을 비교·검토해 시험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시험방법을 마련해 ‘화학물질의 환경위해성 평가연구’를 발간했습니다.

물론 1994년~1997년 당시 국내에는 현재 수준과 같은 흡입독성시험 장비를 갖춘 시험기관이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미국과 일본 등 국외에서는 가능했습니다. 이미 당시에도 화학물질 흡입 시 흡입, 분포, 대사 등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었고, 관련 연구논문도 많습니다.

기업들은 당시 과학수준 기술에 비추어 최선을 다했다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오늘 밝혀진 겁니다. 이하영 가습기살균제 조사1과 조사관은 “소위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실험을 의뢰하는 것 자체가 기업전체 자산 수준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안전성 검증이 안 됐으면, 팔지 말든가 제조하지 말든가 아니면 안전성 검토한 담에 출시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참위 발표에 따르면, 관련 제품이 처음 출시된 1994년부터 판매가 중지된 2011년까지 시장에 나온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모두 48종, 판매 개수는 995만 개입니다. 하지만 그중에 흡입독성 안전테스트를 거친 제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국내 첫 제품부터 흡입독성 안전테스트를 거쳤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최예용 부위원장 역시 “흡입독성시험 지침만 따랐더라면, 아마 대부분 제품이 시중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너무 안타깝고 후회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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