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시간 만에 숨진 아이…불법체류자 엄마 “추방될까 두려웠다”

입력 2020.11.19 (07: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태국에서 온 불법체류 여성이 병원에 가지 않고 홀로 낳은 아이가 생후 2시간 만에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서울동부지법(형사11부 손주철 판사)은 아이를 낳은 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아기를 사망에 이르게 해 유기치사 혐의를 받는 태국 국적 여성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어제(18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추방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판결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세상 떠난 아이

A 씨는 2018년 5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체류 기한인 8월까지 출국하지 않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습니다. A 씨는 마사지업에 종사하다 손님으로 온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했고, 지난 3월 어느 날 밤 8시에 출산했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A 씨는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티슈로 몸과 얼굴을 닦는 한편,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큰 수건을 깔고 다른 수건에 눕혔습니다. 하지만 모유 수유를 하거나 영양 공급을 하는 등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고, 당장 급하지 않은 방과 화장실 청소에 오랜 시간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밤 10시쯤 A 씨가 아이의 코에 손을 대 보았을 때 아이는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지만, A 씨는 119에 신고하는 등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 "한국말 몰라 도움 요청 못 해"

A 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출산 당일까지 임신한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아이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마사지 업소 업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업주가 도움을 주지 않아 병원에 갈 수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적극적으로 살리려고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라고 진술한 점,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또 A 씨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한국인과 태국인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있어 이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봤을 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음에도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문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 "추방 우려… 한국서 아이 양육하기 어려웠을 것"

재판부는 A 씨가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를 불법체류자 신분이 발각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사건 당시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홀로 마사지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아이를 출산해서 한국에서 양육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법원은 A 씨가 추방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고 A 씨 스스로도 이 사건 이후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아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불법체류 신분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유기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몽골인 여성이 낳은 아이가 방치된 채 숨졌고, 2016년에도 대구의 한 화장실에서 생후 1개월이 채 안 된 여아가 유기된 채 발견됐습니다.

■ '그림자', 미등록 이주 아동

만약 A 씨의 아기가 살아 있다고 해도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은 부모가 불법 체류자인 경우 자녀도 불법 체류자로 봅니다. 흔히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출생 신고를 할 수도 없고 외국인 등록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연히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예외가 됩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은 최대 1만 3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교육권이 보장됩니다. 미등록 체류 사실이 적발돼도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한국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에 따라 퇴거가 유예된 것일 뿐, 현행법상 졸업 이후에는 단속 시 강제퇴거 대상이라는 입장입니다.

인권위는 지난 5월 이들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를 중단하고 국내에 머무를 수 있도록 심사 제도를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생후 2시간 만에 숨진 아이…불법체류자 엄마 “추방될까 두려웠다”
    • 입력 2020-11-19 07:01:26
    취재K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태국에서 온 불법체류 여성이 병원에 가지 않고 홀로 낳은 아이가 생후 2시간 만에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서울동부지법(형사11부 손주철 판사)은 아이를 낳은 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아기를 사망에 이르게 해 유기치사 혐의를 받는 태국 국적 여성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어제(18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추방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판결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세상 떠난 아이

A 씨는 2018년 5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체류 기한인 8월까지 출국하지 않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습니다. A 씨는 마사지업에 종사하다 손님으로 온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했고, 지난 3월 어느 날 밤 8시에 출산했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A 씨는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티슈로 몸과 얼굴을 닦는 한편,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큰 수건을 깔고 다른 수건에 눕혔습니다. 하지만 모유 수유를 하거나 영양 공급을 하는 등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고, 당장 급하지 않은 방과 화장실 청소에 오랜 시간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밤 10시쯤 A 씨가 아이의 코에 손을 대 보았을 때 아이는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지만, A 씨는 119에 신고하는 등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 "한국말 몰라 도움 요청 못 해"

A 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출산 당일까지 임신한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아이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마사지 업소 업주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업주가 도움을 주지 않아 병원에 갈 수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적극적으로 살리려고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라고 진술한 점,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또 A 씨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한국인과 태국인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있어 이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봤을 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음에도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문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 "추방 우려… 한국서 아이 양육하기 어려웠을 것"

재판부는 A 씨가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를 불법체류자 신분이 발각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사건 당시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홀로 마사지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아이를 출산해서 한국에서 양육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법원은 A 씨가 추방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고 A 씨 스스로도 이 사건 이후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아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불법체류 신분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유기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몽골인 여성이 낳은 아이가 방치된 채 숨졌고, 2016년에도 대구의 한 화장실에서 생후 1개월이 채 안 된 여아가 유기된 채 발견됐습니다.

■ '그림자', 미등록 이주 아동

만약 A 씨의 아기가 살아 있다고 해도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은 부모가 불법 체류자인 경우 자녀도 불법 체류자로 봅니다. 흔히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출생 신고를 할 수도 없고 외국인 등록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연히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예외가 됩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은 최대 1만 3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교육권이 보장됩니다. 미등록 체류 사실이 적발돼도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한국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에 따라 퇴거가 유예된 것일 뿐, 현행법상 졸업 이후에는 단속 시 강제퇴거 대상이라는 입장입니다.

인권위는 지난 5월 이들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를 중단하고 국내에 머무를 수 있도록 심사 제도를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