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만에 명예훼손 처벌 범위 줄어들까…대법 오늘 선고

입력 2020.11.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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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에 사는 A 씨는 지난 2018년 이웃 B 씨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 온 전과자다. 전과자가 늙은 부모 피를 빨아먹고 내려온 놈이다"라고 길가에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A 씨의 남편, 그리고 B 씨의 친척 C 씨도 함께 있었습니다. A 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왔고, 전원합의체에 회부됐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19일) 형법상 상해와 명예훼손, 폭행 혐의를 받는 A 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결론을 내릴 예정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명예훼손 사건인데, 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지게 된 걸까요.

■"한 명에게 말해도 명예훼손"…비판받아온 판례, 바뀔까?

현행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여기서 명예훼손죄에서의 '공연성'이란, 명예훼손적 표현을 '불특정 내지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학설과 판례의 대립이 있어왔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그 동안 명예훼손적 표현을 직접 들은 사람의 수가 적더라도, 이들이 해당 표현을 퍼뜨려 다수인이 이를 알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전파가능성설)을 취해 왔습니다. 즉, 입을 닫아줄 만한 사람이냐를 또다시 따진 겁니다.

극단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명예훼손적 발언이 포함된 '뒷담화'를 했더라도, 이것이 흘러나가 '여러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판단하고, 발언자의 명예훼손죄를 인정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는 무리하게 처벌 범위를 넓히고,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학계는 명예훼손의 공연성 요건을 '적시된 사실의 내용을 다수인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직접인식가능성설)'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학계의 입장에 따르면 명예훼손적 표현을 들은 사람이 한 명일 경우, 명예훼손죄는 무죄입니다. 다수인이 명예훼손적 표현을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52년만의 판례변경 검토…변경 땐 명예훼손 성립범위 줄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선고를 통해 기존 판례를 학계의 입장대로 바꿀지, 아니면 그대로 둘지를 검토 중입니다.

명예훼손의 공연성 요건에 대해 대법원은 1968년 이후 판례를 변경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전원합의체에서 판례를 바꾸게 되면 50여 년 만에 명예훼손죄의 처벌 범위가 다소 줄어들게 됩니다. 적어도 일대일로 나누는 대화에서만큼은 명예훼손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이번 사건에서 하급심인 1심과 2심은 대법원 기존 판례대로 판단했습니다. A 씨가 명예훼손적 표현을 한 사실이 인정되고, C 씨가 B 씨와 친척 관계라도 A 씨의 명예훼손적 발언을 전파할 가능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A 씨에게 명예훼손죄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내부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법원의 오늘 결론에 법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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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여년 만에 명예훼손 처벌 범위 줄어들까…대법 오늘 선고
    • 입력 2020-11-19 07:01:26
    취재K

전남 고흥에 사는 A 씨는 지난 2018년 이웃 B 씨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 온 전과자다. 전과자가 늙은 부모 피를 빨아먹고 내려온 놈이다"라고 길가에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A 씨의 남편, 그리고 B 씨의 친척 C 씨도 함께 있었습니다. A 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왔고, 전원합의체에 회부됐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19일) 형법상 상해와 명예훼손, 폭행 혐의를 받는 A 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결론을 내릴 예정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명예훼손 사건인데, 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지게 된 걸까요.

■"한 명에게 말해도 명예훼손"…비판받아온 판례, 바뀔까?

현행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여기서 명예훼손죄에서의 '공연성'이란, 명예훼손적 표현을 '불특정 내지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학설과 판례의 대립이 있어왔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그 동안 명예훼손적 표현을 직접 들은 사람의 수가 적더라도, 이들이 해당 표현을 퍼뜨려 다수인이 이를 알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전파가능성설)을 취해 왔습니다. 즉, 입을 닫아줄 만한 사람이냐를 또다시 따진 겁니다.

극단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명예훼손적 발언이 포함된 '뒷담화'를 했더라도, 이것이 흘러나가 '여러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판단하고, 발언자의 명예훼손죄를 인정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는 무리하게 처벌 범위를 넓히고,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학계는 명예훼손의 공연성 요건을 '적시된 사실의 내용을 다수인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직접인식가능성설)'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학계의 입장에 따르면 명예훼손적 표현을 들은 사람이 한 명일 경우, 명예훼손죄는 무죄입니다. 다수인이 명예훼손적 표현을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52년만의 판례변경 검토…변경 땐 명예훼손 성립범위 줄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선고를 통해 기존 판례를 학계의 입장대로 바꿀지, 아니면 그대로 둘지를 검토 중입니다.

명예훼손의 공연성 요건에 대해 대법원은 1968년 이후 판례를 변경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전원합의체에서 판례를 바꾸게 되면 50여 년 만에 명예훼손죄의 처벌 범위가 다소 줄어들게 됩니다. 적어도 일대일로 나누는 대화에서만큼은 명예훼손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이번 사건에서 하급심인 1심과 2심은 대법원 기존 판례대로 판단했습니다. A 씨가 명예훼손적 표현을 한 사실이 인정되고, C 씨가 B 씨와 친척 관계라도 A 씨의 명예훼손적 발언을 전파할 가능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A 씨에게 명예훼손죄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내부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법원의 오늘 결론에 법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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