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이 비행기 티켓 팔면 잘 될까?…‘항공 빅딜’의 뒷면

입력 2020.1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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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 들여 재벌 배 불릴 일 있나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국적 항공사가 합친다는 소식 이후에 나온 시민단체의 반응입니다.

특히, 나랏돈이 들어갈 한진칼은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곳입니다. 산업은행이 나랏돈으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밀어준다'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 회장과 대립하는 KCGI 측은 "이번 인수는 현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한 대책"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 당연히 나올만합니다. 이걸 알고도 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를 대한항공 품에 안겼을까요?


■20년간 배 만든 은행

아시아나 이전에 짚어볼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입니다.

지금은 대우조선해양이 매각작업에 한창입니다. 하지만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리면 그때부터 대우조선해양 역사에 산업은행 이름이 등장하는 게 보입니다.

2000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2008년 한화그룹과 협상이 불발되는 과정까지 겪으며 2020년인 지금까지도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회사가 대우조선해양인 겁니다. 대우조선해양이 '공기업'이란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20조 원이 넘는 거로 추산됩니다.


■ 은행에서 배 만들었더니...결과는

물론, 회사 주인이 산업은행이라고 행원들이 나서 배를 만들진 않았죠. 산업은행은 '관리'를 했습니다. 산업은행이 전문경영인을 골라 매번 내려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의 관리 성적표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영업이익을 보니 2,928억 원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시장이 움츠러든 올해도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적이 나온 건 얼마 안 됐습니다. 업황이 바닥을 찍던 2015년 성적은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2015년 성적은 영업손실 5조 5,051억 원이었습니다. '천문학적'이란 표현이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나중에 이 숫자는 재무제표 수정으로 슬쩍 바뀝니다)

당시 산업은행은 "예상한 수준에 부합했다"고 밝혔습니다.

성적표 하나 더 있습니다. 산업은행장이 '관리'하겠다고 직접 골라 내려보낸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투자 압력을 넣었습니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재직 중이던 2012년에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압력을 넣어 지인이 운영하던 회사에 투자하라고 시킨 겁니다. 그렇게 산업은행 행장이던 강 전 행장은 이 혐의를 포함해 5년 2개월의 징역형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은 있었다는 사실만 짧게 언급합니다. 최악의 성적표라는 꼬리표가 아깝지 않습니다.

2016.06.15. 〈뉴스9〉 톱뉴스로 보도된 〈대우조선 1조 5천억 분식 회계에 성과급 잔치〉2016.06.15. 〈뉴스9〉 톱뉴스로 보도된 〈대우조선 1조 5천억 분식 회계에 성과급 잔치〉

■은행원이 비행기 티켓 판다면

이러니 산업은행이 아시아나를 '관리'하면서 꾸준히 비행기 티켓을 팔았다면, 잘 팔렸을까요?

산업은행 등 채권단 측에서 말하는 건 이렇습니다. "은행원이 비행기 티켓을 이렇게 저렇게 팔아보라고 관리한다고 영업이 잘 되겠나, 그런 불안감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라고요.

산업은행으로서 한계기업 관리는 괴로운 일입니다. 정치권에서도 간섭하고, 일자리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매각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면 어떻게든 팔고 싶었을 겁니다.

정부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3일 아시아나 인수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면 정부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아시아나 매각을 두고, 대우조선이 간 길을 걷지 않게 하겠다는 산업은행의 의도가 읽히는 이유입니다.


■ 조원태의 첫 결단?

조원태 회장은 무엇을 얻었을까요. 사실 이번 인수의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돈 한 푼도 안 내고 지키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측은한 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진그룹 일가가 일으킨 '종합 잡음' 탓입니다.

아마 누나는 3자 연합을 통해 자신과 반대편에 선 상황을 포함해 여동생과 어머니가 일으킨 일련의 갑질 논란을 염두에 둔 시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어쩌면 아슬아슬한 지분을 딛고 부모 도움 없이 난생처음 결단을 내린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양사 부채를 합쳐 30조 원이 넘는데, '인수 리스크'로 조 회장이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는 예측을 두고 나온 말입니다.

■'특혜' 시비는 여전

하지만 나랏돈으로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의혹을 중심으로 한 후폭풍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자금 투입 방식이 주요 지적대상입니다. 앞으로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돈을 댈 예정입니다. 대한항공에 투자하면 될 것을 왜 경영권 분쟁을 겪는 '한진칼'에 투자했냐는 게 비판의 핵심인 겁니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을 지원하는 거래입니다. 속히 민간에 넘기고 싶어 한 산업은행,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고 기업가로서 역할도 해보고 싶던 조 회장입니다. 양 측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경쟁' 사라진 비행기는 누굴 위해 날까?

이 거래 뒤로 남는 우려는 또 있습니다. '경쟁'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우리나라 국제노선을 양분하다시피 하며 경주를 하는 동안 소비자는 일부 이익을 봤습니다.

이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지켜봐야 합니다. 조 회장은 "티켓 가격 인상 없다"고 했지만 인정받던 항공 서비스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핑계를 대고 변해갈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인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피해 입지 말아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인위적 구조조정 역시 "없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양사가 합쳐 세금 축내는 기업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역시도 당연합니다. 뒷이야기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거래를 '빅딜'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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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원이 비행기 티켓 팔면 잘 될까?…‘항공 빅딜’의 뒷면
    • 입력 2020-11-19 12:00:11
    취재K

"나랏돈 들여 재벌 배 불릴 일 있나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국적 항공사가 합친다는 소식 이후에 나온 시민단체의 반응입니다.

특히, 나랏돈이 들어갈 한진칼은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곳입니다. 산업은행이 나랏돈으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밀어준다'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 회장과 대립하는 KCGI 측은 "이번 인수는 현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한 대책"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 당연히 나올만합니다. 이걸 알고도 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를 대한항공 품에 안겼을까요?


■20년간 배 만든 은행

아시아나 이전에 짚어볼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입니다.

지금은 대우조선해양이 매각작업에 한창입니다. 하지만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리면 그때부터 대우조선해양 역사에 산업은행 이름이 등장하는 게 보입니다.

2000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2008년 한화그룹과 협상이 불발되는 과정까지 겪으며 2020년인 지금까지도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회사가 대우조선해양인 겁니다. 대우조선해양이 '공기업'이란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20조 원이 넘는 거로 추산됩니다.


■ 은행에서 배 만들었더니...결과는

물론, 회사 주인이 산업은행이라고 행원들이 나서 배를 만들진 않았죠. 산업은행은 '관리'를 했습니다. 산업은행이 전문경영인을 골라 매번 내려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의 관리 성적표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영업이익을 보니 2,928억 원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시장이 움츠러든 올해도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적이 나온 건 얼마 안 됐습니다. 업황이 바닥을 찍던 2015년 성적은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2015년 성적은 영업손실 5조 5,051억 원이었습니다. '천문학적'이란 표현이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나중에 이 숫자는 재무제표 수정으로 슬쩍 바뀝니다)

당시 산업은행은 "예상한 수준에 부합했다"고 밝혔습니다.

성적표 하나 더 있습니다. 산업은행장이 '관리'하겠다고 직접 골라 내려보낸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투자 압력을 넣었습니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재직 중이던 2012년에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압력을 넣어 지인이 운영하던 회사에 투자하라고 시킨 겁니다. 그렇게 산업은행 행장이던 강 전 행장은 이 혐의를 포함해 5년 2개월의 징역형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은 있었다는 사실만 짧게 언급합니다. 최악의 성적표라는 꼬리표가 아깝지 않습니다.

2016.06.15. 〈뉴스9〉 톱뉴스로 보도된 〈대우조선 1조 5천억 분식 회계에 성과급 잔치〉
■은행원이 비행기 티켓 판다면

이러니 산업은행이 아시아나를 '관리'하면서 꾸준히 비행기 티켓을 팔았다면, 잘 팔렸을까요?

산업은행 등 채권단 측에서 말하는 건 이렇습니다. "은행원이 비행기 티켓을 이렇게 저렇게 팔아보라고 관리한다고 영업이 잘 되겠나, 그런 불안감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라고요.

산업은행으로서 한계기업 관리는 괴로운 일입니다. 정치권에서도 간섭하고, 일자리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매각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면 어떻게든 팔고 싶었을 겁니다.

정부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3일 아시아나 인수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면 정부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아시아나 매각을 두고, 대우조선이 간 길을 걷지 않게 하겠다는 산업은행의 의도가 읽히는 이유입니다.


■ 조원태의 첫 결단?

조원태 회장은 무엇을 얻었을까요. 사실 이번 인수의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돈 한 푼도 안 내고 지키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측은한 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진그룹 일가가 일으킨 '종합 잡음' 탓입니다.

아마 누나는 3자 연합을 통해 자신과 반대편에 선 상황을 포함해 여동생과 어머니가 일으킨 일련의 갑질 논란을 염두에 둔 시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어쩌면 아슬아슬한 지분을 딛고 부모 도움 없이 난생처음 결단을 내린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양사 부채를 합쳐 30조 원이 넘는데, '인수 리스크'로 조 회장이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는 예측을 두고 나온 말입니다.

■'특혜' 시비는 여전

하지만 나랏돈으로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의혹을 중심으로 한 후폭풍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자금 투입 방식이 주요 지적대상입니다. 앞으로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돈을 댈 예정입니다. 대한항공에 투자하면 될 것을 왜 경영권 분쟁을 겪는 '한진칼'에 투자했냐는 게 비판의 핵심인 겁니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을 지원하는 거래입니다. 속히 민간에 넘기고 싶어 한 산업은행,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고 기업가로서 역할도 해보고 싶던 조 회장입니다. 양 측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경쟁' 사라진 비행기는 누굴 위해 날까?

이 거래 뒤로 남는 우려는 또 있습니다. '경쟁'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우리나라 국제노선을 양분하다시피 하며 경주를 하는 동안 소비자는 일부 이익을 봤습니다.

이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지켜봐야 합니다. 조 회장은 "티켓 가격 인상 없다"고 했지만 인정받던 항공 서비스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핑계를 대고 변해갈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인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피해 입지 말아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인위적 구조조정 역시 "없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양사가 합쳐 세금 축내는 기업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역시도 당연합니다. 뒷이야기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거래를 '빅딜'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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